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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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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캠페인] “ 타죽은 보리를 수확하다 ”

등록 2006-06-30 00:00 수정 2020-05-03 04:24

농작물 수확기 놓치자 발만 구르는 농민들, 뒤늦게 국방부가 들여보내…“외부인들은 다 돌려보낸다고? 논밭에 철조망 친 군인들이 외부세력이지”

▣ 평택 황새울=두시간 대추리 이주자

대추리와 도두리 농민들이 경운기와 콤바인을 몰고 철조망 깊숙이 논으로 들어갔다. 나이든 할머니들은 삽이나 호미 한 자루씩을 들고 경운기에 탔다. 5월4일 군대가 논을 점령한 뒤로 처음 가는 길이었다. 6월23일과 24일 이틀 동안 보리와 마늘을 거두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주민들 표정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하지가 지나고 장마를 맞아 수확기를 놓쳐버린 곡물들이 온전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는 줄기차게 영농 보장을 요구해왔다. 정부와 국방부는 들은 체도 안 했다. 주민들은 타들어가는 농작물을 멀리 두고 애타는 심정으로 발만 동동 굴렀다. 군대가 친 철조망 안에서 농작물이 타죽고 썩어죽었다는 말이 나올까 두려웠던 정부는 선심 쓰듯 주민들에게 이틀을 던져줬다. 그러면서 갖가지 단서를 달았다. 주민은 경찰이 보는 가운데 수확해야 하고, 지킴이들은 참여할 수 없다는 것 등이다.

“대화 재개”라며 생색내다

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생색을 냈다. 뉴스에는 보도자료에 쓰인 대로, 대추리 김지태 이장이 구속된 뒤 단절된 정부와 주민의 대화가 다시 시작됐다고 나왔다. 팽성주민대책위 김택균 사무국장은 “작물 수확에 관한 만남일 뿐 대화 재개가 아니”며 “수확 건만 대책위의 위임을 받아 혼자 나오게 됐다”면서 “정부는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말했다.

그는 또 주민들에게 “들에 가서 보시고 너무 놀라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미군부대 캠프 험프리스 담장에서 가장 가까운 들인 황새울에는 “군대가 2차선 도로를 낸 탓에 건질 작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대추리 주민 강권석씨는 국방부가 생색을 내면서 여론을 호도한다고 말했다. “보리를 베게 하려면 비 오기 전에, 하지 전에 하게 했어야지. 우리가 얘기하기 전에.” 접(100개)으로 파는 마늘은 정상적으로 수확하면 한 접에 4~6kg, 많으면 7~8kg까지 나온다. “그렇지만 시방 캐야 1~1.5kg밖에 안 나올 거야. 수확량으로 보면 4분의 1이지만 돈으로 계산하면 10배 이상 손해를 봐. 일거리만 생기지 제 수확을 못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농민이지만, 대한민국 언론에 그런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달라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한 요구였는지도 모른다.

도두리 농민 한승철씨도 정부에 대해 못마땅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수확을 하라고 한 것은 국민 정서상 보리가 타죽고 마늘이 썩었다고 하면 자기들이 나중에 골치 아프니까 마지못해 하는 거야. 위법은 국방부에서 했잖아. 영농 행위를 하지 말라는 공문은 왔지만 실제로 공탁이 걸린 건 12월이잖아. 마늘은 11월 초에 심었고, 보리는 9월 중순부터 심었다고.”

수확을 거부한 주민들도 있었다. 대추리 주민 홍민의씨는 “난 보리 수확 안 해. 들에 가봐야 마음만 더 아프고, 눈물 콧물 다 뺀다니까. 오히려 변상받아야 해.” 그는 “아이 낳아놨다고 다 크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대추리 마을회관 앞에서는 정오도 되기 전에 들에서 돌아온 주민들이 평상에 허탈하게 앉아 있었다. 주민 성경선씨는 “우리 집 마늘이 좋기로 소문났었는데, 오전에 가보니 군대가 막사를 지어놔서 다 죽어 있었다”고 말했다. 주민 이태웅씨도 “보리를 제때 수확을 못해 다 삭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주민들이 수확을 위해 들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6월23일 오전 9시였다. 주민들은 촛불행사장으로 쓰고 있는 대추리 농협창고 앞에 모였다가 군인들이 초소를 세운 곳을 지나기 시작했다. 군인들은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적고 신분을 확인한 뒤 주민들을 통과시켰다. 취재기자 두 명이 들어가지도 못하고 도리어 사진만 찍힌 다음 초소 앞에서 되돌아 나왔다. 지킴이들 예닐곱 명이 군인들에게 막혀 들로 나아가지 못했다. 군인들은 무전으로 “외부인들 돌려보냄”이라고 짧게 보고했다.

3차 평화대행진, 늘어나는 ‘외부 세력’

그렇지만 주민들이 바라보는 외부인들은 국방부와 경찰이었다. 도두리 이상열 이장은 “도움을 주는 사람은 우리가 외로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은 외부가 아니라 일본, 미국, 프랑스, 독일에서도 올 수 있는 거 아니여. 우리끼리 했으면 벌써 까무러쳤어. 그걸 외부 세력이라고 하면 아무런 군사시설이 없는 곳에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고 지정해놓고 들어온 군인들이 외부 세력이지.”

6월18일 3차 평화대행진에 수천 명의 시민들이 대추리·도두리를 둘러보려는 마음에 찾아왔다. 정부는 그들을 막았다. 이상열 이장은 “그것은 정부 잘못”이라고 말했다. “평화대행진 참가자들은 손에 막대기 하나 안 쥐었어. 여기 한번 둘러보고 가는 게 두렵다는 건 자기들이 여기서 저질러놓은 모습을 온 국민에게 알리는 게 부담이 됐다는 얘기야.”

정부는 주민들에게 쭉정이만 남은 보리와 마늘 수확을 ‘허용’했지만 건답직파해 30cm 넘게 자란 벼에 대해서는 수확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 땅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는 농민들의 소박한 꿈은 여전히 큰 벽에 부딪혀 있다. 군인들이 주민들을 막는 사이 정부가 두려워하는 ‘아름다운’ 외부 세력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들이운다] 여기선 콩 하나라도 심어먹지

논도 다 뺏기고 집만 남았는디, 어디로 가나 걱정이여

▣ 이순금(73)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68-9

주민들이 철조망 안에 있는 논에 들어가기 위해 분주한 아침, 이순금 할머니는 여느 때처럼 집 앞 수돗가에서 걸레를 빨고 계셨다.


논이 한 구간도 없으신 할머니는 콩밭 매러 갈 준비를 하신다.

논에 가나 마나 상관없어. 논에 아무것도 없응께. 콩밭 매야지. 콩이 요만치 나왔어. 밭 요만한 거 두 고랑 있응께. 이달 15일께 심었어. 가을에 먹어. 밭에 가 있으면 깜깜한 새끼들이 꾸역꾸역 나와. 차에서 까마귀떼가 새까맣게 나와. 갸들이 밭이라도 밟을까봐 걱정이지.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논도 없어. 여기 올 때 몸뚱이만 왔어. 여기 온 지 44년 됐어. 작은아들을 여기 와서 났어. 땅 좋다고 해서 예산서 살다 여기 온겨. 땅 좋다고 해서 왔는디 처음에 와서 논바닥을 가보니께, 항아리 지고 가다 다 자빠지는 거여. 논바닥이 미끄러워서. 그전에는 개흙이라 미끄러워갖고. 시방은 땅이 너무 좋아. 그전에는 밥해가지고 들에 나가면 새끼줄을 감고 댕기드라고. 논바닥에 자빠져 밥도 흘리고 국도 흘리고 그러는 거여. 지금은 땅이 되게 좋아졌어. 지금은 논들이 반듯반듯 여간 좋아. 그전에는 그런 논이 없었지.
나는 땅 한 구간 샀던 거 동백흥농계 재판 땜에 다 뺏겼어. 정부 땅이라 꼼짝 못하고 뺏겼지. 할아버지는 2004년에 돌아가셨어. 그거 땜에 싸우다가 우리 할아버지도 평택 경찰서에도 살고 재판하러 수원경찰서에도 갔어. 나도 수원이랑 평택이랑 면회를 수십 번 갔어. 빈 몸뚱이만 하루하루 품 팔아먹고 생활했지. 남의 논 두어 구간 얻어갖고 짓기도 했는디, 지금은 집밖에 없어. 집만 쳐다보고 있는 거지. 그것도 남의 덧방 살면서 근근이 벌어먹으면서 집을 지었어. 논도 빼앗기고 집만 이렇게 남았는디, 이제 어디로 가야 사나 걱정이여.
아무것도 없어도 여기서 살면 밭에다 열무 한 점이라도 콩 하나라도 심어먹지. 도시 나가면 다 돈이지. 그런 게 걱정이지. 여기를 떠나면은 노인정도 없고 낯선 데 가서 어떻게 살아. 나물이라도 뜯어먹고 김치라고 얻어먹고 그러잖아. 대추리 사람들 우애가 좋았지. 우애가 좋았는디 이렇게 되는 바람에. 옛날 여기 살던 사람들 만나도 말도 않고. 그게 뭐여.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
우리 작은아들도 대추초등학교 다녔어. 큰아들은 계성초등학교 다니다가 여기 학교 생기면서 여기로 옮겨온 겨. 가까운 데 댕기니께 좋아했지. 학교 지을 적에도 없는 사람은 돈도 쬐금 내고 있는 사람은 좀더 내갖고 지었어. 그걸 저렇게 부수고 나니께 속이 아프고. 우리 아들들이 와서 보더니 우리가 댕기던 학교인데 저렇게 되었다면서 한마디씩 하더라고. 그렇게 말려도 계속 부수대. 우리는 무서워서 댐비지도 못하고. 무조건 때려부수더라니께.
사진·인터뷰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진재연




법학자들도 일어났습니다


93,352,582 원
6월23일 현재 모금액 9335만2582원

결국에는 법학자들까지 일어났습니다. 1989년 한국 사회의 법제도와 법학의 민주화에 이바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민주주의 법학 연구회’는 6월22일 “이대로 평택이 미군기지로 자리잡기 전에 이 사태의 단초가 미군기지 이전 협상과 ‘전략적 유연성 합의’의 위헌성을 다퉈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선언을 발표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강제 접수한 농지를 공고하게 수비하기 위해 대추리 일대를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대추리에서 끝까지 투쟁하는 시민들을 향해 “군형법 적용 및 군사재판 회부” 운운할 수 있는가 물었지만 정부는 답이 없습니다. 도 진보적인 법학자들처럼 정부가 지난 수개월 동안 평택 대추리에서 보여준 행정 행위는 이 땅의 민주주의 질서를 뒤흔든 ‘위헌’이라 믿습니다.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우편번호 451-802)

이기섭(5만원) 공순덕(5만원) 권혁 이루리 굼뜬소(3만원) 민노씨(15만원) 박은영(10만원) 경희대 철학과(30만원) 송호석(5만원) 승광은(5만원) 김기흥(5만원) QX(3만원) 김진(3만원) 매현중분회(10만원) 동안고 1-14(5만원) 정우영 박진근(5만원) 고진아(5만원) 고려대 한국사(5만원) 선안나(10만원) 이미경(5만원) 고병우 고천심 최서연(3만원) 박정순(5만원) 이혜정(5만원) 유상록(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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