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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캠페인] 기무사 이전 때는 반성하더니…

등록 2006-05-18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꼬여만 가는 평택문제, 협의 제안에도 “정당한 법 절차” 되풀이… 2005년엔 과천 주민 반발하자 국방부가 나서서 다자간 협의체 만들어</font>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지난 5월4일 평택 팽성읍 대추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치욕적인 공권력 행사 이후 ‘평택 사태’는 접점을 찾지 못하고 점점 꼬여가고 있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군 형법 동원” 운운하며 ‘미군기지 확장 반대’를 외치는 젊은이들을 윽박질렀고, 총리실에서는 “평택 폭력 시위에 국민 81%가 반대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를 부랴부랴 내놨다. 공무원들의 말은 ‘정당한 법 절차’ ‘국회 비준 동의를 받은’ ‘합법적인 공권력 행사’라는 형용어구들로 눈부셨는데, 그들의 말이 화려함을 더해갈수록 그들이 겨냥하는 것이 무엇인지 점점 모호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그저 “일이 이렇게 꼬여 우리도 난감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토론 끝에 5분의 1 수준으로 합의

과연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유영재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 정책위원장은 “지금이라도 범대위가 제시한 주민-정부-시민사회단체 제3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기구를 구성해 문제를 풀자”고 말했다. 범대위와 주민 대표는 지난 5월1일 국방부와의 2차 대화 모임에서 3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기구 구성을 제안했지만, 국방부는 이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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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기구를 만들면 주민과 시민사회단체들은 결론 도출을 위해 쉼 없이 타협하고 양보해야 한다. 범대위와 주민들은 겉으로 “미군에 땅 한 평도 내줄 수 없다”는 구호를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원만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양보할 준비가 돼 있다”고 무언의 사인을 보낸 셈이다.

다자간 협의기구는 우리에게 생소한 개념일까. 국방부는 지난 2005년 다자간 협의기구를 통해 2002년부터 4년 가까이 갈등을 빚어온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 과천 이전 문제를 깔끔히 해결한 경험이 있다. 국방부가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위치한 기무사를 경기도 과천시 주암동 땅 26만 평으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은 2002년 4월4일이었다. 기무사 건물은 일제시대 초기인 1913년에 세운 것으로 면적이 8천 평으로 좁은데다 1996년 안전진단 결과 ‘사용 불가’ 판정이 나와 이전이 시급해졌다. 국방부는 이때도 이해당사자들과 시민사회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해, 106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기무사 과천이전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결성, 반대 서명운동, 궐기대회, 촛불집회, 시장의 단식 투쟁 등의 반발을 불러왔다. ‘정해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실시계획을 확정해 사업공고를 내고, 한국토지공사를 통해 토지 보상 계획을 공고하는 등 밀어붙이기로 사업을 진행해온 모습까지 ‘평택 사태’와 판박이다.

결국 국회 국방위원회가 나서 2005년 4월21일 국방부 쪽에 다자간 협의체를 만들 것을 권고했다. 국방부·기무사·과천시·과천시의회·지역주민대표가 모인 다자간 협의체는 2005년 7월8일 1차 본회의를 열었다. 이들은 다섯 달 동안 9차례에 걸친 격론 끝에 2005년 11월4일 최종 합의를 도출해낸다. 최종 합의 결과 애초 25만 평(시설물 면적 6만2천 평·훈련장 면적 11만4천 평·기타 부지 면적 5만1천 평)으로 계획된 기무사 터는 그 5분의 1 수준인 5만6천 평으로 줄어들었다. 국방부는 “과천에 ‘기무사 복지타운’을 만드냐”는 과천시와 주민들의 반발을 이겨내지 못했다. 국방부는 ‘2005년 갈등관리 평가 및 우수과제 보고’에서 “대규모 이전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법정 절차만 준수한 나머지 홍보가 부족했고, 시민·관련 단체장만을 대상으로 홍보한 나머지 충분한 의견 수렴이 미흡했다”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각계 인사 92명 협의 제안

범대위와 시민사회단체들의 주장도 이와 같다. 평택 사태 해결을 위해 시민사회의 각계 인사 92명은 5월10일 오전 9시30분 프레스센터 7층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가 평택에 조성될 미군기지의 용도·목적·비용 등에 대해 시민사회는 물론 해당 주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거나 진지하게 협의하지 않은 채 강압적인 공권력을 행사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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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평택 미군기지의 용도·목적·비용과 관련한 문제 제기에 정부가 분명한 답변을 내놓고, 국민적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평택기지 확장을 위한 강제집행을 중단할 것 등을 제안했다. 정부의 밀실 협상과 국회의 무책임한 비준 동의로 절차적 정당성은 확보했지만, 실질적 정당성을 얻지 못한 ‘용산기지 이전’ ‘연합토지관리계획’ ‘전략적 유연성 합의’ 등에 대해 재검증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필요하면 부지 제공 면적과 우리 정부의 비용 분담 수준에 대해 미국과 재협상하는 것만이 이번 사태의 유일한 민주적 해결책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국제정치경제 칼럼리스트 홍기빈씨는 5월8일치 <한겨레> 칼럼에서 “(대추리와 한-미 FTA를 둘러싼 논란은) 87년 이후 거의 20년 동안 진행된 이른바 ‘민주화’의 바깥 테두리가 어디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적었다. 홍씨의 주장대로 그 ‘민주화’가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의제들은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상, 즉 미국과 관련된 주제들이고 이 의제들은 한마디로 ‘신의 영역’에 해당한다.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또 납득하지도 못하는 과정을 통해서 어디선가 그 방향과 지침이 결정되면 우리의 정부는 그것을 ‘수행’할 뿐이다. 자신 혹은 자신들을 뽑아주기만 하면 마치 세상이라도 들었다 놓을 것처럼 잔뜩 사람들 마음을 부풀려놓았던 ‘개혁’ 세력이라는 이들을 청와대로, 여의도로 보내봐야 이는 변하지 않는다.”

민주적인 절차가 정치적 트집인가

2004년 6월 한국 정부와 주한미군 이전 협상을 진행하던 미국 정부는 애초 312만 평으로 정해진 부대 제공 면적을 330만 평으로 추가 요구하더니, 나중에는 합의를 뒤집고 360만 평을 주장해 358만 평을 관철했다. 협상에 나섰던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보는 그 무렵(2004년 6월9일) <조선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50년 동맹의 한-미 관계에서 30만 평의 차이가 쟁점화돼 좌절감을 느낀다”며 “(미국이) 합리적인 차원에서 제기한 것이 (한국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발전된다면 타협책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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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미국 사람들의 두뇌 속에 주권국가 한국의 민주적인 절차와 제도는 한갓 ‘정치적’인 트집에 불과했던 것일까. 국방부는 아마도 대추초등학교에서 그랬듯, 주민들이 살고 있을 집을 허문 뒤 주민들을 길 밖으로 내쫓을 것이다. 박래군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은 “(다자간 협의체 구성 요구에 대해) 아직까지 정부의 특별한 반응은 없다”고 말했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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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의 자부심을 가지라고요?</font>

<font color="darkblue">어느 예비역 중위가 자신의 상관이었던 국방부 박경서 소장에게 보내는 편지… 동북아 기동군을 지키기 위해 국민들에게 곤봉을 휘두르라고 가르치셨습니까</font>

박경서 소장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서 근무한 예비역 중위입니다. 소장님께서 사단장으로 재임하셨던 기간입니다. 저는 예비역이므로 경례구호는 붙이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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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소장님께서 가끔 매스컴에 등장하시더군요. 전에 모셨던 사단장님이라는 생각의 반가움보다는 착찹함이 앞섰습니다. 어쩌면 제가 아직까지 현역으로 있었다면, 평택으로 가서 소장님의 명을 따를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폐유로 뒤범벅돼 있는 우리 땅

소장님 아실는지 모르지만, 저는 학군단(ROTC) 출신입니다. 소장님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임관하기까지 그리고 임관하고 나서 조국의 장교라는 자부심에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소장님을 두 번 정도 교육 목적으로 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첫 번째는 임관 뒤 배속 전이었습니다. 그때 소장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장교라는 자부심, 군대의 기간이라는 자부심, 국가와 국민을 보호한다는 자부심, 그것이 장교들의 식량이다. 전쟁터에서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동상을 보여주시면서, 이것이 진정한 장교의 마음가짐이어야 한다”라고 말이죠.
취지는 매우 좋습니다. 100이라는 미군 기지를 받고, 80을 내어준다. 아주 좋습니다. 미군이 절대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잠깐 동의한다라고 치면, 어차피 주둔할 거 20이라는 땅이 새로 생겼으니 우리에게는 이득이죠. 그런데 소장님 전체 100이라는 땅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잘은 모르지만,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의하면 책임은 우리나라가 더 많더군요. 지금 100이라는 땅이 과연 어떤 상태인지 한번 생각해보셨습니까? 폐유로 뒤범벅돼 있다는 소식을 한번이라도 접해보셨습니까? 충성심이 대단한 국민이라면 당연하게 환경 파괴 비용까지 우리가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은 부시 대통령의 허락을 받고 들어가야 하는 미국 땅이 아니라 우리나라 땅입니다. 여기에 소장님의 판단 오류의 첫 번째가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소장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국민을 보호하려는 마음가짐과 함께 국가와 국민에 충성해야 한다. 그것이 장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소장님, 군사시설이 아닌 논바닥에 죄 없는 병사들 몇 명 데려다놓고, 동시에 군사시설로 못박고 또 국민들에게 곤봉을 휘두르라고 저에게 가르침을 주지는 않으셨습니다. 여기에 소장님의 판단 오류의 두 번째가 있습니다. 굳이 진압에 대한 판단이 확고하셨다면 경찰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전 이 모든 평택 상황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제 출신조차 부끄럽습니다

우리나라가 남북 대치 상황이라는 것은 부인하지 않습니다. 전방에 배치된 미군의 조정은 북한에 선제 공격의 빌미를 주고, 남북 대치 상황 아래서 기지 조정은 동북아 기동군으로서의 빌미를 제공해줍니다. 동북아 기동군으로서의 위치를 변모시킨 미군 탓에 예기치 못한 상황 아래서 전력 공백이 생길 수 있습니다. 평택이 동북아 기동군으로 변한 미군들의 새로운 거점이 되는 것이지요. 여기에 소장님 판단 오류의 세 번째가 있습니다.
소장님, 저는 지금의 장교 후배들에게도 항상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병사들에게는 아버지가 되어야 하고, 국민에게는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 그런 장교로서 말이죠. 그러나 지금은 제 출신조차 너무 부끄럽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고, 제발 특정 출신들의 생각의 한계라고 못박지 말아주십시오. 부디 건승하십시오.

수기사 출신 예비역 중위 이석주(29)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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