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캠페인_ 대추리를 평화촌으로!]
“평택 시청이 받지 않거든 태워라”며 주민등록증 내놓은 한많은 어르신들
주민들은 굳게 잠긴 시장실을 보며 대한민국 국민이길 포기하고 불을 붙였다
▣평택= 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주민들은 밤새워 주민등록증을 모았다. 마을 대표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밤새 150장을 모았다. 노인들은 집을 찾은 젊은이들에게 “시청에 가져가 받지 않거든 아예 태우고 오라”고 말했다. 방승률(72) 할아버지는 “530일째 촛불시위를 했지만 정부에서 우리 얘기를 듣지 않는다”며 “도대체 우리에게 정부가 있냐”고 물었다. 그는 “이 시간부터 대한민국 국민이길 포기하겠다”고 했지만, 그 말이 진심일 리는 없다. 노인들은 주민등록증을 꺼내놓으며 울었다.
그 모든 사연들이 담긴 플라스틱
주민들이 모아온 주민등록증을 한장한장 넘기는데, 낯익은 얼굴과 이름들이 눈을 잡아끌었다. “미군 등쌀에 못 이겨 장롱을 이만큼 꺼내서 그 뒤에 숨어 있었다”던 김인순(72) 할머니는 어색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고, “세 번씩이나 야속허게 빼앗아간다”던 조선례(89) 할머니의 사진은 표정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의 주민등록증 발행일은 1999년 12월5일로 모두 똑같다. 김택균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대책위) 사무국장은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이 처음 나왔을 때 주민들이 함께 모여 새 주민등록증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2월7일 오전 11시 주민들은 평택시청 현관에 모여 “소중한 우리의 땅을 미군의 전쟁기지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 “주민등록증을 자진 반납해 국적을 포기하겠다”고 외쳤다. 평택시 공무원들과 평택경찰서에서 나온 경찰들이 주민들의 주위를 둘러쌌다.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주민들은 주민등록증을 반납하기 위해 평택시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청사로 들어올 수 없다”는 공무원들과 “시장에게 주민등록증을 반납하겠다”는 주민들의 몸싸움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공무원들은 주민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평생 죽도록 일만 했다”던 이민강(67)씨가 “세상에 이럴 수는 없다”며 몸부림치며 흐느꼈다. 함께 온 주민들이 달랬지만, 그의 거친 숨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김지태 대책위원장(대추리 이장)의 아버지 김석경(78)씨도 이날 주민등록증을 반납했다. 그는 대추리에서 나고 자라고 혼인해 아들 둘과 딸 둘을 낳았다. 1942년 일본군들이 “비행기를 만든다”고 해 보국단에 한 달씩 끌려가 일했다. 부친은 12살에 죽었다. “아버지는 근처 오성면 제방 뚝 만드는 데 갔다가 시름시름 앓다가 추워서 감기 들어서 치료도 제대로 못했소.” 노인의 말을 높낮이가 없이 그저 평평했다. 그의 동생은 6·25 전쟁 때 인민군에게 끌려가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그때 동생은 17살이었다. 노인은 “동생이 살아 있으면 지금쯤 75살일 것”이라고 말했다. 6·25가 나던 해 혼인했고, 밭 550평을 소작했다.
정부가 그에게 존재를 처음 알린 것은 1952년이었다. 정부는 “미군에게 준다”며 땅 70평을 강제로 징발해갔다. 보상이 이뤄진 것은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1970년이었다. 수원에 있는 한국은행에 갔더니 5만원어치 채권을 보상금이라고 줬다. 은행 앞에서 채권을 할인해 3만5천원을 받았다. 그는 지금 땅 1만7천 평을 지어 해마다 쌀 400가마를 거둔다. 노인의 주민등록증은 봉투에 담겨 시장실로 향했다.
주민들은 공무원들의 제지를 헤치고 시장실이 있는 2층으로 향했다. 시장실의 문은 잠겨 있었다. 주민들은 “시장 면담 신청을 미리 했지만, 평택시가 면담을 거부했다”고 말했고, 시청에서는 “면담이 어려울 것이란 사실을 알려주려 전화했는데 대책위 쪽에서 받지 않았다”고 맞섰다. 수십 명이 뒤엉킨 아수라장 속에서 의미 없는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나도 도두리 주민”이라던 정인용 평택시 총무국장은 “주권을 포기했으면서 (시장실이 있는) 2층까지는 왜 올라왔느냐”고 말했다. 그는 구타 직전의 위기까지 몰렸다가 가까스로 몸을 피했다.
미군과 한국 정부가 빼앗아가겠다고 말한 평택의 너른 뜰은 불과 40~50년 전까지만 해도 드는 물에 밀리고 나는 물에 썰리던 갯벌이었다. 주민들은 손으로 둑을 쌓아 바다를 메워 농토를 한 뼘씩 넓혀갔다. 이날 주민등록증을 맡긴 방효태(70)씨는 “땅이 거칠고 척박해 보리를 이태 심어야 벼를 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땅이 안정된 것은 1973년 아산만 방조제가 완성된 뒤다.
“어르신들의 것은 차마 태울수가…”
방씨는 읍사무소가 있던 객사리에 있는 부용국민학교에 다녔다. 동네에서 학교로 가는 길은 10리가 넘었다. 매일 뛰어다니다 보니 학교에서 3천m 달리기 대회를 하면 대추리 애들이 1등에서 6등까지 상위권을 휩쓸었다. 일제가 물러간 뒤 일본 비행장이 있던 곳에서 공을 찼다. 그때는 부대와 마을을 가르던 철조망이 없었다. 소년들은 축구단 이름을 ‘대추리 소년단’이라고 지었다. 소년단에는 노래도 있었다. 방씨는 웃으며 1절 가사를 불렀다. “뒷동산 너머 푸른 바다는 물이 가득하고, 앞동산 수목 잘도 자라네. 소년 초목은 씩씩하게 자라는 대추소년단, 운동장이 울릴 때까지 우리 선수야.” 그는 2절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소년단은 1·4후퇴 때 없어져 자동 해산됐다. 그는 “지금 돌아가는 꼴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라고 말했다. 그의 주민등록증도 봉투에 담겼다.
평택시는 끝내 주민등록증을 받지 않았다. 평택시는 “주민등록증은 개인 재산이기 때문에 시에서 받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시청 현관으로 나와 주민등록증을 불태웠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임원과 주민들 10여 명이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불 속에 던졌다.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 쪽에서는 기자회견에 나오지 않은 주민들의 등록증은 일단 보관하기로 했다. 김택균 사무국장은 “어르신들의 주민등록증을 차마 태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아마도 주민등록증을 태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듣고 싶었던 것은 정부의 성의 있는 답변이 아니었을까 싶다. 정부는 끝내 침묵했다. 마을에는 머잖아 시작될 강제 철거를 위해 정부에서 철거용역을 모집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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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로 살아와서 남은 건 부엌 한칸 방 한칸, 어디로 가란 말인지
김월순(68) 팽택시 팽성읍 대추리 136-18
나는 언니도 없고 오빠도 없고 작은아버지도 없고 큰아버지도 없고. 나 하나. 원래 없는 거예요. 고아로 그냥 커서. 여기가 내 원고향이야. 우리 아버지가 나 어려서 돌아가시고, 외갓집에 가서 살다가 남의 집 아기들도 좀 봐주고 밥 먹고 살다가, 그렇게 굴러댕기메 천덕꾸러기로 자랐어. 그러니까 나는 국민핵교도 못 나왔어요. 학교 문 앞에도 못 가보고 가위개 뒷다리도 하나 모르고 그냥 무식자야 무식자. 어디서 뭐가 좀 오면 그것을 내가 못 보니까 가슴이 쥐어틀 때가 많어, 내가 정말.
이 동네 여기가 다 개펄이고 짠물이 당집 밑에까지 들어왔어요. 바다 나무쟁이 그거 뜯어다가 삶아서 무쳐먹고 겨울에는 그거 베어다가 방에 불 때고. 그렇게 하고선 개펄을 논으로 만들고 그랬는데. 이게 너무 억울하잖아. 나는 논도 없지만은. 부엌 한 칸, 방 한 칸 요거 갖고 사는데 요거 뜯어가지고 나간다 하면 어디 가서 방 한 칸 얻을 돈도 없잖아. 이거 받아봐야 몇 푼이나 돼. 그러니까 죽으나 사나 그냥 여기서 살다 죽어야지. 그저 미군만 안 들어온다면은. 그것만 바라는 거지. 뭐 더 바랄 것 없어.
끝끝내 가서 나는 여기서 살다가 그냥 세상 갈 예산을 하고 있는데 너무 이렇게 시끄러우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고 부담스러워, 진짜. 나가서 일을 해도 손에 일이 안 걸리고. 이게 미군이 안 들어온다면 떨어지려나 싶고 그냥.
요즘 불안하죠. 그냥 맨날 불안해요. 나는 맨날 이렇게 어렵게 살기 때문에 힘들어. 살기가 너무너무 힘들어. 그래서 그냥 요대로 살다가 그냥 여기서 죽어서 나가야 하는데. 그게 걱정이여. 저러는 거 보면 어디로 가야 허나….
그러고 난 딴 건 없어요. 그냥 남한테 아프게 안 해고 그냥 순화롭게 그렇게 살려고 노력을 했는데, 앞으로 남은 인생을 좀 깨끗이 살려고 맘을 먹는 건데 되려나 몰러. 나이가 먹어가지고 인저 어떻게 하고 살려나 싶은 게. 세월이 너무나 험해서 걱정이여.
인터뷰 두시간 평화바람 활동가·여름 푸른영상 일건
* ‘들이 운다’에서는 1940년대 초와 1952년 일본군과 미군에게 각각 고향을 잃고 쫓겨난 대추리·도두리 노인들의 육성을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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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한겨레21>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우편번호 45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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