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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유어북] 소녀의 여행가방 대학로에 나타나다

등록 2004-08-19 00:00 수정 2020-05-03 04:23

[프리유어북 | 책을 보내며]

‘책욕심’으로 빛났던 책나눔장터, 그 흥겹고 정겨운 풍경

▣ 글 · 사진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8월15일 오후 4시, 서울 대학로 문예회관 대극장 앞.

‘프리유어북’(www.freeyourbook.com)과 ‘책에 날개를 다는 사람들’(www.crossingbook.wo.to)이 모은 책 150여권이 테이블에 펼쳐졌다. 장터 한쪽엔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에서 준비한 ‘기적의 도서관’ 사진들이 전시됐다. 울산·진해·청주·제주·순천·제천·제주, ‘기적의 도서관’이 지금까지 7채가 지어졌다.

“엄마는 책 사지 말라고 성화예요”

“이거 공짜로 주는 거예요?” 모여든 행인들의 눈빛이 책욕심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지금은 무료지만 읽고 난 뒤 꼭 돌려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한참 동안 북크로싱의 개념과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관심 있는 책들을 두세권씩 챙겨들었다.

40분쯤 지났을까. 때아닌 책퍼주기에 신이 난 사람들 속에서, 한 소녀가 방금 먼 여행에서 돌아온 것처럼 바퀴 달린 가방을 질질 끌며 나타났다. 헉~ 놀라웠다. 그는 가방 안에서 20권의 책을 주섬주섬 꺼내놓았다. 밀란 쿤데라의 , 존 그리샴의 같은 소설부터 같은 철학서에 같은 몇권의 경영·실용서까지. 그는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에 대한 을 가리켰다. “저건 제가 정말 좋아하던 책이에요. 한때는 정말 지구에 종말이 올 거라고 믿었어요.” 20권의 방생도서 속표지 모두엔 프리유어북 사이트에서 다운받은 스티커를 야무지게 붙여놓았다.

전두영. 고등학교 2학년인 그는 프리유어북 기사를 읽은 뒤 송파구 오금동 집에서부터 대학로까지 전철을 갈아타며 이 가방을 들고 왔다고 했다. “지난주엔 읽던 책 30권을 헌책방에 갖다주니 달랑 3만원 주더라고요. 제가 정말 아끼던 것들인데…. 그렇게 돈도 조금 받고 팔아버리느니 차라리 사람들과 함께 읽자고 생각했죠.”

책을 헐값에 팔고 속상했다는 말을 들으니 덩달아 아까워져서 책을 그냥 집에 두면 안 되냐고 물었다. “어차피 책장은 한정돼 있잖아요. 그리고 엄마는 이제 책 좀 사지 말라고 성화가 장난 아녜요.” 그는 일주일에 평균 3권 정도를 읽으며, 분야는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섭렵하며 서점 가는 일이 취미라고 했다. 요즘엔 톨킨의 을 읽고 있다는 그는 영어책이지만 어린이들을 위해 씌어진 것이어서 무척 쉽고 재밌다고 설명했다. 그도 장터에서 책을 몇권 골랐다. “너무 늦게 와서 책이 조금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꼭 읽고 싶었던 가 남아 있어서 너무나 좋았어요.” 중경고 학생들이 발로 뛰며 쓴 역사이야기 도 빈 가방에 담겼다. “이런 종류의 책 정말 좋아해요.”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조숙하다 느꼈는데 방긋 웃는 얼굴이 앳되다.

이렇게 책 많이 읽는 ‘무서운’ 애들은 대체 나중에 뭐가 될까. “대학에선 경영학을 공부하고 싶어요. 경영인이 되는 게 꿈이에요.”

즐겁게 읽고 열심히 날려주세요!

장터를 벌인 지 1시간30분쯤 흐르자 슬슬 파장 분위기다. 이날 장터에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에게 목이 쉬도록 책방생(북크로싱)을 알렸던 박아름(24·책에 날개를 다는 사람들 회원)씨는 “오늘 읽고 싶었던 책을 찾아 너무나 신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저처럼 좋은 책을 발견한 기쁨을 느꼈겠죠? 공짜책 아까워 말고 읽고 난 다음엔 열심히 날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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