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9월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여야 지도부 오찬 회동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악수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노동자 300여 명을 구금한 것은 충격적 사건이다. 이른바 ‘동맹’을 이렇게 대해도 되는가? 이를 넘어 황당하기까지 한 것은 이번 사태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중요시하는 정책 목표가 서로 충돌함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주지하듯, 그것은 ‘무역’과 ‘이민’ 간의 갈등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협상 등을 통해 타국에 투자를 강제한 것은 국외 기업들의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미국은 오랜 기간 제조업 기반이 유실돼왔으므로 첨단 설비를 다룰 인력 자체가 부족하다. 결국 타국의 인력이 직접 나서야 한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취업비자 발급을 줄여왔다. 한국 기업과 노동자는 전자여행허가와 단기 상용 비자를 활용한 편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바로 이런 사례를 단속해왔다. 이러면 ‘투자 유치’와 ‘이민 단속’은 양립 불가능한 목표가 된다. 조금만 따져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인데, 트럼프 행정부는 왜 손을 놓고 있었을까?
이것은 포퓰리즘 정치의 특징이다. 포퓰리즘 정치는 완결적 해법을 상정하지 않는다. 대중이 원하는 바를 상황에 끼워 맞춘 서사를 통해 수용하면서 자기 권력 기반을 강화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대중이 원하는 바’는, 통치 논리상 대개 ‘안 되는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포퓰리스트 지도자는 자신이 대중이 원하는 바를 모두 관철하겠다며 집권에 성공한다. 통치 논리와의 간극은 ‘상대가 대표하는 부패 기득권 대 내가 대변하는 선량한 민중’이라는 대립으로 메꾼다.
가령 이런 식이다. 동맹의 돈을 갈취해 국내에 공장을 짓도록 하는 일을 감히 전 정권이 못한 이유? 그것은 그들이 부패한 기득권이기 때문이다! 상대 당이 이민자 단속을 못하게 하는 이유? 역시 기득권을 대변하는 전 정권의 음모다! 이 논법에서 ‘부패한 기득권’은 관료적 해법이나 엘리트 동맹의 합의 등을 포괄한다. 현대의 대의민주주의는 통치 과정 자체에서 대개 민중을 배제하지만 관행과 문화를 포함한 의회민주주의 시스템과 관료제는 최소한의 민주 질서를 유지한다.
그런데 포퓰리스트 지도자는 ‘대중이 원하는 바’를 관철한다는 서사를 쓰기 위해 ‘안 되는 이유’의 근거를 제공하는 의회민주주의와 관료제를 무력화해야 한다. 따라서 포퓰리스트 지도자는 권위주의적 방법론을 취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이러한 포퓰리즘 정치는 극우 정치의 재생산이라는 결과로 돌아오고 있다. 권력 유지 등 사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포퓰리즘적 시도가 극우 정치로 귀결되는 것이든 극우주의자가 포퓰리즘적 방법론을 취하는 것이든 극우 정치의 에너지가 대중적으로 확산하는 결과는 같다. 우리는 이런 ‘극우 포퓰리즘’의 한국적 버전을 이미 윤석열 정권을 통해 경험했다.
그러한 극우 포퓰리즘의 구호인 ‘윤 어게인’에 편승해 성립된 국민의힘 장동혁 지도부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 여의도 주변에는 장동혁 지도부가 전한길식 극단주의와 선을 긋고 지방선거를 대비한 변신(?)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많은데,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오찬 회동 장면을 보면 그럴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극단적 신경전은 없었고 성과가 크지 않음에도 정치 복원의 시작이라는 평가를 국민의힘이 내놓은 걸 보면 그렇다.
물론 계획대로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장동혁 대표는 오찬 회동 직전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한동훈 전 대표와는 함께할 수 없다며 이른바 당원게시판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당 소속으로 방송에 나가 해당 행위를 해선 안 된다며 ‘패널인증제’를 시행하겠다는 비상식적 주장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과의 회동을 앞두고 강성 지지층에서 동요 조짐을 보이자 이를 의식한 메시지를 내놓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보수 정치가 거듭나려면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를 자행한 윤석열 정권과 단절하는 것부터 해야 함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오찬 회동 다음날 이뤄진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 대부분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진 것, 특히 법무부가 청구하게 돼 있는 정당 해산을 직접 언급한 것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에 대한 비판에 힘이 실리지 않는 것은 실제 정청래 대표의 주장대로 국민의힘이 ‘내란’과 제대로 결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동혁 대표가 ‘1도씩 좌클릭’ 할 거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앞서 연합뉴스 인터뷰처럼 중도로 한 걸음 갈 때마다 강성 지지층이 원하는 메시지를 한마디씩 내놔야 한다면 이 역시 제자리걸음에 그칠 것이다.
무엇보다도 보수 정치 전체가 향하는 방향이 문제다. 한겨레의 최근 ‘한-미 극우 연대 해부’ 기획 보도를 보면 미국의 극우 포퓰리즘 세력과 한국의 부정선거론자들 간 연대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이 드러난다. 보수 정치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조선일보는 대선 직후 미국 극우 포퓰리즘의 중심인물인 스티브 배넌 인터뷰를 지면에 실었고(2025년 6월12일), 아예 국민의힘이 극우 포퓰리즘에 편승할 것을 적극 주문하는 전 편집국장의 칼럼(7월30일)을 게재했다. 이런 현상은 미국 포퓰리스트들의 세계 극우 정치 수출 전략에 한국 보수 정치가 적극 호응한다고 볼 때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직전에 내놓은 ‘숙청 또는 혁명’ 메시지에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김문수 당시 후보나 나경원 의원 같은 인사들이 반색하며 호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수 정치의 기본 문법 자체가 이미 극우 포퓰리즘화된 것이다.
물론 이재명 정권이 여론조사상 높은 지지를 얻으며 주류로서 통치 논리를 담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찾는 시각도 있을 것이다. 검찰개혁에 대한 대통령실과 여당 사이의 긴장은 이 점을 드러낸다. 문제는 이 구도가 ‘엘리트주의 대 포퓰리즘’의 대결을 답습한다는 데 있다. 이 구도에서 통치를 책임지는 세력은 결국 ‘부패한 기득권’의 혐의를 뒤집어씀으로써 장기적으로 극우 포퓰리즘의 먹잇감이 돼왔기 때문이다.
사실 포퓰리즘이 상정하는 ‘대중이 원하는 바’를 관철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다. 이게 바람직한 결말로 가는 유일한 경우는 앞서 상정한 노골적 권위주의에 기대는 외설적 ‘국가 주권’의 실현이 아니라 지금과 완전히 다른 대안 체제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민주주의의 실현, 즉 ‘시민/인민 주권’(장석준) 구현으로 향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선택지를 감히 상상하지도 못하고 있다. 오히려 ‘시민/인민 주권’의 자리를 메꾸는 것은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논란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코스피 5000 시대를 갈구하는 조직된 소비자-투자자 정신이다. 진정한 위기는 여기에 잠복해 있는 게 아닐까?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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