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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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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 땀났던 대선 보도 경쟁, 결국 내란을 세탁했다

고민도 실력도 없는 관성적 보도, 정책·의제 실종 네거티브 선거전 부채질
등록 2025-06-06 09:27 수정 2025-06-10 08:29
2025년 5월1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이준석 개혁신당, 권영국 민주노동당,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오른쪽부터)가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제21대 대선 1차 후보자 토론회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025년 5월1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이준석 개혁신당, 권영국 민주노동당,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오른쪽부터)가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제21대 대선 1차 후보자 토론회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제21대 대통령 선거는 12·3 윤석열 친위 쿠데타의 후속 조처로 치러졌다. 이를 다룬 기성 언론들의 보도는 어땠을까.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들은 기성 언론이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의제 발굴과 제시는 등한시한 채 판세 위주 보도, 기계적인 균형, 후보자의 말이나 공약에 대한 무비판적 전달 등 기존 보도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준석 언어 폭력도 받아쓰기 보도

“연예뉴스 전하듯 내란을 세탁했다.”

2025년 5월23일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부정선거 주장 영화 관람’을 두고 나온 보도 행태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민언련이 모니터링한 20개 언론사는 5월21일 관람 당일 389건의 기사를 쏟아냈는데, 이 가운데 161건(41.4%)은 아무 비판 없이 그대로 소식을 전달하는 기사였다. 특히 이 영화의 감독이 한 말을 인용해 ‘윤석열 메시지’를 그대로 전달한 기사도 14건 포착됐다.

5월27일 ‘대통령 후보자 3차 티브이(TV)토론회’에서 나온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여성혐오 언어폭력에 대해서도 언론의 받아쓰기 관행은 반복됐다. 5월28~29일 관련 보도가 쏟아졌는데, 조선일보·매일경제·한국경제 등은 이 후보의 발언을 여과 없이 그대로 실었다. 채널에이(A)는 이 후보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선거 판세 영향” 여부를 묻는 등 성폭력 비판을 정치 공세로 몰았다.(5월30일 민언련 모니터링)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교수(미디어영상홍보학)는 “이번 대선 언론 보도는 후보자들 말을 옮기는 따옴표 중심이었다. 무난하고 비난받지 않을 선택을 한 것”이라며 “보도하지 않아도 될 말에 끌려다닌 건 비겁한 일이다. 응원하려는 쪽도 문제지만, ‘이렇게 나쁜 인간이다’라고 보여주려는 다른 쪽도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한덕수 대망론’ 보도 역시 대선을 정책이나 의제보다는 승부로만 바라보는, 언론의 편협한 시각이 반영된 사례다. 일부 언론은 내란 동조·옹호는 외면·축소하고, ‘무난한 이미지’ ‘경제전문가’ ‘영어 달인’ 등 미화된 프레임만 강조했다. 채널A는 4월4일 ‘한덕수 대망론?…국민의힘 일각선 출마 요구 움직임’ 보도에서 “개헌 이룰 적임자” “정책으로 압도”와 같은 평가를 담았다. 한 발 더 나가 조선일보는 4월8일 ‘윤 재구속, 김건희 특검, 내란 공범 수사…적폐청산 시즌2 예고’ 기사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등에 대한 ‘내란 동조 혐의’ 수사 요구를 ‘정치 보복’이라고 규정했다. 이런 유력 언론들의 찬양 일색 보도에 힘입어 4월 첫째 주 2%이던 한덕수 권한대행의 지지율은 출마 포기 직전(5월10일)인 5월 첫째 주 23%까지 높아졌다.(한국갤럽 조사)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는 “이번 선거는 내란으로 갑작스럽게 치러진 선거였다. 훼손된 민주주의를 어떻게 회복할지 언론이 적극적으로 질문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후보 검증조차 충분히 되지 못했다”며 “이슈나 정책 보도도 민주적 원칙에 기반을 둔 심층 보도가 잘 안 보였다. 각 캠프에 마크맨 붙여서 말꼬리를 잡거나 단순 중계하는 것 위주의 보도였다. 선거를 게임하듯 판세 중심으로 보도하는, 늘 해오던 문제가 되풀이됐다”고 말했다.

대다수 언론이 ‘이재명·김문수·이준석’ 3자 구도로 설정한 것 역시 언론의 선거 보도에 대한 고민 부족을 드러낸 대목이다. 보수 내지 중도보수 의제 중심으로 선거판이 짜였다. 반면 유일한 진보 후보인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의 목소리를 다룬 언론은 많지 않았다. 정연우 세명대 교수(광고홍보학)는 “(3강 구도 설정 등으로) 법 밖의 노동자, 이주민 차별, 여성(차별) 등 진보 의제는 거의 논의가 안 됐다. 거대 양당 후보는 분배나 양극화 해소, 노동 의제는 거론하지 않고 성장 담론만 이야기했다”며 “석과불식(碩果不食·큰 과실은 다 먹지 않는다)이라고, 진보의 정치적 공간을 확보해줘서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우경화되는 걸 막도록 언론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홍원식 교수는 “그동안 해온 것처럼 3자 구도를 설정했지만 세 사람이 대등하지도 않았고, 공약 등 준비 정도도 큰 차이가 났다. 그런데도 거대 양당에 이준석 후보 정도를 넣어 기계적으로 대등하게 설정해놓고 보도해서 유권자의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기성 언론이) 너무 안일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기계적 중립 넘어 네거티브 확성기 역할

의제가 실종된 선거판을 지배한 건 네거티브 난타전이었고, 기본 소양이 부족한 발언도 넘쳐났다. 하지만 언론은 기계적 중립을 지키거나 나아가 확성기 역할을 자처했다. 세 차례 이뤄진 TV토론은 그 정점이었다.

5월27일 TV토론에서 이준석 후보의 성폭력 발언은 현장 사회자에 의해 즉시 제재받지 않았다. 2024년 9월 미국 대선 TV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특정 지역 이민자들 혐오 발언을 사회자가 즉각 개입해 바로잡은 것과 대조적이다.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발언은 트집잡기식 공격용으로 활용됐다. ‘커피 한 잔 원가 120원’ 발언이 대표적인데, 이 발언은 5월16일 유세에서 경기도지사 시절 계곡 불법 영업을 정리하면서 독점 업체들에 업종 변경을 설득한 과정을 설명하면서 등장했다. 하지만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등은 TV토론 등에서 앞뒤 맥락은 잘라내고 “소상공인을 악덕 업자로 매도했다”는 식으로 매도했다. 언론은 이 발언 역시 팩트체크 없이 그냥 퍼다 날랐다. 심영섭 교수는 “정책 얘기는 없고 상대 말꼬리만 잡고, 질문자는 어떤 터무니없는 얘기를 해도 괜찮다는 건 정상이 아니다”라며 “(TV토론에서) 패널들이 나와 각종 주제로 질문하고 후보자들이 상호 토론하는 방식 등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후보들도 유튜브 등 대안 매체를 먼저 찾았다. 이재명 후보는 ‘1400만 개미와 한배 탔어요”(5월28일), ‘박정호의 핫스팟”(6월1일), ‘압도적 재미 매불쇼’(5월29일), ‘김어준의 뉴스공장’(6월2일) 등 선거 막판 유튜브 채널 출연에 집중했다. 5월22일 유튜브 채널 ‘공부왕찐천재 홍진경’에 출연한 김문수 후보도 아침 8시에 나온 뒤 출연 분량이 부족하다고 하자 시간을 쪼개어 같은 날 밤 11시에 보충 촬영을 하는 등 힘을 쏟았다.

이에 비해 방송 메인 뉴스 출연이나 신문 인터뷰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TV 연설’도 확 줄었다. 공직선거법상 TV 연설은 열한 번까지 할 수 있는데 이재명 후보는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고, 김문수 후보도 일곱 번만 활용했다. 2022년 제20대 대선의 경우 이재명·윤석열 후보 모두 열한 번의 기회를 꽉 채웠다.

 

새 정부 언론개혁, 저널리즘 품질 향상부터

“민주주의 체제에서 언론을 통한 정보 유통이 주권자의 판단을 돕고 가짜를 제거해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한 사회로 만들어 매우 유용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특별한 보호를 한다. (…) 언론의 규모가 크든 작든 관계없이 제 역할을 한다면 충분히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이재명 후보가 6월2일 선거운동 과정에서 기자들을 만나 한 말이다.

무엇보다 언론이 심층 보도를 하기 위한 자체 노력과 더불어 공공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공영방송 등 TV는 윤석열 정부의 정치적 탄압으로 내홍을 겪으면서 독립성 확보가 안 됐던데다, 젊은 시청자층에게 소구하기에는 너무 낡은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또 신문은 진보·보수 정파적으로 나뉘어 있다. 후보들 입장에선 유튜브 같은 플랫폼이 수용자를 타기팅하기 수월했을 것”이라며 “언론들이 잘 팔리는 기사 위주로 보도하고, 점점 더 비용과 시간을 들이는 심층 보도나 기획 기사는 쓰기 어려운 환경인데다 역량도 부족한 상태다. 민주주의 회복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한 선거였음에도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새 정부에서 언론개혁이 진행될 때 가장 먼저 저널리즘 품질을 향상하는 방식의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이번과 같은 저널리즘 실종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많은 시민과 언론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언론 혐오를 드러내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진영 논리에 따른 보도와 논평이라는 불신이 너무 깊어서겠지만, 언론과 기자를 혐오하는 건 결국 민주주의를 해치는 일이에요. 모든 기사가 다 내 마음에 들 순 없잖아요. 우리나라에도 르몽드나 가디언 같은 신뢰받는 언론이 생길 수 있도록 긴 호흡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좋은 기사를 발굴한 기자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정연우 교수의 말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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