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제1559호에 실린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교수 글에 대한 반론에 대해 박노자 교수가 다시 반론을 보내와 싣는다. _편집자
나는 이해영 교수(이하 존칭 생략)의 반박문을 읽어가면서 대단히 안타깝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그도 나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희망할 것이고, 그도 나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참화가 하루빨리 그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데도 왜 하필이면 그와 나는 이 전쟁에 대한 이해를 이토록 서로 달리하게 됐을까. 나는 그의 반박문을 읽어가면서, 그의 우크라이나 현대사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나와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의 직업이 역사가인 만큼 나는 일단 여기에서 우크라이나의 동시대 역사와 현실에 대해 개관하고 이를 바탕으로 반박문에 피력된 그의 주장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를 통해 이 반(反)반박문이 우크라이나 관련 뉴스를 접해야 하는 독자 여러분에게 ‘역사 교양’ 차원에서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크라이나는 수십 개 민족이 어울려 사는 나라다. 일부 자칭 ‘친러시아파’ 지식인들이 경멸적으로 ‘네오나치’라고 부르는 지도부는 사실 인종적으로 다양하다. 유대계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이외에도 거기에는 그루지야(조지아) 계열의 다위드 아라하미야, 아니면 (일부 증언에 의하면 우크라이나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러시아 출신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장군 등이 속해 있다. 시르스키 장군은 지금 러시아의 침략군과 투쟁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군의 총지휘관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과연 ‘반데라주의자’(우크라이나 극우 민족주의자 스테판 반데라를 추종하는 사람들)라 부를 수 있을까? 반박문에서 ‘러시아어 탄압’이 언급되지만, 사실 우크라이나 지도층부터가 여태까지 주로 러시아어를 사용해온 소련 시대 도시 중산층(지식인, 군인 등) 출신들로 구성돼 있다. 마찬가지로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 신조는 과연 ‘인종주의적 민족주의’일까? 자국의 독립을 끝까지 지켜내 차후 서방의 투자로 ‘유럽 국가가 된 우크라이나’를 꿈꾸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꿈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좌우간 ‘반데라주의’와는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동·서부가 역사, 문화 등의 차원에서 다르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동부도 서부도 러시아인이 아닌 종족적 우크라이나인이 다수를 이룬다. 2001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현재 러시아가 영토의 75%를 불법 강탈한 도네츠크 지방도 그 인구 구성으로 보면, 각각 우크라이나인이 56.87%, 러시아인이 38.22%를 이룬다. 즉, 도네츠크를 포함한 돈바스는 비(非)우크라이나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소수민족 거주 지역'이라고 보기가 다소 힘들다. 전체 우크라이나에서 종족적 우크라이나인 비율은 2001년에 77.82% 정도였다. 즉, “거기에서 러시아인이 다수다”라고 하여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에 대한 러시아군의 점령을 합리화하는 것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논리다. 종족적 우크라이나인 중에서도 상당수는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 양쪽을 쓰는 이중 언어 사용자들이다. 하지만 예컨대 대부분의 아일랜드인이 아일랜드어보다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해서 아일랜드의 독립권과 영토 보전의 권리를 부정하면 되겠는가?
1991년 소련의 몰락 이후 러시아 시장을 많이 상실하고 값싼 에너지에의 접근을 잃은 산업 국가로서의 우크라이나는 지속적인 경제위기에 시달리면서 점차 가난해졌다. 그래서 2000년대에 들어 일부 중산층 지식인·활동가들은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 가입 등 서방 국가의 대열에 가담한다면 서쪽의 폴란드처럼 서방 투자로 경제 개발의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나는 이 희망들이 허구적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좌우간 이는 ‘네오나치' 이념과는 다르다. 나토 가입도 같은 선상에서 언급됐지만, 2000년대 중반 이전까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나토 가입을 종종 문의했던 상황인 만큼, 이는 꼭 ‘반러'로 인식되지도 않았다. 또한 2000년대에 프랑스나 독일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부정적이었던 만큼 어차피 가입될 가능성도 없었다.
그런데 2014년, 친서방 세력들이 키이우에서 집권한 뒤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충돌이 빚어졌다. 러시아의 침략(크림 반도의 강제 합병)에 경악한 신정부 지지파는 친러시아 세력과 화염병 등을 이용한 시가전을 벌였다. 그 결과로 2014년 5월2일 남부의 오데사시에서 화재가 발생해 수십 명의 친러시아 대열이 희생됐다. 이에 대한 유럽인권재판소 판결문에서는 폭력사태와 책임자 처벌, 진상규명의 실패 등이 인정됐다. 하지만 그 당시 통제력이 다소 미약했던 신정부가 사태를 예방하지 못하고 이후에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한 유혈 사태를 ‘학살'이라 부르는 것이 과연 정확한 어법일까? 마찬가지로, 반박문에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돈바스 침략”과 “1만 명 가까운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됐다”고 언급됐지만,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이 인정한 2014~2021년간 돈바스 무장 충돌에서 희생된 양쪽 양민 희생자는 3106명이었다. 친서방 세력과 친러시아 세력의 충돌로 민간인 희생이 발생한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과연 과장법을 꼭 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박문에서 국익을 ‘민중의 이익'으로 해석한 데에는, 나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싶다. 그렇다면 러시아·우크라이나 민중의 이익이란 무엇일까? 이제 미국의 광물 약탈 등으로 ‘악몽'이 돼버린 친서방 세력들의 ‘유럽 국가 우크라이나'의 꿈이 우크라이나 민중의 이익이 꼭 아닌 것처럼, 푸틴의 부국강병주의 역시 러시아 민중의 이익은 아니다. 러·우 양쪽 민중이 다시 한번 손잡고 더 나은 탈자본주의적 미래를 위해 같이 싸우는 것이 양쪽의 궁극적 이익이다. 하지만 이런 미래지향적인 러·우 민중 연대가 성립하자면, 지금 나를 포함해 러시아 계열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 민중에 대한 러시아 국가의 침략과 영토 강탈, 점령지에서의 인권 유린 등에 반대하는 것이야말로 양쪽 민중의 이익에 가장 잘 부합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교수(한국학)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71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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