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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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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층조차 납득 어려운 윤 대통령 ‘돌려막기’ 인사

보수 쪽에서조차 호의적 평가 내리기 어려운 대통령 권력의 자의적 집행
등록 2024-08-16 21:30 수정 2024-08-19 21:25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8월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퇴임 대법관 훈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윤 대통령 왼쪽은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김용현 경호처장.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8월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퇴임 대법관 훈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윤 대통령 왼쪽은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김용현 경호처장. 연합뉴스


논란의 종합선물세트인가? 이번엔 뉴라이트다. 당사자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자신이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이종찬 광복회장은 “밀정이 자신을 밀정이라고 하겠나”라고 쏘아붙였다. 광복절은 쪼개졌다.

뉴라이트 사관의 핵심은 1948년 건국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이다. 이를 통해 보수정치의 콤플렉스인 ‘분단 고착화 책임론’과 ‘친일 논란’을 넘어서려 한다. 이들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단독정부는 반쪽짜리가 아니라 없어진 나라를 새로 만든 것이므로 분단은 정당하다. 둘째, 식민지배는 어쩔 수 없었고 꼭 나쁜 것만도 아니었으므로 친일의 완전한 청산 요구는 과하다. 따라서 단독정부 수립과 반민특위 무력화의 당사자인 이승만은 ‘국부’이며 이와 반대 흐름에 있던 김구는 격하 대상이다.

과거 보수정권과 뉴라이트의 공조

2008년 이후 보수정권이 뉴라이트의 역사 전쟁에 힘을 실어준 이유는 자신들의 대북·대일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갈등유발적 대북 정책과 붕괴론으로 일관했고, 이에 맞춰 미국·일본과의 외교안보적 협력 강화를 추진했다. 이 중 일본과의 협력은 역사 문제 등의 해결이 전제돼야 하는데, 여기에 뉴라이트 논리의 쓸모가 있다. 뉴라이트의 논리가 일본과의 미진한 합의에 정당성을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보수정권과 뉴라이트의 공조는 별 소득 없이 반발만 키운 채 끝났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뉴라이트 사관에 호의적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뉴라이트 사관 없이도, 일방적으로 일본에 모든 것을 양보함으로써 뉴라이트의 기획을 실현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물론 이런 극단적 방식은 보수 내에서조차 호의적 평가를 받기 어렵다. 그래도 이 대목에서 박수를 치는 쪽은 그나마 뉴라이트일 거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않는가? 윤석열 정권에서 뉴라이트로 지목된 인사들이 닭이 울기 전 뉴라이트를 세 번 부인하면서도 요직을 차지하는 신비로운 일의 배경은 이런 것 아닐까?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2024년 8월12일 서울지방보훈청에서 뉴라이트 성향 논란 관련 기자회견 중 자신의 저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2024년 8월12일 서울지방보훈청에서 뉴라이트 성향 논란 관련 기자회견 중 자신의 저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서 짚지 않을 수 없는 건 정책의 자의성이다. 가령, 일본이 사도광산을 ‘강제성’ 인정 없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에 찬성하는 건 이전 보수정권은 감히 떠올리지 못할 ‘통 큰 양보’다. 양보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윤석열 정권은 일전에 “우리가 물컵에 물을 반 채우면 일본이 나머지 반을 채울 것”이라고 했는데, 이게 지금까지 윤석열 정권이 내놓은 거의 유일한 ‘통 큰 양보’ 정당화 논리다. 그런데 ‘물컵론’의 상대인 기시다 후미오는 9월 총재 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제 어쩔 것인가? 불가역적 결과를 불러올 정책을 자의적으로 집행한 후과를 치르는 일만 남은 게 아닌가?

독립기념관장은 관련 전문가 중에도 독립운동가 후손인 이가 대개 맡아왔다. 김형석 관장은 독립운동가 후손이 아니고, 학계에서 독립운동사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지도 않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독립기념관장 선임·추천 과정에 자신을 배제하고 김형석 관장을 내리꽂기 위한 체계적인 시도가 있었다고 했다. 이 주장이 맞는다면, 인사 자체로만 봐도 권력이 자의적으로 힘을 쓴 게 된다.

최근 대통령은 김용현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고,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국가안보실장으로 임명하며,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특보 자리를 줘 예우하는 방식의 ‘돌려막기’ 인사를 단행했다. 김용현 후보자는 정권 초기부터 ‘실세’로 불렸고 대통령실 용산 이전, ‘입틀막’ 경호, 채 상병 사건 등에 이름이 등장한다. 신원식 신임 실장은 국방부 장관으로서 최근 정보사령부 내외에서 벌어진 혼란상에 대한 책임이 거론된다. 둘 다 관가를 떠나게 해 분위기를 일신하는 게 정상적 인사 판단일 텐데, 실제 벌어진 일은 영 딴판이다.

군에 대한 ‘그립’ 강화

‘실세’가 국방부 장관으로 간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로든 대통령이 군에 대한 ‘그립’을 강화한다는 거다. 군을 믿지 못하는 것이든지, 앞으로 군심이 동요할 일이 있다고 보는 걸 텐데, 어느 쪽이든 심상찮긴 매한가지다. 한국일보 2024년 8월12일 보도를 보면 신원식 실장은 ‘언젠가는 (장관 출신으로 안보실장에 발탁된) 김관진을 넘어서고 싶다’는 취지의 발언을 종종 했다고 하는데, 장관 자리를 빼앗아 ‘실세’에 주는 대신 ‘김관진급’이라는 명예를 쥐어줘 달랜 셈이다.

국가안보실장은 외교와 안보를 총괄한다. 미국 대선 일정 등을 고려하면 안보만큼 외교가 중요하다. 전임인 장호진 특보는 외교관 출신이지만 신원식 실장은 외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공백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메꿀 것으로 예상된다. 때맞춰 ‘장호진 특보와 김태효 1차장은 지향점도 다르고 사이도 좋지 않았다’는 얘기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다. 전 국가안보실장이 된 장호진 특보는 인사 직전까지 자리를 옮기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국가안보실장을 2년 새 3번 바꾸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트럼프도 1년은 참았다. 권력이 인사를 자의적 기준으로 한다는 방증이다. 실장이 누가 되든 한결같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김태효 1차장은 뉴라이트의 정치적 지향을 현실로 빚어온 인사다. 자의적 권력 행사가 편향적 이념과 교차하는 또 하나의 꼭짓점인 거다.

사면권은 인사와 함께 대통령 권한의 자의적 행사가 문제가 되는 단골 메뉴다. 이번에도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복권을 놓고 논란이 컸다. 용산은 ‘꽃놀이패’를 꿈꿨을 것이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국정농단 사범들을 사면하면 비판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댓글엔 댓글’이란 논리로 김경수 전 지사를 끼워넣는다면? 야당은 반발하기 어려워진다. 그래도 반발하면 “분열이 두렵나”라고 하면 된다. 그런데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김경수 전 지사 복권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용산의 스텝은 꼬였다. ‘꽃놀이패’는 없어졌다. 용산은 불쾌한 표정이 역력한 채 사면 복권을 계획대로 단행했다.

한동훈 대표의 계산은 뭐였을까? 미래 권력엔 현재 권력과의 차별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보수정치엔 ‘유승민 트라우마’가 있다. ‘배신자’가 돼서는 안 된다. 그런데 김경수 전 지사 사면은 보수층이 오히려 윤석열 대통령이 ‘배신자’가 아닌지를 의심하는 이슈다. 이 구도에서 한동훈 대표는 재빨리 보수층의 편에 서 차별화에 나서더라도 ‘배신자’가 아닐 수 있음을 인증했다.

보수층에만 호소하는 차별화의 한계

그러나 보수층에만 호소하는 차별화는 한계가 뚜렷하다. 차별화를 정말 하고 싶다면 근본적 차원에서 다르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핵심은 대통령 권력을 자의적으로 집행하지 않겠다는 예고다. 권력이 힘을 자의적으로 쓰는 것은 권위주의로 가는 길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자처한다면 ‘잠수함의 토끼’가 돼야 할 시점이다. 편향적 고집으로 보수마저 분열시킨 뉴라이트 논란에 책임 있는 조처를 요구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국정농단 사범들에 대한 사면을 비판하는 게 첫걸음이다.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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