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권력자의 입에서 “건설폭력”(2023년 2월21일 윤석열 대통령 국무회의 발언)이란 ‘말’이 터져나왔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노동혐오 정서에 기댄 이 말은 후폭풍이 거셌다. 노동법 준수와 노동자 안전을 요구하던 노동조합은 현장 밖으로 쫓겨나고 있다. 간신히 ‘교섭’ 자리가 만들어지면 건설사들은 녹음기를 켜고 “그런 요구는 협박·강요 아니냐?” 으름장부터 놓는다. 대놓고 “도급이 아니면 일을 줄 수 없다”며 불법 하도급을 당연시한다. 건설현장이 ‘법보다 주먹이 가깝던’ 20년 전으로 퇴행했다는 탄식이 이어진다.
노동자 2804만 명(2024년 2월 기준)인 나라에서 951명이 “나라를 구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가운데 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치러지지만, 제대로 된 노동정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2024년 3월25일 <한겨레21> 유튜브 프로그램 ‘사기자’가 노동당 비례대표 1번 남한나 후보를 만났다. 건설노조(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소속 여성 건설노동자(형틀 목수)인 남 후보는 자신을 “윤석열 정부에 가장 비타협적인 당의 후보”라고 소개했다.
—목수는 어떤 일이고, 어떻게 그 일을 시작하게 됐나요.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지을 때 건물의 형태가 되는 콘크리트가 터지지 않고 잘 굳을 수 있도록 틀을 만드는 작업을 합니다. 시아버지 추천으로 건설노조가 운영하는 건설기능학교에서 건설현장의 기초지식과 형틀 목수 작업의 전반적인 내용을 배운 뒤 2017년부터 현장에서 작업했습니다.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더라고요. 망치·시노(긴결 철물 갈고리) 등 도구를 쓰면서 내가 뭔가를 만든다는 게 너무 재밌었습니다. 건물이 고층까지 올라가려면 비뚤어지지 않게 기초부터 똑바로 서야 하거든요. 거푸집이 터지지 않게 마감을 잘 보면서 작업하는 게 보람 있습니다.”
—여성 건설노동자로서 어려움을 겪진 않았나요.
“처음 현장에 가니 ‘남편은 뭐 하는데 여기서 일해?’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건설현장 여성 노동자들이 대부분 한 번씩 다 듣는 말이에요. 건설노동은 남성이 하는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여성이 들어가면 같은 동료로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죠. 또 위계가 정해져 관리자·팀장·반장·기능공이 있고, 여성은 가장 밑바닥에 있거든요. 그렇다보니 건설사들은 여성 노동자의 권리와 복지 등에 관심을 쏟거나 돈을 들이지 않죠. 한 달에 한 번 안전교육을 하는데, 노조에서 그때 일반 회사들처럼 성희롱 방지 교육도 함께 해달라고 계속 요구하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죠.”
—노동운동을 하면서 건설현장의 변화를 바꿔낸 게 있나요.
“건설현장에 가면 여성이면 ‘아줌마’ 이랬거든요. 남성들도 똑같아요. ‘어이’라고 불러요. 이름을 불러주지 않죠. ‘이름 부르기 캠페인’을 했어요. ‘○○씨’ ‘○○님’ 이렇게 불러달라고 했어요. 이렇게 많이들 호칭을 달리하고 있고, 그러면서 점점 서로에게 인격적으로 대하려는 걸 봅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건설노동 현장이 많이 바뀌었나요.
“‘건폭몰이’ 1년여 동안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현장에서 내쫓겼습니다. 새 현장에 들어갈 길은 막혔고요. 그 자리를 이주노동자가 채웠습니다. 건설자본은 이주노동자의 신분상 열악한 위치를 이용해 저임금에 고강도 노동으로 더 많은 이윤을 축적합니다. 그러니 안전은 지켜지지 않고 산업재해 사고도 늘어납니다. 고스란히 건설노동자 노동조건 하향화로 연결됩니다. 현장 통제는 가혹해지고 현장 노동자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어렵습니다.”
—소속 조합원 채용을 강요했다는 것이 윤석열 정부가 건설노조를 ‘건폭’이라 몰아붙이는 근거로 보입니다.
“일단 건설노동자는 공개채용으로 면접을 보고 뽑히지 않습니다. 알음알음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렇게 들어온 노동자는 법에서 보장한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노동시간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또 불법 재하도급에 노출되고 임금에서 일정 금액, 즉 ‘똥’을 떼는 중간착취도 만연해 있습니다. 고용을 보장받으려 현장 소장에게 상납하는 일도 있습니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도 보장되지 않지요.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나서서 건설노동자에게 업무나 권리를 교육하고, 법이 보장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요구하는 거죠. 그래야 건설노동자가 자기 일에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질 수 있고, 건설사의 부실시공도 감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건설노조는 법이 보장한 교섭으로 불법 하도급을 없애고 검증된 조합원을 더 써달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그런데 정부가 전후 맥락을 다 빼고 ‘공갈’이다’ ‘협박이다’라며 건설노조를 악마화하는 혐오 프레임을 만드는 거죠. 윤석열 대통령이 자기 지지율을 높이려 건설노조를 괴롭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노동자가 법의 보호를 받고 인격적 대우를 받도록 하는 건 국가의 의무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노조가 요구하는 것도 법에서 정한 대로 하자는 겁니다. 건설노조의 주장은 정부가 방치하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없애자는 겁니다. 건설사가 노동자를 법에 맞게 직고용하라는 겁니다. 정주노동자든 이주노동자든 법대로 안전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같은 노동을 했으면 같은 임금을 받자는 것이 건설노조가 요구하는 바입니다. 건설사가 이주노동자로 대체하는 이유도 따져보면 건설현장에서 지켜야 할 법을 지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건설노조와 사용자단체가 맺은 단체협약은 연차수당과 유급휴일 등 근로기준법에 정해놓은 것을 지키자는 겁니다. 노조원이든 조합원이 아니든 단체협약과 임금협약이 적용돼야 하는데, 사용자는 노조원이 아니면 단체협약과 임금협약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노조원만 현장에서 쓰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죠.”
—붕괴사고 등 아파트 부실공사로 인한 불안감이 퍼져 있습니다. 부실공사가 일어나는 배경을 어떻게 보나요.
“최저가 낙찰제와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문제라고 봅니다. 한국 건설업은 원청이 있고, 원청이 전문건설업체에 도급을 주는 형태로 운영됩니다. 전문건설업체가 실제 시공을 담당하죠. ‘최저가 낙찰제’로 최저가로 공사를 도급받은 건설업자가 다시 재하도급을 주고, 또다시 재재하도급을 주는 형태로 진행되는 것이 한국의 건설현장입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에서 100원짜리 공사를 한다면 기본적으로 20원이 깎인 80원으로 전문건설업체가 공사하고, 저가 낙찰과 덤핑 수주로 인해 100원짜리 공사가 50원, 40원에 공사하게 되죠. 이게 다단계 하도급입니다. 공사비가 조금씩 새다보면 시공비가 줄면서 자재도 장비도 인건비도 모두 제값을 줄 수 없어 공사를 못하니 부실시공이 되는 건 당연한 결과 아니겠어요?
이런 불법행위에 대해 전국 현장을 전수조사해서 철저하게 가려내고 처벌한다면 불법 하도급을 근절할 수 있습니다. 전 사회적으로 이런 병폐를 없애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불법도급이 아닌 직접고용으로 안전하게 일하는 현장으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안전’이란 단순하게 사고의 위험에 처해지지 않는 것뿐 아니라 고용이 안정되고, 노동시간이 지켜지고 임금도 제때 받으면서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내몰리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건설노동자가 자신이 일하는 노동에 책임감과 사명감을 더 갖고 일하면서 견실 시공을 위해 일하고, 부실시공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게 되리라고 봅니다.”
—국회에 입성하면 가장 먼저 통과시킬 법안이 있나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는 산재 사망률도 높고 최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어요. 비정규직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이가 점점 늘어나고요. 또 전체 노동자의 20%인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고 있어요. 산업안전보건법을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도 많고요. 한마디로 한국은 노동 후진국이잖아요. 모든 노동자가 노동 기본권을 보장받고 노조 할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을 추진하고 싶습니다. 지금의 검찰공화국만 해체한다고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게 아니잖아요. 시민이 권력을 갖고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정리=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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