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월5일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특검(특별검사)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이른바 ‘쌍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정치권 안팎의 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공은 다시 국회로 넘겨진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재의결 시점을 최대한 늦추면서 국민의힘에서 나올 수 있는 ‘반란표’를 끌어모아 특검법을 가결하려는 전략에 나섰다.
사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입법부를 견제하기 위한 행정부 수반의 고유 권한이라는 점에서 무조건 비판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 대의민주주의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삼권분립으로 서로 견제하면서 권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한국처럼 여소야대 상황에서 여당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입법을 야당이 강행할 경우, 대통령은 최후의 수단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문제는 ‘김건희 특검’의 경우 기존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이나 노란봉투법 같은 정책적 법안이 아닌, 대통령 배우자의 범죄 혐의를 수사하기 위한 특검법안이라는 점이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거부권은 대통령의 권한이기에 행사할 수도 있지만, 이번 거부권의 문제는 배우자에 대한 의혹이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임에도 이를 ‘총선용 특검’이라 규정하며 거부권을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최근에 나온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김건희 특검과 관련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60%를 웃돌았던 점도 이런 비판과 맞닿아 있다.
민주당이 김건희 특검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이해충돌 위반 소지가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나선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현행 이해충돌방지법은 본인이나 가족 등 사적 이해관계자가 관련된 사안의 경우 공직자 스스로 직무 수행을 회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은 대통령 배우자의 범죄 혐의와 관련된 사안이므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스스로 회피했어야 한다는 논리다.
현재 민주당은 헌법재판소에 이번 거부권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물론 이런 민주당의 행태에 대해선 재의결 시점을 최대한 늦추려는 ‘시간끌기용’이란 비판도 나온다. 재의결을 하기도 전에 권한쟁의심판이 기각될 경우 오히려 역풍이 불 수도 있다.
특히 이번 거부권 국면에서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비판하는 것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까지의 과정에서 국민과 야당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의회의 적법한 절차를 거쳤고 △여론의 압도적인 다수가 특검이 진행되기를 원하며 △대통령 가족과 관련된 문제로서 거부권 행사에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짚으며 이렇게 꼬집었다. “대통령실은 최소한 이 부분에 대한 고려를 어떻게 했는지, 우리 헌법과 법률 규범이나 해외 사례에 비춰봤을 때 거부권을 행사할 만한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든지 하는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냥 ‘악법’이라는 점만 강요하지 않느냐.”
쌍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포함해 윤석열 대통령이 그동안 총 8건의 거부권을 행사한 것에도 ‘입법부 무시’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2년도 채 되지 않은 임기 동안 ‘민주화 이후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는 “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국회의 의석 분포가 영향을 미친 측면이 있다”면서도 “임기 초부터 국회와의 협치를 거부하고 극단적인 대립 정치를 펼치면서 협의 자체를 원천 봉쇄해버린 대통령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제2부속실 설치와 특별감찰관 도입 가능성을 내비치며 여론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김건희 여사에 대한 업무를 전담하는 제2부속실 설치로는 부정적 여론을 잠재우기에 역부족으로 보인다. 이미 벌어진 범죄 의혹을 수사하는 특검과 앞으로의 활동을 관리하는 제2부속실 설치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병근 교수는 “국민은 김 여사에게 문제점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고 싶다는 것인데, 제2부속실 설치는 이와 관련이 없다는 점에서 전혀 엉뚱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친인척 등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의 비위 행위에 대한 감찰을 담당하는 특별감찰관의 경우 실제 임명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실은 임명 조건으로 ‘여야가 합의하면’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국민의힘은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도 동시에 착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합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복경 대표는 “그나마 특별감찰관제가 도입되면 지지층 입장에서 ‘덜 창피한’ 면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지만 전문가들은 이 이슈가 4월 총선에 미칠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2월로 예상되는 쌍특검 재의결 시점에 다시 해당 이슈가 불거지긴 하겠지만, ‘김건희 리스크’는 현재 여론조사에 어느 정도 반영돼 총선 승패를 가를 만큼 결정적 영향력을 미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윤철 교수는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데 여기에는 이미 ‘김건희 리스크’나 ‘정권 심판론’이 녹아 있다”며 “거부권 이슈가 총선에서 결정적 계기가 되거나 유권자의 선택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주지는 않으리라 본다”고 전망했다.
민주당이 재의결 시점을 최대한 늦춰 국민의힘에서 공천에 탈락한 이들을 중심으로 반란표가 대거 나오더라도 상황이 민주당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 김건희 특검이 가결되면 ‘동정론’이라는 역풍이 불면서 보수층이 단단히 결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4년 한나라당 등 야당의 주도로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했지만 결국 역풍으로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를 맞았던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야 하는 이유다.
송채경화 한겨레 영상센터 영상취재부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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