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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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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은 상투적이지만 희망 없이 어찌 이 절망의 시간을 버틸까 [정전70년]

치유의 정치 사라지고 ‘전쟁 꿈꾸는 사람들’의 등장… 복합질서 시대 ‘유연함’이 유일한 지혜
등록 2023-07-21 23:16 수정 2023-07-27 09:10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7월19일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부두에서 정박 중인 미국 오하이오급 핵추진 탄도유도탄 잠수함 ‘켄터키함'(SSBN-737)을 배경으로 연설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7월19일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부두에서 정박 중인 미국 오하이오급 핵추진 탄도유도탄 잠수함 ‘켄터키함'(SSBN-737)을 배경으로 연설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전후 체제는 한국전쟁의 고지전에서 만들어졌다. 2년 이상 고지전이 벌어지는 동안 수많은 청년이 목숨을 잃었고 북한에는 공중 폭격이 만들어낸 병영국가가, 남한에는 색깔론으로 독재를 정당화하는 반공 체제가 들어섰다. 종전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전쟁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정전에 합의한 지 70년이 흘렀다. 여전히 전쟁이 남긴 정치적 사회적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치유의 정치’는 사라졌고, 전쟁 체제로 퇴행했다. 우리는 과연 진정한 의미의 전후 체제를 만들 수 있을까?

확실히 파괴하는 ‘MAD’, 전쟁 공포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

한국전쟁 이후 전쟁 직전까지 간 적은 여러 번 있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남북한과 미국 중 누군가는 자제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1968년 1월21일 무장간첩들이 청와대 근처까지 접근하고, 이틀 뒤에는 원산 앞바다에서 미국의 정보함 푸에블로호가 나포됐으며, 그해 가을 100명 넘는 무장 게릴라가 경북 울진과 강원도 삼척을 휘저었다. 일종의 ‘제한전쟁’이 벌어졌다. 박정희 정부는 보복 대응을 하려 했지만, 미국의 린든 존슨 정부는 나포된 승무원들을 석방하기 위해 협상을 택했다. 북한은 판문점에서 1년 동안 진행된 미국과의 협상에서 정치적 승리를 원했고, 목적을 달성하자 승무원을 석방했다.

1976년 미국에서 ‘판문점 나무 자르기 사건’으로 부르는 일이 벌어졌다. 경계를 위해 나무를 자르던 미군을 북한군이 도끼로 때려죽인 사건이다. 미국은 다시 나무를 자르기 위해 경계 태세를 격상하고 바다에는 항공모함이, 하늘에는 전투기가 대기했으며, 한국군 역시 복수심에 불타올랐다. 만약 북한이 대응했다면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뒤로 물러섰고, 무사히 나무를 자를 수 있었다.

1994년 미국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외과수술식’으로 공습하려 했다. 한국에 거주하던 미국 시민권자들에게 대피할 것을 권했고, 한국에서는 라면과 물 사재기 파동이 벌어졌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해 극적인 협상을 끌어냈지만, 사실 이미 폭격 계획은 물 건너간 상태였다. 당시 미국은 영변을 폭격했을 때의 피해를 검토했다. 전면전이 벌어지면 미군은 8만~10만 명, 한국군은 수십만 명이 사망하고, 전쟁 발발 24시간 이내 서울 주변에서만 100만 명 이상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1994년 6월의 전쟁 위기를 겪은 지 30년이 흘렀다. 북한은 핵무기로 무장했고, 서울과 수도권을 위협하는 장사정포의 위력과 숫자도 늘었다. 한·미 양국의 전력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30년 전의 ‘전쟁 시뮬레이션’과 비교해보면,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미 한반도는 ‘확실히 서로 파괴하는’(Mutual Assurance Destruction), 약자로 미친(MAD) 짓이 작동하는 공간이다.

전후 70년 동안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을 시작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전쟁 담론은 언제나 존재했다. 그러나 아주 오랫동안 ‘차가운 평화’에 익숙해서, 시민들은 웬만해서는 전쟁의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누가 전쟁을 바라겠는가? 그런데 다시 ‘전쟁을 꿈꾸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전후 70년의 역사의식과, 평화를 지키고 만들어야 하는 소명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하는 정부의 책임을 망각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17일 판문점 도보다리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17일 판문점 도보다리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0년·2007년·2018년 정상회담 국면의 공통성

70년 동안 평화를 만들 기회도 적지 않았다. 1991년 노태우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와 불가침 부속 합의서를 채택했다. 남북한은 당시 불안정한 정전체제에서 항구적인 평화 체제로의 전환을 약속했다. 그리고 문서상으로 더는 덧붙일 필요가 없는 아주 상세하고 구체적인 ‘군사적 신뢰 구축’ 방안을 합의했다. 이후 30년 동안 군사 분야의 합의는 여기에서 한 글자도 벗어나지 않는다.

남북기본합의서 국면은 오래가지 않았다. 북한은 사회주의권의 붕괴라는 불리한 상황에서 외교의 무대로 나섰지만, 김일성 사망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체제 유지를 중시했다. 남한에서도 노태우 정부 후반기로 들어서면서 보수의 재편이 벌어졌다. 김영삼 정부는 남북관계를 국내 정치로 접근하는 ‘신보수’(네오콘)의 등장을 알렸다. 김일성 조문 논쟁으로 기회를 잃었고, 공백의 5년을 보냈다.

평화 체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미국의 역할은 중요하다. 2000년과 2007년, 2018년의 남북 정상회담 국면은 공통성이 있다. 바로 남·북·미 삼각관계의 세 개의 양자관계, 즉 남북, 한-미, 북-미 관계가 같이 풀리고 선순환을 이뤘다. 모두 미국이 먼저 움직인 적은 없다. 남한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풀면서 미국을 설득해서 북-미 관계를 움직였다.

왜 미국이 중요한가? 미국의 대북 제재는 언제나 남북 관계의 공간을 열거나 막고, 미국은 북핵 포기의 상응 조치인 평화 체제의 당사자이고, 북-미 관계가 정상화돼야 비로소 진정한 탈냉전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북한 문제’의 우선순위가 매우 낮다는 점이다.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의 결렬 과정에서 재확인됐지만, 북한과의 협상은 미국 국내 정치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은 군사전략을 중국 억지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 정전체제를 관리하는 유엔사를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처럼 확대하려 한다. 유엔사는 이미 사실상의 정전관리를 한국군에 이양했지만, 비무장지대 출입과 정전체제 위반 등 중요 문제에 대해서는 법적·제도적 권한을 행사한다. 종전선언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유엔사의 역할이 핵심이다. 종전선언은 평화협정까지 가는 과정의 징검다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6월20일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6월20일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북-중 관계 간과해 북-미 회담 실패

정전체제에서 종전체제로 이행할 때, 유엔사의 역할과 기능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한-미 협의의 핵심이다. 물론 정치적 선언만 하고 정전체제를 유지하는 방안은 한-미가 쉽게 합의할 수 있었지만, 실효적 조치를 주장하는 북한을 설득할 수 없었다. 한반도의 질서 변화로 평화 체제를 향한 발걸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현재 미-중 전략경쟁의 본격화로 한반도의 평화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한국전쟁은 내전이면서 국제전이었고, 미국과 중국은 한국전쟁의 중요 당사자다. 당연히 정전체제에서 평화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미-중 협력이 필수다. 과거 1997년의 한반도 평화 체제를 위한 4자회담과 2000년대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모두 미-중 협력으로 가능했다.

2018년 한반도의 봄이 마지막 기회였다. 2018년 ‘평창의 봄’에서 2019년 2월 ‘하노이의 겨울’까지를 해석할 때, 대체로 남-북-미 삼각관계를 주목하지만, 더 중요한 변수가 있었다. 바로 북-중 관계다. 이 시기 북-중 정상회담이 네 번 이루어졌다. 모두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지 7년 만의 정상회담이었다. 2019년 6월에는 시진핑 주석이 북한을 방문했다. 김정은 체제는 남방의 문을 두드리며 북방의 뒷문을 확보했다. 지나고 보니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에 힘을 가장 많이 쏟았다. 미-중 협력과 한-중 협력이 남-북-미 삼각관계를 보완했다면, 최소한 협상 재개는 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한반도의 평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핵심 변수였던 북-중 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하면서, 협상 기회를 놓쳤다. 이후 미-중 전략대결 국면으로 전환하면서 질서의 구조가 달라졌다. 당연히 미-중 전략경쟁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협력을 분리하는 유일한 외교적 해법의 가능성도 사라졌다.

북한의 핵무장 강화로 협상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로 불신이 더욱 깊어진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등장했다. 한국 정부가 대화와 협상을 가짜 평화라고 주장하면 미국도 움직이기 어렵다. 일부는 1994년 제네바 회담 사례처럼 북한이 핵무장을 강화하면, 미국이 한국 정부의 의사와 관계없이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 북한과의 협상이 국내 정치적으로 매력이 없고, 리스크를 감수할 만큼 협상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와 결정적으로 달라진 점도 있다. 미국은 북한의 전략 도발을 중국 억지를 위한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 체제를 구축할 기회로 여긴다.

이념적 경직성은 시대와 불화 겪을 것

낙관은 상투적이고 비관이 현실적이지만, 희망을 꿈꾸지 않으면 어찌 이 절망의 시간을 버티겠는가? 다만 희망은 과거 좋았던 기억의 되새김질이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질서 변화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미-중 협력도, 세계화도, 탈냉전도, 민족주의의 시대도 종말을 고하고 있다. 전환기는 짧지 않을 것이며, 목적지를 알 수 없다. 복합질서의 시대에 유일한 지혜는 유연함이다. 이념적 경직성으로 무장한 세력은 반드시 시대와 불화를 겪을 것이다.

역사는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전진한 만큼 퇴행하고 퇴행한 만큼 전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길게 보면 그래도 앞으로 간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이 봄을 배달하듯이 퇴행의 시간을 견디며 머지않은 평화의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믿음이 옳다.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진보한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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