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선거제 토론한 시민들 “지역구 줄여서 비례대표 늘려라”

21대 총선거제 개혁안 찾으려 시민 469명 이틀간 숙의
지역구 축소와 소선거구 유지 여부가 주요 쟁점
등록 2023-05-19 23:37 수정 2023-05-20 09:06
5월6일과 5월13일 전국 5대 도시의 시민들이 참여해 열린 선거제도 공론화 500인 회의의 모습. 영국 의회의 모습을 본땄다.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

5월6일과 5월13일 전국 5대 도시의 시민들이 참여해 열린 선거제도 공론화 500인 회의의 모습. 영국 의회의 모습을 본땄다.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

‘비례대표 의석 확대’ ‘지역구 소선거구 유지’ ‘비례대표 전국 선거구’ ‘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

2023년 5월13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남인순)의 ‘선거제도 공론화 500인 회의’에서 나온 시민들의 다수 의견이다. 서울과 대전, 대구, 광주, 부산 등 5개 대도시의 시민 469명이 참석해 5월6일과 13일 이틀 동안 패널토의 4회, 전문가 질의응답 6회, 분임토의 5회 등 숙의(깊은 논의)를 거쳐 나온 것이다.

“시민은 책임 물을 대표자가 명확하길 바라”

주요 내용을 보면 시민들은 ‘비례대표 의석 확대’에 대해 숙의 전 27%, 숙의 뒤 70%가 찬성했다. 무려 43%포인트 늘어났다. ‘지역구 의석 확대’ 의견은 숙의 전 46%에서 숙의 뒤 10%로 36%포인트나 줄었다. 남인순 위원장은 “비례를 늘리라는 의견이 높아진 것은 국회가 여성과 청년 등 소수자의 목소리를 더 내야 하고, 지역구 문제가 아닌 국가적 문제를 다루라는 뜻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회의원 정수(정한 의석수)에 대해선 줄이자는 의견이 37%, 늘리자는 의견이 33%, 300석을 유지하자는 의견이 29%로 팽팽하게 나타났다. 줄이자는 의견은 숙의 전 65%에서 28%포인트나 줄었고, 늘리자는 의견은 13%에서 20%포인트 늘었다. 이번 공론화 회의에 토론자로 참여한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정치학)는 “그동안 의원 정수 확대는 여론상 안 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이번 공론화를 해보니 시민들이 정수 확대도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선거구 크기에 대해선 1인 선거구(소선거구)가 56%, 3~5인 선거구(중선거구)가 40%, 5인 이상 선거구(대선거구)가 4% 지지를 얻었다. 1인과 3~5인은 애초 지지율(43%-42%)이 비슷했으나, 숙의 뒤 차이가 벌어졌다. 이번 공론화 회의에 발제자로 참여한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토론해보니 시민들이 자신을 대표하는 사람, 책임 물을 사람이 명확하기를 바랐다. 동시에 비례대표를 늘려 지역구와 균형이 갖춰지기를 바랐다”고 평가했다.

비례대표 선거구에 대해선 현재처럼 전국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58%로, 권역(통상 6개)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40%)보다 더 많았다. 숙의 전엔 권역(45%)으로 하자는 의견이 전국(38%)보다 많았으나, 숙의 뒤 뒤집혔다. 박원호 교수는 “시민들이 권역보다 전국을 선호한 이유는 현재의 비례대표 의석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47석을 6개 권역으로 나누고, 또 정당들이 나누면 몇 석이나 되겠는가. 다양한 소수자 비례대표가 선출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당이 얻은 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석이 적을 때 그 차이를 비례대표 의석으로 보충해주는 연동형에 대해서는 절반 연동형(24%)과 절반 이상 연동형(28%) 등 연동형 찬성이 52%였다. 비례대표를 지역구 의석에 연동시키지 말자는 병립형은 41%였다.

비례대표 투표 방식에 대해선 정당뿐 아니라 후보까지 선택하는 방식(개방형)에 대한 지지가 72%로 정당에만 투표하는 현재의 방식(폐쇄형, 26%)보다 훨씬 높았다.

2023년 4월10~1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전원위원회가 열려 100명의 여야 의원들이 참여해 공직선거법 개정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023년 4월10~1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전원위원회가 열려 100명의 여야 의원들이 참여해 공직선거법 개정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역구 일부 비례 전환 vs 세비 묶고 의원정수 확대

앞서 2023년 4월10~13일 나흘 동안 여야 의원 100명이 국회 전원위원회에서 토론한 결과도 발표됐다. 지역구 선거 방식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소선거구를, 국민의힘은 도-농 복합선거구(도시는 중대, 농산어촌은 소)를 선호하는 사람이 다수였다. 비례대표 선출 방식에 대해 민주당은 권역·(준)연동형을, 국힘은 전국·병립형을 선호했고, 비례대표의 선거 방식에 대해선 양당 모두 개방형에 찬성했다.

전원위가 열린 4월11~12일 국회는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도 조사했다. 기자 609명이 참여한 이 조사에선 비례대표 의석 확대에 64.4%가 찬성, 35.6%가 반대했다. 비례대표 의석 확대 방안에는 지역구 의석 축소가 55.1%, 의석 정수 확대가 44.9%였다.

기자들은 지역 선거구에 대해선 60.6%가 중대선거구를 선호해 소선거구(30.0%)나 대선거구(9.4%)보다 훨씬 높았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선 89.3%가 개편 필요, 10.7%가 개편 불필요라고 답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에는 80%가 찬성, 20%가 반대했다. 비례대표 선거구에 대해선 권역을 60.1%, 전국을 39.9%가 선호했다. 정당, 후보 개방형 비례대표 선거에는 80.8%가 찬성, 19.2%가 반대했다.

세 조사 결과를 비교해보면, 비례대표 확대에는 시민과 기자 모두 찬성하는 의견이 다수였다. 의원 정수 확대에는 시민과 기자 가운데 다수가 부정적이었다. 여야 정당들도 현재 상황에서 의원 정수 확대는 쉽지 않다고 본다.

지역구 선거 방식에 대해선 시민과 민주당이 소선거구를, 기자와 국힘이 중대선거구나 도-농 복합선거구를 선호했다. 비례대표 선거 방식에 대해선 시민과 민주당이 연동형을, 기자와 국힘은 병립형을 선호했다. 비례대표 선거구에 대해선 시민과 국힘이 전국을, 기자와 민주당이 권역을 선호했다. 정당, 후보 개방형 비례대표 선거에는 시민, 기자, 정당 모두에서 찬성 의견이 많았다.

이제 여야 간 협상의 시간이다. 가장 중대한 문제는 지역구 의석을 줄여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하는 일이다. 정개특위 민주당 간사인 전재수 의원은 “소극적 방법으로는 인구 집중에 따라 늘어나야 하는 수도권 지역구 의석(10석 남짓)을 비례대표 의석으로 전환할 수 있다. 적극적 방법으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를 2 대 1이나 3 대 1로 정해 선거구 획정위에 넘길 수 있다”고 말했다. 정개특위의 최형두 국힘 의원은 “현재 의원 정수를 늘릴 수 없고 지역구를 줄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원 정수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복경 대표는 “현재의 세비 등 총비용을 묶고, 앞으로 4년 동안 비용을 늘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의원 정수를 늘린다면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 선거구는 소선거구를 선호하는 민주당과 중대선거구를 선호하는 국힘 사이에 의견 차이가 크다. 전재수 의원은 “국민이 소선거구제를 선호한 것은 대표성과 책임성을 강조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형두 의원은 “현재 상태에서 비례대표를 늘리려면 중대선거구를 선택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중대선거구제를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비례대표 선거구를 전국으로 할지, 아니면 6개 권역으로 할지는 타협이 가능해 보인다. 최형두 의원은 “권역별로 하고, 수도권-지방 사이에 비례대표 수를 조정해서 권역별 비례대표가 상원 기능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재수 의원도 “수도권 비례 의석을 소멸 지역이나 일당 독식 지역에 넘겨주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여야가 협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20대 총선 ‘위성정당’ 부작용 이번엔 없앨까

연동형-병립형 비례대표제도 타협이 가능해 보인다. 연동형이 바람직하지만, 비례대표 의석 부족으로 병립형과 큰 차이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김상훈 정개특위 제2소위원장(국힘)은 “연동형은 국민이 선거 결과를 명쾌하게 이해하기 어렵고, 위성정당 같은 부작용을 일으키므로 폐지하는 것이 맞는다”고 말했다. 위성정당 창당으로 많은 비판을 받은 민주당도 병립형을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다.

이제 남은 일은 여야가 함께 선거법 개정안을 만드는 것이다. 정개특위는 이미 나온 국회 전원위 토론 결과와 시민 공론화 회의 결과, 앞으로 조사할 전문가 의견 등을 바탕으로 선거법 개정안을 만들 계획이다. 김진표 의장과 남인순 위원장은 “6월 말까지는 합의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상훈 제2소위원장은 “6월 안에 만들면 좋지만, 늦어도 10월까지는 만들겠다”고 밝혔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