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여가부 폐지’ 공언 1년, 여성은 사라지고 인구·가족만 남았다

교육과정부터 지자체까지 ‘성평등’을 지우고 ‘인구를 출산하는 도구로서 여성’을 앞세워
등록 2023-01-08 01:04 수정 2023-01-08 07:42
2022년 12월27일 열린 ‘여성가족부 폐지에 반대하는 시민 살롱’ 참가자들이,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 등이 ‘여성’ ‘성소수자’ ‘성평등추진체계’ 등을 지우는 모습을 나타내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여가부 폐지 저지 전국행동’ 제공

2022년 12월27일 열린 ‘여성가족부 폐지에 반대하는 시민 살롱’ 참가자들이,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 등이 ‘여성’ ‘성소수자’ ‘성평등추진체계’ 등을 지우는 모습을 나타내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여가부 폐지 저지 전국행동’ 제공

‘여성가족부 폐지’.

2022년 1월7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의 페이스북에 적힌 일곱 글자다. 후보 시절 그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2022년 2월7일 <한국일보> 인터뷰)고 단언했다. 논란이 되자 이튿날 그는 “구조적 남녀차별이 없다고 말씀드린 건 아니다. (…) 그것보다는 개인별 불평등과 차별에 더 집중해야 한다. 여성가족부는 시대적 소명을 다했고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가 불평등과 차별에 대응해야 한다”(2월8일, 과학기술 정책토론회 뒤 기자 문답)고 부연 설명했다. ‘개인별 불평등과 차별’이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 ‘구조적 남녀차별’이 존재하는데도 왜 여성가족부(여가부)가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고 보는지에 대한 별다른 설명은 없었다.

이 일곱 글자가 더 구체적인 계획으로 드러난 건, 2022년 10월 정부 조직개편안이 발표되면서다. 개편안에는 여가부 업무 대부분을 보건복지부 산하에 신설하는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이관하는 방안이 담겼다.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관련 브리핑에서 “복지부에서는 보육·돌봄, 인구가족 정책, 아동·청소년 정책이 하나의 부처에서 통합적으로 보다 효율적·효과적으로 추진될 수 있게 된다. 저출산·고령화 정책과의 연계도 강화돼 국민과 약자의 생애주기 정책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 정책을 사실상 ‘출산 의사가 있는 가임기 여성’을 위한 정책으로 한정하겠다는 의지다.

여성은 빠지고 인구만 남았다.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가 올라온 뒤로부터 꼭 1년이 지난 지금, 수십 년간 만들어온 성평등 시스템 곳곳에 균열이 가고 있다.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서 여성이 아닌 ‘인구를 출산하는 도구로서 여성’을 앞세우고, 성평등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지우는 방식을 통해서다.

울산광역시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한 여성단체 활동가가 성평등 정책과 여성가족부를 강화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울산광역시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한 여성단체 활동가가 성평등 정책과 여성가족부를 강화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하고 있다.

① 국회: ‘여가부 폐지 vs 성평등가족부 개편’ 이견 못 좁혀

2023년 1월4일 여야는 ‘3+3 정책협의체’(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원내수석부대표, 행정안전위원회 간사) 회의를 열고 ‘여가부 폐지’ 관련 견해차를 재확인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금은 어느 세대를 불문하고 여성이 차별받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민주당은 ‘여가부 폐지 대신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개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국민의힘에서 자꾸 20대는 남자들이 역차별받는다는 얘기를 해서, 세대별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여가부를) 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는 건 찬성한다고 했다. 여기서 후퇴하는 건 어렵다”고 말했다.

여가부는 스스로 ‘부처의 존재 이유’를 없애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조용수 여가부 여성정책과장은 2022년 12월1일 열린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 수립을 위한 공청회’에서 ‘여성폭력’이란 말 대신 여성을 빼고 “폭력”으로 명명했다. 조 과장은 <한겨레21>에 “1차 기본계획 때는 폭력, 2차 때는 여성폭력으로 썼는데 남성은 보호받지 못하냐는 반론이 있어서 폭력이라고 말했다. 소과제명에는 다 ‘여성 폭력’이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1차 계획 때로 돌아가겠다는 퇴행이다. 여가부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상 여성폭력 방지 정책의 중추 역할을 해야 하는 부처인데다,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이 명백히 법적 개념으로 존재하는데도 이를 부인한 것이다.

앞서 2022년 9월엔, 여가부는 25년 동안 발표해온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이라는 자료를 ‘남녀의 삶’으로 바꿔 공표했다. 또 정부 정책이 성평등하게 집행되는지 평가해온 중앙성별영향평가위원회를 ‘효율성’을 이유로 폐지하고 비상설위원회로 전환하는 법안도 내놨다. 윤석열 정부가 “유사·중복위원회를 통폐합해 비용을 절감하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울산시 여성가족개발원과 사회서비스원을 통합한다는 안내 문구. 울산여성가족개발원 누리집

울산시 여성가족개발원과 사회서비스원을 통합한다는 안내 문구. 울산여성가족개발원 누리집

② 지자체: 명칭 바꾸고, 기관 합치고

윤석열 정부에서 처음 치른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22년 6월) 이후 지역에서도 ‘여성 지우기’가 구체화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25개 자치구 가운데 8곳에서 ‘여성’이란 단어를 이미 뺐거나 2023년 뺄 예정이다. ‘여성가족과’를 ‘가족정책과’(금천구·도봉구·서대문구·강남구)로, ‘여성정책팀’을 ‘양성평등정책팀’(금천구·마포구 등)으로 바꾼 것이 대표적이다. 중랑구는 아예 ‘여성가족과’를 ‘보육지원과’와 ‘아동청소년과’로 나눴고, 구로구는 ‘여성정책과’와 ‘상호문화정책과’를 통합해 ‘가족보육과’로 변경할 예정이다.

전국의 다른 지자체 상황도 비슷하다. 강릉시는 ‘여성청소년과’를 ‘인구가족과’로, 거제시는 ‘여성가족과’를 ‘가족정책과’로, 고양시는 ‘복지여성국’을 ‘사회복지국’으로, ‘여성가족과’는 ‘가족정책과’로 바꿨거나 바꿀 예정이다. 아예 역할이 다른 기관이 통폐합된 사례도 있다. 대구시는 대구여성가족재단, 청소년재단, 평생학습진흥원, 사회서비스원을 모두 합쳐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으로 출범시켰다. 성평등 정책 연구를 담당하던 여성가족재단은 해당 기관 산하 ‘여성가족본부’로 개편됐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역시 부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과 통합돼 ‘부산여성가족과 평생교육진흥원’으로, 울산시 여성가족개발원도 사회서비스원과 통합돼 ‘복지가족진흥서비스원’으로 새로 출범했다.

지자체는 효율성과 인구 소멸 등을 이유로 내세운다. 대구시 관계자는 “시장이 바뀐 뒤 공공기관 구조를 혁신하기 위해 이뤄진 조치로 행정안전부 전반적인 기조나 흐름과 같다”고 설명했다. 울산시 관계자는 “인구가 계속 줄고 있는데 인구를 다루는 기관이 없어서 당면 과제에 대해 여성·복지 정책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실행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여성을 둘러싼 성차별 문제가 오롯이 ‘인구’와 ‘가족’으로 수렴되는 모양새로, 여가부를 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로 격하하려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포괄적 성교육 권리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회원들이 2022년 9월2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 전쟁기념관 앞에서 ‘성평등 가치를 실현하는 교육과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포괄적 성교육 권리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회원들이 2022년 9월2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 전쟁기념관 앞에서 ‘성평등 가치를 실현하는 교육과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③ 교과서: ‘성평등’ 대신 ‘성윤리’, ‘성소수자’는 소수자에서 빠져

‘성평등’과 ‘성소수자’를 지우려는 움직임도 가시화했다. 교육부가 발표하고 대통령 소속 국가교육위원회가 의결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성소수자, 성평등, 재생산권, 섹슈얼리티’란 단어를 모두 삭제했다. 개정안을 보면 중학교 도덕, 고등학교 윤리 과정에는 ‘성평등’ 대신 “성윤리를 탐구하고 성에 대한 편견의 문제점을 분석한다” “성차별의 윤리적 문제를 이해한다”고 수정됐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2022년 12월 열린 ‘여성가족부 폐지에 반대하는 시민 살롱’에서 “이러한 기술은 성차별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며, 구조적·제도적 문제는 없다고 보고 ‘성평등’이란 국가의 책임을 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정안은 또 고등학교 통합사회 과정에서 “장애인, 이주 외국인, 성소수자 등”을 명시한 부분을 “성별, 연령, 인종, 국적, 장애 등으로 차별받는 사회구성원 등을 사회적 소수자로 다룰 수 있다”고 바꿨다. 기존에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로 쓴 표현은 ‘성·생식 건강과 권리’로 바꿨고, 국가교육위는 심의 과정에서 ‘섹슈얼리티’란 단어까지 추가로 삭제했다. 모두 개인의 성정체성을 존중하고 평등한 관계와 사회를 기반으로 한 개념인데, 이를 모두 지운 것이다.

이를 두고 교과서가 오히려 차별과 혐오를 조장한다는 비판과 우려가 나온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김수진 ‘포괄적 성교육 권리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활동가는 “사회의 차별과 혐오가 방파제 없이 교실로 넘어온다. 학생들은 혐오발언을 내뱉고 ‘욕하든 말든 내 자유’라는 식이고, 카카오톡으로 수위 높은 성적 표현을 쓰며 친구를 대상화해 괴롭힌다”고 말했다. 차별과 혐오가 ‘놀이’ 형태로 이뤄지면서 “정규 교육과정 안에서 차이를 이해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상호작용의 과정을 익히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는 “성평등 교육은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나를 이해하고 친구와 관계를 맺으며 서로 존중하는 힘을 길러내는 교육으로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키워낸다는 국가 교육과정의 목표와 완벽히 일치한다”며 “교육과정에 성평등 교육이 반드시 명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④ 낙태죄 폐지 후 4년: 식약처 태업, 입법 공백

안전한 임신중지도 한발 더 멀어졌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에도 국회에서 별다른 후속 입법조치를 하지 않아 여성의 재생산권은 여전히 법과 정책의 사각지대에 머물던 터다. ‘유산유도제 합법화’가 2017년 청와대 국민청원과 2022년 국회 국민동의청원 등에서 각각 20만 명, 10만 명 넘는 동의를 이끌어냈지만 도입 논의는 계속 지지부진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2021년 초부터 유산유도제 ‘미프지미소’의 국내 도입을 추진해왔던 현대약품이 이를 자진 취하했다고 밝혔다. 식약처가 요구하는 보완자료를 제출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는 식약처가 사실상 태업해왔다고 지적한다. 미프지미소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한 필수의약품인데다 이미 여러 국가에서 사용된 지 30년 됐는데도 식약처가 한국인 대상 임상시험 자료를 요구하고 안전성·유효성 자료 보완을 요구하는 등의 방식으로 허가 절차를 지연시켰다는 것이다.

보건 당국이 자체적으로 의약품 관련 처방 기준을 정하면 되는 일을 ‘입법 공백’이란 핑계를 대며 사실상 여성의 재생산권을 방관해왔다고도 지적한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는 “의약품 공급 권한, 처방 자격, 보험 적용 여부 등을 두고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복지부도 식약처도 이를 조율하려 하지 않는다. 한 여성의 안전한 임신중지가 가능한 환경이어야 (그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출산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데 (정부는 저출생을 우려하면서도) 정작 여성의 재생산 건강에 대한 통합적인 관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