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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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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의 말이 칼이 될 때

검찰 수사권 축소에도 문재인 정부 겨냥한 수사 의지 드러내
등록 2022-05-14 01:45 수정 2022-05-14 08:28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022년 5월9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생각하는 모습. 공동취재사진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022년 5월9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생각하는 모습.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정부의 ‘2인자’로 불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시종일관 자신만만했다. “검찰 수사권 축소는 부당하며, 검찰의 부정부패 수사는 계속된다. 딸의 ‘스펙 만들기’ 의혹은 송구하나, 수사받을 사안은 아니다.” 2022년 5월9일 오전 10시에 시작해 다음날 새벽 3시30분에 끝난, 무려 17시간30분 동안 진행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 후보자가 했던 말은 이렇게 요약된다.

“그럼 조국 수사를 하지 말았어야 했나”

이날 한 후보자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공세가 이어졌지만 한마디도 지지 않고 ‘되로 받으면 말로 되돌려주는 식’으로 모든 질문에 답했다. 특히 최근 개정·공포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문제에 대해서는 일관된 입장을 되풀이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인해 국민이 보게 될 피해가 너무 명확하다.” “검찰이 74년 동안 쌓은 수사 능력은 국민의 자산이다. 이를 어떠한 대책도 없이 증발시키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자산을 잃는 것이다.” “(개정·공포된 법은) 부패한 공직자가 처벌을 면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은 “여야 간 원내대표 합의까지 갔던 (검찰) 수사-기소 분리 법안을 굳이 ‘검수완박’이라고 하는 건 정치적 싸움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9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시절에 한 후보자가 지휘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수사’에서 압수수색이 70여 회에 이르는 등 “지나쳤다”고 민주당 의원들이 지적하자, 한 후보자는 “과잉수사가 아니었다”고 일축하며 “민주당이 ‘조국 사태의 강을 건넜다’며 사과한 걸로 아는데, 그럼 조국 수사를 하지 말았어야 했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검찰의 대표적인 ‘봐주기 수사’로 꼽히는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뇌물 사건에 대해선 “(당시 법무부 장관의) 잘못된 수사지휘였다”며 다른 잣대를 들이댔다. “윤우진 전 세무서장 사건은 추미애 전 법무장관의 수사지휘로 과거 제대로 수사가 안 됐던 점이 확인됐다. 부당한 수사지휘라고 보냐”(박주민 민주당 의원)는 질문에, 한 후보자는 “유무죄가 문제가 아니라 특정인을 공격하기 위한 의도가 너무 명백한 수사지휘였다. 전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타깃으로 한 것이 너무 명백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2012년 육류업자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다가 국외로 8개월가량 도피했던 윤 전 세무서장이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적색수배 끝에 체포됐지만, 검찰이 구속영장을 7차례 기각하고 2015년 무혐의 처분을 내려 검찰 안팎에서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윤 전 서장은 ‘윤석열 측근’인 윤대진 검사장의 형이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시절 윤 전 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해줬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검찰이 재수사해 윤 전 서장은 2021년 말에 다른 부동산 사업가로부터 뒷돈을 받은 혐의(뇌물 및 변호사법 위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당시 수사 과정에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세무서장과 특수관계인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수사지휘를 막은 바 있다.

대통령 어깨 올라탄 엘리트 검사

민주당 의원들이 검찰의 과거 수사 행태에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한 후보자는 “과거 민주화운동을 하던 경우에도 민간인을 고문하던 사람도 있었다.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민주화운동 전체를 폄훼하지 않지 않으냐”고 응수했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윤호중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연루됐던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을 염두에 둔 답변이었다. ‘80년대 민간인을 고문까지 했던 운동권 출신들이 검찰의 수사 관행을 지적할 자격이 되느냐’는 속내를 의도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한 후보자는 검찰 내에서도 ‘엘리트 검사의 전형’으로 꼽힌다. 서울대 법대 4학년 재학 중인 1995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2001년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에 1등으로 배치됐다. 초임으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2002년 에스케이(SK)그룹 비자금 수사팀에 참여했다. 윤석열 대통령과는 2006년 대검 중앙수사부 연구관으로 함께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면서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다. 대기업 총수(삼성·현대차·SK), 대통령(이명박), 대법원장(양승태) 등을 모두 구속해본 유일한 검사다. 대검(반부패강력부장), 서울중앙지검(3차장), 법무부(검찰과 인사부장) 등에서 주요 보직을 섭렵했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후보자가) 대단한 건 사실이다. 본인을 수사하러 온 검사를 피고인으로 법정에 세우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2020년 7월 ‘검언유착’ 의혹을 받는 한 후보자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그를 폭행한 혐의로 재판받는 정진웅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기세등등하던 한 후보자도 딸을 둘러싼 의혹에는 자세를 낮췄다. 딸이 2021년 하반기에만 단독 저자 논문 6건을 작성하는 등 대학입시용 허위 스펙을 쌓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한 후보자는 “실제로 입시에 사용된 사실이 전혀 없고 입시에 사용할 계획도 없다”면서도 “많은 지원을 받았고 제 아이여서 그럴 수 있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송구하다고 말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한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계속될 것임을 예고했다.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이 성남시장 재직 시절 성남시민프로축구단(성남FC) 구단주로 있으면서 여러 기업으로부터 광고비 명목으로 160여억원을 내도록 했다며, 2018년 바른미래당이 이 고문을 제3자 뇌물제공 혐의로 고발한 사건에 대해 한 후보자는 “검수완박법 시행까지 4개월 유예기간이 있기 때문에 기존에 (검찰에) 있던 사건은 (검찰이) 진행할 수 있다. 현재 진행되는 사건은 여죄가 확인되면 수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남FC·월성원전 수사 빨라지나

월성원전,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등에 대해서도 한 후보자는 “특정 사건을 전제로 말하긴 적절하지 않지만 있는 죄를 덮는 것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후보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초기 때처럼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건가’라는 질문에 “당연히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석열이 형과 동훈이는 한 몸이다. 검수완박법이 통과됐지만 어떻게든 (검찰이) 수사하도록 할 것이다. 조만간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대대적인 수사가 벌어지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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