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은 결국 단 한 명도 탄핵되지 않았다.
2021년 10월28일 헌법재판소는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5(각하) 대 1(심판종료) 대 3(인용)으로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이 미비해 사건을 판단하지 않고 재판을 종료하는 것이다.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6명은 임 전 판사가 이미 퇴임했기 때문에 파면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그의 재판 개입이 헌법에 어긋나는지에 대한 본격적인 판단까지 나아가지 않았다. 반면 헌법재판관 3명은 “(임 전 판사의 재판 개입 행위는)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는 데 뜻을 모았다. 다만 임 전 판사의 퇴임으로 부득이 파면 결정은 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임성근 전 판사는 2014년 2월~2016년 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근무할 때 3건의 재판에 개입해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침해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그는 세월호가 침몰하는 7시간 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을 추측하는 칼럼을 써서 기소된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판결문 등을 직접 뜯어고쳤다. 법원 자체 조사와 검찰 수사로 그의 재판 개입은 사실로 드러났다. 재판 개입 행위에 어떻게 책임을 물 것인가. 국회가 탄핵심판을 청구해 질문을 넘겼는데, 헌법재판소는 각하라는 ‘백지 답안지’를 제출했다.
헌법재판관들의 판단에서 주요 쟁점은 ‘이미 퇴직한 판사의 탄핵심판이 가능한지’로 모아졌다. 재판관 4명(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은 “해당 공직에서 물러나게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이 탄핵 제도의 본질”이라며 “(이미 임 전 판사가 퇴직해) 파면을 할 수 없으므로 탄핵심판할 이익이 없다”고 밝혔다. 이미선 재판관은 ‘각하’ 의견을 내면서도 탄핵소추된 고위공직자의 임기 만료 문제에 대해 “입법 정비가 필요하다”며 법 제도의 공백을 지적했다. 문형배 재판관은 임 전 판사가 법관직을 내려놓은 3월1일로 탄핵심판 절차를 종료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임 전 판사의 1심 판결에서 법원은 ‘법리상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위헌적인 재판 관여 행위는 맞다”고 명시한 바 있다. 그로부터 1년 뒤 2021년 2월4일 ‘법관 임성근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판사에 대한 첫 탄핵소추였다. 그러나 임 전 판사는 2021년 2월28일 법관 임기 만료(10년)로 연임하지 않고 퇴직했다. 탄핵소추된 고위공직자의 임기 만료를 막을 수 있는 법적 장치는 없다. 국회가 1심 판결 이후 탄핵소추까지 1년 가까이 시간을 흘려보낸 결과다.
이런 상황이어서 법조계에선 조심스럽게 ‘각하’를 내다보는 예측이 나왔다. 하지만 형식상 각하하더라도 국회 쪽 요청대로 임 전 판사 행위의 위헌성은 판단할 것이라는 기대는 있었다. 그러나 헌법재판관 6명은 각하나 심판 종료의 필요성을 54쪽에 걸쳐 설명하면서도 재판 개입 행위에 대해 어떤 판단도 내놓지 않았다. 이탄희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전 판사)은 “명백한 재판 개입 행위자에 대해 재판 도중 임기가 만료됐다는 이유로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한다면 재판 개입 행위를 사실상 조장하는 것이고, 그가 전관변호사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 헌법을 위반한 공직자의 ‘먹튀’를 보장하는 꼴이 된다”고 말했다.
탄핵심판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비슷한 위헌·위법 행위의 재발을 막는 데 있다. 헌재는 실제 주요 사회 사건에서 일종의 헌법적 지침을 내려왔다. 2015년 민중총궐기 때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그의 가족은 경찰의 직사 살수와 살수차 운용 지침에 대해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듬해 백남기 농민이 숨을 거둬 개인의 권리구제는 불가능해졌지만, 헌재는 2020년 4월 ‘헌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물대포 오·남용이 반복될 수 있으니 헌재가 판단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본 것이다. 법관의 재판상 독립 침해 행위 기준을 세우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부 내부에서 재판의 독립을 침해한 사건으로, 헌재 판단이 사법권 독립을 뿌리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는데 사법부에만 유리한 판결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헌법재판관 중에 법관 출신이 많은 편이다. 과거 동료, 선배를 심리하는 것인데 만약 법관 일색의 재판관 구성이 아니었다면 이런 결론이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8명은 판사 출신이다.
임 전 판사는 ‘헌정 사상 첫 탄핵법관’이라는 불명예는 피했지만, 헌법재판관 3명(유남석·이석태·김기영)은 임 전 판사의 행위가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보장한 헌법 제103조를 위반한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들은 사법행정권자에 의한 법원 내부로부터의 재판 독립 침해라는 데 주목했다. 임 전 판사는 형사수석부장판사로서 사무분담과 법관 평정에 깊숙이 관여했다. “청와대와 긴밀하게 소통한 법원행정처 고위직 법관의 요구를 전달받아” “사법행정 체계를 이용해” “반복적으로 (재판 개입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반드시 판단이 필요하다고 헌법재판관 3명은 봤다. “관료화된 수직적 구조의 사법행정 조직이 조언, 의견 제시, 충고 등 형태로 재판에 개입하는 순간 재판 독립이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략)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탄핵심판에서까지 면죄부를 준다면, 재판 독립을 침해하여 재판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추락시킨 행위에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을 그대로 용인하게 된다.”
특히 김기영 재판관은 헌정사적 배경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8년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촛불재판’에 개입했던 사건을 겪은 뒤 사법부가 비슷한 사건을 또 한 번 마주했기 때문이다. “2008년 재판 관여 사건과 그 이후 진행 경과를 보면 전국적으로 판사회의를 통한 ‘명백한 재판권 침해’라는 의견 표명, 국회에서의 탄핵소추안 발의에도 어떤 공적 확인과 해명은 이뤄지지 않았고 당사자 역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채 대법관 임기를 마무리했다. 만약 당시 사법부 내의 법관 독립 침해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적 고려가 있었다면 그로부터 불과 몇 년이 지난 후에 같은 법원의 수석부장판사로 부임한 피청구인(임 전 판사)이 감히 법관들의 재판에 개입하거나 관여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사법농단 사태의 위헌성을 가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는 이렇게 날아갔다. 위헌적인 행위에 대한 책임도 영영 빈칸으로 남았다. 임성근 전 판사는 “합리적 결론을 내린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그는 대법원 판결만 남겨두고 있다.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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