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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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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의 승리는 뼈아프다

경선서 이정미에 신승… ‘경륜이냐 혁신이냐’ 당원들의 고민
등록 2021-10-17 02:43 수정 2021-10-17 11:05
2021년 10월12일 국회에서 심상정 의원(왼쪽)이 정의당의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에 선출된 뒤, 당내 경선 결선투표까지 경합한 이정미 전 대표의 손을 맞잡고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년 10월12일 국회에서 심상정 의원(왼쪽)이 정의당의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에 선출된 뒤, 당내 경선 결선투표까지 경합한 이정미 전 대표의 손을 맞잡고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2021년 10월12일 정의당의 제20대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진보정당 후보로서 그에겐 네 번째 대선 도전이다.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권영길 전 의원에게 패배했고, 2012년에는 진보정의당 대선 후보로 결정됐으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했다. 2017년 대선에서는 정의당 후보로 나서서 완주해 6.17%(201만 표)를 얻었다. 1992년 백기완 민중대통령 후보 이후 진보정치를 대표하는 후보로는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원내 유일 진보정당 향한 두 기대

당내 경선 결선투표에서 심 후보는 1만1993표 중 6044표(51.12%)를 득표했다. 상대 후보인 이정미 전 대표는 5780표(48.88%)를 얻어, 표차는 264표(2.24%포인트)에 그쳤다. 10월6일 발표된 1차 투표에서 심상정 후보는 46.4%, 이정미 후보는 37.9%의 지지를 받아 결선에서 심 후보가 무난하게 승리하리라는 예측이 많았다. 의외로 뚜껑을 열어보니 51 대 49의 초박빙 승부가 벌어졌다.

이번 선거는 고 노회찬 후보와 심 후보가 겨룬 2015년 정의당 당대표 경선이 오버랩됐다. 원외 노회찬의 ‘대중성’과 원내 심상정의 ‘안정성’이 대결하는 구도였다. 당시 1차 투표에서 노 후보가 43%, 심 후보가 31.2%를 얻었지만 결선투표에선 예상을 뒤엎고 52.5% 대 47.5%로 심 후보가 역전승했다. 1차 투표의 3위 조성주(17.1%) 후보, 4위 노항래(8.7%) 후보 지지표 상당수가 결선에서 심상정으로 기울었다는 평가가 대세였다. 이번에는 원내 심상정의 ‘경륜과 경험’ 대 원외 이정미의 ‘변화’ 구도였고 1차 투표 당시 김윤기, 황순식 후보를 지지한 표 상당수가 이정미에게 기울었다. 여러모로 닮았다. 다만 심 후보는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정의당 당원과 지지자들의 마음은 양면적이다. 다른 소수 혹은 원외 진보정당과 달리 원내·제도권 정당인 정의당에는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이라는 거대 양당을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존재감 있는 진보정당의 모습을 바란다. 다른 한편 제도권 외부의 다양한 사회운동,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민중진영과 연계하고 그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는, 역동적인 진보정당의 모습을 바라기도 한다. 정의당 당원들이 이번 경선에서 심 후보와 이 후보에게 바란 것도 ‘존재감 있는 진보정당’과 ‘변화·혁신하는 진보정당’ 두 가지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제도권에서 존재감은 희미해지고, 사회운동이나 민중 진영과의 연계도 느슨해진 현재 정의당에 대한 불안과 우려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단 2%에 갈린 정의당의 미래

심 후보가 승리한 배경엔 4선 의원으로 지난 20여 년간 진보정치를 대표해온 정치인이라는 개인적 매력 외에 20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거법 개정을 끌어낸 정치력과 거대 양당에 맞선 존재감, 지난 대선에서 200만 표를 거둔 득표력에 대한 기대가 깔려 있다. 주요 선거 때마다 거대 양당의 대결 구도에 압박받으며 ‘사표’ 논리의 공격으로 상처를 입었던 정의당 당원은 이를 견뎌낼 ‘인지도’와 ‘존재감’ 있는 정치인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는 이런 기대를 담아내기에 이정미 후보는 아직 2%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회찬-심상정의 2015년 당대표 경선 당시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대체재로서 존재감을 가졌던 것과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51 대 49까지 박빙의 경선을 이끈 동력은 변화를 향한 정의당 당원의 열망이다. 심 후보는 20년 가까이 진보정치의 ‘얼굴’을 독점해왔다. 변화에 민감한 진보정당 당원들에겐 ‘현상 유지’로 다가올 수 있다. 이 후보의 선거 캠페인도 이 지점에 집중됐다. ‘돌봄 대통령’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는 구호보단 ‘바꾸고 진보해야 진보다’ ‘심상정 아닌 얼굴이 대선에 나가는 것이 정의당의 대선 전략이어야 한다’는 말의 호소력이 컸다.

이번 경선에서 1차 투표와 결선투표의 투표자 수는 165명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투표에 참여한 당원 수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상황이기에 3·4위 후보 지지표의 움직임은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났다. 1차 투표에서 더욱 선명한 좌파, 급진적 변화를 약속한 김윤기 후보 지지표(12.4%) 상당수가 이 후보에게 기운 걸로 분석된다. 이 흐름에선 정의당 의견그룹(정파)의 영향력보다 당원 스스로의 기준과 바람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심상정에게는 ‘뼈아픈’ 승리이고, 이정미에게는 ‘의미 있는’ 패배이다.

양당 체제 틈새 비집고 200만 표 넘길까

경선 이후 심 후보에겐 더 어려운 길이 예고돼 있다. 거대 양당의 박빙 구도에서 진보정당을 향한 지지는 쪼그라들 가능성이 크다. 19대 대선에서 200만 표를 얻은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특수한 정국으로 거대 양당의 박빙 구도가 허물어진 덕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본격적으로 선거가 진행되면서 양강 구도가 만들어질 거란 전망은 정의당에 불안 요인이다.

긍정적 요인도 있다. ‘조국 사태’와 최근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으로 민주당에서 진보 유권자층이 이탈했고, 윤석열·홍준표로 대표되는 국민의힘 후보들에 대한 냉소로 국민의힘에 거리를 두는 보수 유권자층도 있다. 대선 후보로 누가 나오든 거대 양당이 가졌던 유권자 흡수력이 과거보다 많이 후퇴했다는 의미다. 지난 몇 년간 유럽 등에서 보수당-사민당 양당 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 공간에 좌파정당이나 극우정당이 자리를 잡아가는 흐름과 어느 정도 닮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민주당·국민의힘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정의당 지지로 이어지려면 심상정의 ‘존재감’만으로는 부족하다. 코로나19 방역, 민생, 경제위기의 삼중고와 기후위기·젠더갈등·남북관계 등에서 거대 양당과는 다른 비전을 제시하며 신뢰를 얻을 때만 기회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당내 경선에서 심 후보를 비롯한 모든 후보는 ‘정의당은 민주당의 2중대가 아니며 민주개혁연대라는 틀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한목소리로 밝혔다. 본선에서 정의당이 걸어갈 길을 여기에서 가늠해본다.

정종권 <레디앙> 편집장·<편파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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