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를 6개월여 앞두고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예비후보(후보), 이른바 ‘투 스톤’의 갈등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경선 버스 탑승론, 입당 시기 갈등, 이 대표-윤 후보 녹취록 공방, 토론회 무산, 이 대표-원희룡 후보 ‘윤 후보 정리’ 논란…. 투 스톤 대치가 이 대표 체제 출범 뒤부터 두 달 넘게 야당 머리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지난 4·7 재보궐선거 이후 정권교체 희망을 키우던 야권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제가 말하는 변화에 대한 이 거친 생각들, 그걸 바라보는 전통적 당원들의 불안한 눈빛/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우리의 변화에 대한 도전은/ 전쟁과도 같은 치열함으로 비춰질 것이고/ 이 변화를 통해 우리는 바뀌어서 승리할 것입니다.”
2021년 6월 이준석 대표의 당대표 수락연설문 일부다. 임재범의 노래 <너를 위해> 가사를 패러디한 이 글에선 권력 의지보다 희망과 기대가 묻어난다. 다분히 낭만적이고 이상적이다. 이 대표는 10여 년간 보수 정당 지도부 일원, 시사평론으로 정치를 경험했다. 적잖은 시간이지만 책임자보다는 참견자에 가까웠다. 당대표 같은 리더의 역할은 사실상 처음이다.
윤석열 후보는 냉혹한 싸움꾼이다. 윤 후보는 철저한 현실주의자다. 그리고 다수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윤 후보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국정농단 수사를 지휘했다. 홍준표 후보가 지적했듯이 수천 명을 소환 조사하고 900여 명을 기소했다. 검찰총장 땐 조국·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사퇴까지 이끌어냈다. 여권의 퇴진 압박에 버티던 윤 후보는 대선 1년을 앞두고 2021년 3월 전격 사퇴했다. 윤 후보는 그 뒤 5개월째 보수 야권 지지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이 대표는 8월8일 밤 휴가차 경북 안동을 찾았다. 이 대표는 시민들과 함께한 토크콘서트에서 2012년 제18대 대선과 2022년 대선 지형을 비교하며 야권 위기론을 제기했다. 지금 선거를 치른다면 5%포인트 차로 패배할 것이라며 20~30대의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젊은 세대는 누구 뒤에 숨거나 전언정치를 싫어한다”며 윤 후보를 은근히 겨냥하기도 했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도 지난 17일 이준석 대표가 자신에게 ‘윤석열 금방 정리된다’는 내용의 전화통화를 했다고 주장하며 윤 후보와 이 대표의 관계에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 가운데 윤 후보는 플랜A다. 전 감사원장인 최재형 후보가 플랜B로 거론됐다. 윤 후보는 가족 비리 의혹, 연이은 말실수가 겹치면서 지지율이 하락세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역전을 허용하기도 했다. 최 후보도 윤 후보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홍준표 후보에게 야권 2위를 내주기도 했다. 보수 야권에서 플랜A와 플랜B가 모두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이 대표의 윤 후보 불신은 본선 경쟁력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표로선 플랜C를 고려할 법도 하다. 국민의힘 안팎에선 유승민 후보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대표가 유 후보계로 분류되는데다 2021년 3월 한 유튜브에서 ‘유 후보 대통령’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시각도 있다. 대표 당선 이후 ‘유 후보 지원’ 언급이 거의 없었고 ‘5%포인트 차 패배’ 전망엔 현재 거론되는 모든 당내 후보가 포함된다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 대표에게 유력한 플랜C가 될 수 있다. 이 대표는 4·7 재보궐선거에서 오 시장과 각별한 인연을 쌓았다. 이 대표는 뉴미디어 본부장을 맡아 유세단을 총괄했다. 이 대표 기획으로 알려진 ‘2030 시민유세단’은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이 대표는 20~30대의 분노를 결집해 압도적인 승리에 기여했다. 이 대표는 당대표 출마선언문에서 이런 사실을 상당히 비중 있게 다뤘다. 이 대표에게 ‘오 시장=20~30대=대선 승리’ 공식이 각인됐다고 볼 수 있다.
윤 후보도 승부사 기질로 이 대표에게 맞서고 있다. 윤 후보는 7월30일 이 대표, 김기현 원내대표도 없는 가운데 기습적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윤 후보의 입당은 며칠 전 이 대표와 8월2일 디데이(D-day) 합의를 깨고 군사작전처럼 이뤄졌다. 컨벤션효과(전당대회 같은 정치 이벤트를 연 직후에 지지율이 상승하는 효과)가 크게 나타나면서 윤 후보 지지율이 상승세로 돌아서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최재형 후보의 8월4일 출마 선언은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 플랜B의 시련을 알리는 예고편이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 대선 6개월 전 주요 정당의 지지율 1위 후보가 대부분 최종 후보를 꿰찼다. 지지율 하위 후보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 사례를 인용하지만 그도 이미 대선 9개월 전에 역전했다. 과거 사례로 보면 민주당에선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에선 윤석열 후보가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오세훈 시장이 대선 후보로 소환되기도 어렵다. 오 시장은 서울시장을 중간에 사퇴한 바 있고 코로나19, 부동산 같은 현안에 짓눌려 있다. 설사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된다고 해도 국민이 이를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쌓여만 가는 이 대표-윤 후보의 부정적 이미지도 큰 문제다. 빅데이터 플랫폼 썸트렌드 연관어 분석에 따르면 윤 후보는 말실수와 가족 비리로 채워져 있다. 미래, 비전 연관어는 찾아볼 수 없다. 이 대표는 ‘비젠더’가 다수를 이룬다. 20∼30대 남자에겐 관심을 끌 수 있겠지만 여자의 이탈로 이어질 수 있는 대목이다. 대선은 정권심판 정서 못지않게 국정 능력도 중요하다. 이 대표와 윤 후보의 힘겨루기 속에 대선 시계는 쉼 없이 흐르고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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