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① "이준석은 다르다"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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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풍이 분다. 여의도가 들썩인다. 국민의힘 6·11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이준석 후보의 선전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계파를 가리지 않고 “굉장히 부럽다. 생기발랄하고 톡톡 튀는 걸 보는 즐거움이 있다”(전재수 의원·CBS <김현정의 뉴스쇼>), “정말 놀랍고 부럽다”(조응천 의원·YTN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는 말을 쏟아낸다.
이 후보는 5월28일 예비경선에서 종합득표율 41%로 1위를 차지하며 본 경선에 진출했다. 2위인 나경원 전 의원(29%)을 12%포인트 차로 따돌린 결과다. 당원(2000명)이 아닌 일반 국민(2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선 무려 과반이 넘는 51%를 득표했다. 당심과 민심을 1대1 비율로 합산한 예비경선과는 달리 본 경선에선 당원 투표 비율이 70%로 올라가지만, 지금과 같은 주목도를 유지한다면 ‘민심이 당심을 이끌’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험과 경륜을 포괄하는 말이 실력이라고 봐요. 사실 실력이 존중받고 그것이 양성되는 정치 풍토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경험과 경륜으로 그것을 누르려고 해요. 경험과 경륜은 정치를 오래 하면 생기는 것이죠. 경험과 경륜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실력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봐요. 경험과 경륜을 많이 들먹이는 정치인들은 연공서열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정치인인 경우가 많아요.”(이준석)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 후보의 강점을 “스타일”에서 찾는다. 그가 “기존 보수세력보다 더 보수적이라고 볼 순 없으나 ‘할당제’처럼 정책의 구체성을 이야기하면서 (화법 등이) 더 구체적”인데, 이런 면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스타일과도 비슷하다고 윤 실장은 진단한다. 그의 언행을 두고 ‘반페미니즘적’ 또는 ‘성차별적’이란 수사가 잘 ‘먹히지’ 않는 이유도 유사하다. “말로는 좋은 이야기를 하면서 (실제론) 성범죄가 발생한 민주당의 모습이나 무작정 권위로 누르는 가부장적인 이미지보다 (오히려) 여성과 대면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스타일이란 이미지”가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이 후보의 선전이 “기득권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할 말을 ‘지른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신의 선전을 두고 “장유유서 문화”를 거론한 정세균 전 국무총리에게 “시험과목에서 ‘장유유서’를 빼는 것이 공정한 경쟁”이라고 맞받아치거나, 2011년 ‘박근혜 키즈’라 불리며 정치에 입문하고도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지지한 점 등은 상징적이다. 단 한 번도 당선된 적 없는 이 후보는 “경험을 들먹이는 정치인”을 “실력에 자신이 없고 기득권을 유지한다”고 지적하며 자신의 경험 부족을 상쇄하려고도 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보수의 변화’는 역사적 퇴행에 가까운 면이 있다. “과거엔 보수의 변화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차원에서 나온 ‘중부담 중복지’(유승민)나 ‘경제민주화’(김종인)란 키워드였는데 이 후보는 (과거 신자유주의 보수정부 시절) ‘무한경쟁·각자도생 세계관’을 말하며 과거를 현재로 불러온다”(김민하)는 것이다. 국민의힘 중진들도 찬성해온 ‘할당제’ 정책 폐지를 말하는 것도 유사한 결이다.
“저는 기본적으로 실력 혹은 능력이 있는 소수가 세상을 바꾼다고 봐요. 그런 측면에서 저를 ‘엘리트주의’라고 비난한다고 해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우리가 엘리트주의를 욕하기 전에 지금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준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 저는 엘리트가 세상을 바꾸고, 그것이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믿습니다.”(이준석)
실력주의(능력주의), 경쟁, 엘리트, 시험… ‘이준석’을 관통하는 열쇳말이다.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며 청년·여성·호남 할당제 폐지를 공약하고, 당 공천을 받기 위해 ‘자료해석·표현·컴퓨터활용·독해능력’을 볼 수 있는 기초자격시험을 치르자거나 ‘대선 주자 2:2 팀 토론 배틀’을 해야 “실력 있는 정당”이 될 수 있다고 천명한 점은 그의 지향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이 후보는 이를 뭉뚱그려 ‘공정’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인터뷰집 <공정한 경쟁>에서 자신의 중학교 시절 “오직 공부로 서열이 매겨진 무한 경쟁”이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소수의 엘리트만 살아남는, 시험 성적에 입각한 능력주의를 이야기하는 이 후보의 주장이 호응을 얻는 건 “현재 한국 사회 전체가 능력주의와 불평등한 분배를 선호하는 사회이기 때문”(박권일 사회비평가)이다.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서울대를 필두로 학교를 줄세우기 하거나, 지역의 대학교를 ‘지잡대’라고 비하하는 등 차별을 적극 찬성해온 한국 사회의 모습에 “이준석이 적절히 편승한 것”(박권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능력주의가 “시험에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비용과 고통은 고려하지 않고, 불평등을 정당화하며 해당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조차 하지 않는다”(박권일)는 점이다. 이 후보가 말하는 ‘공정한 경쟁’에는 실력을 겨루는 출발선 자체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 남들보다 조금 앞선 출발선에 서는 것도 실은 지극히 ‘우연’에 따른 결과라는 점 등이 절대 언급되지 않는다. 경북고·서울대를 나온 이 후보의 아버지가 유승민 전 의원과 동기·동창이란 점, 어린 시절 싱가포르 등 국외에서 자란 경험, 유 전 의원실에서 대학생 때 인턴을 할 수 있었던 환경이 오롯이 자신의 ‘실력’일 리 없는 것처럼 말이다. 공현 청소년운동 활동가는 책 <능력주의와 불평등>에서 능력주의의 오류를 이렇게 짚는다.
“게임 캐릭터의 설정 수치처럼 개인에게 고유한 능력이란 존재할 수 없다. 유전적 요소나 소위 타고난 재능을 인정하더라도, 유전자의 요소가 발현되는 것이나 어떠한 능력이 발달하는 것은 성장 환경을 비롯하여 사회·경제·문화적 배경에 크게 좌우된다. (…) 무엇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능력’인지 자체가 사회 상황과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서도, 능력은 본질적으로 사회 제도와 구조의 영향을 크게 받는 개념이다. (…) 평가의 방식이나 기준 자체에 내재된 차별, 편향이 유불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 한국 사회를 비롯해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기회의 평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 개인의 노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더 높은 성취를 목표로 노력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차등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현실의 격차와 불평등은 능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인맥이나 상속 등의 요소를 더하면 말할 것도 없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행했던 가부장적 질서로 여성에게 안겼던 불평등에 대한 보상 청구서를 뒤늦게 2030세대 남성에게 들이밀며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이준석)
이 후보의 대표 공약 중 하나인 ‘할당제 폐지’ 역시 여성·장애인·소수자 등에게 축적된 구조적 차별의 존재를 묵인하는 데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우려가 나온다. 특히 그는 이른바 ‘2030 남성의 억울함’을 기반으로 할당제가 차별을 적극 시정하는 정책이 아니라 ‘특정 집단을 우대’하는 정책이란 프레임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한국 사회에 꾸준히 존재해왔던 ‘역차별’ 담론을 집대성하는 것”이라며 “차별에 대한 감각뿐 아니라 어떻게 차별을 없앨 수 있을까 매진해온 사회적 노력을 무력화한다”고 비판한다. 그의 주장은 또 “차별을 집약적으로 경험하는 집단이 자신이 차별당한다는 말을 하기 어려워지게 하는 효과”(미류)를 만든다는 점에서 모두가 평등한 주체로 설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권명아 젠더·어펙트연구소장(동아대 국문과 교수)은 이러한 프레임이 보수 진영에서 반복돼왔음을 짚는다. “중년 남성의 지지가 높았던 박근혜 정부에선 청년할당제가 차별적인 정책이란 비판이 있었다. (여성할당제 등) 차별을 시정하는 정책을 ‘우리 몫을 빼앗는다’는 식으로 말하는 형태는 사실 그때와 똑같다.”
할당제 폐지가 당장 남성 청년의 경제적 상황을 나아지게 할 리는 없다. 권 소장은 “박근혜 정부 때 비정규직·하청 노동자 등을 확산하는 고용유연화 정책으로 ‘고용 없는 성장’을 해왔는데, (이준석 후보는) 당시 정책이 청년들에게 미친 영향을 돌아보며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들고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며 “대신 능력주의를 내세우면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도태시켜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를 형성한다”고 꼬집는다.
권 소장은 이 후보가 페미니즘을 때리는 방식도 극우주의자들이 전형적으로 사용하는 ‘헤이트 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표현) 전략과 닮았다고 본다. 페미니즘이 교육, 노동, 생산, 돌봄, 건강, 환경 등 폭넓은 차원에서 새로운 대안적 세계를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패러다임이란 점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여성만 차별받는다고 주장하는 사상”이라며 의도적으로 축소 해석하고, 역으로 “페미니스트에게 (페미니즘이) 그렇지 않다는 걸 입증하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로 이용한다는 지적이다.
개인이여, 무한한 ‘노오력’을 통해 실력으로 쟁취하라. 그것만이 ‘공정’에 다다르는 길일 테니. ‘이준석 돌풍’은 이렇게 속삭인다. 그 ‘실력’의 정체가 무엇인지, ‘공정’의 기준은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묻지 않은 채 말이다. 이 돌풍이 얼마나 더 지속, 확산할지 아직 누구도 정확히 가늠하지 못한다. 다만 그가 다시 소환한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세계관을 넘어서는 대안적 세계를 정치가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 바람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부러움의 찬사를 앞다퉈 보내는 민주당에는 숙제가 남았다. “차별의 현실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이준석(바람)에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것”(미류)이란 자각을 하거나 “(부동산 정책 등에서) 당장 표를 얻기 위해 포퓰리즘적인 모습을 보이고 변화 방향에 대한 고민이 사실상 없어 보인다”(김민하)란 지적을 넘어서는 일이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공정한 경쟁>, 이준석 지음, 강희진 엮음. 나무옆의자 펴냄, 2019
<능력주의와 불평등>, 박권일 외 지음, 교육공동체벗 펴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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