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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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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인사 불이익’ 현직 판사, 양승태에 손배 소송

송승용 부장판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상대로 손배소 내
사법행정 쓴소리에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돼 인사 불이익
등록 2020-11-21 00:57 수정 2020-11-21 07:32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0월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00번째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0월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00번째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승태 대법원은 사회문제나 법원행정처에 이견을 제시하는 법관을 사찰하고 이를 인사에 반영했습니다. 법관 독립을 침해한 것입니다. 법관 독립이 지켜져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도 보장됩니다. 민사소송은 책임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11월19일 류신환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양승태 대법원 시절 인사 불이익 피해자인 송승용(46·사법연수원 29기) 수원지법 부장판사의 소송대리인이다. 송 판사는 이날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현직 부장판사가 전직 대법원장과 인사 실무를 맡은 현직 판사,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낸 것이다. 그는 사법 개혁을 촉구하는 글을 법원 내부망에 올렸다가 이른바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됐고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

판사 블랙리스트 관리… 뒷조사도 벌여

양승태 대법원 시절 사법부의 대내외적 비판 세력을 탄압하려고 특정 판사에게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은, ‘사법농단’ 사건의 한 축이다. 법원은 금품 수수, 성추행, 음주운전 등 이론의 여지가 없는 비위 행위자를 이른바 ‘물의 야기 법관’으로 추려 그 리스트를 관리했다. 양승태 대법원은 사법부에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거나 ‘튀는’ 언행을 한 판사들도 이 리스트에 포함했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세월호참사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글을 외부에 기고하거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1심 판결을 ‘지록위마’(윗사람을 농락해 권세를 휘두름)라 비판한 판사 등이 대표적이다.

송승용 부장판사는 검찰 수사 결과 2013 ~2017년 부당한 이유에서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됐다는 판사 30여 명 가운데 한 명이다. 2014년 권순일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양창수 대법관 후임으로 임명 제청되자, 2003년 사법 파동을 언급하며 “인권, 노동, 환경에 감수성을 지닌 법조인에게 문호를 개방하자”는 내용의 글을 법원 내부망에 올렸다. 또 2015년 1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추천되자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에 적합한 후보가 추천돼야 한다”는 글도 올렸다. 송 판사는 법원행정처의 눈 밖에 났다.

2~4년마다 근무지를 옮기는 판사의 전보 인사는 법원장이 작성해 대법원에 올리는 근무평정과 더불어 10지망까지 적을 수 있는 근무 희망지, 마일리지처럼 쌓이는 비선호 근무 이력 등을 종합해 결정된다. 당시 초임 지법부장은 형평 점수에 따라 A~G그룹으로 분류됐다. A그룹으로 분류된 그는 물의 야기 법관을 뜻하는 G그룹으로 강등됐고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창원지법 통영지원으로 전보됐다. 이런 인사안은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결재란에 볼펜으로 브이(V) 표시를 함으로써 최종 결재됐다.

송 판사에 대한 뒷조사도 벌어졌다. 나상훈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제1심의관은 임종헌 당시 기획조정실장의 지시를 받고 송 판사의 대학 동기를 통해 확인되지 않은 풍문을 수집했다. 그렇게 작성된 문건(‘송승용 판사 자유게시판 글 관련’)에는 ‘정세 판단에 밝은 전략가형으로 속칭 낄 때 안 낄 때 판단이 밝다’ ‘법원 집행부에 대한 불신 및 의혹이 많고 수원지법 내 사무분담 편성 당시 사무분담 하나하나에도 의혹을 제기한 사실이 있다’ ‘아웃사이더 비평가 기질이 있어 이슈 발생시 주변 법관들을 선동하는 기질이 다분하다’는 내용이 적혔다.

사법 개혁 목소리를 내온 송 판사를 법원행정처가 요주의 인물로 취급하며 관리한 흔적이다. 2015년 5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거취를 묻는 설문조사를 제안했다는 이유로 송 판사는 창원지법 통영지원 근무 이력에도 불구하고 2017년 2월 선호 희망 임지에서 제외됐다. 형사재판에서도 배제됐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0월 6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사법농단 의혹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0월 6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사법농단 의혹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의 인사 관행, 법원 판단 받고자

소장이 접수된 날은 2년 전 각급 법원 대표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사법농단 관여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 검토를 국회에 촉구한 날이다. 그는 대표회의 간사로서 이때 회의 내용을 언론 앞에 공표했다.

소장의 피고로는 최종 인사권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인사 불이익 의혹 등으로 2년여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이외에 강형주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함께 인사 업무를 총괄한 김연학·남성민 전 인사총괄심의관, 나상훈 전 심의관, 그리고 국가도 피고에 포함됐다. 합의부 판단을 받기 위한 최소 소가(소송물가액) 등을 고려해 배상액은 3억원으로 정했다.

현직 판사가 현직 판사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법원 내 따가운 눈초리도 견뎌야 한다. 그럼에도 소송을 낸 이유를 류 변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현행 인사 시스템에 의해 수많은 법관이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됐다. 소송은 법관을 길들이고 통제하는 이 시스템에 대한 직접적인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단순히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금을 받는 게 목표가 아니라, 법원의 인사 관행이 잘못됐다는 판단을 법원에서 받고자 하는 것이다.”

사법농단은 법원 외부뿐 아니라 내부 압력에 의해 법관의 독립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헌법은 법관 독립의 원칙을 천명하고 이를 위해 법관의 신분을 두텁게 보장한다. 그러나 법원조직법(제44조의 2)에 근거한 법관 평정은 인사·평정권자의 주관이나 자의적 해석이 개입할 여지가 크다. 평정 자료나 결과도 비공개가 원칙이기에 윗선의 심기를 살피는 관료주의적 문화가 자리잡았다. 양승태 대법원은 이같이 인사·평정권을 휘둘러 입바른 말을 하는 판사들을 길들이려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는 법관 독립에 대한 위협으로 이어지고,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외면하는 ‘코드 판사’ ‘코드 판결’을 남긴다. 그러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법농단 재판의 피고인과 이들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인사 실무자들은 송 판사에 대한 인사 조처는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데 대한 인사권자의 재량이라고 주장한다.

법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류신환 변호사는 말했다. “사법행정에 물의가 될 만한 사람이 있으면 인사에 반영하도록 한 것 자체가 큰 문제다. ‘판사가 이견을 제시하면 불이익을 받는구나.’ ‘인사권자가 항상 주시하고 있구나.’ 판사들이 이렇게 느끼는 것만으로 재판은 영향받는다. 길들여진 판사는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없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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