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은 어떤 경우라도 ‘비례대표용 선거연합정당’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3월8일 정의당이 5기 제8차 전국위원회에서 내놓은 특별결의문이다. 결의문에는 “거대정당, 제1당, 집권여당 아래에 줄세우기를 강요해 진보개혁 진영과 시민사회를 사분오열시키고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의당의 논리는 간명하다. 더불어민주당은 비례연합정당(연합정당) 간판으로, 정의당은 정의당 이름으로 선거를 치르자는 것이다. 참여 거부 선언만 있는 게 아니다. “일각에서 비례대표용 선거연합정당에 참여하면 정의당의 수혜가 더 클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며 “우리는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고 했다. 선거의 유불리와 무관하게 연합정당 불참 원칙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연합정당 불참 ‘만장일치’불참 의사를 밝힌 결의문은 반대토론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정의당 전국위원회는 당대표, 부대표 등 당직자, 국회의원, 광역시도당 위원장, 전국위원 등이 주요 사안을 의결하는 기구다. 김종대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에 “예민한 사안은 반대토론으로 6~7시간씩 걸리기도 한다. 전국위는 10시간이 걸리기도 하는 행사”라며 “하지만 이날은 다른 안건을 다 포함해도 3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당 누리집 게시판만 봐도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자는 의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전국위라는 공식 석상에서 논의될 정도의 의견이 모인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의당은 느슨한 형태지만 여전히 심상정 대표 등이 주도하는 그룹, 옛 통합진보당에서 함께 탈당한 인천 지역 그룹, 유시민 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주도했던 참여계, 민주노총 계열 등이 당내 상당한 정치적 지분을 갖고 의견 그룹을 형성해 당 여론을 이끈다. 이런 객관적인 조건에도 전국위 만장일치가 방증하듯, 정의당 내에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공감이 두텁다. 당내에서는 ‘조국 사태’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정서가 형성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원석 당 정책위의장은 이를 “진보의 각성”이라고 했다.
당 지도부도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1대 총선에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의당이 함께 주도했다. 당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심상정 현 대표였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고 노회찬 의원이 평생의 정치적 과제로 천착했던 이슈이기도 하다. 정의당으로서는 제도 도입 첫 선거에서 ‘보수야당(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미래한국당)이라는 꼼수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사실상 무력화해 국회 제1당을 차지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질문을 피해갈 수 없다.
이를 의식한 것일까. 민주당은 연일 정의당의 연합정당 합류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이 정의당을 압박하는 근거는 연합정당의 참여를 묻는 전 당원 투표 전인 3월10일 의원총회에서 확인됐다. 민주당이 비례정당을 내지 않는 현행대로라면 민주당은 비례대표 의석 7석을 확보하는 데 그치는 반면, 미래한국당은 27석을 얻게 된다고 민주당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은 주장한다. 결국 이를 이유로 미래통합당에 1당을 내줘 정국 주도권을 뺏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논의된 주요 변수 중 하나가 정의당의 참가 여부다. 정의당이 참가할 경우 연합정당은 23~25석(미래한국당 17~19석)을 얻게 되고, 민주당이 안정적인 1당의 위치를 점한다는 게 이 위원장의 설명이다.
그런데 이 위원장의 계산법 중 잘 알려지지 않은 게 있다. 정의당이 참가하지 않는 조건에서 민주당이 참가하는 연합정당과 정의당 홀로 총선에서 완주했을 때 민주당이 얻을 의석은 19~20석(미래한국당 17~18석)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민주당은 정의당의 참여를 지금처럼 압박할 필요가 없다. 의석수에서 크게 손해를 보는 건 민주당이 아니라 결국 정의당이기 때문이다.
이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3월2~6일 전국 만 18살 이상 성인 남녀 2527명에게 실시한 비례대표 정당투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민주당의 연합정당이 출범하고 정의당이 참가하지 않을 경우 정의당은 8.9%를 얻는다(민주당 36.6%). 물론 이것만으로 정의당이 몇 석을 얻느냐를 따지기에는 다른 변수가 많다. 예를 들면 모든 민주당 지지층이 민주당의 연합정당에 투표하거나, 이 지지층의 10% 또는 그 이상이 전략적 투표를 하는 등 여러 경우의 수에 따라 정의당 의석수 변동폭은 5~9석에 이른다. 최악의 경우, 정의당은 애초 교섭단체(20석) 달성 목표는 차치하고라도 현재 6석의 의석수 확보도 어렵게 된다. 손해는 정의당이 입게 된다. 어떤 경우이든 민주당을 포함한 ‘범진보 진영’이 얻게 되는 의석수는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민주당의 정의당을 향한 압박과 비난은 계속된다.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3월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래한국당과 같은) 보수 반동을 불러온 ‘심상정의 부실상정’에 대해 어떠한 반성이나 사과도 없다. 오로지 자신들 당의 의석수 늘리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는 글을 올려 정의당을 비판했다. 정의당의 원칙론을 협소한 당리당략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송 의원 외에 여러 민주당 의원이 정의당 때리기에 가세했다.
민주당의 ‘명분 쌓기용’ 비난민주당이 정의당을 향해 압박과 공개적인 비판을 계속하는 ‘속내’가 따로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의당에 대한 비판이 그 자체로 연합정당으로 가기 위한 명분 쌓기용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의 연합정당 전략이 미래통합당의 원내 제1당 가능성을 확실히 차단할 뿐만 아니라, 미래통합당발 집권 후반기 혼란을 막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지만 민주당이 이를 선택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정의당의 원칙론이었다.
물론 정의당으로서도 민주당의 이런 태도를 수긍할 리 없다. 정의당의 박원석 정책위의장은 과 한 통화에서 “현재 여론조사를 기준으로 130석이라는 민주당의 의석수를 고정해놓고 미래통합당이 1당을 할 것이라거나 (총선 뒤 문재인 대통령을) 탄핵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 선거에서 민심의 역동성을 무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지난 20대 총선만 봐도 여론조사에서 한 자릿수를 기록하던 국민의당이 선거에서 정당투표율 2위를 했다. 미래통합당의 반칙을 반칙으로 맞서면 예상치 못한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현시점에서 민주당이나 정의당의 분석 중 어느 것이 틀렸다거나 맞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실제 어떤 조합으로 두 정당이 선거를 치르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4월15일 투표로 확인될 것이다.
민주당의 제안을 거부한 정의당이 입장을 바꿔, 두 당의 연합정당 등 선거 연대가 가능할 수도 있을까. 정의당을 포함한 진보 진영 후보들은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에서 지금의 민주당으로부터 양보를 계속 요구받았다. 특히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민주대연합론이 불거질 때마다 소수 진보정당 후보들은 어김없이 선거 연합, 연대 등의 압박에 흔들렸다. 이번 민주당의 연합정당 동참도 새로운 게 아니라 이런 과거 연합론의 되풀이와 다르지 않다. 다만 이번에는 선거법 개정으로 준연동형 비례제란 독특한 상황에서 진행되는 비례정당 단일화로 그 형태만 변했을 뿐이다.
정의당이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는 민주당의 빈약한 정치적 명분 때문이다. 정의당의 한 당직자는 “과거 시민사회 다수가 양보를 요구했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노총 등이 먼저 연합정당에 반대하고 있다”며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재명 경기도지사나 김부겸·김영춘 의원 등 대권 주자들이 반대하고 있다. (연합정당 단일화로 결집하기 위해) 찾지 못한 명분을 왜 정의당에 책임을 돌리는 식으로 해소하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의석수 계산만으로 참여 강요는 처음”주요 시민사회단체가 빠진 상태의 약한 명분만 문제가 아니다. 연합정당을 위한 논의 과정에서 참여 주체들과의 논의가 배제됐다는 절차적 하자도 정의당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정의당 한 관계자는 “예전 야당 시절 민주당 쪽과 공조할 때는 여당으로부터 야합이라고 욕먹을지언정, 물밑에서는 비전과 가치를 두고 정책 협상을 벌였다. 또 의제 연합, 정책 연합의 꼴을 갖추고 선거에 임했다”며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도 해보고, 총선에서 야권 연대도 해봤지만 이번처럼 정치공학과 의석수 계산만으로 참여를 강요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는 민주당의 연합정당 참여 압박 전에 정의당과 총선 의제 및 정책 논의가 아예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총선과 관련해 대화를 먼저 제안한 것은 오히려 정의당이었다. 2월28일 문재인 대통령이 여야 4당 대표와의 회동을 마친 직후, 심상정 대표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에게 미래통합당의 비례정당(미래한국당) 문제를 논의해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계속 묵묵부답이었다. 당 차원에서 정의당 쪽과 공식적인 선거 연합도 논의되지 않았다. 김종대 대변인도 “(연합정당 참여 등 선거와 관련해) 단 한 번의 협의도 없었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점점 선거 공조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정의당은 홀로 선거를 치르는 게 쉽지 않은 현실을 무시할 순 없다. 3월8일 정의당 전국위 결의문 초안에 담겼지만 최종안에서 빠진 내용 하나가 정의당의 상황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김종대 대변인은 “녹색당과 함께 진보개혁 진영에서 현재 (연합정당 등) 국면에 대한 공동 대책을 논의한다는 내용이 있었다”며 “다만 녹색당이 현재 연합정당 문제로 하승수 운영위원장이 사퇴한 상황이다. 상대의 어려움을 고려해 언급 자체가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는 판단에서 빠진 것”이라고 했다. 박원석 의장은 “그린뉴딜 정책처럼 녹색당과 공통분모를 가진 부분에 대해서는 가치 연합 차원에서 선거를 치르는 것은 가능하다”며 “상대가 녹색당이라면 정의당 내부에서는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다. 형식은 하나의 이름으로 선거를 치르고 교섭단체를 만든 다음, 두 개의 정당으로 활동하는 식의 상상력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마저 녹색당이 ‘21대 총선 선거연합정당 참여에 대한 당원 총투표’를 3월13일부터 14일 이틀간 실시하면서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정의당은 계속 연대를 모색하며 표를 끌어모으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연합정당 참여 거부 의사를 밝힌 정의당에는 불투명한 비례대표 의석수 확보만이 아니라 지역구 의석 확보 전략도 난관에 부닥쳐 있다. 지금처럼 민주당과 갈등하는 국면에선 심상정 대표가 출마하는 경기 고양시갑 지역이나 여영국 의원의 경남 창원시 성산 지역구를 지켜낼 수 있다고 쉽게 자신할 수 없다. 심 대표 측근인 정의당 한 당직자는 “심 대표를 포함해 모든 지역구 사정도 좋지 않다”며 “민주당이 연일 정의당과 심상정 때리기를 계속하고 있으니 (지역구에서도)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정의당은 70명의 지역구 후보를 내기로 결정한 상태다. 민주당과 겹치는 곳이 63곳이다.
결국은 유권자의 판단김종철 정의당 선거대책위 대변인은 “민주당이 비례연합정당을 만들기로 한 이상 정의당이 거기에 참여하든 안 하든 (진보 개혁 진영의) ‘파이’(의석수 합)는 달라지는 게 없다”며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다. 정의당은 정의당의 실력만큼, 그 가치만큼 유권자에게 판단받으면 된다”고 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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