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법무부 장관 유력 후보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몇 가지 의혹을 해명한 글이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에게 전달돼 뒷말이 나오고 있다. 7월4일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 글은 조 수석이 한 여당 의원의 질문에 답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수석은 이 글을 친분 있는 몇몇 여당 의원에게도 전달했고, 그 가운데 한 의원의 보좌관이 법사위 소속 보좌관들의 단체대화방에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조 수석이 법무장관 후보로 공식 지명되기도 전에 인사청문회에서 해야 할 해명을 일부 여당 의원들에게 미리 전달한 것을 두고 여당에서조차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입수한 이 글은 논문 표절과 배우자의 재산 관련 의혹 등에 대한 해명으로 구성돼 있다. 논문 표절과 관련해서는 “변희재 등 관련 인사들이 본인(조 수석)의 논문에 대하여 ‘표절’ 또는 ‘중복게재’ 제소를 하였으나, 관련 대학에서 이하의 판정을 내렸음”이라고 적혀 있다. 이 글에 링크된 인터넷 주소를 클릭하면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와 미국 버클리대학 로스쿨이 조 수석의 논문 표절 및 중복게재 의혹과 관련해 각각 “연구윤리위반이 아니다” “표절 의혹 제기는 근거 없다”고 판단한 문건이 나온다. 이 글은 또 조 수석의 배우자에 대해 “배우자의 선친은 퇴역 군인, 배우자의 처남은 회사원으로 사학 재벌이 아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 글은 조 수석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수석은 ‘내가 법무장관 후보가 되는 것과 무관하게 제기된 여러 의혹에 대해 여당 의원들에게는 해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여당 안에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여당 관계자는 “대통령이 아직 지명도 안 했는데 이런 해명 글을 의원에게 돌린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조 수석이 논란을 부를 게 뻔한 글을 돌린 것은 그만큼 청와대가 ‘조국 법무장관’ 카드에 부담을 느끼고 있음을 방증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할 태세지만, 야당은 물론이고 여론의 반대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7월1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로 조 수석의 법무장관 기용설에 대해 여론조사한 결과 찬성(46.4%)과 반대(45.4%)가 팽팽하게 맞섰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중도층과 서울의 여론이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중도층과 서울은 문재인 정부에 대체로 우호적이었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반대 여론이 더 많았다. 중도층은 찬성 45.5% 대 반대 49.2%였고, 서울은 찬성 42.2% 대 반대 45.0%였다. 찬성과 반대 차이가 오차 범위(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 안에 있어서 찬반 의견이 팽팽하다고 볼 수 있지만, 청와대와 여권에 던지는 메시지는 절대 가볍지 않다. ‘민정수석-법무장관 직행’ 인사에 대한 여론의 반감이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성호, 참여정부의 뻐아픈 실수
청와대의 ‘조국 법무장관’ 카드는 참여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은 측면이 있다. 2006년 7월 당시 천정배 법무장관이 사퇴 의사를 밝히자 노무현 대통령은 문재인 전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에 임명하려고 했다.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읽는 문 전 수석에게 검찰 개혁을 맡기고 싶었다. 때마침 문 전 수석은 청와대를 떠난 상태였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구상은 정치권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노 대통령에게 특히 아픈 것은 야당인 한나라당뿐 아니라 여당인 열린우리당도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밝혔다는 것이다.
2006년 7월 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청와대에 “문 전 수석의 법무장관 임명은 국민 정서상 곤란하다”는 뜻을 전달했다. 또 당의 투톱인 김근태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도 “(문재인 법무장관은) 국민이 바람직하다고 보지 않는다”며 반대했다. 노 대통령은 여당의 반대에 대단히 실망했다. 노 대통령은 “법무장관은 대통령의 참모”라며 임명 의지를 굽히지 않았지만, 결국 ‘문재인 카드’를 접었다. 여당에 부담을 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당시 청와대는 “문 전 수석이 국정 운영에 부담을 주기 싫다며 고사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청와대는 대타로 검찰 출신인 김성호 당시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을 임명했다. 이는 참여정부로선 뼈아픈 실수였다. 김성호 법무장관은 엉뚱하게도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모토로 내세워 ‘친기업·반노동’ 정책을 추진했다. 이는 인권과 정의, 공정을 법무행정의 최우선 가치로 삼은 참여정부의 정책 기조에 어긋났다. 김 장관은 재경부 출신 경제 관료를 정책보좌관으로 영입했다. 김 장관은 분식회계를 자백하는 기업에 형사처벌을 면제해주겠다고 공언하는가 하면, 재계가 꺼리는 이중대표소송제 도입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는 등 노골적인 친기업 행태를 보였다.
반면 노동계에는 칼을 빼들었다. 김 장관은 “불법 파업과 시위는 엄단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제로 톨레랑스’(무관용) ‘깨진 유리창 이론’ ‘난로 이론’(난로에 손을 대면 데게 하라. 즉, 법을 어기면 반드시 처벌받도록 하라는 의미) 등 노동계를 자극하는 말을 마구 쏟아냈다. 검찰 안에서도 ‘장관이 너무 나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김 장관 때문에 참여정부와 노동계의 간극은 더 벌어졌다. 당시 청와대에 있었던 한 법조인은 “노 대통령이 김 장관의 행태를 보고받고 ‘문재인 법무장관’ 카드를 밀어붙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전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은 김 장관의 이런 행보를 반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나중에 그를 이명박 정부의 첫 국정원장에 임명했다.
‘조국 법무장관’은 문 대통령이 검찰을 불신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청와대는 검찰의 ‘김학의 사건’ 재수사 결과에 매우 실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문무일 총장의 지시로 특별수사팀까지 만들어 재수사에 나섰지만, 김학의 전 법무차관만 구속했을 뿐 수사 외압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곽상도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현 자유한국당 의원) 등은 모두 면죄부를 줬다.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 법조인은 “대통령이 ‘명운을 걸고 수사하라’고 지시한 것은 이 사건의 본질인 수사 외압 부분인데 검찰은 조사하는 시늉조차 내지 않았다. 청와대로서는 검찰이 문재인 정부를 존중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전 이미 결정
청와대는 검찰의 이런 태도를, 여권이 추진하는 검찰 개혁을 달갑잖게 여기는 분위기에서 파생된 것으로 본다. 이런 검찰을 개혁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게 하려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조 수석이 법무장관이 돼야 한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다. 이는 ‘윤석열 검찰총장’ 카드를 꺼내기 전에 이미 결정됐다는 게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법무부, 검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조국 법무장관’ 카드는 리스크(위험)가 뒤따른다. 그의 임명을 반대하는 여론이 만만찮은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둔 여당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도 조국 법무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기류가 있는 이유다. 민주당은 야당 때인 2011년 7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장관 후보자로 지명했을 때 강하게 비판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검찰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불순한 의도’라고 공격했다. 문 대통령 비서실장인 노영민 당시 원내수석부대표는 “군사독재 시절에도 차마 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맹비난했다. 노 의원은 지금 조국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하는 청와대를 지휘하고 있다. ‘내로남불’이라는 비난에 할 말이 별로 없는 셈이다.
조 수석의 자질 논란도 위험 요소다. 조 수석이 민정수석으로 있는 동안 청와대는 잇따른 인사 검증 실패로 문재인 정부를 곤경에 빠뜨렸다. 내정했던 차관급 이상 11명이 낙마했고,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한 고위직이 15명에 이른다. 이뿐만 아니라 조 수석은 민정수석의 또 다른 핵심 업무인 공직 기강 관리에서도 허점을 보였다. 특별감찰반 출신인 김태우 전 수사관의 잇따른 돌출 행동은 고스란히 정권에 부담이 됐다. 야당은 조 수석을 ‘낙마 리스트’ 1순위에 올렸다.
조 수석을 법무장관에 임명하면 검찰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위공직자비리수사처 도입은 야당의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조 수석이 법무장관이 되면 야당 의원들에게 설명하고 설득도 해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조 수석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야당이 거절할 것이다. 야당은 검찰 개혁이 ‘조국 법무장관’의 업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권 주자 되려면 스스로 커야”
민주당 안에서는 조 수석의 법무장관 카드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조 수석을 여권의 유력 정치인으로 키울지는 몰라도 야당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야당과 관계 악화는 임기 중반에 들어선 문 대통령에게 짐이 된다. 또 다른 초선 의원은 “조 수석이 차기 대권 주자가 되려면 내년 총선에 출마해 자기 힘으로 당선돼야 한다. 대통령의 희생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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