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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트랙 제동 “공포감 때문인 것 같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권력의 노예”라고 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인터뷰
등록 2019-04-27 11:48 수정 2020-05-03 04:29
4월25일 패스트트랙 논란 와중에 바른미래당 채이배(가운데)·권은희 위원과 만난 김관영 원내대표(왼쪽).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4월25일 패스트트랙 논란 와중에 바른미래당 채이배(가운데)·권은희 위원과 만난 김관영 원내대표(왼쪽).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4월25일 오전 9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의원실 문은 잠겨 있었다. 의원실 통유리창을 통해 분주히 오가는 보좌진이 보였다. 기자가 문을 두드렸지만 반응이 없다. 김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자 문이 열렸다. 김 원내대표는 급하게 넥타이를 매고 슈트를 챙겨 입었다. 일주일 전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 등을 담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 지정 여부를 둘러싸고 바른미래당 의원총회가 무산됐을 때, 갈등의 중심에 있던 김 원내대표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분당 위기론이 팽배한 바른미래당은 2018년 1월 유승민 의원의 ‘바른정당계’와 안철수 전 대표의 ‘국민의당계’가 통합 선언해 탄생했다. 원래 국민의당 사무총장 출신이기도 한 김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정치적 명운을 건 손학규 대표와 함께 선거제도 개혁에 앞장서온 ‘키플레이어’(핵심 인사)다. 두 번의 인터뷰 취소 끝에 만난 김 원내대표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극단으로 치닫는 패스트트랙 갈등

“생각했던 것보다, 다섯 배는 심하지, 너무 심하지. 허….”

김 원내대표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시계를 올려다봤다. 9시5분, 국회 본청 안 로텐더홀에서는 패스트트랙 지정 반대를 위한 자유한국당의 긴급 의원총회가 한창이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대한민국이 궤멸되고 있다”며 “선거제도만큼은 다른 법률이나 정치적 결정과 달리 여야 합의로 해야 한다. 다수의 횡포로 고친다면 민주주의가 깨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나 원내대표는 12월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선거제도 개편안에 합의한 뒤로 사실상 논의에 불참한 것에는 이렇다 할 설명을 하지 않아왔다.

김 원내대표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지난 3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선거제도 논의에 보이콧하는 한국당을 향해 “패스트트랙 절차 돌입한다. 다만 이것이 법안 의결이 아니라 여야 간 합의 처리를 위한 협상의 촉매”라고 했다. 김 원내대표만 아니라 여야 4당 지도부는 패스트트랙을 한국당이 선거제 합의에 불참한 데 따른 고육지책이라고 줄곧 얘기해왔다. 하지만 나 원내대표는 “선거제 개편은 권력구조 개편과 함께 검토하자는 것인데, 지금 와서 휴짓조각이 됐다”고 주장했다. 한쪽에서는 논의의 시작이라면서 판을 깔고, 다른 쪽에서는 논의 자체를 막고 판을 뒤집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김 원내대표에게 “권력의 노예”라는 표현까지 썼다. “(김 원내대표가) 더불어민주당으로 간다고 했다”는 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공격으로 보였다. 메시지(가치)가 아닌 메신저(상대)를 직접 공격하는 것은, 논리 싸움에서 불리한 쪽이 상황을 반전하기 위해 흔히 쓰는 여론 전술이다.

같은 시각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을 비롯해 유의동·지상욱·하태경·이혜훈·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국회사무처 의사국을 찾았다. 이들은 김 원내대표가 오신환 의원의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위원 자리를 채이배 의원으로 대신하려고 하자 실력 저지에 나선 것이다. 패스트트랙 절차의 첫 관문은 위원회의 재적의원 5분의 3 찬성이다. 한국당 의원 수를 고려하면 선거제도 개혁안을 맡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공수처 법안 등을 처리해야 할 사개특위에서 바른미래당 의원의 이탈은 패스트트랙 실패를 의미한다. 사보임(위원 교체) 논란은 김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의 예상보다 더 컸다.

애초 패스트트랙의 의도와 달리 합의를 위한 협의는 간데없고 갈등만 남았다.
아무리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듣지 않는다. 아예 날치기라고 하는데, 다시 말하지만 이건 법안 통과가 아니라 국회법에 나온 신속처리 대상 안건의 처리 절차다. 그런데 저쪽에서 완전히 겁박해서 당이 깨진다고, 그렇게 분위기를 만들어버렸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개혁’ ‘중도’를 표방하는 제3당인 바른미래당에는 오히려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왜 내부에서 거세게 반대할까.

프레임 때문 아니겠나. 자기 지지 세력에게 민주당이랑 손잡는 것으로 비치면 당장 내년(총선)에 불리하니까. 또 지난 4·3 보궐선거 뒤에 손학규 대표 체제를 흔들고, 시기적으로 패스트트랙과 맞물리면서 내홍이 깊어졌다. 원래 우리 당은 선거제도에 대한 분위기는 괜찮았다. 그런데 이제는 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유승민 의원)가 직접 나서서 선거법 개정을 목숨 걸고 막겠다고 했고, 의사국 앞에서 농성까지 하는 상황으로 가버렸다. 선거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민주당, 한국당 양쪽에서 당기는 힘이 커질 텐데…, 당을 위해서라도 패스트트랙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패스트트랙을 막으려고 국회사무처 의안과 앞을 막고 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패스트트랙을 막으려고 국회사무처 의안과 앞을 막고 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선거제 개혁 두고 쪼개진 ‘제3당’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있어야 바른미래당 같은 3당이 비례에 맞게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지 않나.

어느 대목에서는 (반대하는 의원들이) 이해되기도 한다. 지역구 등 지지 기반을 고려하면 ‘싸워야 할 야당이 왜 거기서 손잡느냐’ 이런 비판을 선거기간 내내 견뎌야 하니까. 한국당에서도 좌파연대라고 공격하니까 다들 찬성할 수 없는 것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김관영 대표가 민주당에 입당한다고 했다. 민주당에서 지역구(군산) 무공천을 한다는 설까지 나온다.
이제 시작인데, 나 개인까지 공격하면서 극렬하게 반대하는 건, 일종의 공포감 때문인 것 같다. 정치공학적으로만 이 판을 보니까. 한국당 입장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고 대한애국당이 5%만 가져가도 보수 분열로 수도권에서 선거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특히 정의당이 원내교섭단체가 되고 지금처럼 연대하면 한국당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까지 더해진 것 같다.

김 원내대표의 전화기가 계속 울렸다. 재차 걸려오자 수신 버튼을 눌렀다.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한국당 의원들에게 둘러싸인 것으로 알려진 채이배 의원 상황이 전해지는 듯했다. 김 원내대표는 답답한 듯 이마를 짚고 “물리적 방해는 선진화법 위반일 수 있으니 설득해보라”는 조언을 건넸다. 다수의 횡포나 소수의 몽니를 막고 ‘동물국회’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2015년 제18대 국회에서 제정한 게 국회선진화법이다. 현행 국회법 제166조는 “국회의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행, 체포·감금, 협박, 주거 침입·퇴거 불응, 재물 손괴의 폭력 행위를 하거나 이러한 행위로 의원의 회의장 출입 또는 공무 집행을 방해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선진화법에는 김 원내대표가 언급한 국회 회의 방해죄만 있는 건 아니다. 패스트트랙 자체가 법안의 중심 내용이다.

당 안팎에서 김관영 원내대표가 이렇게까지 패스트트랙을 밀어붙이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우리 당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다. 지금이라도 안철수, 유승민이 나서서 다시 손잡고 우리 열심히 한번 해보자고 하면 15%, 20%는 표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지금보다 (의석수에서) 약진한다. 독자적으로 생존 기반을 만들 수 있다. 정의당이 최대 수혜자라고 하는데, 정치는 룰이 생기면 그 뒤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안철수 전 대표와 교감은 없나.
연락한 지 오래됐다. 다만 안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을 때부터, 국민의당, 바른미래당에 이르는 시간 내내 선거제도 개혁,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늘 얘기했다. 지난해 말까지 교감이 있었다. 지난해 말, 올해 예산안과 관련해 선거개혁안을 연동한 것도 그래서다.

국회의원 감금한 한국당 의원들

인터뷰 도중 당 원내행정실에서는 국회사무처 의사국으로 사개특위 위원을 오 의원에서 채 의원으로 교체하는 내용의 사보임 문건을 팩스로 전달했다. 언론은 실시간으로 ‘팩스 사보임’이라고 지적했다. 곧바로 유승민 의원 등은 하루 전 한국당 의원들과 실랑이 끝에 입원한 문희상 국회의장이 입원한 병원으로 향했다. 사보임 결재를 막기 위해서다.

이번 일로 손학규 대표 탄핵과 김 원내대표 불신임 얘기가 나온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패스트트랙만 올라가면 현재의 갈등은 어느 정도 수습될 것이다.

수습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5월 탈당설 등) 당이 깨진다는 얘기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을 텐데.
먼저 당헌·당규에 불신임과 관련된 조항은 없다. 물론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다시 설득해볼 것이다. 다만 그분들이 강도를 높여 얘기하는 것과 달리 물밑에서는 다른 분위기도 충분히 감지된다. 패스트트랙에만 올리면 국면은 전환된다. 그분들이 지금껏 나에게 (탈당은 안 한다고) 말해왔다.

패스트트랙이 전가의 보도는 아닌데.
패스트트랙으로 가도 법안이 (제대로) 통과된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1987년 이후로 선거제도 개혁은 더디기만 했다. 이번에도 안 되면 앞으로 또 30년은 양당 구도의 틈바구니에서 허울 좋은 합의 처리의 벽에 막혀 선거제도 개혁이 어려울 것이다. 우리 국민 중 10%가 어떤 정치세력을 지지한다고 하면 10%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반인 5%는 의석을 줘야 하는 게 당연한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패스트트랙이 성사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혼란이 더 커지겠지. 손학규 대표도 나도 그만둬야 할 상황이 될 수 있다. 그와는 별도로 분명히 여당은 여당대로 힘들어질 것이다.

인터뷰가 끝났다. 오전 10시가 되지 않은 시각, 의원회관 6층 채이배 의원실에서는 법제사법위원장인 여상규 의원 등 한국당 의원 10여 명이 채 의원을 둘러싸고 사개특위 참가를 막고 있었다. 물리적 긴장은 이뿐만 아니었다. 국회 본청도 정개특위와 사개특위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사무실 세 곳에서 한국당 의원 20여 명이 진을 쳤다.

오후 2시께 채 의원은 창문을 열고 바깥을 향해 “의원들이 소파로 문을 막아 안에서 열 수도, 밖에서 밀 수도 없다. 감금됐다”고 했다. 3시께 채 의원의 신고를 받은 소방·경찰 인력이 의원실에 출동했고, 채 의원은 사개특위 위원들이 모인 국회 운영위원장실로 이동해 회의에 참여했다. 바른미래당의 사개특위 사보임은 채 의원만이 아니었다. 권은희 의원도 임재훈 의원으로 교체되면서 패스트트랙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선진화법’ 이전으로 돌아간 국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오신환 의원은 헌법재판소에 불법 강제 사보임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고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한국당도 국회의원 전원이 헌재에 권한쟁의심판 청구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의 뜻을 밝혔다.

이날 결국 패스트트랙 법안을 국회사무처에 접수하는 과정에서 선진화법 이후 처음으로 여야 간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국회의장은 경호권을 발동했다. 2015년 당시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 주도로 합의 통과된 선진화법이 한국당에 의해 무력화되는 순간이었다.

권역별 연동형비례대표제란? 선거 뒤 정당득표율로 의석을 배분하되 비례대표를 권역별로 ‘연동률 50%’만 적용하는 방식
패스트트랙이란? 사안의 시급성에 따라 입법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정한 법적 절차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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