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전4기 혹은 6전7기의 도전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만 24살 이하 청년과 청소년들이 완전한 참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공직선거법 위헌 소송에 다시 한번 나섰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청소년과 청년들은 ‘만 19살’ 이상 국민에게만 선거권을 준 현행 공직선거법 제15조와, ‘만 25살’ 이상 국민에게만 국회의원·지방의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 등으로 선출되는 ‘피선거권’을 주는 공직선거법 제16조가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는 헌법소원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선거권 연령을 낮추려는 헌법소원 청구에 1997년·2001년·2002년·2003년·2013년·2014년 무려 여섯 번이나 합헌 결정을 내렸고, 피선거권을 낮추라는 헌법소원에도 2004년·2008년·2012년 세 번이나 퇴짜를 놓았다.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연령을 하향 조정해야 한다는 요구에 헌법재판소는 ‘애들은 가라’는 견해를 유지해온 셈이다. 보수적인 헌재가 이번엔 전향적 결정을 내놓을 수 있을까.
투표·출마할 권리 헌법소원은 2월6일 저녁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선거권과 피선거권 하향을 위한 헌법소원을 낸 이들을 만났다. 주인공은 박주영(21) 녹색당 당원, 서민영(24) 대학YMCA전국연맹 회장, 이성윤(25) 청년정당 ‘우리미래’ 전 대표, 이은선(18)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상임대표, 이다슬(16)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활동가다.
이 가운데 박주영 당원과 서민영 회장, 이성윤 전 대표는 ‘출마할 권리’를 찾으려 한다. 이들은 지난해 12월21일 지방선거의 피선거권을 낮추려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에 반해 이은선 대표와 이다슬 활동가는 ‘투표할 권리’를 찾으려 한다. 이들은 지난해 12월14일 각각 지방자치단체와 교육감 선거권과 관련해 만 19살 연령 제한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성윤 전 대표는 “청년이 미성숙해서 피선거권을 안 준다는데, 그건 법이 아닌 유권자가 판단할 몫”이라 말했고, 이은선 대표는 “2016년 말 (박근혜 전 대통령을 몰아낸) 촛불광장에선 모두가 동료였지만 지금은 청소년이 배제됐다. 청소년 참정권이 확대되면 학교가 더 민주화되고 자치화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다슬 활동가는 “민주주의는 참정권 확대와 역사를 같이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은 선거권·피선거권 연령 제한을 하고 있다. 그로 인해 어떤 문제가 생긴다고 보나.이성윤 피선거권이 없으니 청년을 정책의 수혜 대상으로만 본다. ‘너네한테 필요한 정책이 있으면 가지고 와, 우리가 만들어줄게’라는 식이다. 우리 힘으로 우리가 원하는 정책을 만들고 싶다.
서민영 그렇게 정책을 제안해도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대구시는 2년 전부터 수억원씩 예산을 써가며 ‘청년 정책 네트워크’ 활동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정책을 제안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시장의 정치적 색깔과 맞지 않다’ 등의 이유를 댄다.
참정권 없는 ‘들러리’이은선 (여러 정치 과정에서) 청소년은 들러리가 된다. 울산 지역에 청소년 정책참여기구가 있다. 자유한국당에서 오라 해서 가면 사진 찍고 ‘청소년들이랑 함께하고 있습니다’라고 기사만 낸다. 정작 조례 제정은 안 해준다. 청소년 관련 행사를 열면 준비는 청소년이 다 하는데 정치인이 당일에 와서 자기가 다 한 것처럼 말한다. 당연히 해줘야 하는 예산 배정밖에 한 게 없는데.
박주영 시의원·구의원 업무는 청년을 포함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지역에 배분된 예산을 조정하는 일은 정책 방향에 대한 문제다. 경기도 의왕 지역에서 ‘학교 밖 청소년 지원 조례’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는데 결국 무산됐다. 공청회에서 만난 시의원은 급식비 지원에 들어가는 2천만원이 많다고 하더라. 사실, 의왕시 전체 예산이나 개발사업 예산에 비하면 아주 적은 돈인데.
피선거권 연령 제한과 관련해 헌법재판소 판례를 보면, 고등교육과 경험 등 정치적 판단에 필요한 자질을 언급한다. 만 25살 미만 청년들은 아직 공직자로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시각이다.이성윤 진짜 능력이 부족한지 유권자의 심판을 받고 싶다. 내가 출마하려는 구의원은 보통 5천~8천 표, 많게는 1만 표를 받으면 당선된다. 3~4인 선거구에선 더 낮게 득표해도 당선될 수 있다. 지난해 3월 창당한 ‘우리미래’는 당원이 8천 명인데, 나는 만 23살로 당대표를 했다. 8천 명이 뽑은 대표자이고 직접 정당 운영을 했는데 구의원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건 무슨 뜻인가. 어떤 사람이 대표자로서 적합한지는 법보다 유권자가 판단할 몫이다.
이은선 그렇게 청년이 자질이 없다고 생각하면 정당 가입 연령 제한을 폐지해서 일찍부터 정치할 수 있게 해주든가.
이다슬 나이 많다고 모든 사람이 성숙한 게 아니다. 성숙한지 미성숙한지 시험이라도 볼 건가.
박주영 엘리트 정치를 깨뜨리려면 먼저 나이 장벽부터 없애야 한다. 이번에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로 만 27살인 신지예 후보가 나왔다. 신 후보의 인터뷰 기사에 ‘대학도 안 나오고 운전도 못하는 여자가 정치를 할 수 있겠냐’는 댓글이 달렸다. 우리 사회에는 정치인이 똑똑하고 영웅 같아야 한다는 환상이 있다. 우리 삶이 어떻기에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는지 모르겠다.
이성윤 각 분야에서 성공해 정치권으로 오는 사람들은 사실 정치 초보다. 안철수 대표도 정치한 지 5년밖에 안 됐다. 인기투표로 정치 초보가 계속 뽑히니까 정치가 거꾸로 간다. 우리가 20대부터 정치를 시작해 경력을 쌓는다면 신뢰받는 정치인으로 클 수 있을 것이다.
의무는 있고 권리는 없고만 25살이 넘는다고 해도 실제 청년이 정치를 하려면 현실적 제약이 많다.박주영 출마할 때 선거관리위원회에 내는 기탁금이 그렇다. 청년이 정치에 나갈 수 없게 한다. 구의원 200만원, 시·도지사 5천만원이다. 한국과 일본 말고는 그렇게 고액 기탁금을 내는 나라가 없다.
서민영 내 꿈은 복지정책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정치외교학과를 갔다. 근데 학과에 정치 지망생이 없다. 1학년 때는 ‘왜 다들 꿈도 희망도 없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지?’라고 생각했다. 4학년이 되니까 현실이 보인다. 청년정치가 이렇게 힘드니 꿈조차 가지지 않는구나. 4년 내내 정치 관련 지식을 배우는데 전공을 살리지 못한다.
이성윤 낙선이라도 해보고 싶다. 내 나이대면 회사에 이력서를 넣게 된다. 입사 시험에 떨어진 친구들은 취직한 친구를 부러워한다. 그렇지만 나는 (지방선거에) 이력서라도 내밀어보고 싶다. 만 25살 미만 청년은 선출직 공직자를 택할 직업적 자유가 없다. 헌재의 결정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3월부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니 2월 중에 결정이 안 나오면 이번 선거에 출마하기 어려울 것이다. (6월13일 열리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3월2일 지방의원과 단체장의 예비후보자 등록을 시작해 5월25일 후보자 등록을 마감한다.)
선거권도 마찬가지다. ‘만 19살 미만 학생들은 판단능력이 부족하다’며 선거권을 주지 않는다.이은선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중적이다. 청소년이 정치를 말하면, 사회에선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들한테 선동당했다’고 평가절하한다. 이때는 교사 말에 휘둘리는 존재다. 그런데 청소년 범죄사건이 벌어지면 ‘요즘 청소년들 교사 말 안 듣는다’며 난리다.
이다슬 청소년을 자기 마음대로 보는 거다. 공직선거법이 내 권리를 침해한다고 생각해 문제를 제기한 건데, 헌법소원 청구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부모님의 동의가 없었다면 못했다.
이성윤 모순적이다.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서 의무와 권리를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짝으로 가르친다. 그런데 만 18살은 다른 사회적 의무는 다 지는데 선거권은 없다.
참정권 확대는 상상력의 확대촛불집회 땐 청소년들이 맹활약했다.이은선 (시민들이 촛불집회 때) 광장에 청소년이 많이 와서 좋다고 했다. 당시는 모두가 동료였다. 하지만 그때뿐이고 지금은 배제된 느낌이다.
이다슬 배신감이 있다. 우리 지역에선 학생회에서 촛불집회를 주최한 적도 있다. 촛불집회에 청소년이 나오면 ‘뭔가 더 해주자, 우리가 미안하다, 청소년이니까 발언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청소년이 목소리를 키우면 언론매체에서도 잘 띄워줬으니깐. 하지만 필요할 때 쓰고 버리는 카드였던 것 같다.
박주영 중요한 것은 (촛불집회가 끝나고)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을 때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권리를 행사할 힘이 있느냐다. 광장에 많은 청소년이 나와서 목소리를 냈는데, 그걸 모으지 못했다. 우리에겐 선거권이 없으니까.
청년과 청소년 참정권이 확대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이성윤 청년과 청소년이기 때문에 (정책적) 상상의 범위가 더 넓어질 거다.
이은선 학교가 더 민주적이고 자치화되지 않을까. 현재 고등학교 절반가량에 학생의 정치행위를 막는 교칙이 있다. 내가 다니는 학교도 정치활동을 하면 퇴학시킬 수 있고 교장 허락 없이 대외활동을 하면 징계할 수 있다. 학생회 선거에 출마할 때 학교에서 공약을 검열해, 사전에 안 되는 건 다 빼라고 한다. 이런 걸 없앨 수 있는 것이 선거권·피선거권이다. 내가 사는 울산의 교육감이 현재 구속돼 공석이라, 나는 (직접 출마하는) 상상도 해본다. 내가 교육감이라면 학생인권조례를 가장 먼저 만들 것이다.
이다슬 민주주의는 참정권 확대와 역사를 같이한다. 학생이 선생님한테 안 맞고 욕 안 듣고 인간 대접을 받으려면, 진정한 학내 민주주의를 배우려면 참정권 확대가 필요하다.
“바뀔 수밖에 없는 법”헌법재판소 결정이 어떻게 나올까.박주영 피선거권과 선거권 연령 제한은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조정될 것이라고 본다. 단지 시기가 문제다. 사회 인식이 변하고 있어 분명히 이번엔 위헌 결정이 나올 것이다. 그동안 선거법이나 정당법 등에 이상한 조항이 많았는데 계속 개선돼왔다. 정당법에서 득표율 2% 미만인 정당의 이름을 계속 쓰지 못하게 한 법도, 녹색당이 헌법소원을 제기해 2014년 위헌 결정이 나왔다. 정당 후원을 금지한 정치자금법도 헌법소원으로 위헌 결정이 나왔다. 고액 선거 기탁금도 헌법소원을 낸 상태다. 나는 바뀔 수밖에 없는 법들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얼마큼 빨리, 원하는 시기에 바꾸는지가 문제일 뿐이다.
이다슬 이번 시기가 괜찮다고 생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탄핵돼 내려오고, 정권도 바뀌었다. 지금이면 충분히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이성윤 나는 올해가 아니면 다음 선거 때는 청구인으로 참여를 못한다. 12월이 되면 만 25살이 돼 당사자성이 사라져버린다.
박주영 당사자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헌법소원으로 싸울) 힘이 없어진다. 그래서 이 문제가 계속 반복되는 거다. 나이란 건 항상 지나가버리니까.
이은선 부산에서는 청소년이 교육감 ‘0번 후보’로 나선다고 한다. 실제로는 못 나서지만 교육감 후보처럼 공약집을 만들고 기자회견도 한다. 만약 이번에 진다면 청년과 청소년들이 이런 공론화를 전국적으로 하면 어떨까. 그리고 헌법소원을 또 빨리 청구하면 된다.
글 변지민 기자 dr@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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