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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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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앞에서 멈춘 개헌

기본권과 지방분권 확대하는 개헌 논의 어디까지 왔을까…

성소수자·공무원 노동3권 보장·자치입법권 등 합의 못 내
등록 2018-01-16 17:12 수정 2020-05-03 04:28
1월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새해 기자회견에서 질문자를 지명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기본권·지방분권을 확대하는 방향의 개헌 필요성을 강조했다. 연합뉴스

1월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새해 기자회견에서 질문자를 지명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기본권·지방분권을 확대하는 방향의 개헌 필요성을 강조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1월10일 새해 첫 기자회견을 통해 6월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여소야대인 현재 국회 의석 구도를 생각할 때 문 대통령이 원하는 형태의 개헌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문 대통령도 이를 인식한 듯 “개헌안은 국회 3분의 2 찬성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국민투표에서 통과돼야 한다. 그래서 국회가 동의하고, 국민들이 지지할 수 있는 최소분모를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차별금지 사유에 인종·언어 포함

개헌 논의가 본격화하면 대통령중심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권력구조 개편안에 관심이 집중되기 마련이다. 문 대통령도 이날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권력구조 개편안이 ‘4년 중임제’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중앙의 권력구조 개편을 어떻게 할까라는 부분은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에 대해 하나의 합의를 이뤄낼 수 없다면 그 부분은 다음으로 미루는 방안도 생각해야 한다”며 이 문제에 집착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현재 자유한국당이 총리가 내치를 맡고 대통령이 외치를 담당하는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실현 가능성이 낮은 권력구조 개편에 나서봐야 혼란만 가중될 수 있음을 고려한 발언으로 읽힌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은 그가 이날 밝힌 대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논의를 2월까지 지켜본 뒤 여야 사이에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정부가 직접 “국민들이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는, 그리고 국회 의결을 받을 수 있는” 개헌안을 내놓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정부 개헌안에는 문 대통령이 강조한 국민의 기본권과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내용이 주요하게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기본권과 지방분권을 확대하는 개헌 논의는 어디까지 진행됐을까. 국회는 지난 1년 동안 개헌특위 활동으로 개헌 방향에 대한 큰 틀의 논의를 해왔다. 지난해 12월에는 개헌특위 1차 활동을 종료한 뒤 개헌특위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를 통합해 6월까지 운영하기로 하고 1월10일 이와 관련된 구성을 마쳤다. 지난해 활동한 개헌특위는 ‘헌법 개정 주요 의제’를 통해 △총강 및 기본권 △정부형태(권력구조) △지방분권 △재정·경제 △정당선거 등 7개 분야 62개 항목의 쟁점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특위 위원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된 항목은 29개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권 분야에서는 천부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바꾸는 안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렇게 되면 외국인, 무국적자 등 그동안 배제돼온 이들에게도 거주이전·종교·양심의 자유 등 기본권이 동등하게 주어진다. 다만 선거권·피선거권, 공무담임권, 집회와 시위의 자유, 직업의 자유 등에 대한 권리의 주체는 여전히 국민이어야 한다는 게 개헌특위 위원들의 판단이다. 또한 현행 헌법 제11조 평등권 부분에서 ‘차별금지 사유’를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등 3가지로 한정한 것에서 ‘인종, 언어’를 추가하기로 했다. 차별금지 사유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예시하는 세계적 추세에 발맞춘 것이다.

양성평등 →성평등 개정 난항

현행 헌법 제32조 ‘일할 권리’ 부분에서는 유엔의 사회권규약(A규약) 내용인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는 비정규직 등 고용형태별로 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행태에 제동을 거는 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세월호 참사로 필요성이 더욱 높아진 ‘안전권’을 비롯해 정보화 시대에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정보기본권’ ‘소비자의 권리’ ‘문화생활 향유권’ ‘건강권’ ‘어린이·청소년·노인·장애인권’ 신설도 여야 사이에 이견이 없는 상태다.

그러나 여전히 찬반 논쟁이 팽팽한 부분도 있다. 특히 현행 헌법 제36조 ‘양성평등’ 규정을 ‘성평등’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갈라져 있다. 민주당 등 ‘성평등’ 개헌에 찬성하는 쪽은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성평등을 남녀 간의 문제로만 보는 사회적 시각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수 쪽은 이에 대해 동성결혼을 합법화할 여지가 생긴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현행 헌법 제32조 ‘일할 권리’에서도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의 ‘근로’를, 사람이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노동력을 들인다는 뜻의 ‘노동’으로 바꾸자는 안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에 ‘신체 장애자’는 ‘장애인’, ‘여자’는 ‘여성’, ‘근로자’는 ‘노동자’로 바꾸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일부 야당에서는 “실익이 없다”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 강화 부분도 여야 사이에 시각차가 여전하다. 현행 헌법은 노동자의 기본 권리로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을 보장한다. 하지만 공무원의 노동3권은 사실상 제한돼왔다. 이에 반해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공무원에게도 노동3권을 보장한다. 프랑스는 공무원의 단결권을 거의 제한 없이 보장하며 최소한의 공공서비스 제공에 차질이 없는 선에서 파업권도 인정한다. 민주당은 공무원에게도 노동3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관점이지만, 한국당 등 일부 야당은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제한’에 대한 합법 결정이 났다”며 반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에서 강조한 또 다른 개헌 방향은 ‘지방분권 강화’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자치분권 추진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연방제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을 보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여기에는 △지방분권 국가 선언 △자치입법권 확대 △자치단체의 사무 범위 확대 △과세자 주권 확대 △지방재정 조정제도 신설 △제2국무회의 신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여야는 지방분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총론에는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에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

“국민 주도 방향으로 개헌해야”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나 규칙 등을 통해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 관련 규정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한 현행 헌법은 자치입법권의 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를 확대할 필요성에는 여야가 공감하지만 범위와 효력을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해 12월5일 발행한 ‘지방분권 강화를 위한 헌법 개정 논의와 과제’를 보면, 자치입법권 확대 방안은 △연방제 정도의 독자적 입법권을 인정하자는 의견 △기존 ‘법령의 범위 안에서’를 ‘법령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로 개정하자는 의견 △‘법률의 범위 안에서’로 개정하자는 의견 등 다양한 안이 나오고 있다. 대체적으로 여당은 자치입법권의 폭을 넓히자는 의견이지만 한국당 등 야당은 지자체 간 형평성과 선심성 행정 문제의 발생을 우려하고 있다.

지방세 조례주의 도입에 대해서도 의견 차이가 팽팽하다. 현행 헌법은 법률의 근거 없이 세금을 부과·징수할 수 없도록 하는 조세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지방재정 확대에 장애요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돼왔다. 이에 따라 지자체가 자치법규로 지방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지방세 조례주의 도입안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 안이 지역의 형편에 따른 부익부빈익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도 거세다.

정치권의 논의와는 별개로 시민사회 쪽에서는 “국민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개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10월12일 출범한 전국 120개 단체들로 구성된 국민주도헌법개정전국네트워크(국민개헌넷)는 1월 말까지 민의를 모아 자체 개헌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태호 국민개헌넷 상임운영위원은 “국민의 입장에서 개헌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정치 개혁에 기여하느냐의 문제다. 선거제도 개혁이나 ‘촛불’에서 드러난 참정권 요구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개헌안과 국회안의 공통점


국민->사람, 동일노동 동일임금 명시 등



청년들이 원하는 헌법 개정안은 어떤 모습일까?
은 2017년 7월 제1170호 표지이야기 ‘헌법은 나의 것’에서 현행 헌법이 만들어진 1987년에 태어난 ‘87둥이’들과 함께 바람직한 대한민국 헌법 개정안을 작성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취업준비생, 성소수자 활동가, 변호사, 비정규직 노동자, 작가, 국회의원 비서관, 청년정당인, 대학원생, 방송국 자회사 디자이너 등 9명의 87둥이들은 현행 헌법과 새 헌법에 담겨야 할 기본권을 연구한 뒤 한 달 동안 치열한 토론을 거쳐 결과물을 내놨다. 이들이 만든 개정안은 “참신하지만 국회 통과는 어려워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놀랍게도 개정안 가운데 많은 부분이 국회 개헌특위 논의 과정에서 여야의 공감대를 얻고 있다.
1987년생이 만든 새 헌법은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변경했다. 또한 현행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생명권을 새로 넣고 사형제 폐지를 명시했다. 평등권의 차별금지 사유로 현행 헌법은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등 세 가지만 명시한 것에 더해 이들은 ‘인종, 언어, 출신 지역, 나이, 장애,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직업, 고용 형태,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사상, 정치적 의견’ 등 16가지를 추가했다. 새로운 유형의 인권침해를 막는 장치로 정보기본권을 신설하고, 노동권 부분에서도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바꿨다. 국가는 노동자의 ‘고용안정’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안전한 노동환경’ 등을 보장토록 했고, 아동의 기본권도 명시했다. 안전권, 평화권, 동물권, 주거권, 문화권, 여가·휴식 향유권 등도 신설했다. 경찰과 군인을 제외한 공무원의 노동3권을 보장하고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장치로서 국민투표제, 국민발안제, 국민소환제도 도입했다.
이 가운데 현재 여야 정치권의 합의를 끌어낸 부분은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변경 △안전권, 정보기본권, 아동권 신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명시 등이다. 차별금지 사유도 현행 세 가지에서 인종, 언어 등을 추가하는 쪽으로 공감대가 이루어졌다. 문화생활 향유권, 정보기본권 신설도 별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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