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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정의당’이 될 수 있을까

11월6일 국회의원 9명 집단 탈당 뒤 ‘합리적 보수’ 재건과 당 소멸의 기로에 놓인 바른정당
등록 2017-11-14 16:38 수정 2020-05-03 04:28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11월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당대표 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11월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당대표 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지난 11월6일 바른정당 국회의원 9명이 탈당을 선언했다. 김무성·강길부·주호영·김영우·김용태·이종구·황영철·정양석·홍철호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보수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하나가 돼야 한다”고 선언했다. 올해 1월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헌법과 민주주의 파괴 행위에 반발해 ‘보수 혁신’을 내걸고 창당한 지 286일, 대략 9개월여 만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이번 탈당은 정계 개편 신호탄 </font></font>

이번 사태는 지난 5월 대선 직전 13명의 바른정당 의원들이 탈당과 함께 자유한국당으로 당적을 옮겨간 데 이은 두 번째 집단 탈당이다. 이로써 바른정당의 원내 의석수는 11석으로 줄었고, 탈당파를 흡수한 한국당 의석은 116석으로 늘어났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121석) 의석수에서 단 5석이 모자란 수치다. 김무성 의원 등의 탈당으로 바른정당은 원내 교섭단체 지위를 잃었다.

이번 사태는 바른정당이라는 원내 20석짜리 한 소수정당의 분당이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이번 집단 탈당은 2018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뤄질 큰 틀의 정계 개편을 예고하는 것인 동시에, 한국에서 처음 시도된 ‘합리적 보수’의 독자 세력화가 성공할지 판가름 나는 중요한 갈림길이다. 또 민주화 이후 30년 동안 권력·조직·자금 등을 독점해온 거대 보수당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바른정당은 분당 사태 직후 당내 조직을 결집하기 위해 ‘중도보수 대통합’을 새로운 구호로 내걸었다. 11월13일 꾸려지는 새 지도부가 이를 실현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는 게 겉으로 드러난 바른정당의 공식 입장이다. 이는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을 중심으로 한 ‘독자생존파’와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 ‘한국당과의 통합전당대회’를 주장하는 ‘통합파’ 사이의 이견을 조율한 결과다.

김세연 바른정당 의원은 과 한 통화에서 ‘중도보수 대통합’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 “(상대가) 한국당이든 국민의당이든 중도보수가 대통합을 하자는 논의에 새 지도부가 즉각 착수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말하는 통합이 ‘당 대 당’의 정식 통합이 될지, 다른 당의 일부 의원들이 탈당해 바른정당과 결합하는 형태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그는 “단순한 선거연대보다는 강화된 수준의 관계를 지향점으로 삼고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정계 개편의 화살은 이미 쏘아올려진 셈이다.

바른정당발 정계 개편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국민의당이다. 안철수 대표는 탈당 사태 이전부터 바른정당과 통합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이 과정에서 일부 호남 중진 의원들이 탈당 의사를 흘리는 등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의 당내 대립이 격화된 상태다. 결국 11월10일 열린 국민의당 최고위에서 갈등이 폭발했다. 박주원 최고위원은 이날 안 대표의 통합론을 겨냥해 “왜 우리가 교섭단체 지위도 상실한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실패에 공동책임이 있는 당으로부터 호남을 벗어나라느니, 햇볕정책을 버리라느니 하는 얼토당토않은 훈수를 들어야 하냐”고 말했다. 국민의당은 당내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오는 11월21일 ‘끝장토론’을 열어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큰 틀의 가닥을 잡을 예정이다. 그러나 그동안 계속된 내분이 쉽게 가라앉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9명의 탈당파를 받아들인 한국당도 내부 분열이 심각하다. 친박계 김진태 의원은 11월9일 페이스북에 “북풍한설에도 당원이 피눈물로 당을 지켜왔는데 침을 뱉고 떠난 자들의 무임승차는 있을 수 없다”며 이들의 복당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이날 서울 여의도 한국당 당사에서 열린 ‘재입당 국회의원 간담회’에선 당 지도부가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탈당파 8명을 15분간 기다리게 하는 방식으로 ‘군기잡기’ 하는 모습도 보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보수 분화 실험’ 성패 걸린 사건 </font></font>
11월6일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탈당 이유를 밝히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11월6일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탈당 이유를 밝히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일단 복당파 9명에게 환영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대립관계에 있는 친박계와 홍준표 대표는 물론 김무성 의원 등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가담한 복당파 의원들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홍 대표는 당장 친박계 반발을 진압하기 위해 김무성 의원과 손을 잡겠지만 김 의원이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면 이를 견제할 수밖에 없다. 당장 다음달로 예정된 원내대표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당의 주도권이 판가름 날 전망이다. 현재는 바른정당에서 탈당한 김무성 의원과 가까운 김성태·김학용 의원, 친박계 홍문종 의원 등의 출마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번 바른정당 집단 탈당은 한국 보수 정당사에 기록될 주요 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 만에 처음 시도된 ‘합리적 보수’의 독자 생존이라는 ‘보수 분화 실험’의 성패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바른정당이 직면한 위기는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합리적 보수’의 정체성 확립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는 한국당에 비해 지역 조직이 턱없이 허약하다는 점이다. 강원도 홍천이 지역구인 탈당파 황영철 의원은 11월1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 지역 같은 접경지역에서는 이대로라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저와 함께했던 좋은 인물들이 굉장히 무거운 부담을 느낄 거라 본다. 지역의 좋은 인재들이 지역에서 일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도 지역구 국회의원의 정치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구 조직을 관리해야 하는 의원 입장에서 바른정당에 남은 채 지방 조직을 관리하는 것에 정치적 부담이 컸다는 의미다.

이는 반대로 해방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을 제외하고 줄곧 권력을 유지해온 한국당이 가지는 독보적인 힘을 보여준다. 실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커다란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보수 유권자들은 합리적 보수를 자처한 바른정당보다 한국당을 선택했다.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11월9일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바른정당 탈당파의 복당 이후 한국당의 지지율은 전주보다 2.2%포인트 오른 19%를 기록했다. 바른정당은 0.5%포인트 오른 5.3%였다. 권순정 리얼미터 조사분석실장은 “한국당은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5~6%대에 머무는 바른정당의 지지율은 7월부터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당장 탈당으로 인한 반사작용으로 잠깐 반등하는 상황이지만 앞으로 더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물론 바른정당에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당에서 박근혜 정권을 파탄으로 이끈 친박계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을 경우 바른정당이 그 틈을 파고들 수 있다. 정두언 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11월1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친박이 (역설적이게도) 정부·여당의 가장 든든한 원군”이라고 말했다. 한국당 내 친박 세력이 남아 당의 혁신을 방해할 경우 현재 지지율이 더 꺾일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운명의 변곡점은 내년 지방선거 </font></font>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촛불시위와 박근혜 탄핵을 거치면서 확인된 것은 유권자들의 질적 변화다. 이들은 보수와 진보로 나뉘지만 ‘민주주의가 아닌 것’에는 민감하다. 이들의 민주주의 감수성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당 의원의 대다수는 그런 민주주의 감수성이 없다. 결국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결국 바른정당의 운명을 결정할 정치적 변곡점은 내년 지방선거 전후 시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서 연구원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으면 지역 조직에서 ‘망하게 생겼다’는 위기감이 작동할 수 있다. 한국당 내부에서 노선 전환 등 다양한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다. 그때까지 (바른정당 등 합리적 보수 세력이) 남아 있다면 여기서 떨어지는 이삭을 하나씩 주워 2020년 총선에서 해볼 만한 정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11월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내년 3~5월쯤 가서 문재인 정부나 자유한국당이 또 어떻게 돼 있을지 모른다. 그때 가서 바른정당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지지를 받고, 정계 개편의 판이 흔들리면 저는 우리 당이 추구하는 ‘개혁 보수’를 갖고 충분히 승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현재 바른정당은 ‘이삭줍기’를 하기 전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실제 정치권에선 바른정당의 존속보다 소멸을 예상하는 이가 더 많다.

정치에서 위기는 곧 기회다. 유 의원은 지난 10월 김무성 의원에 대해 “김 의원은 ‘반기문 대통령’을 위해 바른정당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분으로, 저와는 생각의 차이가 크다. 저는 제 갈 길이 있고 그분은 그분의 갈 길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탈당 사태가 갈 길이 뚜렷한 이들이 모여 합리적 보수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재건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합리적 보수’의 소멸을 논하긴 이르다 </font></font>

지난 9월11일 이 주최한 5개 <font color="#C21A1A">청년당원 좌담회</font>에서 바른정당의 한 청년당원은 “우리가 ‘보수의 정의당’이 될지라도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신념과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4년 원내 10석을 당선시킨 민주노동당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정의당은 지금껏 한국 정치에서 ‘작지만 구조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 소수 세력이 비정규직과 불평등 문제를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에 제기했고, 무상급식 등 서민이 관심을 갖는 생활정치 의제를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은 국회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당장 바른정당은 보수의 정의당이 되어 제2의 도약을 이뤄낼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합리적 보수’의 소멸을 이야기하기엔 너무 이르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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