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구상’을 밝혔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독일의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서다. 평화구상은 요컨대 “인위적인 북한 체제 붕괴나 흡수통일을 꾀하지 않겠으니 북한이 비핵화에 나서달라”는 것이다. 대화와 압박의 초점을 북한 정권 붕괴에 맞췄던 박근혜 정권과는 확연하게 다른 접근이다. 과연 문 대통령의 평화구상에 북한이 얼마나 호응할지 관심이 쏠린다.
문 대통령은 7월6일 옛 베를린 시청에서 한 초청 연설에서 “완벽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한반도 비핵화는 국제사회의 일치적인 요구이자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절대 조건”이라며 “군사적 긴장의 악순환이 한계점에 이른 지금 대화의 필요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오직 평화다. 평화로운 한반도는 핵과 전쟁의 위협이 없는 한반도, 남과 북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함께 잘사는 한반도다.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이나 인위적인 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평화구상 실현을 위해 △평화 최우선 △북한 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비핵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등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경제 공동체 건설 △비정치적 민간 교류 협력 등 5대 대북정책 기조를 제시했다.
한반도 비핵화는 평화 위한 절대 조건문 대통령은 우선 쉬운 것부터 하자며 이른바 ‘선이후난’(先易後難)의 4대 정책 로드맵도 내놨다. 단기 로드맵에는 추석과 맞물린 10·4 정상회담 10돌을 맞아 이산가족 상봉을 재개하고, 내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여해달라고 북한에 촉구했다. 군사분계선에서 적대행위 중지도 포함됐다. 특히 “한반도 긴장과 대책 국면을 전환시킬 계기가 된다면 언제 어디서든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며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구상에는 7월4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한반도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특히 북한이 요구해온 체제 안전 보장을 상당 부분 언급함으로써 북한의 안보 우려를 달래는 데 무게를 뒀다. 문 대통령은 6월30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도 북한 체제 보장을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과의 통화에서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세웠지만 어떻게 신뢰를 만들 것인지 전혀 언급이 없었다. 대북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를 북한 정권 징벌과 붕괴에 초점을 둬 적대감을 키우고 반발을 샀다”며 “반면 문 대통령의 제안에는 북한 정권이 가장 불안해하는 부분을 배려하면서 어떻게 평화체제를 구축할지에 대한 장·단기적 계획이 망라돼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에 북한이 얼마나 호응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북한은 그동안 사회·문화적 문제보다 정치·군사적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태도를 보여왔다. 더구나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하며 핵 보유국 지위를 굳히겠다는 뜻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보수정권 9년 동안 쌓인 불신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다.
국제사회 역시 대북 압박 여론이 거세다. 이 때문에 당장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이 제안한 이산가족 상봉이나 비정치적 교류 역시 녹록지 않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의 전제조건으로 지난해 탈북한 북한 해외식당 여성 종업원 12명의 송환을 내걸고 있다. 스포츠 교류 역시 최근 방한한 북한의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정치·군사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제안에 장·단기적이고 다양한 정책이 포함돼 있어 북한이 단박에 무시하거나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양 교수는 “김정은 체제의 존엄을 중시하는 북한은 7차 당대회 이후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행위 중지를 계속 요구해왔다. 김정은 위원장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고 상호 체제를 존중하겠다는 부분도 포함돼 있다”며 “당장은 아니지만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 반응은 미지수문재인 대통령은 G20 정상회담을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취임 뒤 첫 한-중 정상회담을 열었다. 1시간5분 동안 이어진 회담에서 두 정상은 북한 핵문제 해법에 큰 이견을 보이지 않았지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문제에는 인식 차이를 드러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은 양국 간 이견이 있는 부분에 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했다”고 말했다. 통상 솔직하게 의견을 나눴다는 외교적 표현은 일정 부분 의견 불일치가 있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문 대통령은 “각종 제약으로 양국 간 경제·문화 인적 교류가 위축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 양국 관계 발전에 미칠 영향을 감안해 각 분야의 교류 협력이 더욱 확대될 수 있도록 시 주석의 관심을 요망한다”고 말했다. 사드 문제로 인한 양국 갈등으로 특히 무역과 여행 등에서 한국 쪽이 받은 타격을 언급하며 중국 쪽에 경제 보복 철회를 요구한 것이다. 한국은 이미 80억달러에 이르는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시 주석은 이 문제에 대해 자국의 이익을 언급하며 지속적으로 사드 배치 철회를 에둘러 요구했다. 중국 관영 는 시 주석이 “장기적 시야에서 상호 핵심 이익과 중대한 관심(우려)을 존중해야 한다”며 “한국은 ‘중국의 정당한 관심’을 중시하고 관련 문제를 적절히 처리해 중-한 관계의 개선과 발전을 위해 장애를 제거하기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노력을 평가하면서도 향후 좀더 많은 이바지를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시 주석은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 북핵은 결과적으로 북한과 미국의 문제이므로 중국에만 떠넘길 것이 아니다”라는 견해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중 신뢰의 시작, 북핵과 사드두 정상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고위급 대화 채널 등을 유지하며 협조해가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남북 대화 복원, 긴장 완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자”는 문 대통령의 말에 시 주석도 이는 한·중 공동의 목표라고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과의 통화에서 “여전히 중국은 한-중 관계의 발전을 위해 사드 문제가 우선 해결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 같다”면서 “그러나 북핵 문제 해결이나 한반도 정세 안정이 양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양국 간 신뢰 구축을 위한 첫 단추는 끼운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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