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멸하는 보수의 불씨를 살리는 대표가 되고 싶다.”
6월26일 바른정당의 첫 선출 대표가 된 이혜훈 의원은 활력이 넘쳤다. 그는 대표 당선 직후인 6월28일 과 인터뷰에서 “자신이 싫어하는 경쟁자에게 종북몰이하고 빨갱이 딱지를 붙이는 건 진정한 ‘안보 보수’가 아니다. 시장경제를 주장하면서 경제적으로 힘을 지닌 이들의 특권과 반칙, 횡포를 비호하는 것도 진정한 ‘경제 보수’가 아니다”라며 “바른정당은 양극화로 인해 안에서 붕괴 위협에 처한 대한민국 공동체를 지키는 진정한 보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혜훈 대표는 새누리당 시절부터 경제민주화 공약을 폐기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주저 없이 직격탄을 날렸고, 지난 1월 바른정당 창당에 참여해 탄핵의 앞자리에 섰다. 그는 창당 초기 당이 18살 투표권 인하에 반대한 것을 ‘천추의 한’으로 꼽으며 이를 재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당내 화합을 이루는 동시에 107석을 지닌 자유한국당을 거꾸러뜨려야 하는 과제를 지닌 이 대표와의 인터뷰는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바른정당은 수도권 2030세대가 주력”당대표로 선출된 동력은 뭘까.소신 발언 때문이 아닐까 싶다. 탄핵에 앞장섰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권력이 시퍼런 때도 제일 (앞장서) 소리를 낸 것은 유승민, 이혜훈이었다. 당원들에게 천길 낭떠러지라도 이혜훈이면 뛰어들 거라는 인식을 준 것 같다.
대표가 되는 데 어려웠던 점은.‘이혜훈이 되면 당 깨진다’라는 이야기였다. 당 소속 의원이 20명밖에 안 돼 겨우 교섭단체를 유지하는데, 당 한쪽에서 일부가 탈당하면 국고보조금이 나오지 않고 당이 파산한다는 공포감을 조성했다. 바른정당은 특정인이 당을 장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과거 스타일의 정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공간이다. 우리 당원들은 과거 새누리당이나 지금 자유한국당 당원들과는 사고방식이 다르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할 만하다. 보수정당의 주축이 영남과 60~70대였다면, 바른정당은 수도권 2030세대가 주력이다. 고도의 판단력과 정보력을 지니고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이전엔 의원이 당원 교육을 한다는 말이 많았는데 지금 바른정당은 당원과 의원의 관계가 반대다. 당원이 정치인에게 문자로 행동 지침을 내리고 견제하고 감시한다. 명령이 그들에게서 온다.
어떻게 하면 자유한국당을 제치고 보수의 본진이 되겠는가.낡은 보수와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는 것밖에 없다. 우리는 그들과 정체성이 다르고 정치 방식이 다르다. 보수를 규정하는 두 축은 안보와 경제다. 자유한국당은 냉전 반공이 안보라고 여긴다. 싫은 사람이나 경쟁자에게 종북몰이하고 빨갱이 딱지 붙이는 건 진정한 안보가 아니다. 대선 때 ‘문재인이 당선되면 김정은이 집권하는 거다’라는 홍준표 후보의 말에 당원 수천 명이 환호하는 건 집단 광기다. 우리는 다르다. 북핵이라는 현존 위협에서 대한민국을 철통같이 지켜내겠다는 게 우리의 안보관이다. 자유한국당은 경제적으로 힘이 있다고 특권·반칙·횡포를 일삼는 사람들을 비호하고, 때로 이들을 대변하는 돌격대 구실도 자행한다. 이 때문에 양극화가 심해지고 보수가 지키려는 대한민국 공동체가 안에서부터 붕괴한다. 보수의 적을 만드는 일이다. 진정한 보수가 아니다. 우리는 이런 행동을 죄악시한다.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찬성한 것이 없다. 반대 말고 할 줄 아는 것이 뭔지 모르겠다. 우린 그런 정치를 하지 않는다. 진보가 하는 일이 모두 절대악일 수 있나.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과감하게 협력한다. 보수의 정체성을 지켜야 할 부분과 협력할 부분을 선택해 집중할 것이다.
“낡은 보수 향해 쓴소리 하겠다” 견제와 협력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우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는 조속히 배치하는 게 맞다고 본다. 지연하는 건 국익에 손해다. 미국과 중국도 사드 배치 지연 탓으로 서로 피곤해한다. 누구에게 득이 되는지 모르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6·15 (남북 정상회담 17주년 기념식) 때 북한의 추가 도발이 없으면 대화를 재개하겠다고 했는데 이건 우려스럽다. 현존하는 북핵을 인정하는 것 아닌가. 비핵화와 멀어지는 발상은 걱정스럽다. 과감하게 협조할 부분은 현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다. 공무원 중 2교대에서 3교대로 바꿔도 과로사가 속출하는 소방관이나 집배원, 가축방역관 등은 늘려야 한다. 보육시설과 육아휴직수당을 늘리는 것은 우리가 먼저 제안했다. 다만 공무원 일자리를 과도하게 늘리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원자력발전을 줄여 언젠가 탈원전을 하자는 정책 방향에도 찬성이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지배구조 개혁 등 재벌 개혁에 대해서도 바른정당은 현 정부, 여당과 접점이 상당히 많다.
바른정당 창당 직후 18살 투표권 인하에 반대해 상당수의 지지층을 잃었는데.그때 우리가 우왕좌왕하면서 지지율이 반토막 났다. 지금도 천추의 한으로 남는다. 이걸 다시 추진하려 한다. 당내 다수의 의견도 모였다. 국민 대다수의 뜻이 18살로 투표권을 낮추라는 것이다. 국민의 뜻을 거슬러서 반대할 합당한 명분을 찾지 못했다.
자유한국당에 흡수될 거라는 우려가 있는데.바른정당 지지율이 자유한국당을 앞지르는 골든크로스는 곧 온다. 자유한국당은 지지율이 한때 50%에 이르다가 급속히 곤두박질쳤다. 우린 바닥에서 올라가고 있다. 더구나 자유한국당은 국민의 짜증과 분노를 유발하고 전당대회 경선도 막장으로 치달으면서 지지율이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낡은 보수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지지율 격차를 벌려놓겠다.
이혜훈 지도부와 이전 지도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이전 지도부는 굉장히 신사적이고 점잖은 스타일이었다. 나는 거침없다. 사람들이 ‘사이다 발언’을 한다고 할 만큼 낡은 보수를 향해 쓴소리를 한다. 이런 면이 국민에게 속 시원하게 다가가길 바란다.
보수 대수혈을 강조했는데 구체적인 방안이 있나.아직 특정인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점을 양해해달라. 상대가 있는 것이니까. 이와 별도로 현역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가운데 지향점이 같은 이들을 설득해 바른정당 안으로 모셔올 구상을 하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나 다음 총선에서 정치를 하려는 젊은 ‘꿈나무’를 발굴하려 한다. 정적인 당 운영을 동적으로 바꿀 것이다. 대선 후보였던 유승민 의원,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을 한 그룹으로 해서 대학 등을 누빌 생각이다. 대구·경북에서도 당 지도부가 골목골목 경로당, 마트, 공인중개사 사무실 등을 돌며 바른정당에 덧씌워진 ‘배신자 프레임’을 깨도록 하겠다.
“명멸하고 궤멸 위기 처한 보수 불씨 살리는” 내년 지방선거의 계획과 목표는.다른 부분도 중요하지만 광역단체장이나 재·보궐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광역단체장으로 남경필 지사와 원희룡 지사가 있는데 여기에 3곳 정도 더 보태고 싶다. 현재 6곳 정도로 예상되는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두세 곳을 이겼으면 하는 바람과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 대표가 서울시장에 직접 출마할 가능성은.서울시장 후보로 좋은 사람을 염두에 두고 있다. 아직 (영입) 성사 단계는 아니지만.
어떤 대표가 되고 싶나.명멸하고 궤멸 위기에 처한 보수의 불씨를 살리는 대표가 되고 싶다. 지난 대선에서 개혁 의지와 진정성을 보고 소중한 표를 주신 것에 정말 감사하다.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러운 보수, 책임지는 보수, 깨끗한 보수, 유능한 보수가 되도록 죽을힘을 다하겠다.
글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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