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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의 귀환

미국에서 귀국한 뒤 자유한국당 대표 출마 선언

좌충우돌 행보로 문재인 정부 걸림돌 될까
등록 2017-06-27 21:07 수정 2020-05-03 04:28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대선 패배 한 달 만에 당대표 도전을 선언했다. 6월18일 서울 여의도동 당사에서 당대표 출마 기자회견을 하는 홍 전 지사. 한겨레 강창광 기자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대선 패배 한 달 만에 당대표 도전을 선언했다. 6월18일 서울 여의도동 당사에서 당대표 출마 기자회견을 하는 홍 전 지사. 한겨레 강창광 기자

좌충우돌 ‘홍트럼프’가 돌아왔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역대 최대인 557만 표 차로 패한 뒤 40여 일 만이다. 미국에 머물다 귀국한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는 6월18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자유한국당 대표 출마 선언을 했다. 대선 과정에서 “당권을 노리고 선거를 치를 만큼 바보가 아니다. 추하게 당권에 매달리는 짓은 하지 않는다”고 했던 그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는 7월3일 홍 전 지사를 포함해 원유철, 신상진 의원의 삼파전으로 치러진다.

자유한국당의 처지

홍준표 전 지사의 7·3 전당대회 출마는 자유한국당 내 대안 부재와 홍 전 지사 개인의 정치적 야심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란 평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돼 자유한국당 주류인 친박계는 정치적 ‘금치산자’로 전락했다. 지난해 총선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11개월 전에 치러져 107석을 가진 거대 제1야당의 지위를 확보했지만 영향력은 덩치에 견주지 못할 만큼 추락한 상태다.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15% 언저리에 머문다. 더불어민주당(120석)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친박 출신 당대표로는 지리멸렬한 당을 추스를 수 없다’는 위기감이 홍 전 지사에게 당대표를 노릴 정치적 공간을 확보해 줬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대선 패장이 한 달여 만에 유력 당대표 주자로 부각한 것 자체가 자유한국당의 궁색한 처지를 방증한다는 지적이 많다. 자유한국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홍 전 지사의 스타일에 우려가 적지 않지만 당 혁신에 그만한 인물이 없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 영남 중진 의원의 말은 더 적나라하다. “지금은 모양새를 따질 상황이 아니다. 사람이 없는데 어쩌겠나.” 자유한국당 안에서는 한때 ‘50대 세대교체론’도 없진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혁신에 걸맞은 50대 소장파 의원들은 바른정당에 몸담고 있다.

‘독고다이’(독불장군)로 불리는 홍 전 지사의 처지 역시 전당대회 출마를 결심하게 만든 배경으로 꼽힌다. 조기 대선으로 갑작스레 대통령 후보에 올라 24% 지지율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제쳤지만 친박 주류의 원내 입지는 취약하다. 경남도지사직은 사퇴했고 현역 국회의원도 아니다. 한 정치평론가는 “당에서 뿌리가 없다시피 한 홍 전 지사로서는 대선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당권을 잡지 않으면 정치권에서 잊힌다는 강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전 지사는 조기 등판을 전후로 벌써 여러 구설을 쏟아내 정치권 안팎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이미 대선 때 “설거지는 여자 몫” “장인 영감탱이” 발언 등으로 구설에 오른 그다. 모순된 발언과 피아를 가리지 않는 격한 표현 때문에 일부에선 “노이즈 마케팅의 대부답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홍 전 지사는 대선 과정에 앞서 징계를 풀고 손잡았던 친박계 핵심들에게 태도를 바꿔 독설을 쏟아부었다. 그는 “국정 파탄 세력과 결별하지 않고는 살아날 길이 없다. (보수를) 궤멸시킨 장본인이 설치는 것은 후안무치하다. 친박들이 비박들을 핍박해 몰아붙이고 정권 내내 이명박 뒷조사를 하고…”라고 말했다. 지난 5월엔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에서 일부 친박계 인사를 지칭해 “박근혜 팔아 국회의원 하다가, 박근혜 탄핵 때는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더니 박근혜 감옥 가고 난 뒤 슬금슬금 기어나와 당권이나 차지해보려고 설치기 시작했다”고 맹비난했다. 그는 불과 달포 전 대선 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모든 사람의 징계를 풀어야 한다”며 일방적으로 친박 핵심들의 징계를 해제한 바 있다.

독설의 아이콘

홍준표 전 지사의 독설은 다른 야당에까지 미쳤다. 그는 6월20일 한 토론회에서 “어차피 국민의당은 민주당에 흡수될 것”이라고 상대를 자극했다.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에 대해 “점쟁이냐? 그렇게 점치면 우리 당원들로부터 따귀밖에 안 맞는다. 참 말릴 수 없는 사람이다. 막말도 금도가 있는 것이다”라며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홍 전 지사는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을 겨냥해선 “탄핵 대선 과정에서 신문, 방송 갖다 바치고, 조카 구속시키고 청와대 특보 자리 겨우 얻는 그런 언론도 있다”고 공격했다가 해당 언론사의 법적 대응 방침에 부닥치기도 했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홍 전 지사의 발언을 보면 의 ‘다중이’가 생각난다. 다중이는 다중자아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조차 “정치인은 소위 세 치 혀가 모든 문제를 일으킨다고 했다. 정제된 언어를 써야 한다”고 비판하고 나설 정도다.

이런 논란과 무관하게 자유한국당에서는 홍준표 대세론이 퍼지고 있다. 권성동 의원은 “당내에서 전당대회 이야기가 별로 없다. 이미 인지도에서 압도적인 (홍 전 지사 쪽으로) 대세가 기울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홍 전 지사가 표방하는 강경 노선에 우려가 적지 않다.

홍 전 지사는 강성, 우경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문재인 정부를 향해 “친박 패당 정부에서 주사파 패당 정부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고 포문을 열더니, 급기야 “이 정권은 주사파 운동권 정권이어서 국민이 인식하면 오래 못 간다. 원내에서 의원들이 제대로 투쟁만 해주면 연말이 지나서 국민이 운동권 정부에 등을 돌릴 것”이라며 탄핵 암시 발언까지 나아갔다. 홍 전 지사는 대선 유세 기간에도 “5월9일은 친북좌파 심판하는 날” “대한민국 3대 적폐 세력은 종북, 전교조, 강성귀족노조”라며 색깔론을 부각했다.

당 안팎에서는 홍준표 전 지사의 행보가 강경보수와 영남권 일부로 쪼그라든 당의 외연 확대를 꾀하기는커녕 고립의 길로 몰아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자유한국당 한 재선 의원은 “지금 우리는 아무리 목소리를 내도 ‘너나 잘하라’라는 이른바 ‘메신저 거부’ 현상에 발목 잡혀 있다. 여전히 종북, 주사파 타령을 하다가는 다 돌아선다”고 말했다. 같은 보수에 뿌리를 둔 바른정당과도 사이가 더 멀어지고 있다. “바른정당은 한국당에서 떨어져나온 기생정당”이라는 홍 전 지사의 말에 김세연 바른정당 사무총장은 “지역, 극우 정당으로 가는 한국당의 처지가 딱하다”고 일갈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홍 전 지사가 자유한국당을 이끌면 암울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홍준표 대표 체제가 되면 확장은 포기하고 그저 열렬 골수 지지층 결집이라는 길로 갈 가능성이 높다. 이대로라면 몸집만 크고 국민의 지지는 못 얻는 보수정당의 궤멸 상태가 상당히 장기화할 수 있다.”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도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가 80%를 웃도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정치세력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채 몽니를 부리는 강성 야당으로만 나아간다면 국민 정서와 멀어져 고립된다”고 말했다.

협치의 훼방꾼 될까

‘싸움닭’ 홍준표 전 지사의 당대표 등극은 여권에도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체제의 등장을 추가경정예산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문제 등과 함께 문재인 정부의 예상 난관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정치적 금도를 개의치 않는 홍 전 지사의 공세로 이전투구에 휘말리면 문재인 정부와 여당도 함께 흠집 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홍 전 지사가) 청와대나 여권에 강경하게 각을 세우면 협치나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도 “예측 가능하지 않고 돌출적인, 때로는 막가파식 행보를 보이는 홍준표 전 지사의 리더십을 고려하면 청와대와 여권이 정국 운영에 대단히 어렵고 곤혹스러울 수 있다”고 예측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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