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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치의 자격

야당, 리더십 바로 세우고 콘텐츠 부재 극복해야…

다당 체제 안착되면 합리적 보수 아우르는 대연정도 가능
등록 2017-06-27 16:17 수정 2020-05-03 04:28
6월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 회동에서 여야 교섭단체 4당 원내대표들이 굳은 표정으로 자리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한겨레 강창광 기자

6월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 회동에서 여야 교섭단체 4당 원내대표들이 굳은 표정으로 자리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한겨레 강창광 기자

여야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진다. 문재인 대통령의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 뒤 올스톱됐던 국회가 6월21일 부분 정상화됐지만,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안(추경)과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는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두 안의 심사 자체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당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 심사경과보고서 채택에 협조하고 추경 처리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등 태도 변화를 보이지만, 이 국면이 또다시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다. 인사청문회와 각종 법안 처리를 앞두고 국민은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정치권을 지켜본다.

지난해 총선과 올해 대선을 통해 유권자는 ‘5당 체제’를 선택했다. 이들이 한두 정당에 표를 몰아주지 않는 것은 양당 체제의 피로감 때문이다. 그동안 정치권이 양쪽으로 갈라진 채 선의의 경쟁보다 ‘나의 행복이 너의 불행’이란 구도 아래 소모적인 싸움만 벌여온 것에 비판적 시선이 담겨 있다.

양당 체제에 비해 다당 체제 아래에선 ‘합의민주주의’가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다당제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진보·중도·보수 세력이 각각 비슷한 비율의 의석을 차지해 누구도 혼자 집권할 수 없도록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독자적 기득권을 갖지 못한 정당들이 ‘협의’를 강제당한다. 한국이 부러워하는 북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다당제 아래에서 복지 시스템을 발전시켜왔다.

한국도 정당 구도만 놓고 보면 다당 체제의 이상적 모델에 가깝다. 진보·중도진보·중도·중도보수·보수의 5당 체제가 형성돼 있고, 누구도 독자적 힘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 정상적 상황에선 서로의 입장 차이에 대한 발전적 논쟁을 거쳐 하나의 합의점을 만들어내야 한다. 현재 정치권에선 선의의 경쟁이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5당 체제에서도 소모적 싸움만</font></font>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여론은 ‘야당 책임론’ 쪽으로 기울어 있다. 한국갤럽이 6월23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9%다.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은 모두 7%다. 정의당을 제외한 야 3당은 여전히 의석수에 비해 낮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야 3당이 정부의 국정 운영에 ‘무리한 발목잡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여론의 판단이다. 전문가들도 야당이 독자적인 콘텐츠를 내놓아 이를 관철하기 위해 정부와 싸움을 벌이는 게 아니라, 그저 ‘나 여기 살아 있다’는 식의 존재감 표출을 위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벌인다고 평가한다.

야당들은 아직까지 다당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양당 체제 안에서 익숙하게 해온 소모적인 싸움을 다당 체제란 새로운 변화에서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일각에선 다시 양당 체제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래야 한쪽의 힘으로 국회가 어떻게든 굴러갈 수 있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이들의 말처럼 다당 체제는 한국에선 영영 실현 불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도 다당 체제 속에 야당들이 정치력을 발휘한 적이 있었다. 1987년 대선에서 양김(김대중·김영삼)의 분열로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된 뒤 연이어 치러진 1988년 4월 13대 총선에서 지금과 비슷한 구도의 ‘4당 체제’가 형성됐다. 여당 민주정의당은 125석, 평화민주당(김대중)은 70석, 통일민주당(김영삼)은 59석, 신민주공화당(김종필)은 35석을 차지해 ‘1노 3김’ 체제가 만들어졌다. 여소야대 구도 속에 13대 국회는 청문회 제도를 처음 도입하고 지방자치법 제정, 국정감사제도 부활 등 한국 정치의 근간을 이루는 굵직한 제도를 생산해냈다.

4당 체제가 유지된 약 2년의 기간이 가장 국회다운 국회였다는 평가가 많다. 양쪽 극한 대결이 사라지고 협상과 협의가 중요하게 인식되던 때였다. 이 중심에 역동적이고 변화를 주도하는 야당들이 있었다. 입법 활동도 활발했다. 총선 뒤 8개월이 지난 때인 1988년 12월까지 법안 86건을 통과시켰다. 13대 국회 전체에서 처리된 법안은 모두 938건으로, 이전 국회(378건)의 3배에 달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차이가 있다. 크게 세 가지다. 첫째, 13대 국회에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대선 주자급 총재들이 야당 대표를 맡았다. 분열하지 않았으면 둘 중 하나는 대통령에 당선됐을 김대중과 김영삼이라는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이 각 당에 포진했고, 의석수는 적지만 한국 정치에서 독특한 존재감을 발휘하던 김종필도 있었다. 이른바 ‘3김’이다. 3김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여전히 당내 위치와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이들과 자주 회담하며 주요 국정 사안을 논의했다. 당시 여야 원내총무(현 원내대표)들의 정치력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정치력 빛 발하던 13대 국회와의 차이점</font></font>
1988년 5월28일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평민당 총재,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13대 총선 뒤 처음 청와대에서 마주 앉아 영수회담을 하고 있다. 한겨레

1988년 5월28일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평민당 총재,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13대 총선 뒤 처음 청와대에서 마주 앉아 영수회담을 하고 있다. 한겨레

둘째는 콘텐츠다. 을 보면 당시 김대중 평민당 총재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 노태우 대통령이 제1야당 대표인 김대중 총재를 만나 서울올림픽 개최 협조를 요청하자, 김 총재는 협조 뜻을 밝히며 “양심수와 구속 학생을 석방해달라고 간곡하게 요구했다”는 내용을 회담 발표문에 넣어줄 것을 요구했다. 야당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뭔지 분명히 알았다는 뜻이다. 야당은 당시 16개 상임위원회 가운데 9개의 위원장을 맡아 개혁 법안을 논의하고 처리하는 데 공을 들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위, 제5공화국 정치권력형비리조사특위, 민주발전을 위한 법률개폐특위 등을 여야 합의로 구성해 활발히 활동했다.

셋째는 여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약했다는 점이다. 대선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 여당이 대패했다는 것은 노태우 정권이 얼마나 불안정했는지를 상징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물태우’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야당에 열린 자세를 취했다. 야당은 민주화를 염원하던 시민사회의 동력을 발판으로 여러 개혁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지금 야당에는 세 요소 모두 빠져 있다. 강한 리더십을 가진 당대표가 야당엔 없다. 여론의 지지는 정부·여당에 쏠려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콘텐츠 부재로 인한 정체성의 혼란이다. 그나마 국민의당은 추경안 처리와 관련해 대안을 내놓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대안 없이 무조건 심사를 반대한다. 정치는 각 정당들이 각자의 입장을 대변한 대안을 내놓고 국회라는 틀 안에서 서로 경쟁하며 양보할 것은 하고, 받아낼 것은 받아내는 과정이다. 지금은 이런 정치 자체가 실종된 모습이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일자리 창출 자체에 반대하는 건 아닐 테니 다른 대안을 내놓고 토론해서 협상하고 합의를 보는 게 제대로 된 정치인데 그게 되지 않는다”며 “정당 구조가 다당제이긴 하지만 정책 중심으로 경쟁하는 다당제가 아니라는 데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가장 시급한 과제 ‘연동형 비례대표제’</font></font>

국민의 절대적 지지가 여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야당이 해야 할 일은 여론을 최대한 자기 쪽으로 끌어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콘텐츠가 없다면 이를 만들어내는 틀이라도 야당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양당 체제도 아닌 상황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문재인 정부를 무조건 발목잡기 하면 존재감은 생길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다음 선거에서 대안정당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기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선거제도 개혁도 필요하다. 협치가 제대로 실현되는 다당 체제를 만들려면 각 당이 정체성을 확립하도록 견인하는 제도적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다(제1166호 정치 ‘국민의당, 선거제도 개혁에 사활을 걸어라’ 참조). 이 제도가 도입되면 각 정당이 소신껏 정책을 내놓고 그에 따라 획득한 정당 투표율만큼 의석을 받을 수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필요성은 문재인 대통령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5월19일 5당 원내대표 회담에서 “권력분산형으로 가더라도 대통령제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왔으나 만약 선거구제 개편 등이 같이 논의된다면 다른 정부 형태, 다른 권력 구조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17일 에세이집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개인적으로 내각제를 더 좋은 제도로 본다. 내각제로 가려면, 첫째 지역 구도가 해소돼야 하고 이를 위한 선거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예를 들어 대구·경북 지역에서 30%의 야당 지지가 있다면 30석의 의석을 낼 수 있는 선거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설명한 것이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협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와 여당이 하루빨리 선거제도 개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바른정당까지 ‘연정 파트너’로 </font></font>

다당 체제가 안착되면 유럽의 복지국가처럼 ‘연정’을 통한 국정 운영도 가능하다. 선학태 전남대 교수는 6월23일 광주에서 열린 한국NGO학회 포럼에서 ‘사회적 협치와 연합정치, 그리고 시민사회의 역할’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문재인 정부에 연합정치를 강하게 요구했다.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여야 쟁점 법안은 180석 이상을 넘겨야 처리가 가능한 현실에서 정의당·국민의당뿐 아니라 바른정당까지 연정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선 교수는 “야당의 협조를 받지 못하면 아무리 개혁 입법이 차고 넘쳐흘러도 무의미하다”며 “문재인 정부 아래 연정협약 체결이라는 정치적 대타협을 통해 이념 블록을 가로지르는 대연정 공동정부가 구성될 수 있다면, 이는 민주화 이후 일상화된 국회-대통령 충돌이 완화되는 정치적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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