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결국 구속됐다. 늘 그렇듯 법원의 설명은 길지 않다.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 판사는 3월31일 새벽 3시께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여기서 ‘주요 혐의’를 보려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의 내용을 봐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통한 정유라씨 우회 지원,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강요,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등 총 13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전후좌우 분간 못하는 감각이 중 구속영장 발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걸로 추론되는 것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과 관련한 뇌물수수 혐의다.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경영권 승계 필요성이 급박해지자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문제 등의 해결을 청탁했고, 박 전 대통령은 그 반대급부로 정유라씨와 장시호씨가 운영하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및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혐의 또한 영장 발부의 중요한 근거가 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연루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재용 부회장, 최순실씨 등과 함께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돼 있다. 처음부터 구속영장에 적시된 혐의들의 사실관계가 인정될 경우 이들과의 ‘형평성’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수감은 피할 수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를 전면 부정하면서 특검 대면조사를 거부하고 헌법재판소 최종변론까지 참석하지 않은 사실 역시 구속영장 발부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걸로 보인다.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을 감안할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수감되지 않으면 지금까지 일관되게 상급자의 책임을 언급한 관련자들의 진술 내용이 바뀌는, 사실상 증거가 없어지는 일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결국 구속 수감된 마당에 이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민주화된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했느냐는 점이다. 가장 놀라운 건, 박 전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했다는 점이다. 다른 범법자들은 법적 책임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라도 일부 혐의를 인정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박 전 대통령은 달랐다. 이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 박 전 대통령이 정말 억울해한다고 보는 게 가장 그럴듯한 결론이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나는 1원 한 푼 받지 않았다”는 논리를 반복했다. 실제 박 전 대통령 소유의 계좌에 돈이 흘러 들어간 게 아니기 때문에 이 발언에는 형식논리로만 따질 때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다.
그러나 검찰이 구성한 뇌물수수 혐의는 단지 대가성 있는 돈을 받았느냐, 또는 받지 않았느냐를 기계적으로 판단한 결과가 아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관계, 대통령직의 특수성을 함께 고려한 것이다. 검찰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관계를 ‘경제적 공동체’로 봤다는 해석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체제의 이상을 믿지 않아박 전 대통령의 반론은 오히려 스스로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진단을 가능케 한다. 실제 박 전 대통령 주변 사람들은 그가 탄핵 기각을 확신했고, 검찰의 불구속 수사를 기대했다는 점을 증언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에게 제대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데 무슨 말을 하겠느냐는 거다.
박 전 대통령의 이런 행태는 그의 주관적 세계가 대통령직(presidency)과 민주주의, 법치주의(rule of law)에 대한 이해 결여로 이루어졌다고 해석된다. 단순하게 말하면 ‘내’가 의도하지 않은 일에 의해서도 ‘나’는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고, 특히 ‘내’가 대통령 직무를 수행한다면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는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검찰의 구속영장은 박 전 대통령의 행위가 과연 ‘의도하지 않은 일’에 해당하는지를 의심케 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정유라씨 지원 요청 같은 부분은 명백한 사익 추구에 해당한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일은 교과서에 기록될 만한 정경유착의 모범(?)이다. 이런 점으로 보면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해명 내지는 반론을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전혀 고려하지 못한 걸로 보인다. ‘공직자인 나의 행위를 여론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를 헤아리는 능력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가장 기본적 자질이다.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헌법 수호, 즉 대통령직을 수행할 자질이 없다는 것은 단지 ‘능력이 모자란다’는 평가에 머무를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정상적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 그런 소양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적극 부정하려는 결과일 수밖에 없다. 즉, 박 전 대통령의 문제는 단지 능력이 모자라다기보다 그가 체제의 이상을 믿지 않는 사람에 가까웠다는 데서 비롯됐다고 볼 필요가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제가 대표적이다. 예술적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민주주의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는 ‘당위론’은 좌파와의 이념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지상명령에 밀려 존재의 근거를 잃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재판 과정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하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한 게 이를 뒷받침한다.
탄핵 인용 선고 뒤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가 정해진 기준에 따라 기록물을 생산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도 이런 판단을 뒷받침한다. 누가 무엇을 제안했고 이 제안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추적하는 시스템을 국정 농단을 위해 무력화한 것이다. 참여정부가 확립한 전자기록물 관련 시스템은 관료제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인데, 박 전 대통령에게 이런 ‘명분’ 따위는 무의미했다.
이런 흐름은 박 전 대통령의 정치사 전체를 통틀어 반복해서 등장한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과거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중부담-중복지로의 전환’을 촉구한 연설을 한 것을 ‘배신의 정치’로 규정한 게 대표적이다. 유 의원의 주장에 정책적 반론을 제기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의원들을 줄 세워 대권을 노리려는 그의 ‘불순한 의도’를 문제 삼은 것이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의 세계에서 남이 내세우는 ‘명분’은 언제나 의미가 없으며 오직 중요한 건 상대의 목적임을 보여준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이런 인식이 가능한 것은 스스로가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 명분이나 당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가 이미 내면화됐다.
세기를 건너 비극은 비극을 낳고여기서 짚어볼 대목은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의 정당성을 부차화하는 건 ‘박정희주의’의 주요한 특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는 목적을 위해 불의한 수단도 감수하는 행위인 ‘쿠데타’의 본래적 특성이기도 하다. 5·16 직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겠다”며 기업인들을 부정 축재자로 지목했다가 경제 발전 등에 협력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풀어준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기업인들에게 ‘부패와 구악’의 문제는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이때 위기를 모면한 기업인들이 만든 단체가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모태가 되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민주주의 확대를 요구하는 여론에 “아직 때가 이르다”고 답하거나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는 낙인찍기로 대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박정희 정권은 자신들이 애초 ‘혁명 공약’으로 내세운 조속한 민정 이양이라는 약속을 제3공화국 수립에 이은 10월 유신으로 완전히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 10·26을 자초했다.
정치가 해결하는 수밖에 없어박정희 정권은 사회간접자본 등의 확충과 국가 주도의 수출 중심 경제 모델 유지를 위해 기업과 비제도적으로 긴밀히 협력했다. 이 과정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정경유착의 기본 틀이 완성됐다. 1972년 8월2일 발표된 ‘경제의 성장과 안정에 관한 긴급명령 15호’, 이른바 8·3 조치는 박정희 정권에서 이뤄진 정경유착의 절정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내외의 경제위기를 핑계로 기업이 차입한 사채를 사실상 동결시킨 것인데, 권력이 기업의 경제적 이익 보장을 위해 자본주의의 대전제인 사유재산권을 제한한, 실로 혁명적 조치를 강행한 것이다. 이 조치에 비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했다는 일은 그야말로 ‘새 발의 피’에 불과할 정도다. 체제의 이상을 스스로 믿지 않는 기만적 권력이 이 사회에 뿌리내리게 된 결정적 원인이 박정희주의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지 않을 수 없다.
권력의 기만성은 오늘날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진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세월호 참사다.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비극이다. 이런 비극을 방지하기 위한 수많은 장치가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었음에도 전부 소용이 없었다. 배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안전을 담보로 무리한 개·증축과 과적을 일상화했다. 이를 감시하고 규제해야 할 기관은 작은 사적 이익을 위해 스스로 무력화되는 길을 선택했다. 정부는 재정적 안정성을 위해 해상 사고의 구난 기능을 이미 알아서 포기했고, 국회는 2012년 수난구호법 개정으로 이를 추인했다. 사람 목숨을 지키는 게 우선이라는 최상위의 가치를 믿지 않는 세태가 이 모든 일을 가능케 했다. 박근혜 정권의 문제와 세월호 참사는 단지 대통령의 7시간 문제가 아니라 바로 여기에서 극적으로 만난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박근혜 정권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결국 박정희주의와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 청산을 외치는 우리 정치가 과연 그럴 준비가 돼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과거 제1야당의 뒤를 잇는 더불어민주당은 이 사태의 최대 수혜자로서 사상 최고의 정당 지지율을 획득하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로서 ‘대세론’의 주인공이 돼 있다.
이를 견딜 수 없는 기타 세력들은 ‘반문(反文) 연대’를 모색한다. 국내외적 위기 속에 각 정파가 힘을 합쳐 ‘통합정부’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게 명분이다. 국회선진화법이라는 좋은 핑계도 있다. 180석 이상 다수파를 형성해야 안정적 국정운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논의에서 견제와 균형이라는 고전적 정치 원칙은 온데간데없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대연정’ 주장 역시 그에 담긴 ‘선의’와는 별개로 이런 문제를 안고 있었다. ‘적폐 청산’을 외치는 문재인 전 대표가 안희정 지사와의 설전 과정에서 “당정 분리를 해봤지만 우리 정치 현실과 맞지 않았다”고 한 것도 비슷한 우려를 하게 한다.
우려는 우려로 끝나는 게 가장 좋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해주지 못한다는 단순명쾌한 당위가 실질적 힘을 가지려면 정치가 각성해야 한다. 시민이 가진 수단만으로 모순을 극복하기에는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은 박정희주의의 뿌리가 너무 깊다. 정치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절망이 전파될 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올림머리를 더 이상 볼 일이 없다는 어떤 ‘사이다’를 넘어서, 돈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한 시대가 가능하다는 것을 지금부터 보여줘야 한다.
김민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저자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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