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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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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4년 폭력·혐오·반생명·반노동

부재한 정당성을 폭력과 공안통치로 메우려 한 정권, 책임자 반드시 처벌해야
등록 2016-12-22 17:21 수정 2020-05-03 04:28
2014년 4월17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 현장인 전남 진도 바다를 살펴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4년 4월17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 현장인 전남 진도 바다를 살펴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6년 말 대한민국 거리에는 캐럴이 아니라 하야송이 흐른다. 거리와 광장은 박근혜 퇴진과 민주주의를 외치는 목소리로 가득하고 어느 때보다 생동감이 넘친다. 거의 매일 광장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이고 매 주말 1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행진한다. 단지 대통령이 사인(私人)인 최순실과 함께 국정을 어지럽히고 부정부패가 심했다는 언론 보도 때문에 모인 게 아니다. 4년 동안 박근혜 정부가 억누른 삶과 인권 박탈이 사람들에게 쌓이고 쌓여 만든 국면이다. 그런 시민들의 분노가 12월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 가결을 이끌어냈다.

그렇다면 2013년 2월 취임 이후 4년간 우리의 인권은 어디에 있었는가. 박근혜와 최순실, 새누리당과 재벌 일당들이 배를 불리며 ‘그들만의 국가’를 만드는 동안 인권은 땅속에 묻혔다. 박근혜 정부의 통치 키워드는 박정희식 국가주의와 보수 가치의 부활이다. 4년 내내 남북 긴장을 유도하며 국가폭력을 정당화했고, 공안기구의 공작정치,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을 앞세운 혐오의 사회화, 세월호 참사로 드러나듯 탐욕적 이윤 추구를 위한 규제 완화와 반생명, 반노동 정치를 펼쳤다. 이런 통치는 사회 구성원의 자유와 안전, 평화를 침해했고 생존을 위협했다.

종북몰이와 노골적 국가폭력

박근혜 정부는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으로 당선된, 집권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정권이다. ‘부재한 정당성’을 국정원과 경찰, 검찰 등의 폭력과 공안통치로 메우려 했다. 2013년 8월 김기춘이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된 뒤 종북 매카시즘은 본격화된다. 그는 박정희 정권 때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하고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에서 일했고, 법무부 장관으로 있던 노태우 정권 때는 강경대 명지대생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통합진보당 해산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확대되던 ‘종북몰이’의 결정판으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정치적 결사의 자유 실현태 중 하나인 정당을 실제적인 내란음모가 없었음에도, 즉 민주적 기본 질서를 실질적으로 위해하는 어떤 구체적 행동이 없었음에도 ‘숨겨진 목적’ 운운하며 헌법재판소는 정당해산심판 청구 1년 만에 해산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2015년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약칭 자유권규약) 위원회는 자유권규약 제22조를 위반한 인권침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정당해산은 객관적이고 투명한 기준에 의해 이뤄져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나와 있듯이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은 김기춘의 입김이 작동한 정치 탄압이다. 이후 시민사회나 제도정치권 내에서 종북 낙인은 피해야 할 위험이 됐고 더 이상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표현은 불가능했다. 종북 마녀사냥에 걸리지 않기 위해 야당은 우리는 종북이 아니라며 헌법 가치 운운하며 비상식적 결정에 합류했다.

2013년부터 4대악 근절과 경범죄 처벌 강화라는 기치를 내세우며 국가 규율을 강화했는데, 이는 새마을운동풍의 박정희식 국가주의 통치와 닮았다. 국민의 일상을 규제하고 시민의 자유를 옭아매려 했다. 동시에 경찰인력 2만 명 증원 5개년 계획으로 경찰력 증강을 추진했고 시민들에게 마음껏 폭력을 저질렀다. 2013년 상반기 내내 경찰은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에 있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분향소를 없애고 추모 장소를 없애기 위해 1인시위까지 막으며 온갖 모욕적 행위를 일삼았다. 경남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에 대한 경찰 폭력은 그해 10월부터 2014년까지 이어졌다. 폭력을 주도한 최성영, 이철성 등은 총경과 경찰청장으로 다 승진했다.

무엇보다 국가폭력의 생생하고 노골적인 행사는 2015년 말 민중총궐기 때 절정에 이른다. 고 백남기 농민을 물대포로 직사해 쓰러뜨렸다. 2016년 그의 사망 뒤에는 사인을 왜곡하며 주검을 강제 부검하려 했다. 누구도 자신의 신체와 생명과 건강을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는 인권의 기초는 시위대를 이슬람국가(IS)에 빗댄 대통령의 지시와 강신명 전 경찰청장의 합법 운운 속에 짓밟혔다.

혐오의 정치로 소수자 인권 후퇴
김기춘, 이철성, 강신명. 이들을 비롯해 인권침해 주범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게 인권단체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겨레 강창광 기자, 한겨레 김태형 기자

김기춘, 이철성, 강신명. 이들을 비롯해 인권침해 주범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게 인권단체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겨레 강창광 기자, 한겨레 김태형 기자

‘어버이연합 게이트’에서 드러났듯 어버이연합을 비롯한 보수우익 혐오세력은 청와대와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돈을 받으며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세력을 종북으로 몰았다. 종북몰이는 특정 이념과 국가에 대한 혐오로까지 격상됐고 이는 성소수자를 비롯한 다른 소수자를 배제, 혐오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특히 일부 보수 기독교계의 참여로 혐오는 전 사회에 확대됐다.

2013년 2월 김한길 의원과 최원식 의원(민주통합당)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은 이들 세력의 반대운동으로 4월 철회됐다. 혐오세력들은 차기 대권 주자로 부상한 박원순 서울시장을 공격하는 근거로 ‘동성애 옹호자’라며 몰아세웠다. 이에 휘둘린 박 시장은 2014년 12월 성소수자 차별금지가 명기된 서울시민인권헌장을 폐기했다. 박근혜 정부의 반인권 정책에 동조한 사람들이 단지 새누리당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혐오는 공동체를 갈라치고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덮는 일임에도 표심에 부유하는 정치인들은 박근혜의 혐오정치에 놀아났다.

그러나 2016년 초 어버이연합 게이트에서 밝혀졌듯이 혐오는 박근혜 통치의 주요 수단이었다. 혐오 확대나 종북몰이 등의 공작정치는 모두 민의(民意)를 왜곡하고 가짜 여론을 만들어 공론장을 왜곡한다. 그 결과 표현의 자유는 위축되고 민주주의는 후퇴한다.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에 차별금지법안이 포함된 만큼 차별금지법안에 대한 최소한의 의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박근혜가 국정과제로 내세운 장애등급제 폐지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아 장애인권활동가들은 1천 일 넘게 서울 광화문역 지하에서 농성하고 있지 않은가. 2015년 8월 여성가족부는 대전시가 7월1일부터 시행한 ‘대전광역시 성평등 기본조례’에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 규정이 상위법인 ‘양성평등기본법’의 입법 취지를 벗어난다며 개정하라고 했다. 성소수자 여성은 대상이 아니라는 듯 차별을 조장했다. 성평등을 굳이 양성평등으로 명기하며 트랜스젠더나 인터섹스와 같은 다양한 성별 정체성을 부인했다.

이러한 소수자 차별은 정부의 보수 가치 속에 확산됐고 혐오세력의 활동은 어떤 사회적 제재도 받지 않았다. 이를 보고 사회적 학습을 한 일부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낮은, 더 힘없는 사람을 혐오하는 일로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낳은 불안감을 해소했다. 혐오가 확대돼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여성 등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은 축소됐다.

세월호, 탐욕의 반생명·반노동 정치

온 국민이 학살 장면을 지켜봐야 했던 세월호 참사는 총체적인 인권침해이자 박근혜가 물러나야 할 중요한 이유다. 헌법에는 재난 상황에 처한 사람을 구조해야 할 의무가 국가에 있다고 했으나, 국가는 단 한 명도 구하지 않았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는 박탈됐다. 헌정 유린은 이미 2014년 4월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퇴선 명령을 하고 구조 활동을 했으면 10분 만에 모두 살아났을 상황에서 왜 그러지 않았는지.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 속에 2014년 11월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독립성 훼손과 예산 축소 등으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활동을 방해하던 정부는 급기야 2016년 특조위를 강제 종료했다. 이뿐만 아니라 참사 초기부터 ‘엄마부대’ 등을 앞세워 세월호 유족들에게 ‘놀러 가다 죽었는데 웬 단식이냐, 보상금을 노리냐’며 피해자들을 모욕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윤보다 안전’이라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커졌지만 정부는 여전히 규제 완화를 했다. 위험을 외주화하는 비정규직 확대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 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를 확산시킨 삼성의료원의 책임은 사과 한마디로 끝났다. 2014년 말부터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노동법 개악안을 끝까지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단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으로부터 돈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에서 드러나듯, 노동자가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반노동의 정치는 친재벌 정치의 다른 이름이다. 추락하고 끼이고 폭발로 죽음을 맞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산업재해 사망 소식은 연일 끊이지 않는다. 삼성과 LG 하청업체가 돈을 아낀다고 쓴 메탄올에 20대 젊은 노동자가 실명해도 재벌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이런 현실에서 국제인권기구의 권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 노조화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할 수 있었다. 유성기업과 갑을오토텍 등의 노조 탄압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실에서 사라진 헌법상 노동3권은 시민들의 생존을 위협했다.

사회 구성원의 생존을 위협해도 정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국가안보를 앞세운 전쟁정치 덕이다. ‘통일은 대박’이라던 정부는 4년 내내 대결적 남북관계와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로 일관했다.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한·일 위안부 합의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를 강행했다. 이에 질세라 극우 보수단체가 북한에 풍선을 날리며 긴장을 고조시켰고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하며 주거니 받거니 함께 평화를 삭제했다. 그 덕에 전 국민을 감시하고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테러방지법이 제정될 수 있었다.

‘전쟁정치’로 위협당한 평화권

이제 반민주의 아이콘이 된 박근혜 정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인권을 침해한 자들을 처벌해야 비슷한 인권침해의 발생을 막을 수 있기에 국제 인권사회는 ‘불처벌 근절’이라는 인권원칙을 강조했다. 박근혜가 퇴진하더라도 강신명, 김기춘처럼 국가폭력을 저지른 사람들을 처벌하고 인적 청산을 해야 하는 이유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반인권 정치가 가능할 수 있게 만든 혐오에 놀아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자성하고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혐오세력의 눈치를 보며 미뤄온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세월호 참사 같은 중대 재난을 일으킨 기업과 고위 공무원을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할 수 있다. 날이 궂든 맑든 광장에서 촛불을 높이 든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평등과 자유, 생명과 평화라는 인권의 가치를 높이 든 정치이지, 당명만 바뀐 정권 교체가 아니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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