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길 위에 섰다. 체크남방, 면바지, 밀짚모자, 샌들의 편안한 차림으로 전국의 길을 누빈다. 잠은 마을회관이나 절에서 신세를 진다. 발길 닿는 곳이 다음 행선지다. “낮은 자세로 민심을 듣고 야단맞을 것은 맞기 위해서”라고 했다. 김무성(65) 전 새누리당 대표는 이번 여정을 ‘겸허한 경청’ 배낭여행이라 불렀다.
7월31일 서울을 떠난 김 전 대표는 8월19일 현재까지 호남·영남·충청을 종횡무진 다니며 하루에 3~4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도 그는 열심이다. 엿장수에게서 엿가위 쓰는 법을 배우고 손톱에 봉숭아 꽃물도 들였다. 논에선 콤바인을 몰고 송아지에게 우유도 먹였다. 일과가 끝난 밤에는 마을회관에서 직접 손빨래도 한다. 8·9 새누리당 전당대회 참석차 8월8일 서울에 잠깐 들렀다가 이튿날 다시 전남으로 떠났을 정도로 열성적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너무 늦게 깨진 ‘30시간의 법칙’</font></font>
그러나 지금까지 그의 여행지나 발언을 보면,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경청’ 여행이라기보다 국민을 향한 ‘메시지’ 여행에 가깝다. 메시지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일단, 자신은 박근혜 대통령과 다르다는 것이다. 작정한 듯이 그는 박 대통령의 대척점에 섰다. 8월1일 출발지인 전남 진도 팽목항에선 “(세월호 참사는) 다시는 이 땅에 없어야 할 비극이자 아픔을 우리 국민 모두가 똑같이 느끼고 계신데, 이게 왜 국론 분열과 정쟁의 원인이 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며 세월호를 외면하는 박 대통령을 겨냥했다. 8월10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남 신안 하의도 생가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오랜 독재정권하에서 고통받는 국민에게 민주주의를 찾아주셨다”며 ‘박정희 독재’를 부각했다.
또한 “은 가사도 노래도 좋다”(8월3일 광주)며 5·18민주화운동 기념곡 지정을 촉구했고, “장관 한 사람이 대통령한테 등 보이면 안 된다 해서 뒷걸음질로 나오다가 카펫에 걸려 넘어진 적도 있다. 이건 뭐 코미디”(8월11일 전남 영광)라며 제왕적 대통령제 완화를 위한 개헌도 주장했다.
하나같이 박 대통령의 신경을 거스를 말들이다. “모욕은 오늘까지만 참겠다”며 큰소리를 쳤다가도 박 대통령이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면 30시간 안에 꼬리를 내리는 ‘30시간의 법칙’을 줄곧 지켰던 당대표 시절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김 전 대표의 정치적 뿌리만 놓고 보면 국민·야당과의 소통과 타협, 5·18민주화운동 추모, 제왕적 대통령제 개헌은 그와 맞닿아 있는 말들이긴 하다. 사업가이자 정치가인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의 아들로 기업가의 길을 걷던 그는, 1983년 당시 야당 지도자 YS(김영삼)를 찾아가 정치에 발을 디뎠다. 이듬해에는 YS와 DJ(김대중)가 전두환 신군부에 대응하려고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에 참여했다. 지금의 ‘무대’(무성 대장)라는 별명도 민추협 활동 당시 후배들이 붙여줬다고 한다. 그는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어떻게 군인이 시민을 죽일 수 있을까, 이건 옳지 못하다는 분노가 치밀어 5공 정권을 그냥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민주화의 열망으로 정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박 대통령과 다른 듯 닮은 김무성 </font></font>실제 그가 정면 돌파, 대화와 타협, 동지적 관계 등 상도동계의 정치 스타일을 어느 정도 물려받았다는 당내 평가도 있다. 한 비박계 의원은 지난해 기자에게 “김 대표의 장점은 권위주의적이지 않고, 당면한 문제를 큰 갈등 없이 풀어낸다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러한 김 전 대표의 정치 스타일과 원칙, 권위, 상하관계를 중시하는 박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은 다르다.
2005년부터 ‘원조 친박’의 핵심이던 그가 박 대통령과 멀어진 원인이 둘의 정치적 스타일 차이라는 말도 있다. 그가 박 대통령으로부터 내쳐진 원인으로 꼽히는 2007년 박 대통령에게 서울 삼성동 자택 처분 권유, 2009년 세종시 수정안 찬성 표결, 2010년 친이계 지원으로 원내대표 당선 등의 사건이 현실론·타협론을 앞세우는 김 전 대표와 원칙론을 강조하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 차이에서 공통적으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에 김 전 대표는 측근들에게 종종 “박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서운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물론 김 전 대표가 “집권여당 대표일 때는 참았지만 앞으로는 나라를 위해 할 말은 하겠다”며 이제 와서 평소 생각을 쏟아낸다 하더라도,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는 대통령에 가장 가까운 권력을 잡았던 집권여당 당대표 임기 2년 동안 세월호 참사, 노동시장 개편, 유승민 전 원내대표 축출, 청와대·친박이 주도한 공천 개입 등 숱한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뜻에 철저히 따라왔다. 상도동계의 정치적 유산이든, 개인의 정치 스타일이든 간에, 자신의 정치를 펼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공천 내홍 당시 상도동계 출신 인사는 기자에게 “꿈이 있어서 그런지 김무성이 옛날의 김무성이 아니다. 더 이상 기대하는 게 없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 전 대표가 박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 하기엔 닮은 점도 많다. 김 전 대표도 박 대통령 못지않게 ‘좌파진보-우파보수’의 이념 대결 프레임을 적극 활용한다. ‘종북’ ‘좌파’라는 단어를 새누리당에서 누구보다 자주 입에 올리는 탓에 ‘꼴보수’ ‘극우’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지난 4·13 총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19대 총선 때 통합진보당과 연대해 국회에 종북 세력 10명 이상을 잠입하게 만든 당”이라고 색깔론을 덧씌웠다. “동성애를 찬성하는 후보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느냐”라며 동성애 혐오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중등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국에선 오히려 박 대통령을 앞서갔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사학자들은 90%가 좌파”라며 국정화 흐름을 주도했다. 2013년 일찌감치 그는 ‘근현대 역사 교실’이라는 새누리당 의원모임을 만들어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선포했을 정도로 ‘역사 개조’에 의욕적이었다. 국정화 정국 때 범친박의 한 의원은 “국민들 반발을 우려해 의원들도 굳이 국정화를 해야 하냐는 분위기이지만, 김 대표가 개인적 사정 때문인지 저렇게 치고 나가니 말리긴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개인적 사정’은 ‘아버지 콤플렉스’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의 부친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은 일제 때 ‘조선의 부모들이 천황 폐하를 위해 자식의 목숨을 바칠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하는 등( 8월1일치) 친일 행적 논란에 휩싸인 인물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세월호 가족, 청년, 노동자에 싸한 ‘민생’</font></font>김 전 대표의 두 번째 메시지는, 민생 해결의 적임자는 자신이라는 것이다. 일정 대부분도 민생 현장 방문으로 채워졌다. 그는 고추·포도·파프리카·사과·축산 농가에서 일손을 돕고 염전에서 비지땀도 흘렸다. 심각한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남 거제의 조선소 협력업체들도 만났다. 그들을 만나 김 대표는 “농사일이 정말 힘들다” “기업인들 웃음이 어두워 마음이 무겁다”며 걱정하고 위로했다.
민생 최우선은 그의 정치철학이기도 하다. 그는 당대표 시절 “정치의 본질은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며 전통시장과 가뭄·수해 현장 등을 부지런히 다녔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오히려 그는 민생 문제의 핵심인 노동자, 청년 등 경제적 약자에겐 무관심했다. 2014년 12월 청년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르바이트생의 부당한 처우 문제에 대해 “인생의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지, 방법이 없다”고 말해 구설에 올랐다. 특히 청와대의 주문에 따라 노동시장 개편에 앞장섰을 때는 “쇠파이프 휘두르는 강성노조의 불법파업만 없었다면 우리는 (국민소득) 3만불을 넘어갔다”며 노조에 대한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냈다. 결국 김 전 대표는 “강경노조가 제 밥그릇 불리기에만 몰두해 건실한 회사(콜트악기)가 문을 닫았다”라는 당시 허위·왜곡 발언으로, 8월 말 콜트악기 해고 노동자에 공개 사과까지 하게 됐다. 법원의 강제조정 결정에 의한 사과다.
경제적 약자를 향한 그의 냉담하고 폭력적인 발언은 유복한 성장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부친 김용주는 일본인들이 두고 떠난 적산 전남방직을 전쟁 중에 불하받아 부자가 됐다. 돈이 많은 아버지가 YS에 당사를 주는 등 도움을 준 덕분에 김 전 대표가 YS 문하생으로 비교적 손쉽게 정치를 시작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93년 YS가 대통령이 된 뒤 그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내무부 차관을 하며 승승장구했다. 지난해 한 초선 의원은 기자에게 “김 대표도 금수저인데 어떻게 흙수저의 마음을 알겠느냐”고 했다.
오히려 그는 국민의 생명·안전과 밀접한 민생 문제마저 이념 정쟁으로 끌고 가기 일쑤였다. 일방적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결정에 화가 난 경북 성주 주민들을 “괴담 때문에 분개하고 계시는 것”이라 폄하하고, 사드 문제로 중국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6명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정치인으로서 가장 못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뒤늦게 세월호 참사를 “이 시대 최고의 슬픔”이라고 말하면서도 진실을 규명하는 특별조사위원회 연장 요구에는 입을 꾹 닫고 있다.
이번 전국 경청 투어를 시작한 그의 진정성은 애매하나, 목적은 뚜렷하다. 대권 후보로서의 존재감을 다시 살리려는 나름의 ‘승부수’다. 임기 말로 향하는 박 대통령을 깎아내리면서 민생·경제를 챙기는 자신의 이미지를 쌓으려는 ‘올드한’ 전략이다. “짝퉁 배낭여행”(이장우 의원), “대선 주자 부각시키려 대통령과 대립각 세운다”(이주영 의원) 등 친박의 비판이 나올 만한 상황이다.
그러나 김 전 대표로서는 완전히 잊히기 전에 무엇이든 해야 하는 처지다. 올 초만 해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제외하고는 여야 통틀어 차기 대권 선호도 2~3위, 여권 1위를 유지하던 그의 지지율은 8월 들어 여야 7위로 미끄러졌고, 여권에서도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 밀리고 있다(한국갤럽 여론조사). 4·13 총선 공천 과정에서 친박·청와대와의 어정쩡한 힘겨루기와 황당한 옥새 파동으로 총선 참패를 자초한 영향이 컸다. 인기를 잃은 전직 당대표를 향해 당에선 “김무성은 대권 후보로 나와선 안 된다” “정계 은퇴를 해야 한다”는 험악한 말도 나온다.
다급해진 그는 8·9 전당대회에서 비박 단일후보인 주호영 의원을 노골적으로 밀면서 정치적 재기를 노렸으나, 결국 박 대통령의 복심인 이정현 의원이 당대표가 되면서 더욱 궁지에 몰렸다. 당을 장악한 친박의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유력한 대권 후보 반기문 사무총장과 겨뤄보려면 ‘당 밖’에서 반전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없는 처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이미 대권 페이스 잃었다”</font></font>김 전 대표는 계속 밖으로 돌 예정이다. 8월22일부터 사흘간 중국을 방문해 한반도 통일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 참석하는 등 ‘통일 행보’에도 나선다. 찬 바람이 부는 9~10월까지는 대여섯 차례 전국을 다닌 뒤 대권 도전에 대한 생각을 공식적으로 밝힐 예정이다. 새누리당 당직자는 그의 ‘대권 여행’ 결말을 어둡게 전망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김 전 대표가 비박 지지율을 10%포인트 까먹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에서는 인기가 없고 여론으로 나타나는 지지율도 바닥이다. 초조한 마음에 지푸라기 잡는 마음으로 민생 투어를 다니는데 그는 이미 (대권) 페이스를 잃었다.” 길 위에서 그는 실낱같은 대권의 희망을 길어올릴 수 있을까.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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