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제20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첫날(5월30일)부터 발의한 법안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국가 사이버안보에 관한 법률안’이다. ‘사이버테러방지법’이라 불리던 법안이다. 소속 의원 전체가 공동 발의했다.
이 법은 사이버 영역에서 국가정보원(국정원)에 상당한 권한을 안겨준다. 국정원이 국가 차원의 사이버안보 정책·제도를 수립·시행하는 ‘국가사이버안보센터’를 원장 직속으로 둘 수 있게 하는 법안이다. 이 센터는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기업의 전산망 침해 사고도 조사할 수 있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민간 영역 전산망과 사이버 정보에 쉽게 접근하는 등 국정원의 권한이 커진다며 이 법을 반대해왔다.
20대 국회 첫날, 사이버테러방지법 대표 발의
제19대 국회가 끝나가던 지난 2월 말, 정치권을 뒤흔든 법안이 있었다. 새누리당이 발의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이다. 테러를 막자는 데엔 여야 이견이 없다. 하지만 야당은 독소조항이 심각하다며 이 법을 반대했다. 국정원이 ‘테러위험 인물’로 지목하면 영장 없이 금융정보나 개인의 민감한 정보 등을 볼 수 있게 한 조항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야당은 이 법을 막으려고 장시간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맞섰다. 이 법은 19대 국회 당시 다수당이던 새누리당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다.
19대 국회를 흔든 법안(테러방지법)과 20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제출된 법안(사이버테러방지법)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 국정원의 권한만 키운다는 비판이 제기된 법안들이다. 그리고 두 법안의 대표 발의자는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이다. 법안은 국회의원 10명 이상이 공동으로 발의해야 하며, 해당 법안을 주도한 의원이 대표 발의자가 된다. 이 의원은 “사이버테러방지법도 하루빨리 입법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국정원이 강하게 원했던 법안들을 대표 발의한 의원이 국정원을 감시하는 정보위원회 위원장이 됐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
국회엔 18개 상임위원회(상설특별위원회 포함)가 있다. 의원들은 각 상임위에 소속돼 상임위 소관 현안과 법안을 논의하고 관련 기관을 감시한다. 정보위원회는 ‘국가 정보 업무에 대한 효율적 통제’가 주목적인 상임위다. 여야는 상임위원장 몫을 나누게 되는데, 대통령 직속인 국정원을 담당하는 정보위원장은 보통 여당 몫이다.
그런데 정치권에서 국회에 파견된 ‘국정원 대변인’이란 말까지 들었던 이 의원이 20대 국회 초반 1년간 정보위 수장까지 맡게 됐다.
‘국정원 대변인’처럼 국정원 엄호3선 의원인 그는 평소 지방분권, 지역발전에 관심을 보여왔다. 국회에서 영호남 발전과 지역 갈등 해소를 위한 동서화합 포럼이나, 지방살리기 포럼의 회장을 맡았다. 지역 문제와 관련해선 야당의 호남 의원들과도 적극 교류했다. 그런데 국정원 문제에선 야당의 의사를 거의 수용하지 않는 ‘국정원 옹호론자’였다.
그는 초선 의원이던 2008년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국가안보와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정책’으로 확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은 “야당과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시민단체를 합법적으로 정치 사찰하고 탄압하겠다는 것이다”라고 반발했다. 야당은 이 법을 이명박 정부의 ‘MB 악법’ 가운데 하나로 정하고 통과를 막았다.
이 의원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2012년)도 적극 방어했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이 확인되고 있던 2013년 4월 당시 원내대변인이었던 그는 “국정원의 정치 개입은 실제 죄가 있는지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 (현재로선) 정치 개입을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 개입 현장을 적발하기 위해 국정원 직원이 있는 오피스텔로 찾아갔던 야당 의원들에 대해선 “명백한 인권침해다. 인권유린에 대해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 정치 개입 사건의 본질을 희석시키는 주장이다.
국정원까지 가세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에도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국정원은 대선 개입 사건으로 여론이 악화되던 2013년 6월, 노무현 정부 시절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2007년)의 대화록을 공개하며 국면 전환에 나섰다. 앞서 새누리당은 2012년 대선 기간에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NLL을 양보(포기)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의 대화록 공개는 새누리당의 정치 공세를 물증적으로 뒷받침하는 자료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야 의원들이 국정원 보관 대화록이 아닌 진짜 대화록 원본을 나중에 확인한 결과,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판명됐다.
하지만 이 의원은 2012년 대선 당시 “(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후보도 영토주권 포기에 깊숙이 개입돼 있다”고 거들었다. 2013년 6월엔 국회 본회의에서 5분 발언을 신청해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문맥을 보면 유치원생들도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이해할 것이다”라며 ‘NLL 포기 논란 공세’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국정원의 간첩 증거 조작 사건 때도 그는 국정원을 엄호했다. 박 대통령이 2014년 “유감”을 표명하고 당시 남재준 국정원장이 사과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의원은 라디오 방송에서 “간첩을 조작한 게 아니고 작은 서류 하나(출입경기록 등)가 조작된 것이다”라고 다른 인식을 보였다. 그는 “(간첩 혐의 증거가) 100개가 있다면 그중 하나가 조작됐다는 것인데, 이것 때문에 간첩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킹 사건 때도지난해 국정원 해킹 의혹 때도 그는 국정원을 방어했다. 야당이 의혹 해소 차원에서 국정원에 자료를 요청하면 그가 직접 나서 “그러면 국정원이 문을 닫아야 한다”고 반박하는 식이었다. 당시 국정원의 도·감청 해킹 프로그램 운영 실무자가 돌연 사망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감찰 압박으로 인한 죽음” 등 여러 의혹에 대해서도 “(감찰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임씨한테 물어본 것이지 임씨를 압박한 게 아니다”라는 등 국정원과 소통하는 가운데 나올 법한 발언을 이어갔다.
당시 국정원이 언론과 정치권에 맞대응하는 ‘직원 일동’ 명의의 성명서를 내며 공개적으로 정치 행위를 한 것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 성명서는 국가정보기관 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의원은 “오죽 답답하면 그랬겠느냐”며 국정원을 두둔했다.
이런 태도는 그가 국정원 출신이기 때문에 나온 것이란 해석이 많다. 5년간 수학 교사를 했던 그는 신문에서 ‘별정직 7급, 특수직’이란 공고를 보고 지원해 1985년 옛 안기부에 들어갔다. 군사정권(전두환 정권)에 맞선 민주화 투쟁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국정원에서 그는 정치 등 국내 정보 수집·분석 일을 주로 했다. 국회와 국정원을 업무적으로 연결하는 국회 파견관을 하기도 했다. 그는 2005년 중간간부급(3급)을 끝으로 퇴사했다. 대구·서울 등에서 국내 정치 정보를 수집하던 그는 국정원 출신 직원으론 이례적으로 경북 정무부지사로 옮겨갔다.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구 달서갑에 출마했다가 공천에서 떨어졌으나 당이 바로 경북 김천(그의 현 지역구)으로 전략공천해 당선됐다. 초선 시절부터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를 맡았고, 이제 정보위원장까지 오르게 됐다. 1994년 국회법 개정으로 정보위가 신설된 뒤 국정원 출신 정보위원장은 처음이다.
그는 “국정원을 잘 아는 사람이 (국정원이 잘하도록) 지도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국정원에서 오래 근무한 한 인사는 다른 얘기를 한다. “국정원 임무가 다양한데다, 다른 부서 업무를 잘 알 수 없는 조직의 특성상 국내 정보, 국내 정치만 담당한 이 의원이 국정원을 제대로 안다고 말하는 것은 과한 얘기다.”
야당은 테러방지법에 손댈 수 있을까문제는 정보위원장이 된 그의 성향이다. 국정원 출신 다른 인사는 “적어도 그를 국정원 개혁파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국정원 강화론자’인 그가 국정원에 대한 효율적 통제라는 정보위 본연의 기능을 살리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다. 그는 2013년 12월 국정원 제도 개선 특위 활동 당시 국정원 직원들의 기관 출입을 막아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정당·언론사·국회 등에) 전면적으로 출입을 못하면 정보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정보위는 국정원 관련 법안 처리, 국정원 예·결산 심의, 국정원장 인사청문회, 국정감사·현안보고를 통한 국정원 감시 활동을 한다. 하지만 이런 권한은 국정원의 자료 제출 거부로 사실상 허울뿐일 때가 많다. 따라서 국정원을 바로 세우려는 정보위원장의 의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이 의원은 야당이 개정 또는 폐기를 고려하는 테러방지법에 조금도 손댈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정원의 권한을 더 늘리는 ‘국가 사이버안보에 관한 법률안’도 대표 발의한 상태다.
테러방지법에 손대려면 정보위를 다시 거쳐야 한다. 하지만 그 길목에 ‘국정원 출신 이철우 위원장’이 서 있다. 그는 “정보위 여야 구성비가 새누리당 5명, 더민주 5명, 국민의당 2명으로 여당 5명, 야당 7명이다. 정보위원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19대 국회에선 정보위원 여야 구성이 6 대 6으로 같았다.
야당도 20대 국회의 ‘여소야대 구조’에 기대를 건다. 더민주에선 국정원 인사처장까지 지낸 김병기 의원이 정보위에 합류했다. 정보위 소속인 더민주의 한 의원은 “야당이 국정원 개혁을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 국정원의 수사권 폐지나 국정원 조직 개편 등 정권을 잡으면 가능한 일들을 구분해 실질적 성과를 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정보위원장이 (정보위 개최를 거부하거나) 드러눕지 않도록 야당끼리 잘 공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 캠페인 기간 중 정기구독 신청하신 분들을 위해 한겨레21 기자들의 1:1 자소서 첨삭 외 다양한 혜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영상] “내란 세력 선동 맞서 민주주의 지키자”…20만 시민 다시 광장에
‘내란 옹호’ 영 김 미 하원의원에 “전광훈 목사와 관계 밝혀라”
경호처, ‘김건희 라인’ 지휘부로 체포 저지 나설 듯…“사병이냐” 내부 불만
청소년들도 국힘 해체 시위 “백골단 사태에 나치 친위대 떠올라”
“제주항공 사고기 블랙박스, 충돌 4분 전부터 기록 저장 안돼”
‘적반하장’ 권성동 “한남동서 유혈 충돌하면 민주당 책임”
연봉 지키려는 류희림, 직원과 대치…경찰 불러 4시간만에 ‘탈출’
김민전에 “잠자는 백골공주” 비판 확산…본회의장서 또 쿨쿨
우리는 ‘멍청함’과 싸워야 한다 [왜냐면]
윤석열 지지자들 “좌파에 다 넘어가” “반국가세력 역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