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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진실’은 현재진행형

사고 6년, ‘과학논쟁’의 성격·구조 다룬 논문 나와… 진실 규명 목소리 여전, 항소심 재판 주목
등록 2016-03-24 17:42 수정 2020-05-03 04:28
천안함 함미의 절단면. 사진공동취재단

천안함 함미의 절단면. 사진공동취재단

2010년 3월26일 밤, 천안함이 침몰했다. 생때같은 청년 46명이 백령도 앞바다에 수장됐다. 이 가운데 6명은 지금도 생사를 모른다. 정부는 이를 ‘천안함 피격 사건’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6년이 흘렀다.

지난 2월 (서울대 대학원)라는 제목의 이학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됐다. 천안함 사건이 남긴 의혹을 종합해 인문학적 성찰 수준으로 연구를 진행한 오철우 기자의 역작이다.

오래된 질문 “왜 침몰했나”

논문은 증거를 둘러싼 논쟁을 중심으로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과정에서의 민주주의 문제로 소급해 들어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 또 다른 진실이 움튼다. ‘북한의 천안함 피격’이라는 전제를 구성하기 위한 증거 대부분이 모호성의 영역에 놓여 있고, 일부는 탄핵됐으며, 또 일부는 여전히 정부의 (합리적) 설명을 들을 수 없다.

논문은 민군 합조단이 제시한 증거와 그에 대한 논쟁을 선체 시뮬레이션, 1번 어뢰, 흡착물질, 지진파 등의 순서로 짚었다. 이 글에서는 ‘어뢰 발사→폭발, 폭발로 인한 버블 생성→버블의 선체 충격, 선체 절단(시뮬레이션)→흡착물질 생성’ 등으로 순서를 재구성한다. 그리고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낸다. 천안함은 왜 침몰했는가.

① 논쟁의 중심  ‘1번 어뢰’는 북한산인가

2010년 9월 발간된 국방부의 민군 합조단 합동조사 결과 보고서에 담긴 결정적 증거물은 어뢰추진체 ‘1번 어뢰’다. 논쟁도 가장 많았다. 1번 어뢰를 둘러싼 논쟁은 크게 △1번 글씨 연소 문제 △가리비 논란 △부식 △설계도면 등이다.

논란의 시작은 어뢰추진체의 ‘1번’ 글씨다. 유성매직으로 쓰인 이 글씨는 어뢰가 ‘북한산’임을 입증하는 증거였고, 합리적 의혹을 막는 거대한 벽이 됐다.

‘천안함 사고’ 논쟁의 중심에 있는 ‘1번 어뢰’ 글씨. 한겨레 신소영 기자

‘천안함 사고’ 논쟁의 중심에 있는 ‘1번 어뢰’ 글씨. 한겨레 신소영 기자

어뢰가 일반에 공개되고 침몰 원인을 둘러싼 논의의 열기가 급격히 식어갈 그해 6월, 재미 과학자 이승헌 미국 버지니아대학 교수와 서재정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교수가 나섰다. 어뢰 폭발이라는 고열의 환경에서 어뢰 표면의 페인트가 연소돼 없어진 것처럼 1번 글씨도 남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송태호 카이스트 교수의 반박이 이어졌다. 국방부가 송 교수의 실험과 발표를 도왔다. 양쪽의 논쟁에 열역학 공식이 등장했고, 가역·비가역이라는 전문 영역의 용어가 등장했다. 수개월을 끈 논쟁은 결국 결론을 맺지 못했다. 국방부의 적극적 협조 없이 과거에 단 한 번 일어났던 사건을 되도록 현실에 가깝게 구성해 이론에 대입하는 과정이 양쪽 모두에게 한계로 작용한 것이다.

지금껏 결론이 나지 않은 것은 어뢰 구멍 안쪽에서 발견된 가리비 논쟁도 마찬가지다. 가리비에 붙어 있는 백색 물질을 수중 폭발 뒤 잔재라고 하면, 시간순으로 볼 때 조개껍질이 먼저 구멍에 들어간 다음 폭발했다는 것이 된다. 하지만 그런 가정에서라면 가리비의 존재 자체가 오류다. 이에 국방부는 가리비에 붙어 있던 백색 물질 성분의 분석 결과를 공개해 문제를 불식하겠다고 했지만, 그 결과는 지금도 공개하고 있지 않다.

추진체 부식은 ‘폭발 뒤 한 달여 만에 발견된 어뢰추진체라고 하기에는 부식 정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을 무시한 채 육안 검사만으로 종결했다. 부식 정도를 정밀 확인하기 위한 절단이 필요했음에도 “증거물을 절단해서 조사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윤덕용 합조단 단장)는 입장이 사실 확인 노력을 막았다.

가리비 분석 결과, 지금도 비공개

북한산 어뢰 CHT-02D임을 입증할 또 하나의 결정적 증거인 어뢰 설계도면 문제는 아예 국방부가 의혹을 자초했다. 국방부가 언론에 다른 북한 어뢰인 PT-97W의 도면을 1번 어뢰인 CHT-02D인 것처럼 공개해 물의를 빚으면서 의혹이 시작됐다.

합조단 보고서에 실린 설계도면 자료가 왜곡된 채 실린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다. 설계도면은 그 자체로 신뢰를 잃은 상태가 됐다. 지난해 11월 천안함 명예훼손 사건 증인신문에서 다시 한번 설계도면과 법원 실측 수치의 차이가 드러나기도 했다. 많게는 10cm 넘는 차이를 두고 윤덕용 단장은 “실제 생산 과정에서 다르게 만들어질 수 있다. 따라서 설계도면 수치의 일치보다 구조적 형상의 특징을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윤 단장의 말이 진실일까.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2010년 정작 자신이 단장으로 참가해 만든 합조단 보고서에는 합조단 관계자가 ‘손댄’ 설계도면 자료가 버젓이 실려 있다는 사실이다.

② 허술한 논증  폭발과 버블 주기

폭발의 결과에 대한 논란을 보면, 정부의 논증이 얼마나 허술했고, 그렇게 쌓아올린 ‘북한 피격’이라는 성채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알 수 있다.

1번 어뢰의 결과로 추정되는 버블 주기는 정부의 무리한 추론이 뒤늦게 확인된 분야다. 어뢰(기뢰 포함)는 직접 타격이 아닌 폭발 뒤 버블 제트 생성으로 함정에 충격을 주기 때문에, 폭발로 인한 버블 생성의 주기와 위치 등은 폭발 원인을 입증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정부의 공식 입장은 버블 주기가 1.1초다. 그런데 이는 이희일 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장이 주장한 공중음파를 기준으로 했다. 뒤늦게 알려진 사실은 학계에서 버블 주기를 공중음파로 도출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다.

지진파 전문가인 김소구 한국지진연구소 소장(전 한양대 교수)과 이스라엘 지구물리연구소(GII) 예핌 기터만 박사의 연구 결과, (공중음파가 아닌) 지진파를 기준으로 할 때 버블 주기는 0.990초이며 이에 따른 폭발 규모는 TNT 136kg으로 나온다는 계산과 함께 수심이 8m였다는 분석이 등장했다.

이는 정부에서 발표한 폭약량 250kg의 진동시간 1.1초와 차이를 보인다. 또한 1970년대 중반 박정희 정부 시절에 설치돼 유실된 것으로 알려진 우리 군의 육상조정기뢰와 근접한 수치다. 다만 이에 대한 본격적인 정부 차원의 검증이나 해명은 없었다.

③ 수중 폭발과 흡착물질  “‘국내 소비용’ 증거”

비폭발설을 지지하는 쪽에서 좌초의 증거로 제시된 천안함을 추진하는 프로펠러의 휨 현상 또한 해명되지 않았다. 실제로 민군 합조단 조사위원이던 신상철(57)씨는 “2010년 4월30일 평택 2함대에서 열린 합조단 회의에서 미국 조사위원이 프로펠러의 휨 형상이 함미가 침몰하면서 해저 바닥에 닿아 생긴 것이라는 해석을 제시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보고서는 ‘급정지에 의한 회전 관성력’으로 결론지었다.

합조단의 연구에 함께한 바 있는 노인식 충남대 교수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존 관성력 논리가 아닌 프로펠러의 축밀림 현상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조차 S자형으로 이중으로 휘어진 2개의 프로펠러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해 이 부분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2010년 여러 방송매체는 천안함 사건이 어뢰의 수중 폭발임을 강조하는 시뮬레이션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정작 합조단의 시뮬레이션에서는 함미, 함수, 가스터빈실로 동강 나고 용골이 절단된 파손 상태를 구현하지 못했다. 시뮬레이션은 실패했다. 하지만 실패는 알려지지 않았고, 불완전한 자료를 토대로 어뢰 피격을 입증하기 위한 2차 자료가 생산됐다. 미국 조사팀과 합조단은 불완전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파손 형상을 초래했을 폭발량과 폭발 수심의 조건을 찾아낸 것이다.

수중 폭발 시뮬레이션도 불완전

이른바 흡착물질은 과학 분야에서 가장 뜨겁게 논쟁이 오간 분야다. 합조단은 폭발 환경을 조성해 벌인 실험을 통해 확보한 물질이 ‘알루미늄산화물’이었고, 이는 천안함의 선체와 어뢰 등에서 채취한 (흡착)물질과 일치한다고 보고서에 기록했다.

하지만 국회의원실에 제공된 천안함 흡착물질을 넘겨받아 양판석 캐나다 매니토바대학 지질과학과 분석실장과 정기영 안동대 교수가 각각 분석한 결과에선 ‘알루미늄산화물’이 아니라 ‘알루미늄수산화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다른 사례와 달리 적극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천안함 흡착물질은) 알루미늄 함유 어뢰가 수중에서 폭발할 때 고온, 고압과 순간적인 급랭의 환경에서 만들어진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라며 적극적으로 재반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버블 주기 논란과 마찬가지로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선행 연구나 보고 사례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유례없는 사건이니 사례를 찾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또한 이승헌 교수 등이 수조 폭발 실험의 적절성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으나 재실험도 이뤄지지 않았다.

합조단의 흡착물질 분석의 신뢰도는 미 해군 자료에 의해서도 타격을 받았다. 재미 과학자 안수명 박사가 미 해군에 정보공개를 통해 얻은 자료에는, 2010년 6월12일 미 해군 관계자가 에클스 미국 조사단장에게 보낸 서신에서 한국 조사팀의 흡착물질 분석에 대한 불신을 표현한 내용이 담겨 있다.

미 해군 관계자는 흡착물질에 대해 “소규모 수중 폭발 실험에서 흡착물질을 포집하는 용도로 4장짜리 알루미늄의 2개 층만이 사용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그것은 침몰한 물체의 여러 물질에서 발견된 비결정질 알루미늄산화물의 출처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아무런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이 미 해군 관계자는 “만일 (침몰 원인이 수중 폭발이 아닌 경우의 선박에서) 그것(비결정질 알루미늄산화물)이 존재한다면 그것과 폭약의 연결고리 가능성은 사라진다”며 “이처럼 검증되지 않은 증거의 사용은 국제 무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국내 소비 용도에 더 가깝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합조단 보고서의 가장 큰 축을 담당한 미 해군이 흡착물질 증거에 대해 “국내 소비용”이라고 지적했다는 사실이다.

④ 러시아 보고서  유실된 기뢰가 주범?

러시아 조사단의 문서가 2010년 7월 일부 공개( 2010년 7월27일치 1면)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기뢰 폭발 가능성을 직접 언급했기 때문이다.

2010년 5월31일부터 6월7일까지 천안함 침몰 사고 조사단을 파견했던 러시아는 ‘한국 해군 천안함의 침몰 원인에 대한 러시아 해군 전문가 그룹의 검토 결과 자료’라는 보고서를 통해 “외부의 비접촉 수중 폭발에 의한 것이지만 어뢰가 아니라 기뢰 폭발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는 당시 북한 어뢰 피격 가능성을 기정사실화하는 국방부의 논리에 배치되는 것으로, 우리 군이 1970년대 중반에 설치했다가 유실된 기뢰의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러시아 조사단은 결론적으로 사고 원인에 대해 “접촉에 의하지 않은 외부의 수중 폭발이라는 주장이 확인됐다”면서도 “함선이 해안과 인접한 수심 낮은 해역을 항해하다가 우연히 프로펠러가 그물에 감겼으며, 수심 깊은 해역으로 빠져나오는 동안에 함선 아랫부분이 수뢰(기뢰) 안테나를 건드려 기폭장치를 작동시켜 폭발이 일어났다”고 추정했다.

만약 러시아 조사단의 결과대로라면 프로펠러의 기형적인 변형과 버블 주기 및 그에 따른 폭발량 등에 대한 합조단의 오류가 해결되는 셈이다. 다만 보도된 보고서는 보고서의 전문이 아니라는 점에서 과학 분야의 본격적인 논쟁을 불러오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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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미대사 “북한 소행 아냐”

국방부 보고서는 이 문제에 대해 그물에 걸렸을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은 채 당시 해역의 빠른 유속, 깊은 수심, 사건 당일 천안함이 10회 이상 항해했어도 이상이 없었던 점, 기뢰 폭발 뒤 남게 되는 앵커가 남지 않은 점 등을 들어 기뢰 가능성을 배제했다.

러시아 보고서는 같은 해 8월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국대사가 에 기고한 글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당시 그레그 전 대사는 “러시아의 조사 결과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큰 정치적 타격을 주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당황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레그 전 대사는 한 달 뒤인 9월 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는 러시아 조사단이 보고 싶어 하는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고, 러시아 조사단이 제기한 의문에도 답변을 거부해 잠정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며 “한국 정부는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상세히 밝혀 모든 의문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는 북한이 버블 제트로 배를 단번에 침몰시킬 만큼의 고급 기술을 갖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레그 전 대사는 2015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여전히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이 아닌 좌초 후 기뢰 폭발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보고서와 그레그 전 대사의 주장에 대해 우리 정부는 공식적인 답변을 하고 있지 않다.

⑤ 진실은 어디에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

논문에 담긴 의혹들은 ‘천안함 좌초설’을 제기한 혐의로 기소된 신상철씨의 재판을 통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1심 재판은 5년6개월 동안 진행됐으며, 증인 57명이 재판에 참가했다. 1심에서 재판부는 “천안함은 북한 어뢰 폭발로 침몰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주요 증거들이 미궁에 빠지거나 탄핵된 상황에서 재판부의 판단이 정답이라고 확언하기는 여전히 힘들다. 신씨는 “유무죄를 밝혀내기보다 침몰 사고에 대한 진실 규명이 목적이기 때문에 항소심을 통해 새로운 법적 공방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논문 저자인 오철우 기자는 “논문의 결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실을 얘기하려는 목소리가 다양하게 표출됐고, 그에 대한 답은 아직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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