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사면’은 말 속에 이미 특혜 논란을 품고 있다. 대통령이 특정한 사람을 위해 특별히 형 집행을 면제(사면)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특별사면은 본질적으로 특혜 사면이란 뜻이다. 국회 동의를 얻는 일반사면과 달리 특별사면은 청와대와 사전 조율을 거친 법무부가 명단을 올리면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 재가를 받아 실시된다. 이 과정에서 법무부가 청와대에서 거론한 사면 대상자에 대해 ‘부적격 의견’을 내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형을 선고하는 사법권과 그 형을 없던 일로 만드는 대통령의 특별사면 권한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특별사면이 주로 대통령 측근, 비리 정치인, 기업 총수에게 면죄부를 주는 수단이었던 탓에 이 제도에 대한 국민의 감정이 좋은 편도 아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에게 법 집행이 ‘특별히’ 관대하다고 느끼는 한국 사회에선 더 그렇다.
‘성완종 리스트’로 위기에 몰린 새누리당이 참여정부 시절 성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 두 번이나 특별사면을 해준 것을 공략하는 것도 이런 정서를 포착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성씨가 한 정권에서 두 번씩이나 특별사면을 받은 것은 이례적이다”라고 말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의 1·2차 사면 당시의 내용과 절차를 들여다보면, 새누리당에 유리하기만 한 소재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성 전 회장의 1차 사면은 2005년 5월 석가탄신일에 이뤄졌다. 당시 이학수(삼성기업 구조조정본부장), 강유식(LG그룹 부회장), 김동진(현대자동차 부회장), 박찬법(아시아나항공 사장), 오남수(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본부 사장), 신동인(롯데쇼핑 사장), 성완종(경남기업 회장), 임승남(전 롯데건설 사장), 이청희(컨설팅업), 박문수(하이테크하우징 회장), 김영춘(서해종건 회장) 등 불법 정치자금 사건에 연루된 11명이 특별사면에 포함됐다. 그때 시민단체와 언론이 비판적으로 주목한 것은 성 전 회장이 아니라, 이학수씨 등 정치권에 불법 대선자금을 준 경제인들과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강금원(창신섬유 회장)씨에 대한 ‘특혜 사면’이었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340억원을 준 이학수씨, 100억원을 건넨 김동진씨, 10억여원을 준 박찬법씨 등이 사면 기회를 얻었다. 한나라당의 요청으로 차에 150억원을 실어 건네 한나라당에 ‘차떼기당’이란 오명을 안긴 강유식씨도 사면됐다. 2005년 5월 특별사면은 경제 활성화를 명목으로, “한나라당에 총 800억원이 넘는 불법 대선자금을 만들어준 경제인들의 죄를 털어주는 성격이 짙었다”는 게 이 사면에 관여한 이들의 설명이다.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에게 16억원의 정치자금을 줬다가 2004년 구속됐던 성 전 회장은 그런 경제인들의 틈에 끼어 사면 혜택을 받았다. 성 전 회장을 사면시켜달라는 김종필 총재의 요청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면 작업에 관여한 정부 인사는 “2005년 5월 사면 때 한나라당에 불법 대선자금을 준 이들이 대거 사면됐기 때문에 성씨의 1차 사면은 새누리당이 야당을 공격하는 데 오히려 불리한 소재다”라고 했다.
“MB 핵심 인사가 특별히 챙겼다”그래서 여당이 집중적으로 문제 삼는 것도 노무현 대통령 퇴임 직전인 2007년 12월31일 발표된 특별사면이다. 성 전 회장은 행담도 개발과 관련해 ‘주식회사 행담도개발’에 120억원을 무이자로 빌려줘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2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가, 그해 12월31일 특별사면을 받아냈다. 당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해외재산도피), 노 대통령의 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정치자금법 위반), 강신성일 전 한나라당 의원(뇌물수수), 이기택 한나라당 상임고문(뇌물수수) 등이 사면·복권됐다. 2007년 대선에서 이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쪽이 요청한 양윤재 전 서울시 부시장(뇌물수수)도 사면됐다. 참여정부 인사,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다음 권력인 이명박 당선인의 측근이 두루 혜택을 본 사면이었다.
새누리당은 법무부의 반대로 그해 12월28일 1차적으로 완료된 특별사면 명단에서 빠진 성 전 회장이 사면 공식 발표일인 12월31일에 다시 포함된 부분을 집중 공략한다. 참여정부를 향한 성 전 회장의 로비가 주효했다는 것이다. 당시 참여정부 인사들은 “만약 성 전 회장으로부터 부정한 로비를 받아 사면해줄 작정이었다면 처음부터 밀어붙이지, 티가 나게 12월31일에 성 회장 혼자만 다시 전체 명단에 추가해 사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면을 받으려고 성 전 회장이 백방으로 뛴 덕에 사면 대상자 초안에 들었다가 청와대와 조율하던 법무부의 반대로 빠지자, 다시 막판에 이명박 당선인 쪽에 부탁해 사면을 성사시켰을 것이란 설명이다.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과 새정치연합은 “이명박 당선인 쪽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성 전 회장의 사면을 요청한 뒤 사면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특별사면 하루 전날인 12월30일 성 전 회장을 자문위원으로 합류시킨 인수위원 명단을 발표했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이와 관련해 이명박 당선자 시절 핵심 측근이던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MB(이명박) 쪽에서 성 전 회장을 사면시켜달라고 (요청)하니까 해준 거 아니겠나. MB 핵심 인사가 성 전 회장의 사면을 특별히 챙겼다”고 말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이 성 전 회장 특별사면의 특혜 문제에 파고드는 것이 유리한 것만은 아니란 뜻이기도 하다. 다만 성 전 회장이 특별사면을 받는 과정에서 양쪽(노무현-이명박)의 연결고리가 누구였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성완종 리스트’의 진위를 가리는 국면에서 특별사면을 공방의 소재로 부각시키는 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있다. 두 번에 걸친 성 전 회장의 특별사면에 대한 사법권 침해를 비판할 수 있지만, 새누리당의 문제제기엔 “참여정부 쪽이 사면을 청탁한 성씨의 돈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심을 일으키는 공세의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집중 제기한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현시점에서 “금품 로비 증거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정치권이 정말 특별사면의 특혜 시비를 줄이려 한다면, 단기간의 공방을 넘어 향후 특별사면의 요건을 제한하는 제도 개선으로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1948년 제정된 사면법은 일제시대에 억울하게 수감된 이들을 대통령이 대거 사면해 “광복의 기쁨을 같이 누리게 하자”는 취지로 출발했지만, 이후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비리 정치인·기업인을 위해 활용됐다는 비판이 많았다. 현재 국회에는 ‘특별사면을 발표하기 1주일 전에 명단을 국회에 통보해 그 의견을 듣도록 하자’는 내용(박영선 새정치연합 의원 대표 발의) 등 특별사면을 제한하는 11건의 사면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지금 성 전 회장의 특별사면만 문제 삼는 것은 (새누리당의) 물타기이자 시선 돌리기”라고 전제한 뒤, “다만 비리 정치인, 비리 기업인과 언론사주에 대해 일반인과 달리 특혜를 주는 특별사면은 잘못된 것”이라며 사면 요건 강화를 강조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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