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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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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총리, 성완종이 조작한 민심”

‘성완종 리스트’와 이완구 총리 대응으로 갈가리 찢기고 이리저리 뒤집힌 충남 서산·태안 민심 르포
등록 2015-04-21 17:02 수정 2020-05-03 04:28

전남 진도 팽목항의 한 깃발. 1년 세월 바닷바람 짠내에 속절없이 젖어 펄럭이는 깃발은 갈피마다 찢기고 해져, 하나인데도 마치 수십 개 만장 같다. 바닷속 44m, 사람 아홉이 원귀도 되지 못한 채 젖어 있는 그 바다 곁, 깃발은 오늘도 제 몸을 갈가리 찢어 통곡하고 있다. 예사 깃발은 태풍이 제 뺨을 후려갈기고 지나가도 그처럼 넝마가 되지는 않는다. 팽목항 깃발은 바람이 불 때마다 진저리 치듯 떨고 있다. 바다에서 바람은 그치지 않는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 동그란 네모처럼 형용모순이듯, 삼백예순닷새를 보내고도 팽목항 바다의 깃대에서 하강하지 못하는 그 깃발 또한 형용모순이다. 대통령이 오자 분향소 문을 닫는 유가족 또한 넝마가 된 지 오래다.

4월13일 오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주검과 영정이 발인 예배가 이뤄진 충남 서산시 석림동 서산중앙감리교회로 들어서고 있다. 서산시대 제공

4월13일 오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주검과 영정이 발인 예배가 이뤄진 충남 서산시 석림동 서산중앙감리교회로 들어서고 있다. 서산시대 제공

여기 또 하나의 바다, 형용모순의 땅이 있다. 돈으로 인심을 얻고 돈으로 사람을 잃은 사람이 묻힌 곳. 서해안 천수만 지척에 자리한 충남 서산시 음암면 도당3리.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물”이라는 말을 들었던 사람,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4월13일 묻혔다. 묘를 쓴 자리로 붉은 황토가 질척였다. 갓 심은 잔디가 외간 사람들 발에 무시로 밟혔다. 봄의 한가운데인데도 1년 전 그날처럼 바람 불고 비 뿌리는 날씨가 이어졌다. 그의 봉분을 덮은 천막 조각이 우거지상을 한 하늘 아래 유달리 새파랬다.

4월15일 오전 10시, 그의 삼우제 날.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1시간 남짓 걸려 서둘러 묘를 찾았다. 비석 하나 없는 묘 주변에는 인기척도 없었다. 출발 전 그의 막내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삼우제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고, 뭐 떼라든가 이런 게 잘됐는지 확인하는 건데. 저는 안 갈 거예요. 그날(발인) 다 둘러봤기 때문에. 아이들은 갈지 모르겠고.”(성일종)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뜻밖에도 잔잔했다. 성일종씨는 지난해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나섰다가 새누리당 당내 경선 도중 포기한 적이 있다. 이후에도 그는 고향을 자주 오갔다. 내년 4월 다시 선거가 있다.

“앞으로 저이 꺾을 사람 없을 거다 했지”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해가 반짝하고 났지만 바람이 매웠다. 제멋대로 휘어진 소나무들은 묘를 감싸주지 못했다. 그의 묘에서 채 10m도 떨어지지 않은 지척에 민가가 있다. 옹기종기 자라는 관송 군락이 그럴듯했다. 관목은 납작 엎드려 제 생명을 지탱한다. 그는 엉거주춤한 관목이 아니라 위로 치솟는 교목이고 싶어, 손에 쥔 돈을 힘센 사람들에게 자주 건넸다. ‘정경유착’이라는 말이 생전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전지가위를 들고 관송 손질을 하던 ㄱ씨가 말했다. “이 산이 참 좋아요. 특히 소나무가 아주 멋졌거든. 근데 2010년인가 태풍 곤파스 때 다 작살나버렸어. 크고 좋은 소나무들이 다 부러져버리고 남은 게 저것들이야. 자리? 여기 자리는 참 좋지. 명당이라고 1년에 한 번씩 풍수지리학회인가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양지바르고, 일부러 이렇게 터를 다지려고 해도 못하지.” 마을 사람들은 그의 묘가 들어서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외지인의 묘가 들어서는 것을 반기는 마을은 드물다. 그가 나고 자란 곳은 서산시 해미면이다. 그의 살아생전 위세를 모르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그는 땅속에 묻히고 없었다. 경기도에서 왔다는 중년 남녀 셋이 그와 그의 부모 묘를 살피고 있었다. 내로라하는 사람들의 묘에는 가족보다 지관들의 발걸음이 더 잦다. 그의 가족들은 이날 점심때까지 묘에 나타나지 않았다.

4월 서산·태안의 민심은 팽목항 깃발처럼 갈가리 찢겨 있다. 그 바다 물살처럼 며칠 사이에도 이리저리 뒤집혔다. “주민들 평가가 좋았어. 힘있는 국회의원이라고들 여겼지. 지역의 오래된 숙원이나 민원, 이런 거 처리를 잘해줬어. 태안 기름 유출 피해나 대산항 여객터미널 사업 같은 거. 굵직굵직한 거 많이 해줬지. 주민들 평가가 아주 좋아서 ‘앞으로 저이 꺾을 사람 없을 거다’라고들 했지. 그런데 선거법으로 낙마해서 사람들이 많이 아쉬워했지. 근데 자원외교 비리 수사 보도가 나오면서 지역 민심이 갑자기 안 좋아졌어. 저거 다 나랏돈으로 정치했구나 생각들 하는 거지. 자살하고 메모 남기고 그러면서 지금은 다시 동정 여론으로 또 확 돌아섰어. 탄압받은 느낌이 드니까.”(서산 출신 충남도의원)

4월15일 오전 충남 서산시 음암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묘소에서 서산장학재단 서산시 동부지회 회원들이 삼우제를 올리고 있다.

4월15일 오전 충남 서산시 음암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묘소에서 서산장학재단 서산시 동부지회 회원들이 삼우제를 올리고 있다.

“두 사람이 서로 친했냐고? 노 코멘트”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이곳은 “서산장학재단 없이는 선거 못 치른다”는 말이 으레 당연한 곳이었다. 1991년 그가 설립한 서산장학재단은 서산·태안의 읍·면·동까지 지회가 있다. 지금도 그를 추모하는 펼침막이 읍·면·동마다 한두 개씩 걸려 있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서산장학재단의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2만5천 명을 훌쩍 넘는다. 서산·태안뿐 아니라 충남의 다른 시·군과 전국 곳곳에도 지부가 있다. 나라 밖에도 지부를 두었다.

한 마리 서캐도 달아날 수 없는 참빗처럼 촘촘한 조직을 바탕으로 그는 2012년 국회의원에 당선했다. 애초 지역구 공천을 받지 못했지만 후보 등록을 코앞에 두고 변웅전씨를 비례대표로 밀어내고 자신이 지역구를 꿰찼다. 그러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그는 4년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직을 잃었다. 자신의 자리를 막내동생 성일종씨에게 대신하게 하려고 동분서주했지만, 당내 공천권을 아귀에 틀어쥔 이들은 그와 생각이 달랐다. 1년 전이었다. 그의 머리 위로 왈칵 먹물을 떨어뜨릴 듯한 먹구름이 한껏 몰려오고 있었다.

그가 남긴 메모에는 8명이 등장한다. 다른 7명은 서산·태안 사람들에게 고만고만 데면데면해 보였다. 사달은 이완구 국무총리였다. ‘완사모’(이완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그의 선거용 조직이다. 순수한 후원이든 잇속에 따라서든 완사모는 이 총리의 분명한 지역 기반이다. 태안에도 완사모 회원 70명 정도가 있다. 적은 수일지 모르지만 선거판에서는 강력한 지지자 1명이 일당백의 표를 모으는 구실을 하는 게 상례다. 완사모 회원들은 지금 속으로 끙끙 앓고 있다. 지역 민심과 평판을 모르지 않는 그들로서는 이 총리를 대놓고 두둔할 수도, 성 전 회장을 은근슬쩍 비난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태안의 한 완사모 회원은 저간의 사정을 이렇게 들려줬다.

“혼란스럽다. 다(성 전 회장과 이 총리) 우리 충청권의 큰 인물이고 서산·태안의 인물이고 하니까. 곤혹스럽다. 두 분 다 개인적으로 인연이 깊고 그래서. 나름대로 지역이나 국가를 위해 역할을 하시는 분들이고 두 분이 경쟁관계가 될 게 아니어서 편하게 두 분에게 지지와 후원을 했는데…. 두 사람이 서로 친했냐고? 나는 노 코멘트. 솔직히 두 분을 좋아하고 인연을 갖고 있다보니까 안다면 알 수도 있는데…. 양쪽의 성격·스타일을 이해하는 상황에서 말씀드리기가 힘들다. 촌에 있는 사람인데 개인적으로 마음 아프고 그렇다. 근데 큰일들 하는 분들인데 서로 모르시진 않았겠지.”(태안 완사모 회원 윤아무개씨)

서산의 완사모 회원은 불편한 심사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런 거 나한테 물어보지 마라. 그 사람(이 총리)이 좋아서 만난 모임이다. 우리로선 얘기도 못하고…. 나는 언론이라는 사람들하고 얘기하고 싶지 않아. 말 한마디 갖고도 사람 살리고 죽일 수도 있는데. 이완구 총리가 거기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잖아.”

서산장학재단 쪽 인사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성 전 회장이 정권의 사정 칼날에 결국 쓰러졌다고 믿는 그들은 그 칼날이 두렵다. “고인하고는 장학재단 일만 했어요. 그 나머지 일은 잘 몰라요. 충청포럼 일들이나 위(정치권)의 일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드릴 말씀이 없네. 나는 장학재단 이쪽 회원들 관리만 했지, 특별하게 내가 아는 분이 없어서….”(김태권 전 서산장학재단 서산시지부장) “3일 동안 상 치르느라 잠을 하나도 못 잤어요. 기자들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이것도 안 받으려다가 그냥 받은 거예요. 집사람이 서울 병원에 입원해야 해서 서울 갑니다. 더 할 말 없어요.”(김성환 서산장학재단 태안군지부장)

서산 시내에 걸린 성 전 회장 추모 현수막.

서산 시내에 걸린 성 전 회장 추모 현수막.

“충남도지사 때 분명히 독대했을 거”

슬픔에 웅크리고 있던 서산장학재단 쪽 사람들의 분기에 불을 지른 것은 이 총리다. 그는 4월11일 아침 6시26분부터 오후까지 태안군의회 이용희·김진권 의원에게 모두 10여 차례 전화를 했다. 두 사람은 성 전 회장이 4월8일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따로 만난 ‘심복’들이다. 그 자리에서 성 전 회장은 이들에게 “이완구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 총리가 오간 말들이 뭐냐며 추궁하고 닦달하는 전화를 계속 걸어오자 언론에 이런 내용을 공개해버렸다.

김진권 의원은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며 혀를 찬다. “이 총리가 계속 이상한 소리 하는 게, 하도 말 같지 않아서 전화를 내가 먼저 끊어버렸다. 더 무슨 얘기 했느냐고 캐묻더라. ‘5천만 국민이 이것 때문에 들썩이니 빨리 말해라. 내가 대한민국 총리다. 나는 두 번 태어났다(혈액암으로 투병한 것을 가리킴)’ 뭐 이러더라고. 반말투더라고. 자기가 총리면 총리지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그러니 이 총리가 이용희 의원한테 전화해서 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고 그랬더라고. 그런 사람이 어떻게 총리냐.”

이기권 전 새누리당 충남도당 대변인도 거들었다. “이완구씨와 관계? 이완구는 (회장님과) 친하지 않다라고 얘기하지. 두 사람이 친하고 안 친하고는 국민의 판단이야. 하지만 이완구가 충남도지사 할 때 분명히 회장님하고 독대를 했을 거야. 충남도청 비서실에 접견 기록 있을 거야. 그거 한번 찾아봐라.” 충남도청 비서실은 이 총리가 지사로 재직할 때 접견 기록이 없다고 밝혔다. 안희정 지사 취임 뒤에야 전산으로 접견 기록을 관리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지역언론에서는 이 총리의 발언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단언했다. “2007년 12월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때 서산장학재단 사람들이 전국에서 2만 명 넘게 찾아와서 자원봉사를 했다. 이 총리가 성완종 전 회장을 모른다는 건 거짓말이다. 2012년 대선 때는 같은 단상에서 선거 유세를 하는 사진도 있다.”(신문웅 편집국장) “지난해 국회의원 재보선 때 성 전 회장의 동생 성일종씨가 나왔다. 근데 ‘형이 (선거법 위반으로) 아웃됐는데 동생이 나오냐’며 발목을 잡은 게 이완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성 전 회장은 정리가 철두철미한 사람이다. 장부가 없을 리 없다.”(박두웅 편집국장)

이와 달리 성 전 회장에 대한 바닥 민심은 어느 한쪽으로 쏠리기보다는 유보나 중도에 가깝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보통 사람들은 그를 제대로 알 수 없고, 그래서 송곳 같은 말을 하기가 어렵다. “그 사람 지역에선 유명했지. 어찌됐든 안됐어. 지역에서 좋은 일 많이 했지. 장학사업을 해서 어려운 학생들 장학금 많이 주고. 이완구 총리? 그 양반 훌륭하신데, 요 며칠 뉴스 보니까 좀 문제가 있어 보이더라. 나는 정치와는 거리가 멀어서 더는 잘 몰라.”(서산시 팔봉면 주민)

“고등학교 2학년 때니까 1998년쯤에 서산장학재단이 주는 등록금 지원을 두 학기 받았다. 한 80만원쯤 되려나. 사립고여서 등록금이 좀 비쌌다. 서산·태안에선 거의 영웅 같은 분이지. 지역에서 일자리도 많이 창출해서, 우리 동네 형도 경남건설에 들어갔다. 근데 정치 쪽에 줄을 많이 대서 기업 많이 컸다는 말을 요새 들었다.”(서산 출신 문아무개씨) “성완종? 인간적으로는 좋았다, 남한테 악한 거 않는 사람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우리 쪽 생각은 다르지. 기업 이익을 위해서 불법 선거자금을 댄 것을 잘했다고 볼 수는 없지.”(당진시농민회 김아무개씨)

“정치하는 놈들은 다 세상 끝져”

충남과 대전, 세종 시민사회단체들은 4월15~16일 일제히 이 총리의 사퇴와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우리는 이번에 공개된 ‘성완종 리스트’로 인해, 이완구 의원을 국무총리로 만든 ‘충청권 총리’ 여론은 성완종 전 회장에 의해 조작된, 왜곡된 지역 민심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선량한 500만 충청인을 기만하고,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협잡과 정치 공작으로 지역 여론마저 조작하여 국무총리가 되었다는 것에 충격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그를 잘 아는 사람은 어떤 말을 할까. “사람이란 자기가 일생을 걸어온 걸 뒤돌아보고 성찰하면서 해야 돼. 자기들이 걸어오면서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했다 이런 걸 얘기해야 하는데 세상은 다 남만 비평하더라. 대통령 같은 사람, 박근혜도 자기가 치마 두르고, 개발한다 발전시킨다 하는데 다 국민한테 거짓말하는 거야. 국민이 세금 낸 거 가지고 이렇게 하겠다고 해야 정직하지. 지들이 뭐해서 돈 벌었어? 국회의원 돼서 뭐 이렇게 하겠다는 거 다 사기치는 거야. 박근혜가 하는 것도 다 국민 세금 갖고 하는 거지. 정치인들은 끝나. 자손들이 다 잘 안 돼. 후손 가면 다 안 돼. 정치하는 놈들은 다 세상 끝져. 세상이란 건 다 운명적으로 되게 돼 있어. 이렇게 된 것도 다 숙명적으로 된 거지. 어떻게 막을 수가 없어.”(성기원, 성 전 회장의 작은아버지) 3일 동안 서산·태안을 취재하면서 기자가 만난 유일한 친족이었다. 그는 이 말을 조카의 무덤, 자기 형과 형수의 무덤 옆에서 했다. 성 전 회장의 묘를 덮은 푸른 천이 바람 맞은 깃발처럼 펄럭였다.

서산·태안=글·사진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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