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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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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위험한 것 얻기 위한 성동격서?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메가톤급 폭탄 장착돼 있어”… 사용기한 연장은 버리는 카드일 수도
등록 2015-01-07 15:26 수정 2020-05-03 04:27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지난해12월31일 서울 공덕동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재벌의 이해관계로 놓고 보면, 파견 대상을 확대하고 개별 해고 요건과 취업규칙개정 기준 완화 등으로 노동안정성을 허무는 것에 방점이 찍힌 것 같다”고 말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지난해12월31일 서울 공덕동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재벌의 이해관계로 놓고 보면, 파견 대상을 확대하고 개별 해고 요건과 취업규칙개정 기준 완화 등으로 노동안정성을 허무는 것에 방점이 찍힌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를 떠도는 ‘비정규직 100만 해고 대란’ 유령이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을 다시 깨웠다.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한동안 언론 인터뷰를 피하다, 노동부가 2014년 12월29일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놓자 빗발치는 기자들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김 연구위원은 “전화하는 사람이 줄더니, 요즘 많이 찾는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2009년 노동부가 비정규직 노동자 100만 명이 해고될 우려가 있다며 비정규직 사용기한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자고 주장할 때 노동부 관료들과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종합대책안 “개악하는 것으로 집대성돼”

김 연구위원은 이번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보고 “현행법을 개악하는 것으로 집대성돼 있다. 메가톤급 폭탄이 장착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 가운데서도 “비정규직 사용기한 연장을 노사정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버리는 카드로 쓰고, 정부가 더 위험한 것을 얻으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그가 더 위험하다고 지목한 것은 파견법 완화와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 등이다. 2014년 말 정부가 던진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두고 기업과 노동자가 치열하게 맞설 2015년이 오기 하루 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실에서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을 만났다.

- 비정규직 종합대책인데 내용 중에 ‘근로계약 해지의 기준 명확화’ 등 정규직 대책이 들어 있다. = 정부가 비정규직 사용기한 연장을 버리는 카드로 쓰고 더 위험한 것을 얻으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더 위험한 것은 파견법 부분과 해고 요건 완화 등이다. 그쪽에 포커스가 있다. 55살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파견 허용을 확대하고 파견 업종도 늘린다고 한다. 한국은 파견 비율이 높은 나라다. 통계상으로 적지만, 용역근로가 사실 파견근로다. 여기에 사내하청 노동까지 합치면 전체 노동자의 10% 정도 될 것이다. 특히 300인 이상 대기업을 보면 직접고용 인원이 17%, 간접고용 인원이 20%다.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으로 판정받는 경우가 많은데, 재벌이 원하는 것은 (회사에 있는) 사내하청을 합법화하려는 것이다. 파견법을 허물겠다는 것이다. 또 개별 해고 요건과 취업규칙 개정을 완화하는 것에도 방점이 있다.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바꿀 때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거쳐야 하는데 이를 허물 가능성이 있다. 기업에 유리하게 바꿔주겠다는 것이다.

- 정부나 보수 언론은 독일 사례를 많이 든다. 한국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다는 것이다

= 독일 하르츠 개혁을 이야기하면서 노동시장 일부를 유연화하니까 고용이 좋아졌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내놓은 고용보호지수가 있다. 이른바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이야기할 때 많이 인용되는 통계인데, 독일은 여전히 정규직 보호 조항이 1등인 국가다. 고용보호가 제일 세다. 근속연수 평균을 봐도 10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비율이 40%를 넘는다. 우리는 18%밖에 나오지 않는다. 독일은 안정된 조건에서 약간의 유연화를 한 것이다. 정반대 쪽에서 유연화의 근거로 독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말이 안 된다.

OECD는 1980년대 이후 회원국들의 고실업이 지속되자 그 원인이 고용보호법제와 관련이 클 것이라는 가정하에 관련 연구를 했다. 고용보호법제를 지수화해 각국의 고용보호 경직성을 평가했는데 고용보호가 약하면 0점, 강하면 6점에 가깝다. 2013년 OECD 고용보호지수 자료를 보면, 한국의 정규직 해고 제한 점수는 2.17점으로 OECD 평균(2.29점)에 미치지 못한다. 노동시장 현실이 법에서 보장된 수준보다 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정규직이 과보호돼 있다”는 최경환 부총리의 말은 어리둥절하다. 독일은 2.98점으로 1위를 기록했다.

본인 신청, 이직수당? 아이고 의미없다! - 지난해 11월 내놓은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비정규직 규모가 감소하거나 정체 중인 것으로 분석했다.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법이 2007년 통과됐기 때문인가.

= 비정규직법의 역할이 있기는 하다. 2007년 비정규직 비율(전체 노동자 대비 비정규직 비율)이 최고를 찍은 뒤 4%포인트정도 줄어든 것은 비정규직법 때문이다. 계약기간 2년이 되는 시점에서 (정규직화할지 계약을 해지할지) 사용자에게 맡겨놓은 것인데 비율이 거의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비율이 떨어지지 않고 정체되는 것은 이 법의 한계다. 또 통계상 사내하청 노동자가 드러나지 않는다. 비정규직법의 풍선 효과도 이야기되는데 통계상으로는 안 잡힌다.

- 2009년에 ‘100만 해고 대란’설을 흘리며 비정규직 사용기한을 4년으로 늘리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뒤 2014년 노동부는 고용 안정을 위해 다시 사용기한을 연장하자고 한다.

= 노동부가 조건으로 가지고 나온 게 35살 이상, 본인의 신청, 이직수당 지급 3가지다. 계약기간을 4년으로 연장할 수 있으면 대부분 회사는 2년 뒤 다시 비정규직에게 2년 더를 제안할 것이다. 아니면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한다면 노동자 본인의 동의는 무의미하다. 35살 또한 왜 내걸었는지 모르겠다. 정규직으로 쓰지 않을 거면 다른 직장을 알아보게 하는 게 낫지, 4년 뒤에 어쩌란 말인가. 2년만 쓰고 버리기엔 단물이 덜 빠졌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직수당 역시 의미가 없다. 회사는 나중에 임금총액의 10%를 주기 위해 평소에 연봉을 하향 조정하면 된다.

-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초단기 근속의 나라다. 근속연수 평균값은 5.6년이고 중위값은 2.4년으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짧다. 한국의 주력산업인 자동차·조선·철강 등은 노동자 근속연수가 높아야 숙련도도 높아지고 생산성도 높아질 텐데 한국의 근속연수는 왜 계속 짧아지나.

= 한국 경제 자체가 비정규직이 많고 저임금층이 광범위하다. 대한항공 ‘땅콩 회항’처럼 웃기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기업이 사람을 소중한 자산으로 보지 않고 비용으로 보기 때문이다. 단기 수익을 극대화하는 저임금·저비용으로 한국의 성장 구조가 쏠려 있다.

집권 2년 동안 잠복하던 노동시장 유연화

- 이른바 ‘장그래법’으로 회자되는 등 비정규직 고용을 늘리는 것에 반감이 늘어나는 사회적 변화가 있지 않나.

= 국민의 정부든 참여정부든 MB 정부든 문민정부 때부터 한국의 노동정책은 노동시장 유연화, 비정규직 늘리기였다. 이게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를 겪고 나서 OECD나 국제노동기구(ILO)에서부터 흔들렸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하자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표준)였는데, 국내에서도 이게 스탠더드가 아닌가 하는 인식이 생겼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제일 유심히 봤던 게 경제민주화와 복지였다. 노동 쪽에서는 신기하게도 노동시장 유연화가 한마디도 안 나왔다. 새누리당이 내놓은 공약이 상시 지속적인 일자리는 정규직화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사실 노동계가 얘기한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이다.

언제 노동유연성을 꺼낼까 봤는데, 최경환 부총리가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고 하면서 노동시장 유연화 소리가 확 나왔다. 노동시장 유연화가 2년 동안 안 보이다가 한꺼번에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옛날 벽장 속에 있던 게 전부 다시 튀어나왔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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