밋밋한 만남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 지도부를 초청한 11월20일 청와대 회동에 야당은 빠지고, 여당은 보육 예산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언급을 삼간 채 대통령에게 “더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연말 국회를 앞두고 여야가 자주 만나 조율할 때인데 느닷없이 청와대에 가면 (대통령이 주문하는) 가이드라인이 생긴다. 지금은 대통령의 교시를 받을 때가 아니다”라고 참석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정국 현안과 관련해 사전에 조율된 의제 설정 없이 청와대에 들어와 순방 결과를 들으라는 것은, “사진 찍고 밥 먹는 세리머니식 만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제1야당 대표에게 대통령과의 회동은 정국 현안을 푸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지만, 별 성과 없이 돌아올 경우 당내 비판을 부르는 악수가 되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야당 대표가 빠진 테이블엔 새누리당 지도부가 박 대통령을 치켜세우는 말들이 흘러다녔다. 박 대통령이 순방 기간에 이뤄진 한-중, 한-뉴질랜드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등을 설명하며 “우리 경제영토가 세계 73%에 달할 정도로 광범위한 FTA 네트워크를 구축했다”고 말하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73.5% 아닙니까”라며 대통령의 성과를 ‘0.5% 상향 수정’해 추어올렸다. 테이블엔 순간 웃음이 퍼졌다. 김 대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비공개 회동으로 전환하기 직전 공개 발언에서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큰 업적을 갖고 돌아오셨는데 당에서 제대로 뒷받침을 못한 것 같아 송구스런 마음이 있다. 다음부터는 좀더 열심히 해서 올리신 성과가 결실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그는 청와대 회동에 가기 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이번 순방으로) 세계의 정상이 되지 않았느냐”고 극찬하기도 했다. 김 대표의 이날 발언은 연말 국회 기간을 포함해 당분간 박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에 최대한 코드를 맞추겠다는 여당 대표의 태도를 시사한다. 그는 지난 10월 개헌론을 제기해 개헌에 부정적인 박 대통령을 불편하게 했다가 곧바로 개헌 관련 발언을 거둬들이는 소동을 벌인 바 있다.
“대통령은 말하고 여당 지도부는 받아적는 만남이었다”는 야권의 비판처럼 외견상 밋밋한 만남으로 보이지만, 이번 회동은 역설적으로 향후 정국과 관련해 긴장감을 예고하기에 충분했다. 대통령이 공무원연금 개편안의 연내 처리와 새해 예산안, FTA 비준 동의 등에 대한 국회의 조속한 처리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연내 처리를 재차 주문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대해 새정치연합은 충분한 협의를 주장하고 있다. 문희상 위원장은 “공무원연금 개혁 필요성에 100% 동의하지만, 뜸(공무원노조 등과의 충분한 논의)을 들이지 않으면 설익은 밥이 된다”며 개혁안의 내년 3월께 처리를 강조하고 있다. 이번 회동에서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예산안 처리는 법정 기일인 12월2일을 꼭 지키겠다. 그게 안 되면 정부 원안 또는 (여당이 정부와 상의해 새롭게 작성한) 수정 동의안으로 가겠다”고 대통령에게 말한 대목도 야당의 심기를 건드리는 부분이다.
야권 일각에서 복지 예산 등 꼼꼼한 예산 심사를 위해 정기국회 종료일인 12월9일까지 예산 심사를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야당의 합의가 없어도 12월2일까지 예산을 반드시 처리할 수 있다는 여권의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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