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이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를’이란 이름의 포럼을 발족하자, 새누리당이 곧장 “공짜 포퓰리즘 정책”이란 공세를 퍼부었다. 새정치연합은 신혼부부를 위한 임대주택을 늘리자는 정책을 새누리당이 왜곡했다고 반발했다. “공짜다” “아니다”란 공방으로 흐르면서 정책의 실효성에 관한 논쟁은 뒷전으로 밀렸다.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를’이란 작명이 공짜로 주는 듯한 인상을 주긴 했으나, 새누리당도 무상주택 공급 정책이 아니란 걸 쉽게 알 수 있는데 국가재정을 잡아먹는 공짜 정책이란 덫을 씌워 논의의 진전을 막았다.
“‘무상복지’ 용어, 역사적 역할 다했다”이는 무상급식 등 야권의 복지 확대 요구에 대응하는 여권의 ‘패턴’이 반복해서 나타난 것이다. 그간 ‘무상복지=공짜’란 딱지는 ‘무상복지는 공짜로 혜택을 누리며 국가 예산을 위태롭게 만드는 복지’란 여권의 논리를 담아내는 유용한 도구였다. ‘공짜 딱지’는 무상복지 확대에 따른 재정 우려를 표현하는 데 선동적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사회서비스(교육·보육·의료)를 국가가 제공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자는 ‘무상복지’의 긍정적 부분에 대한 논의를 차단하는 부작용도 낳았다. 이 때문에 야권과 학계에선 ‘무상복지’란 말의 대체용어를 쓸 때가 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여권이 ‘무상복지=완전한 공짜’의 개념으로만 몰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무상복지의 참뜻을 이렇게 변질시키다보니, 국가가 국민 전체에 사회서비스를 보장하는 것은 “국민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사회 투자”란 의미까지 포괄한 무상복지 개념이 훼손됐다는 것이다. 특히 무상복지가 선별적 복지(저소득층 중심으로 복지 제공)의 반대 개념인 ‘보편적 복지’를 우리 사회에 쉽게 이해시키는 마중물 역할을 충분히 했지만 용어적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는 “보편적 복지란 말이 우리 사회에 거의 쓰이지 않던 시절에 사용된 무상복지는 (용어로서) 역사적 역할을 했다고 본다”면서 “하지만 무상복지는 해당 서비스를 받는 시점에 돈을 내지 않는 것일 뿐, 사전에 우리가 낸 세금을 가지고 국가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개념까지 담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직접세(소득세 등)·간접세(상품에 붙은 부가가치세 등)로 낸 세금을 재원 삼아 국가가 무상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인데도 ‘무상’이란 표현 때문에 ‘돈도 내지 않고 공짜 혜택이나 받으려는 나쁜 복지’란 공격의 빌미를 계속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 정당사에서 무상복지 의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00년 창당된 민주노동당이 무상의료·무상교육·무상급식을 내걸면서부터다. 민노당 창당 멤버였던 김종철 전 노동당 부대표는 “보편적 복지란 말이 그땐 보편화되지도 않았고, 무상이란 말이 의료·교육 등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의미를 쉽게 나타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야권의 대표 정책으로 부상한 뒤, 보편적 복지·선별적 복지와 같은 복지학 개론서에 등장하는 용어들이 사회에 폭넓게 유통됐다. 새누리당은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한 박근혜 정부에서 세금 수입 부족 등으로 복지 재원이 넉넉하지 않다면서, 무상복지가 선심성 공짜 포퓰리즘이란 공세를 최근 다시 강화했다.
고소득자 과세, 복지 확대가 전제였는데무상복지를 제안한 옛 민노당 관계자들은 ‘무상=공짜’로 단순화한 여권의 주장이 자신들이 최초 주장한 무상복지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말한다. 국가재정이 어려워지든 말든 공짜로 의료·급식·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정치적 으름장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당시 민노당은 온 국민이 내는 각종 세금 외에, 일정 금액 이상의 고소득자에게 추가적으로 세금(부유세)을 매겨 이를 사회복지 예산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민노당 정책부장 등을 지내며 부유세 법안을 주도적으로 만든 김정진 변호사는 “그때 무상복지는 고소득자에게 좀더 과세해서 그 재원으로 복지를 확대하자는 것이 전제된 개념이었다. 그래서 사회서비스(급식·교육·의료 등)를 이용하는 시점에 대가(돈)를 지불할 능력이 없더라도 국가 전체의 조세체계에서 그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특혜성 감세 폐지, 사회적 합의를 거친 일정 수준의 증세를 통해 국가재정 규모를 늘려 복지를 확대하자는 무상복지의 최초 정신이 있던 자리에, ‘무상복지는 공짜다, 아니다’라는 정치적 논쟁이 현재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정작 야권 자신이 복지정책을 대중에게 쉽게 각인시킨다며 ‘무상’이란 용어에 기댐으로써 여권의 공짜 논쟁에 휘말린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야권에서 패착으로 부르는 정책 슬로건이 ‘무상버스’다. 올해 지방선거에서 새정치연합 경기지사 예비후보로 나선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 내건 공약이다. 출퇴근 시간에 버스 집중 배차, 산간·오지에 버스 노선 투입, 버스 요금 할인 등 버스공영제가 포괄하는 서비스가 다양한데도 김상곤 후보가 이를 ‘무상버스’라고 이름 붙인 뒤 ‘버스공영제=무상버스=요금 공짜’란 구도에 갇히고 말았다. 경제학 박사인 우석훈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버스공영제에서) 요금은 단계적으로 줄여갈 수 있는 건데 무상버스란 이름으로 최종 단계(요금은 공짜)를 던지니까 바로 ‘그게 되겠느냐’는 논란을 불렀다”고 말했다.
야권에선 무상복지에 공짜란 올가미를 씌운 여권의 의도에 말려 폭넓게 사용해온 용어를 바꿀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무상의료와 무상보육이란 말이 국가가 의료서비스와 아이들 보육을 책임진다는 의미를 선명하게 담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철 전 부대표는 “무상급식은 현재 의무급식 등으로도 이미 불리고 있지만, 무상의료·무상보육은 후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상복지 대신 ‘보편적 복지’ ‘국가복지’란 용어를 쓰자는 주장이 있다. 이상이 공동대표는 “무상복지란 말이 이념적 갈등을 일으키는 측면이 있다. 2010년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보편적 복지가 ‘누구나 균등하게 보장받는다’는 뜻이란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다. 보편적 복지가 이제 정치·사회적 시민권을 얻었으니 보편적 급식, 보편적 보육 등으로 불러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이 무상복지 논쟁을 재점화하고 있는데 유감스럽고 안타깝다. 이번 기회에 무상복지라는 표현보다 국민에 대한 기본복지, 의무복지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에서 이뤄지는 아이들의 급식도 의무교육의 일환이며, 아이들 보육은 국가의 기본의무라는 정신을 표현에 담자는 것이다. 이시종 충북지사도 지난 11월10일 도청 확대간부회의에서 “초·중·고 학생에 대한 무상급식은 ‘무상’이라기보다 ‘국가 의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 논쟁을 합의의 영토로하지만 표현의 변화를 말하는 이들도 우리 사회의 복지 논쟁에서 용어 문제는 중요한 본질이 아니라고 한목소리로 얘기한다. ‘무상급식은 야권 공약이고, 무상보육은 박근혜 대통령 공약’ 따위의 이분법적 대결 구도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문진영 서강대 교수(사회복지)의 얘기다.
“복지 논의를 정파적 이해관계의 쟁투장이 아닌, 합의의 영토에 편입시켜야 한다. ‘합의의 영토’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최소한 이것만은 지키자’고 합의하는 것이다. 무상복지가 공짜일까? (교육과 보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 그걸(복지서비스) 받은 것을 두고 공짜라고 할 수 없다. 여야가 아이들의 교육(급식)과 보육은 권리이며, 그 권리성을 보장한다는 것에 최소한 합의하면 (공짜·무상) 논쟁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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