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그 열망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려 한다.”
그는 2012년 9월19일 이 말로 현실정치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독자정당 추진, 민주당과 합당, 7·30 재·보궐 선거 패배,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사퇴의 돌밭을 걸어온 그가 “2년간 경험해보니 부족한 점이 많았다”(2014년 9월24일 페이스북)는 냉정한 자평을 내놓았다. 대표가 된 이후 “단기간에 안정을 이루려 한 것은 과욕”이었다며 자신에게 공세적인 비판도 가했다. 성찰의 시간을 갖고 있다는 안철수 의원은 어디에서부터 정치적 돌파구를 열어가려는 걸까?
세력 전체가 당무 거리두기각종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4위까지 떨어졌지만 그에 대한 기대가 소멸된 건 아니다. 그의 지역구 사무소(서울 노원구 상계동)인 ‘정책카페’에 들어가니, ‘한국의 희망, 흔들림 없이 힘있게 행하세요. 믿고 지지합니다’ ‘다음에는 멋진 대통령 되세요’라고 적은 방문객의 종이들이 게시판을 채우고 있었다. 북카페처럼 많은 책이 여러 탁자를 둘러싼 이 공간을 찾은 한 방문객은 ‘여기서 책도 읽고 데이트해도 되죠?’란 소감을 쓰기도 했다. 최근 새정치연합의 혼돈 직후엔 “왜 합당했느냐? 당이 나눠져야 한다”며 ‘분당’과 ‘신당 창당’을 다시 요구하는 지지자들의 방문도 있었다고 한다.
일단 안 의원은 선거 패배 등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내려놓은 만큼 당분간 당무를 멀리하면서, 민생 현장을 찾아 정치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행보로 신뢰를 회복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대표직 사퇴 77일 만인 10월15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측근인 송호창 의원의 조직강화특위 위원 사퇴를 알린 것도 ‘안철수 세력의 당무 거리두기’ 일환이다. 안 의원 쪽 인사는 “(전국 지역위원장을 뽑는) 조강특위 위원 구성도 ‘계파별로 안배했다’느니 하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어, 안 의원이 그런 (계파 분열) 구도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었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참여 요청도 거절했다. 안 의원을 돕는 다른 참모는 “(정치에 입문한) 지난 2년을 되돌아보면서 정서적 안정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안 의원도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당무에서 벗어난 안 의원은 ‘민생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생각이다. 지역구에서 진행해온 정책콘서트의 질적 변화도 그중 하나다. 안 의원 지역사무소의 송재혁 사무국장은 “당대표 때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청춘콘서트 형식이었다면, 당대표를 그만둔 뒤엔 민생 중심의 정책콘서트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 환경미화원, 대학 시간강사, 어린이집 관계자 간담회를 연쇄적으로 열어 근로조건·보육 문제 등을 논의했다고 한다. 송 국장은 “안 의원이 어린이집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선 ‘아이들에게 지원하는 건 미래 투자인데, 그 가치를 소홀히 하고 있다. 정책 우선순위가 있는 것인데, 새누리당은 보육 관심도가 떨어져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안 의원 쪽은 민생 현장을 찾는 보폭을 더 넓혀 정치 행보를 강화하는 시점을 11월로 잡고 있다. 안 의원 쪽 서양호 정무특보의 얘기다(그는 김한길 대표 비서실에 있다가 그만둔 뒤 ‘안 의원을 도우라’는 김 전 대표의 요청으로 합류했다).
1차는 토크, 2차는 정책“대선 직전 출간한 에서 제시한 것(해법)들 중에 폐기할 것, 수정할 것, 진화해야 할 것들이 있다. 이 중에서 정치가 해결해야 할 주요 목록을 다시 정리하고 있다. 특히 경제와 교육에 집중하려 한다. 정책과 관련해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것이다. (안 의원의 정책을 돕는) ‘정책네트워크 내일’도 이를 위해 슬림화 구상을 하고 있다. 11월부터 전국의 민생 현장도 찾고, 현안에 대해선 석학이나 주요 인사를 모시고 정책간담회도 할 것이다. 방송 요청도 많아 TV 출연도 다시 시작하려 한다. 수도권 거주, 고학력, 연령 40대 전후가 안 의원의 주요 지지 기반인데, 그 지지자들의 일부가 이탈했다. 당이 지지를 포괄하지 못하는 분들에 대한 지지를 안 의원이 다시 얻음으로써 당의 지지 기반 획득에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이다.”
청년·시민들과 마이크를 들고 만난 토크콘서트가 2012년 대선 국면에서 ‘안철수 현상’을 무섭게 밀어올린 힘이 된 것이 ‘시즌1’이었다면, 이제 민생 현장에서 시민들과 더 밀착된 만남을 통해 경제·교육 문제의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는 ‘시즌2’로 전환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간 정치권 안팎에선 정치쇄신론 이외에 ‘안철수만의 정책 브랜드’를 잘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그가 내년 초 새정치연합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다시 도전할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기자들에게 “그건 내 관심사가 아니다”라며 가능성을 닫았다. 이와 함께 내년 전당대회 이후 당내 세력 갈등이 심해져 일부 의원들이 교섭단체(의원 20명 이상) 수준의 신당을 만들려 할 경우 안 의원 등이 움직이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정치권 뒷담화 소재다. 이와 관련해 안 의원은 “난 새정치연합의 창업자”라며 창업주가 분열의 주역이 될 수 없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안 의원 쪽 인사도 “그럴 가능성(분당 뒤 직접 창당)은 없어 보인다. 그 부분은 안 의원이 단호하더라”고 말했다.
문제는 돌파구를 열려는 안 의원이 다시 새로운 정치 질서의 주역으로 올라설 수 있을까란 점이다. 한때 ‘안철수 신당 창당’을 도운 인사는 크게 두 가지를 걱정했다.
“안 의원한테 아쉬운 건 소통을 잘 못하는 점이다.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극소수의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같이 일하는 사람을 잘 믿으려 하지 않는다. 특히 정치 무대에서 성장한 사람에 대한 불신이 있다. 그러다보니 이제 주변에 (상대적으로) 정치 아마추어들이 남아 있다. 안철수 현상은 기존 정치 질서를 허물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겠다는 것에 대한 지지였다. 그 기대가 (합당으로) 무너졌으니, (설령 안 의원이 분당을 해서) 다시 신당을 만들겠다고 해도 믿어줄까? 안 의원이 현 질서의 근본을 흔드는 것이 (예전보다) 더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복합적 유권자층’을 이해하라안 의원 쪽이 지지층을 복원하려면 ‘안철수 지지 집단’을 제대로 이해하고 다가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최종숙 충북대 교수는 ‘안철수 지지 집단 분석’에서 “안철수 지지 집단은 복지 확대, 재벌 규제를 통한 경제민주화 지향 부분은 통상적인 진보층에 가깝고, 대북정책에선 (대북협력과 안보체제 강화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중도, 물질적 성공 지향에선 통상적 보수 성향에 가깝다”며 안 의원 지지층을 ‘복합적 유권자층’으로 규정했다. 안 의원의 참모는 ‘2012년 안철수’와 ‘지금의 안철수’에 대한 정치적 기대감의 크기가 같지 않은 현실을 고려하며 얘기했다.
“지난 7월이었다. 계산해보니 다음 총선까지 20개월 남았고, 2016년 총선 이후 2017년 대선까지 20개월 남은 시점이더라. 안 의원께 말했다. ‘다음 총선까지 국민 정서에 가깝게 다가가면서 생활정책 대안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라. 지금 2016년 총선 이후 대선까지 남은 20개월은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 의원도 동의하더라. 안 의원이 지금은 가치 있는 일과 시대적 소명을 위해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는 생각이다.”
정치적 기회는 결국 민심에 달려 있다는 원론을 되새겼다는 얘기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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