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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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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와 싸워야지 국민과 싸우려 한다”

정부 ‘쌀시장 전면 개방 선언’에 경남 사천에서

매실 농사 짓는 강기갑 전 의원이 말하는 ‘분노의 농심’
등록 2014-07-30 14:31 수정 2020-05-03 04:27

강기갑 전 국회의원은 늘 쌀 개방 투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1990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반대 투쟁과 1991년 미국쌀 수입 개방 저지 투쟁, 2003년, 2004년 세계무역기구(WTO) 수입 개방 반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투쟁에 이르기까지 줄곧 그랬다. 그 과정은 단식, 삭발, 농성의 몸부림이었다. 국회에 들어간 뒤인 2004년 12월과 2005년 11월에도 31일 동안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벌였다. 지난 7월18일 정부는 내년부터 쌀시장을 전면 개방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양곡관리법 절차도 밟지 않고 농민과 합의도 없었다. 국내 쌀시장 보호의 관건이 될 관세율도 300~500%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한다고 두루뭉술하게 밝혔다. 이에 농민들은 볏논을 갈아엎으며 분노를 표시한다. 강 전 의원이 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은 궁금했다. 지난 7월5일 경남 사천 ‘흙사랑 농장’에서 매실 농사를 짓는 그를 만났다.

<font size="3">집안의 맏아들 같은 역할 했는데…</font>

강기갑 전 의원이 지난 7월5일 경남 사천 흙사랑 농장에서 현역 의원 시절 만든 ‘쌀 협상 자료 모음집’을 들고 서 있다.

강기갑 전 의원이 지난 7월5일 경남 사천 흙사랑 농장에서 현역 의원 시절 만든 ‘쌀 협상 자료 모음집’을 들고 서 있다.

-정부가 “쌀산업의 미래를 위해 관세화가 불가피하고도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관세만 물면 외국산 쌀이 얼마든지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 농업에서 쌀은 집안의 맏아들 같은 역할을 해왔다.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쌀 소비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 이제는 서자 취급을 받지만 쌀은 여전히 국민의 주식이고 농가소득원의 큰 축이다. 쌀 생산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정책을 정부는 펼쳐야 한다. 쌀 생산 기반을 무너뜨리면 거대한 재앙이 몰려올 수 있다. 기후변화, 자연재앙 등으로 식량 위기가 닥친다면 다국적 곡물기업이 (우리나라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매우 낮다. 1990년 43.1%였는데 2013년 22.6%로 떨어졌다. 쌀을 빼면 5% 이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중 최하위다. 쌀자급률마저 2011년 100%가 무너져 80%대를 맴돈다. 캐나다(180%), 프랑스(174%), 미국(125%), 독일(124%), 영국(101%) 등은 높은 곡물자급률을 유지한다. 곡물자급률이 떨어질수록 다국적기업의 시장점유율은 높아진다. 우리나라 곡물시장의 60%를 미국계 식품 전문업체인 카길 등 4대 다국적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그 점유율도 증가 추세다.

-정부는 올해 쌀 관세화 유예기간이 종료되면 쌀시장을 의무적으로 개방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가 쌀시장을 개방하지 않으면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이 그 대가를 요구할 것이라고도 한다. 의무수입물량(MMA·최소 시장접근 물량)을 2배 이상 늘리거나, 국가별 수입량 쿼터를 확대하는 조처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쌀 관세화 유예 연장) 사안으로 협상 방향을 결정하고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여인홍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7월11일 국회 공청회에서).

=“우리나라는 1994년 UR 협상 이후 쌀 관세화 예외를 인정받았다. 그 뒤 두 차례 관세화 유예 조치 협상을 진행했다. 2004년 쌀 협상 자료를 훑어봤다. 당시 정부는 쌀 관세화 유예기간이 종료되는 2014년에 자동적으로 관세화된다거나, 쌀시장을 개방할 의무가 생긴다고 하지 않았다. 공식 답변은 ‘이행계획서에 (쌀 관세화 유예 연장이) 규정돼 있지 않다’였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정부의 공식 답변에 책임을 져야 한다.”

<font size="3">쌀 관세화 유예 연장은 ‘협상 카드’</font>

10년 전 쌀 관세화 유예 연장 이행계획서에 대한 해석을 두고는 당시 정부의 해석이 정반대였다. 2005년 국회 국정조사에서 통상법 전문가들은 “국회에서 (이행계획서를) 비준 동의하면 2015년부터 외국 쌀에 대해 전면 수입 개방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당시 박흥수 농림부 장관은 “10년 후에는 관세화로 가든 관세 유예로 가든 명문에 뚜렷한 규정이 없다”고 반박했다. 장태평 전 농림부 장관도 2009년 10월 국정감사 때 “2014년에 가면 또 협상을 해서 관세(화)로 안 갈 수도 물론 있으리라고 본다”고 답변했다. 지난 5월16일 한국을 방문한 WTO 사무총장 호베르투 아제베두는 ‘쌀 현상 유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회원국 간의 협상이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쌀 관세화 유예 연장도 한국 정부가 꺼내들 수 있는 ‘협상 카드’라는 의미로 읽힌다.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정부의 관세화 불가피론은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무능한 모습만 다른 나라에 보여줄 뿐”이라고 비판한다.

“우리가 쌀시장 개방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쌀을 특별히 생각하는 농민, 국민의 정서를, 정부는 협상에서 좋은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도 계속 농민과 관계를 끊어버리고 국내 여론을 제압하려고만 한다. 국민을 대변해 다른 나라와 싸워야 할 정부가 거꾸로 자국민과 싸우려고 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2004년에도 정부는 굴욕적 자세로 쌀 협상을 했다. 관세화 유예 10년 연장을 받아들이면서 연간 의무수입물량을 41만t까지 확대했다. 그것도 무관세와 다름없는 관세 5%만 붙여서 말이다. 너무나 많은 것을 내주었다며 농민들이 재협상을 요구했고 2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정부는 재협상은 없다고 일축했다. 10년이 지나자 정부가 의무수입물량이 너무 많아졌다며 쌀 관세화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국 쌀이 국내 쌀 소비량의 9%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 의무수입물량(약 41만t)은 2015년 이후 관세화로 가도 없어지지 않는다. 2004년 쌀 협상이 잘못됐음을 이제야 정부가 자인하는 꼴이다.”

<font size="3">관세율조차 공개 않고 쌀 관세화는 불가피?</font>

-정부는 양곡관리법 등 국내법 개정은 쌀시장을 전면 개방하는 데 필요조건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 국회의 비준 동의도 다른 나라에 관세율을 통보하고 검증을 거친 뒤에야 밟을지 최종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헌법 제60조는 국회가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이 있다고 돼 있다. 쌀시장 전면 개방은 우리 농업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다. 당연히 국회가 다양한 의견을 듣고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 국회의 사전 동의를 받은 뒤 다른 나라에 관세율을 통보해야 한다. 다른 나라의 검증을 먼저 받고 우리 국회에는 통보만 하겠다는 발상은 국민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태다. 게다가 양곡관리법이 외국 쌀 수입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률로 제정돼 50년간 유지돼왔다. 쌀을 누구나 수입하게 하려면 양곡관리법을 개정하는 게 상식이다. 느닷없이 이미 외국 쌀 수입이 법률로 허용돼 있어 개정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게 말이 되는가. 그렇다면 정부가 중대한 속임수를 써온 것이다.

쌀시장 전면 개방은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공론화를 통해 국민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 결과 쌀을 전면 개방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쌀농사를 유지할 수 있다는 희망과 대책을 농민들이 얻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까지 대책을 전혀 내놓지 않고, 하물며 관세율조차 공개하지 않은 채 쌀 관세화는 불가피하다고 밀어붙인다. 국회가 정부를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 농민과 마주하도록 제구실을 해야 한다.”

사천=글·사진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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