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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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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호’ 초반부터 구태 작렬

새누리 전당대회 내내 강조한 ‘보수 혁신’ 구체적인 내용은 빠져… 당내에선

“김대표도 혁신 대상”이라는 의견과 “개혁의 물꼬틀 것” 기대도
등록 2014-07-22 15:56 수정 2020-05-03 04:27
김무성 새누리당 신임 대표는 청와대를 위한 ‘거수기 정당’이란 오명을 벗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고언을 할 수 있을까? 김무성 대표(가운데)가 7월14일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된 뒤 막판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인 서청원 의원과 함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김무성 새누리당 신임 대표는 청와대를 위한 ‘거수기 정당’이란 오명을 벗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고언을 할 수 있을까? 김무성 대표(가운데)가 7월14일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된 뒤 막판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인 서청원 의원과 함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혁! 신! 작! 렬! 혁! 신! 작! 렬!”

7월17일 오전 9시. 최고위원회의가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에서 왁자한 ‘혁신 다짐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윤상현 사무총장과 김세연 사무부총장, 박대출·민현주 대변인 등은 등 뒤에 ‘혁신작렬’이 각각 한 글자씩 적힌 흰색 티셔츠를 입고, “혁신작렬”을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려 보였다.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도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따라 외쳤다.

비박근혜계로 꾸려진 새 지도부

김 대표는 “박근혜 정부와 우리 새누리당은 국민 여러분께 대한민국 곳곳에 곪아터져 있는 적폐와 부조리를 뿌리 뽑고, 국가 혁신으로 혁신을 이루겠다고 약속드렸다. 대한민국의 혁신을 위해 무엇보다도 절실한 것은 보수 혁신, 바로 우리 새누리당의 혁신일 것이다. 우리 새누리당은 보수 혁신의 아이콘으로 거듭나 민생을 챙기고 경제를 살리고 다시 한번 도약하는 선진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가 앉은 뒤쪽 벽면엔 ‘보수는 혁신합니다’라고 적힌 펼침막이 새로 걸려 있었다. 말 그대로 ‘혁신’이 ‘작렬’하는 그림이었다.

김 대표는 대체 ‘무엇을’ 혁신하겠다는 걸까? 희한하게도 김 대표의 혁신에는 구체적인 목적어가 없다. 위기 때마다 새누리당이 반복적으로 선보인 혁신위원회, 비상대책위원회 등의 혁신 기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김 대표는 전당대회 기간 내내, 그리고 당대표 수락 연설에서도 “청와대에 할 말은 하는 여당”을 부르짖었다. 지난 7월14일 선출된 새 지도부는 서청원 최고위원을 제외하면 모두 비박근혜계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이번 전당대회는 ‘종박당’이라는 빈축을 살 정도로 ‘박근혜 보위대’를 자처했던 이전 지도부, 즉 친박근혜계를 향한 당심과 민심의 반발이라는 풀이가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김 대표가 당면한 혁신 과제는 집권당으로서 정부와 협조하면서도 민심의 흐름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행정부를 견제하는 국회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을 향한 김 대표의 첫 일성은 ‘대등한 당·청 관계 수립’과는 거리가 있었다.

7월16일 오전 정성근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기 전까지, 새누리당은 정 전 후보자를 정리해야 한다는 요구로 들끓고 있었다.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청와대에 ‘정성근 불가론’을 전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김 대표는 대표 당선 직후인 7월14~15일 여러 인터뷰에서 “전당대회를 열심히 하다보니 (인사 문제는) 정보가 부족하다. 그 부분은 현 지도부의 판단에 맡기겠다”며 특별한 의견을 내지 않았다. 7월15일 박근혜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오찬 회동에서도 김 대표는 인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심지어 김 대표는 청와대가 정 전 후보자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송부를 재요청한 뒤인 7월16일 오전엔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 전 후보자가) 다소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사실과 달리 (의혹이) 과장되게 알려져 있고, 억울한 면도 있는 것 같다. (임명을 강행키로 한) 대통령 결정에 협조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며 박 대통령을 감쌌다.

“‘정성근 불가론’도 못 전하고 무슨 혁신이냐”

이를 두고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7월17일 국회에서 열린 ‘쇄신전대 추진모임’에서 “김 대표가 선출된 바로 다음날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위증을 하고 자질이 떨어지는 정 전 후보자 임명을 청와대에서 강행하려 하자 당에서 제동을 걸지 않고 수용하기로 한 것 아니냐. 이번 건은 해명과 사과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한 초선 의원도 “대표로 선출되는 순간 자신이 ‘현 지도부’인데, 정 후보자 문제를 ‘잘 모르겠다’고 하는 건 정말 무책임한 일”이라며 “당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서 (장관 후보자들을)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했고, 김 대표는 혁신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정성근 불가론’도 전하지 못하는 게 국민 눈높이고, 혁신이냐”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안에선 김 대표도 혁신 대상이라는 의견이 고개를 든다. 전당대회에서 김 대표를 지지했던 한 재선 의원의 얘기다. “사실 친박 주류인 서청원 최고위원과 비박계라는 김 대표가 무슨 차이가 있나. 김 대표가 서 최고위원보다 나이를 덜 먹었다는 것 말고 뭐가 있나. 차마 서 최고위원을 당대표로 세울 수 없으니 김 대표를 지지했을 뿐이지, 김 대표도 새누리당의 대안이나 희망이 될 수는 없다.”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이미 당과 청와대는 통치력을 잃고 스스로 고립돼가고 있다. 이대로는 3년 반이나 남은 정권을 못 끌어간다. 김무성 체제 안에서 야당 역할을 할 새로운 주도 세력을 만들어야 하고, 이들이 쇄신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

반론도 있다. 그러잖아도 새 지도부 선출로 ‘친박의 몰락’이 회자되는 마당에, 김 대표가 바로 박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간 당 안팎에서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에 목소리를 내지 않을 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보면, 전당대회를 앞둔 지난 6월27일 김 대표가 당 중앙위원을 상대로 한 특강은 의미심장하다.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독선에 빠진 권력이라고 규정하진 않겠지만, 일부 그런 기미가 나타났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독선으로 빠진다. 권력이 독선으로 빠지면 여러 부작용이 나타난다”며 박 대통령을 비판했다. 또 “(박 대통령이) 소통이 잘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집권여당의 당대표가 대통령을 제대로 만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밝은 눈과 큰 귀가 돼 국민 여론을 가감 없이 전달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이는 4년 전 김 대표가 했던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그는 2010년 8월3일 와 한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 사고의 유연성에서 부족한 점이 감춰져 있다. 민주주의 비용을 지불할 생각이 없는 지도자가 대통령이 돼선 안 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여러 의견을 듣고 소통하는 데 인색하고 독선적이라는 김 대표의 판단은 이미 오래전에 내려진 셈이다.

본격적인 ‘김무성당 만들기’ 착수?

더구나 대통령 임기 중반이 지나면 레임덕(권력누수)에 빠지고, 차기 대선주자들은 대통령과 차별화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넓혀온 그간의 패턴을 보더라도, 김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무조건 허리를 숙일 리는 만무하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지금 김 대표는 대권 도전의 꿈을 숨기지 않고 있다. 당 안에선 7·30 재보선 이후 김 대표가 친박계 핵심인 윤상현 사무총장을 해임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김무성당 만들기’에 착수할 것이라는 말도 파다하다. 비박계의 한 의원은 “김 대표가 대권을 내다본다면 청와대와 각 세우기에 나설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최소한 (수평적인 당·청 관계 정립이라는) 개혁의 물꼬는 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혜정 정치부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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