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오른쪽)는 지난 4월10일 당에서 기초선거 공천 여부에 대한 당원투표·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 지 6시간30분 뒤에야 무거운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마지막 한 방울 땀까지 흘리겠다”며 대표직 사퇴설을 일단 잠재웠다.한겨레 김경호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는 여러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애들이 하도 이름을 갖고 놀려서, 왜 이렇게 흔한 이름을 지으셨나 원망도 했다”고 토로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자기 이름으로 ‘자해적 유머’를 만들어내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가령 중학교 때까지 반에서 1등 한 번 못했다고 설명하면서, “초등학교 성적표에 (간혹) ‘수’가 보이기도 했는데, 그게 내 이름 철수의 ‘수’였다”고 말하는 식이다.
여론조사에 손쉽게 기대어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그의 이름은 ‘새정치’라는 열망을 품는 개념으로 등식화됐고, 그는 제1야당의 공동대표까지 올라섰다. 그런데 이제 언론은 그의 이름을 빗대 ‘철수(撤收) 정치’ ‘간철수’라는 조소까지 보낸다. 결정적 시기마다 후퇴(철수)하거나, 상황을 살피다가 제풀에 주저앉는다는 비아냥이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양보, 2012년 대선 후보 사퇴, 지난 3월 독자 창당을 접고 민주당과 합당한 데 이어, 4월10일엔 여론조사·당원투표 형식(합산 결과 공천 53.44%, 무공천 45.56%)에 기대 민주당과 통합의 명분이던 기초선거 무공천 결정을 번복한 데 따른 것이다. 이제 그는 ‘간철수’라는 조롱을 정치적 멍에처럼 이고 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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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선 대체로 안 대표의 정치적 타격이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새누리당이 먼저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공약을 파기하고, 안 대표는 무공천 약속을 끝까지 지키려고 노력한 점은 있지만, 어쨌든 민주당과 통합하는 명분으로 내건 무공천이란 전제가 허물어진 측면이 있어서다. 특히 기초선거 무공천을 새정치라고 공식화한 안 대표가 통합 발표(3월2일) 이후 40일 동안 이 문제를 끌고 오면서, 6·4 지방선거 정책과 당내 광역단체장 후보들을 가림막에 가둬두는 역효과를 불러왔다는 의견도 있다. 40일 동안 여당의 무공천을 끝내 이끌어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새정치연합만 무공천을 강행하면 기초선거 패배가 우려된다는 당내 혼돈마저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여론조사가 민심을 거울처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데도, 이런 중요한 사안을 지도자의 결단이 아닌 여론조사에 손쉽게 기댔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처럼 장단점에 대한 논란이 있는 사안을 새정치의 프레임(구도)으로 가져간 것은 잘못이었다. 국민의 관심이 크지 않은 사안에 명운을 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무공천을 하려는 안 대표가 공천을 하라는 여론조사·당원투표에 무릎을 꿇었으니, 이건 정치적인 패배”라고 짚었다. 최창열 용인대 교수는 “안 대표가 새정치는 기초선거 무공천이라고 등식화한 뒤, 퇴로를 열어두지 않은 채 너무 멀리 와버렸다. 무공천이 새정치라고 강조했다가 공천하기로 했으니, 새정치의 퇴색도 불가피하다”고 평가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새정치연합이 민생을 강조했지만, 민생은커녕 공천 폐지냐 아니냐에 오랫동안 함몰됐다”고 지적했다.
왜 모든 비판을 안철수가 받나안 대표가 공천으로 돌아선 것은 ‘새누리당은 공천, 새정치연합은 무공천’이란 불공정 게임의 규칙을 바로잡는 결단으로 볼 수 도 있다. 그럼에도, 서울시장·대선 후보 양보에 이은 무공천 번복 결정이 그의 이미지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준한 교수는 “안철수 대표의 이미지가 항상 애매모호하고 우유부단한 브랜드로 굳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공천 논란에서 보듯 안 대표가 ‘약속 지키기’ ‘진영 논리에 갇히지 않는 정치 태도’를 새정치의 덕목으로 중요하게 강조하다보니, 예를 들어 ‘노동이 존중받는 복지’ 같은 정치적 지향점이나 구체적인 민생정책 등을 새정치의 내용으로 제시하는 데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썼다는 평가도 나온다. 조진만 교수는 “‘민주당과 안철수’가 통합하면서 기초선거 무공천을 고리로 한 것은 그만큼 두 정당이 합의할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걸 보여준다. 안 대표도 이제 정치 불신과 관련된 소재가 아니라, 새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새로운 어젠다(의제)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도 “안 대표는 정치의 축소화가 아니라, 좋은 정치를 자꾸 키우는 방향으로 좀더 숙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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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번 논란으로 안 대표가 내상을 입긴 했지만 ‘간철수’로까지 불리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론도 나온다. 김한길 대표 등 새정치연합 지도부도 기초선거 무공천을 실시해, 이번 지방선거를 ‘약속을 지킨 야당 대 거짓 정권’ 구도로 짜려 했기 때문에 모든 비판을 안 대표가 짊어지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기초공천 공약을 파기한 탓에 안 대표가 무공천에서 공천으로 선회했는데, 여권에서 정계 은퇴까지 거론하는 것은 안하무인 공세라는 얘기다.
도덕 교과서에 실릴 때의 고민새정치연합의 한 수도권 의원은 “서울시장 후보 양보와 대선 후보 사퇴는 양보라는 미덕의 정치를 한 것이다. 또 이번에는 공천 문제로 내부 분열이 크니, 여론을 수렴해 포용의 정치를 한 것이다. ‘철수정치’란 비판은 과하다”고 안 대표를 옹호했다. 새정치연합의 다른 인사는 “새정치연합의 정강·정책에 새정치를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정치’라고 규정했다. 안 대표가 지방선거 게임의 룰을 바로잡으라는 국민과 당원의 명령에 결국 따랐으니, 안철수의 새정치가 끝났다고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안 대표 쪽 인사도 “무공천 철회가 아니라 유보다. 새정치연합도 공천해서 새누리당의 독점을 막고, 나중에 힘을 갖춰 정치 개혁에 나서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안 대표의 정치적 위기가 일단 6·4 지방선거까지 유보됐다고 평가한다. 안 대표가 선거 승리를 견인하지 못하면 대표직 유지도 쉽지 않겠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공천으로 선회해 당의 혼돈을 수습했다는 당원들의 신뢰와 함께 선거에서 이긴 야권 지도자의 위치도 구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선거 환경은 좋은 편이 아니다. 새정치연합도 기초선거 공천으로 돌아서면서 야권이 애초 설정한 ‘약속 대 거짓’ 구도가 힘을 발휘하기 어려워졌고, 지지율 60%가 넘는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한 야권의 정권견제론이 강하게 먹힐지도 장담할 수 없다. 특히 공천 과정에서 옛 민주당과 안철수 쪽 인사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두 세력의 통합 효과는 더 반감될 수 있다. 안 대표가 4월10일 기자회견에서 “선거 승리를 위해 마지막 한 방울 땀까지 흘리겠다”고 다짐하면서 “참으로 어려운 선거가 될 것”이라고 한 것도 이런 선거 환경을 고려한 얘기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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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안 대표를 ‘간철수’라 부르며, 그에게 무공천 혼란의 책임을 지고 정계 은퇴를 하라는 일부의 주장은 실현 가능한 일일까? 흥미롭게도, 지방선거에 매진하겠다는 안 대표의 다짐보다는 몇 년 전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자신의 이야기가 실릴 때 내놓은 말을 참고하는 것도 해답을 유추하는 한 방법일 듯싶다.
“도덕 교과서에 내 이름이 실린다고 연락이 왔을 때 고민이 많았다. 엄청난 무게의 책임감을 느꼈다. 어린이들에게 도덕적인 인물로 소개된 사람이 나중에 결과가 안 좋으면, 자칫 도덕적으로 살면 실패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어떤 성취를 얻기 전에, 적어도 실패로 기록될 성급한 판단을 하지 않을 것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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