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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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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의 꿈, 박정희는 밀어줄까

‘박정희 컨벤션센터’ 공약으로 보수적 대구 표심 공략
“적대 구도를 깨려면 지역민 자부심 느끼게 해줘야”
등록 2014-04-03 17:08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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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56) 전 의원은 2010년 10월 민주당 동료 의원 모두에게 친필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A4용지 5장에 걸친 장문의 편지였지만, 얘기하고자 한 바는 단순하고, 절박했다. “언젠가는 ‘한나라당 출신’이란 낙인과 멍에를 제 어깨에서 좀 벗겨달라.”

‘한나라당 출신’ 낙인을 벗겨달라던 그

그가 ‘독수리 5형제’의 일원으로 한나라당을 탈당한 건 2003년 7월이다. 이들의 합류로 ‘전국 정당’을 표방한 열린우리당은 창당의 명분을 얻었다. 그러나 정치생명을 건 과감한 월경 행위는 물론, 그의 치열했던 민주화운동 이력, 지역주의에 대한 저항과 통합을 화두로 했던 ‘꼬마 민주당’,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 등에 몸담았던 정치 경력은 무력해졌다. ‘정치철새’ ‘배신자’라는 한나라당의 공세보다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민주당 내의 꼬리표 탓이었다. 통합을 강조하는 그의 정치 철학이 상대적으로 개혁적이지 않게 비치는 면도 있지만, 그는 자신의 저서에 라는 제목을 붙일 만큼 당내의 ‘인정투쟁’에 매달려야 했다. 그의 ‘출신’을 거론하는 일이 사라진 건 “죽을 각오를 하고 간다”며 2012년 총선 때 대구에 출마한 이후다.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말만 무성한 정치권에서, 그것은 신선했지만 가혹한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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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 김 전 의원을 “대구에서 도망가면 나쁜 놈”( 3월15일치 인터뷰)으로 만든 총선 득표율이다. 민주통합당 간판으로 ‘박근혜의 경제교사’로 불린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52.8%)과 맞붙어 올린 성적이었다. 낙선 2년여 만에 그는 다시 대구에 도전한다. 이번엔 시장 선거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통합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나선다. 그는 지난 3월24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최초의 야당 대구시장이 되겠다”고 출마를 선언했다.

‘새누리당 후보 대 김부겸’이라는 보기 드문 ‘빅매치’가 성사됐지만, 가혹한 대결 구도는 여전하다. 일대일 가상 대결 여론조사에서 그는 30% 정도의 지지율로 새누리당 후보에 20%포인트 정도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선 때 출마했던 수성구 이외의 지역에서는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새누리당은 8 대 1의 경쟁률을 보인 당내 경선 후보를 서상기(북구을·3선)·조원진(달서구병·재선) 의원과 권영진 전 의원, 이재만 전 동구청장 등 4명으로 압축했다.

역대 대구시장 선거에서는 1회(1995년) 때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다. 1회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재선 의원을 지낸 문희갑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고, 그가 2회(1998년) 선거 때 민자당 간판으로 재선한 점을 고려하면 ‘여당 일색’이었던 셈이다. 민선 3대 조해녕 시장, 4·5대 김범일 시장은 모두 행정고시 관료 출신이고, 역대 시장 모두 경북고를 나왔다. 반면 현재 야권은 3회 선거 때까지 아예 후보도 내지 못했다. 4회(2006년) 선거 때 열린우리당 이재용 후보가 21.1%를 득표한 게 최고 성적이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대구 지역에서 80.1%를,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19.5%를 얻었다.

지역 진보단체 “유신독재 사과가 먼저”

보수적인 유권자를 파고들겠다는 전략은 명백해 보인다. 김부겸 후보가 출마 선언일에 야권 출마자들이 찾는 2·28 학생회관 기념탑 대신 대구 앞산의 충혼탑을 참배한 것이 ‘뉴스’가 됐고, 예비역 공군 중령 출신으로 군복을 입고 함께 다닌 김 후보의 아버지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이런 행보가 오히려 평범해 보이는 건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짓겠다는 공약 때문이다. 김 후보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일궈온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아직도 서로 적대시하고 있다. 두 세력의 공적과 가치를 서로 공인하도록 만들어 역사적 화해를 이루겠다”며 그 상징으로 대구에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세워 광주의 김대중 컨벤션센터와 교류하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김 후보는 “우리 속에 너무 오랫동안 녹아 있는 지역주의를 걷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김부겸이 책임지고 민주화 세력을 설득하겠다”고 말한다.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컨벤션센터 건립으로 진정한 화해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주장이 너무 단순하거나 정치적으로 들린다는 이유에서다. 대구경북진보연대는 3월25일 성명에서 “영호남 교류를 통한 화해의 진정성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4월9일은 인혁당 사법 살해 39년이 되는 날로, 유족의 아픔이 아직 치유된 것도 아니고 변변한 기념물조차 없는 게 대구의 현실이다. 박정희 유신독재와 박근혜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 등이 있은 후에 화해와 상생의 의미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의 공약은 지역 정서를 지나치게 의식한 ‘박정희 마케팅’이거나, 이슈를 만들어 시선을 끌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이슈로 삼아 단숨에 색깔 논쟁을 벗고 보수 세력에게 표를 얻겠다는 순진한 발상이라면 지금이라도 그만두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김 후보의 의지는 단호하다. ‘화합을 위한 단초’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김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은 많이 하지만, 뭔가 획기적으로 해야 바뀌지 않겠나. 대구시장과 광주시장이 ‘달빛(달구벌-빛고을) 동맹’을 맺어 국책사업을 함께 추진하고, 영호남 국회의원들이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를 함께 방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거고, 적대 구도를 깨려면 대구 시민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진보 쪽에서 비판을 많이 하지만, 일반 시민들한테는 먹힌다”고 말했다. 충혼탑 참배나 재향군인회 방문 등이 그동안 야당의 발목을 잡아온 색깔론과 종북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한 행보라면, 박정희 컨벤션센터 건립 공약은 하나의 ‘고육지책’이라는 얘기다.

‘사건’은 만들어질 것인가

김 후보가 들고나온 또 하나의 전략은 ‘대구 대박론’이다. 그는 “대구 출신 대통령과 야당 시장이 두 손을 맞잡는다면 무엇을 못하겠느냐. 최초의 야당 시장이 되어 상생의 정치를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가 내건 ‘화해의 정치’ ‘상생의 정치’는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직설적 명분을 에두른 표현으로 읽힌다. 김 후보의 선거 전술은 지역 정서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지역 정서에 기대는 이중의 역설로도 보인다. 분명해 보이는 건, 김 후보가 당선된다면 한국 정치사에 하나의 획을 긋는 ‘사건’이 되리라는 점이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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