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 설득했습니다. 첫 번째는 법리적으로, 두 번째는 ‘어차피 무죄가 나온다. 무죄 구형을 전향적으로 해 국민들에게 칭찬받아보자’고 설득했는데 안 돼 최후의 수단으로 이의제기권을 행사했습니다. 합리적인 이유로 설득했다면 따르지 않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상부에서 ‘백지구형’(판사에게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달라’고 구형 의견을 내는 것)이 적법하다고 주장했던 것에 대한 근거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발했습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재량권 일탈·남용에 해당한다” </font></font>지난해 12월11일 오전, 서울행정법원 208호 법정. 증인석에 선 임은정(40·사법연수원 30기) 창원지검 검사는 신문 과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2012년 12월,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 소속이던 임 검사는 5·16 쿠데타 직후 혁신계 정치인들에 대한 탄압 과정에서 옥살이를 한 고 윤길중씨의 재심에서 다른 검사에게 구형을 하도록 한 담당 부장검사의 지시를 어기고 법정 안 검사 출입문을 잠근 채 무죄를 구형해 논란을 빚었다. 법무부는 지난해 직무이전 명령 위반, 직무방해, 검찰 내부 게시판 게시글로 인한 품위 손상, 사건 당일 2시 이후부터 오후 반일연가를 사용할 수 있음에도 정오께 퇴근해 성실 의무를 위반했다는 등의 이유로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임 검사는 이에 반발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징계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냈다(제 961호 참조).
징계 처분 1년 만인 지난 2월2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문준필)는 임 검사에 대한 정직 4개월의 징계 처분 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검찰청장 또는 그 위임을 받은 차장검사가 아닌 공판2부장이 다른 검사에게 구형을 하도록 한 직무이전 명령은 위법하지만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르지 않고 무죄 구형을 하는 등 일부 징계 사유는 인정된다”며 “징계가 비위 정도에 비해 지나치게 무거워 재량권 일탈·남용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특히 재판부는 2004년 검찰청법 개정으로 일선 검사의 소신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이의제기권’ 행사가 실질적으로 행사되지 못한 사정을 감안했다. “공판2부장은 의견 취합 절차를 거쳤으나, 원고로부터 그 공정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의제기권에 관한 세부 규정을 만들지 않은 피고(법무부 장관) 잘못으로, 원고와 공판2부장 간의 갈등을 초래했고 결국 원고로 하여금 지휘·감독에 반하는 구형에 이르게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백지구형’ 자체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임 검사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백지구형이 사실상 무죄구형으로 여겨지며, 과거의 유죄 확정판결이 현재의 관점으로 무죄가 됨에 따른 검찰의 곤혹스런 입장이 반영된 점 등을 고려해 적법하다는 것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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