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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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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을 조사하나 여론을 조장하나

오거돈이 이겼다가 서병수가 이겼다가, 혼돈 직전의 지방선거 여론조사
조사 방식에 따라 결과 다르고 입맛에 따라 다르게 포장돼
등록 2014-02-13 15:00 수정 2020-05-03 04:27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후보들은 민감해하고, 유권자들은 혼란스러워한다. 얼마나 믿어야 할까. 유권자들이 선거 유세를 들으며 박수를 치고 있다.윤운식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후보들은 민감해하고, 유권자들은 혼란스러워한다. 얼마나 믿어야 할까. 유권자들이 선거 유세를 들으며 박수를 치고 있다.윤운식

2010년 지방선거 직후 “최대의 패배자는 여론조사기관”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선거 전에 쏟아진 여론조사 대부분이 빗나갔다. 집전화에 의존하는 조사 방식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고, 이후 여론조사기관들은 집전화와 휴대전화를 섞거나, RDD(Random Digit Dialing·임의 번호 걸기) 방식을 도입하는 등 조사 기법을 개선해 정확도를 높여왔다. 그러나 6·4 지방선거를 100여 일 앞둔 지금도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들쭉날쭉한 결과가 쏟아지고, 아전인수식 해석이 곁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혼란과 왜곡은 조사 방식뿐 아니라 이를 입맛대로 보도하고 활용하는 행태, 그리고 모호한 정치 상황에서 비롯된다.

누가 묻느냐, 어떤 순서로 묻느냐

최근 발표된 부산시장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안철수 신당 소속으로 가정하고 서병수 새누리당 의원과 가상 양자 대결을 붙인 결과, ·리서치플러스 조사에서는 오 전 장관(46%)이 서 의원(33.1%)을 크게 앞섰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서는 거꾸로 서 의원(49.9%) 지지율이 오 전 장관(33.1%)보다 훨씬 높았다. 서울시장과 충남도지사 선거 여론조사 결과(표 참조)도 들쭉날쭉하기는 매한가지다. 광주시장 민주당 후보 자리를 놓고 이용섭 의원과 경쟁하는 강운태 시장은 지난 1월 말 이 의원이 큰 격차(13.4%포인트)로 앞선다는 ·더플랜의 조사 결과 보도에 대해 선거관리위원회에 이의 제기를 하기도 했다. 다른 조사에서는 대부분 자신이 앞섰다는 이유에서다.

천차만별의 결과를 낳는 가장 큰 이유로 전문가들은 질문 방식을 꼽는다. 전화를 받은 이에게 녹음된 기계 음성을 들려주는 자동응답시스템(ARS) 방식이냐, 사람(면접원)이 직접 묻는 면접조사 방식이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는 얘기다. 윤희웅 ‘민’ 정치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은 “ARS 조사는 외부 활동성이 적은 사람, 대체로 보수적 성향의 유권자가 과대 표집되는 경향이 있다. 많게는 10%포인트가량 차이가 나기도 한다. 규모가 큰 조사기관은 대부분 ARS 방식으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질문 문항도 조사 결과에 영향을 끼친다. ‘질문 순서 효과’다. 일반적으로 이름이 먼저 나오는 사람이 3~5% 더 많이 나오고,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후보를 먼저 물으면 효과가 더 커진다고 한다. 기호순대로 여당 후보를 먼저 묻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상 후보로 정해진 박원순 시장을 먼저 넣으면 그의 지지율이 실제보다 높게 나올 수 있다. ‘문맥 효과’도 있다. 어떤 표현과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새누리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연대가 불가피하다’고 묻는 것과 ‘야권 세력이 합치는 야권 연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묻는 것은 질문에 차이가 내장돼 있다.

“초반은 인지도, 결국 당 대 당”

조사 방식의 문제뿐 아니라, 무엇보다 지방선거 구도가 짜이지 않은 상황적 요인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가상 대결 지지도를 묻는 현재 여론조사는 아직 ‘간 보는 수준’이어서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조사에서 송영길 인천시장이 이번에 출마할 경우 지지하지 않겠다는 사람(42.4%)이 지지하겠다는 사람(33.7%)보다 많았는데도, 양자·3자 대결에서 모두 큰 차이로 1위를 차지했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민주당 현직 단체장이 존재감을 갖고 재선에 도전하고 있고, 새누리당이나 안철수 신당 후보의 존재감이 아직 모호한 지역의 경우 현재 여론조사가 진짜 경쟁력을 가늠한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 대진표가 짜이면 결과가 제법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지지율이 낮은데도 소속 단체장의 지지율이 높은 결과는 ‘개인기’가 반영된 측면도 있지만, 인지도나 업무 연속성에 대한 기대감 등 현직 프리미엄 요인이 크다는 것이다. 부산에서 새누리당 후보군이 오거돈 전 장관에게 고전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새누리당 의원들은 “초반에는 인지도 조사고, 좀더 지나면 결국 당 대 당 싸움이다. 지금 조사는 안 맞는다”(유기준 의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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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의 혼란은 생산 단계보다는 오히려 언론 보도나 후보 등 유통 단계에서 야기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번 지방선거와 관련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적발한 불공정 보도 76건 가운데 73건이 여론조사 보도 위반이었다. 지역에서는 후보가 언론사의 여론조사 비용을 대고, 그 후보에게 유리하게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를 선거운동에 활용하는 행태가 선거 때마다 지적돼왔다.

선거 여론조사 보도에서 문제가 되는 건 크게 두 가지 유형이다. 오차범위 안 결과를 확대해석하거나,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주관적 해석을 붙이는 경우다. 중앙선관위가 제시한 사례를 보면, 후보자 지지도에서 ㄱ후보자가 ㄴ후보자를 15% 이상 앞서고 인물 선호도에서 두 후보자가 오차범위 안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ㄱ후보자 대세론 흔들’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부동층이 60% 이상인 조사에서 ㄷ후보자의 지지도가 28%로 1위인 조사 결과에 대해 ‘ㄷ후보 독주’라는 제목으로 당선이 유력하다고 보도한 사례도 있다. 최근 한 일간지 1면 기사에도 “오차범위 안이긴 하지만 여야가 1대1 맞대결을 벌일 경우 범야권 후보가 앞설 가능성이 높다”는 대목이 나온다. 오차범위 안은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는데 주관적 의미를 부여한 경우다. 지방선거에 나서려는 이들은 ‘아무개 후보 적합도 1위’ ‘누가 누구에게 앞서’ 등 자신들에게 유리한 식으로 여론조사 결과의 일부만 떼어내 홍보하곤 한다. 여론조사를 여론이 반영된 결과물이 아닌 여론을 선점하거나 조장하려는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질문 내용’을 공개하는 곳 거의 없어

단순히 수치만 볼 게 아니라, 조사 방식 등을 꼼꼼히 뜯어봐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법이 정한 대로 공개하지 않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제108조는 선거 여론조사를 공표할 때 △조사의뢰자와 조사기관·단체명 △피조사자의 선정 방법 △표본의 크기(연령대별·성별 표본의 크기 포함) △조사 지역·일시·방법 △표본오차율 △질문 내용 △응답률 △오차 보정 방법을 모두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ARS 조사인지 면접조사인지, RDD 방식에 의해 조사 대상자를 선정했는지, 집전화와 휴대전화를 섞었는지를 다 밝혀야 한다. ‘자동응답 RDD’ ‘집+휴대전화 RDD’ 등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공개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가장 중요한 ‘질문 내용’을 공개하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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