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재편이 아니라 한국 정치 재편이 목표라고 한다. “제3섹터의 존재는 대세의 흐름”(6월4일 기자간담회)이라고 했던 안철수 의원이 지난 11월28일 신당 창당을 공식화하며 밝힌 포부다. “낡은 틀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담아낼 수 없으며, 이제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데, 창당 시기와 방식, 참여 인물 등은 밝히지 않았다. ‘야권’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좌우를 뛰어넘는 제3정당의 깃발을 들겠다는 점은 더욱 분명해졌다.
안 의원이 재편의 주도권을 쥐려면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을 만한 성적을 내야 한다. 12월 초 출범하는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추진위원회’(이하 새추위) 또는 신당의 이름으로 뛰어들 지방선거는 ‘안철수 세력’이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느냐, 2016년 총선·대선을 강타할 메가톤급 태풍이 되느냐를 가늠하는 관문이다. 성공할 수 있을까?
정주영·이인제·문국현… 제3당 흑역사“역사상 제3지대에서 정치세력화가 성공한 예가 없다”는 민병두 민주당 전략홍보본부장의 말은 경계심을 표현한 것이지만, 실제로 그렇다. 1992년 정주영의 통일국민당, 1997년 이인제의 국민신당, 2007년 문국현의 창조한국당 등 제3후보가 만든 정당은 모두 단명했다. 개인기에 의존해 선거용 정당을 만들었다 선거 이후 사라졌다. 양당 체제라는 기득권 구조는 제3정당이 탄생하는 이유지만, 실패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얼핏 틈새시장으로 보이지만, 막상 가보면 레드오션이다. 소선거구제로 치러지는 총선과 결선투표 없는 대선에서 제3정당이 성공하기는 매우 어렵다.
안 의원도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여러 정당들이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성공하지 못했다. 얼마나 기득권이 강고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안 의원의 경우 과거 사례와 다른 점이 있다. 그의 지지율은 선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유지돼왔다. 정치 불신 기류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제1야당이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도 유리한 조건이다. 윤희웅 민정치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은 “보수 인물의 제3정당은 결국 보수 1당(새누리당)으로 수렴됐다. 보수 지지층의 결속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권 지지층은 조건부 지지 성향이 강하다. 민주당이 안 의원의 공간을 열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시험 무대가 지방선거라는 것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대선과 달리 지방선거는 투표율이 낮다. 중도층 투표율이 낮기 때문이다. 2006년 51.6%, 2010년 54.5%에 그쳤다. 기초단위 선거는 ‘조직’에 좌우되고, 광역단위에서는 ‘인물’이 중요하다. ‘새로운 바람’이 불기 쉽지 않다. 안 의원 쪽은 모든 지역에 후보를 내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당선 가능성이 있는 지역 위주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 것으로 알려졌다. 윤희웅 센터장은 “호남 광역단체장 3곳 가운데 당선자를 내고, 다른 지역에서는 ‘미니멈 2등’으로 민주당에 비교우위 성적표를 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인물인데, 영입 성과는 현재까지는 가시적이지 않다. 지방선거 예비후보군 격인 ‘정책네트워크 내일’ 실행위원 595명의 명단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안 의원의 기자회견 전날 민주당에 탈당계를 낸 이계안·류근찬 전 의원의 합류가 기정사실화한 정도다. ‘이삭줍기’ ‘2부 리그’라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참신한 신인을 찾기는 쉽지 않고, 기성 정치인으로는 ‘새정치’를 충족하기 어렵다는 딜레마다. 안 의원은 12월 초 새추위 구성을 발표하는 등 영입 작업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안 의원이 창당 시기를 정하지 못하고 ‘개문발차’ 형식으로 창당을 추진하는 데는 인물난과 함께 기초단체 정당공천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야권 연대’와 ‘야권 분열’이라는 두 프레임 모두 안 의원에겐 부담이다. 중간에서 양쪽을 견인하겠다고 하지만, 지지층 상당 부분은 야권을 기반으로 한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심판론이 형성될 경우 단일화에 대한 국민 요구가 거세질 수 있다. 심판론보다 정치 불신 기류가 커지면 제3정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게 된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새누리당 어부지리’라는 결과가 나올 경우엔 안 의원도 책임론을 피해가기 어렵다. 공식적인 당 대 당 연대의 가능성은 적지만, 실제 선거전에서는 지역마다 후보 지지율 순위에 따라 ‘현실적 공조’가 이뤄질 여지가 있다.
민주당 대 안철수, 전쟁은 시작됐다지역에서는 이미 민주당과 안 의원 쪽의 전쟁이 시작됐다. 민주당 관계자는 “안 의원 쪽 서울 지역 실행위원(113명) 가운데 20여 명은 민주당 당적을 가진 것으로 파악돼 탈당계를 받고 있다. 단일화하지 않고 둘 다 출마하는 건 같이 망하자는 얘기”라고 말했다. 민주당 경기도당 쪽의 한 인사는 “당내 공천 경쟁을 하는 것보다 안 의원 쪽에서 와달라고 하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의당은 한층 우호적이다. 심상정 의원은 “새정치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장도에 나서는 첫걸음을 뗀 것을 환영하며 성공을 기원한다”며 적극적인 기대감을 나타냈다. 지방선거에 ‘뾰족수’가 없는 정의당의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도 읽힌다. 여권도 무풍지대는 아니다. 안 의원이 보수 성향의 중도층·무당파에 대한 확장성을 현실화할 경우 수구로 치닫는 새누리당에도 폭풍이 몰아칠 수 있다. 물론 안 의원이 하기 나름이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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