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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없어서 죄가 없다 했는데 왜 죄가 없냐 물으시면

‘채동욱 검찰총장에 혼외 아들 의혹 보도’ 뒤 ‘악마의 증명’ 요구하는 <조선일보>
검찰 안팎에선 <조선일보>가 전면에 나섰지만 청와대·국정원이 지원 사격 추측
등록 2013-09-14 18:03 수정 2020-05-03 04:27

 왜 그랬을까.
 통합진보당 이석기(51) 의원이 내란 음모 혐의로 구속된 다음날인 9월6일, 는 채동욱(54)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을 1면 기사로 보도했다. 이를 부인하는 채 총장에게 연일 사실이 무엇인지 밝히라며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붓고 있다. ‘고위 공직자, 의문의 여성, 혼외 아들’이란 솔깃한 소재들 탓에 검찰 안에서조차 ‘유전자 감식을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의 논조에 공감하는 정서가 일부 형성되고 있다. ‘채 총장의 혼외 아들’ 블랙홀로 검찰 이슈가 빨려드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관전 포인트는 채 총장과 혼외 아들이 아니라, 그리고 ‘그들’이다.
 

법무부의 감찰 지시와 관련해 사의를 표명한 채동욱 검찰총장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법무부의 감찰 지시와 관련해 사의를 표명한 채동욱 검찰총장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장관의 만류에도 관철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실이 아니다. 유전자 검사를 받을 용의도 있다”는 채 총장의 입장 표명에도 의 공세 수위는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혼외 아들의 아버지가 아니라면 아니라는 점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도 했다.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입증 책임을 떠넘기는 궤변에 가까운 발상까지 늘어놓고 있는 셈이다. ‘없다’는 것의 입증은 애초 불가능하다. ‘없다’는 것을 무한대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증명할 수 없다는 뜻에서 흔히 이를 ‘악마의 증명’으로 일컫는다.

 “저의와 상황을 파악 중에 있다.” 의 보도 당일 채 총장의 첫 반응은 뜻밖이었다. 당시 대검찰청 간부들은 ‘사실무근이다’라는 답변을 예상했다고 한다. 채 총장이 곧이어 낸 최종 입장을 보면 ‘저의와 상황’에 담긴 배경을 읽을 수 있다. “검찰을 흔들고자 하는 일체의 시도들에 대해 굳건히 대처하겠다.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검찰 본연의 직무 수행을 위해 끝까지 매진하겠다.” 사적 영역에 대한 의 의혹 제기를 채 총장은 ‘검찰 흔들기’로 규정한 것이다. 다만 흔드는 주체가 누구라고는 언급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일련의 흐름을 볼 때 검찰을 흔들고자 하는 배경이 있다고 총장이 본 것 같다. 보도의 문제만 놓고 한 언급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무언가 감지를 했는지 모르겠으나 총장으로서 분명한 의지를 표명한 가장 센 발언이다. 흔들려는 세력에게 경고를 보낸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련의 흐름’은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 조작 및 정치 개입 의혹 사건 수사에서 빚어졌다. 검찰은 지난 4월 대표적인 특수·공안 검사들로 특별수사팀을 꾸려 국정원에 대한 고강도 수사를 진행했다. 검찰의 압수수색 당시 자료 협조 문제를 놓고는 검찰과 국정원 사이에 마찰이 일어나기도 했다. 검찰은 수사 두 달 남짓 만에 원세훈(62)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55)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황교안(56) 법무부 장관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말라고 주문했으나 채 총장은 이를 관철시켰다. 황 장관의 지시는 사실상 청와대와 여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채 총장은 이때부터 이들의 눈 밖에 났을 수 있다.

 

는 지난 9월6일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존재 의혹을 1면 기사로 보도했다. 아이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이 ‘채 총장과 무관하다’고 써 보낸 편지에 의구심을 제기(왼쪽, 9월11일 3면)하는 등 채 총장과 전면전을 벌이는 분위기다. 조선일보 기사 캡처

는 지난 9월6일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존재 의혹을 1면 기사로 보도했다. 아이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이 ‘채 총장과 무관하다’고 써 보낸 편지에 의구심을 제기(왼쪽, 9월11일 3면)하는 등 채 총장과 전면전을 벌이는 분위기다. 조선일보 기사 캡처

취재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내밀한 정보들 

 ‘일련의 흐름’을 되돌아보면, 의 심사를 뒤틀어놓은 것도 국정원 사건 수사 때로 짐작된다. 는 국정원 사건 수사 당시 ‘공직선거법 위반 적용은 어렵다’는 내용을 기사화하며 줄곧 검찰 수사를 견제했다. 검찰의 국정원 사건 수사 발표 당일에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는 발표 당일치 조간신문에서 특별수사팀이 대검찰청과 법무부에 제출한 수사보고서를 입수했다며 ‘문재인·안철수 직접 비판은 각각 3건’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수천 건의 댓글 가운데 고작 3건밖에 안 되는 글로 어떻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채 총장은 수사보고서가 사전 유출되고, 발표 전에 언론에 보도된 데 격분하며 대검 감찰본부에 특별감찰을 지시했다. 는 이후 기사와 칼럼 등을 통해 채 총장과 검찰 수사에 비판적인 내용을 써왔다.

 검찰 안팎에서는, 겉으론 가 전면에 나섰지만 청와대 일부 인사와 국정원이 배후에서 지원 사격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혼외 아들 의혹’ 보도에는 정상적인 취재 과정으로는 좀처럼 확인하기 어려워 보이는 내밀한 개인정보가 담겨 있다. 아이의 사립 초등학교 개인 기록, 아이의 어머니라는 임아무개(54)씨의 주소지 이력 및 전·월세 계약 내용, 등록된 차량 등이다. 당사자들이 인정하기 전에는 확인하기 어려운 혼외 아들의 존재 여부에 대해 가 첫 보도에서 ‘밝혀졌다’고 확신에 찬 표현을 쓴 대목도 눈에 걸린다. 검찰 관계자는 “이런 보도는 권력적 배경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다. 가 취재를 열심히 해서 정당한 의혹 제기를 했다고 보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보도의 배후와 관련해 검찰 안에선 청와대 전·현직 일부 인사의 실명이 돌고 있다. 채 총장의 사퇴설이 청와대 주변 인사들을 통해 진작에 돌았다는 말도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 사건 수사 때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이 무조건 안 되는 것으로 계속 보고를 했다고 한다. 정확하게 법리적인 진단을 내려서 여러 경우의 수를 보고했어야 하는데, 혐의 적용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검찰 보고를 중간에서 누군가 자른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알고 있던 청와대에서 검찰이 덜컥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니 사실상 항명 수준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내부 신뢰를 잃는 등 피해를 본 청와대 인사로선 채 총장이 곱게 보일 리 없었을 거다. 그런 몇몇 사람이 이번 작업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위원회를 통해 임명된 첫 총장  

 다른 검찰 관계자는 “청와대는 첫 총장추천위원회를 통해 임명된 채 총장을 자기들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참여 인사들이 저녁 모임을 가졌는데 핵심 인사인 교수 ㅂ씨가 ‘채 총장은 이제 날린다’는 언급을 했다고 들었다. 청와대의 한 인사는 최근 같은 지역 출신의 검사들에게 전화해 ‘채 총장 조만간 사퇴하니 줄 서지 말라’고 얘기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 사건 여파로 청와대가 검찰을 손볼 거라는 소문은 그동안 파다했다. 실제 청와대가 지난 8월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을 교체할 때 국정원 사건 수사에 관여한 검찰 고위 간부들을 함께 인사 조처 하려 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당시만 해도 청와대가 검찰을 ‘관리’하더라도 임기(2년)가 보장된 채 총장을 직접 겨냥하지는 않을 거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검찰 관계자는 “총장 취임 5개월 만에 이렇게 직접 공격이 들어올 걸로는 예상 못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정상적인 법치국가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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