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고공 행진을 떠 받치는 주요한 주체는 다름 아닌 언론이다. 의혹은 덮고, 드러난 사실들은 공방으로 얼 버무렸다.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성과는 부 풀리고, 본질은 비켜갔다.
‘박정희 신화’에 박 대통령 오버랩우선 눈에 띄는 건 지지층 결집의 강력한 코드인 ‘박정희 신화’에 그 딸인 박 대통령을 오버랩시키려는 시도다. 지난 5월1일 청와 대에서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 직후 보도 가 대표적이다. 는 ‘박, 무역투자 진흥회의 직접 주재… 박정희표 회의 34년 만에 부활’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무 역투자진흥회의’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5년부터 매달 정 례적으로 주재하던 ‘수출진흥회의’를 34년 만에 복원시킨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박 대통령도 아버지를 따라 무역투자진흥회의 를 분기별로 정례화하고, 회의를 일일이 직 접 주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 했다. 도 “24시간 수출만을 생 각하는 대통령이 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라 는 남덕우 당시 재무부 장관의 회고록 내용 을 인용하며 무역투자진흥회의 부활 소식 을 전했다. 이 기사의 제목은 ‘1965·2013… 박 대통령의 수출 DNA’였다. 다른 언론들도 당시 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입은 빨간색 상 의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빨간 상의는 투 자 활성화복”이라는 식의 기사를 앞다퉈 쏟 아냈다.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 의혹이 확산되는 과정에서도 언론은 사태를 애써 축소 보도하거나, 외면 혹은 왜곡하는 방식으로 진화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줬다. 김창균 부국장의 기명 칼럼을 이례적으로 4월24일치 1면에 배치한 가 대표적이다. ‘대선여론 조작 목적이면 330위 사이트 골랐겠나’라는 제목의 이 칼럼은 “국정원 김씨는 대선 전 4개월간 댓글 120개를 달았다. 하루 평균 한 개꼴로 한두 줄짜리 짤막한 댓글을 올린 것이다. 대선에 개입하라는 상부 지시를 받고도 김씨가 이랬다면 태업 아니면 항명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가설이 성립하려면 김씨는 가급적 네티즌이 많이 모이는 사이트, 그것도 대선에서 누구를 찍을지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이 많이 모이는 사이트로 갔어야 한다”는 논리도 동원한다.
드러난 사실만을 추려보자. 6월11일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그를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국정원 심리정보국 직원들은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라 국내 주요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와 다음을 포함한 15개 인터넷 사이트에 수천 건의 정치적 내용이 담긴 댓글을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포털 사이트의 글 상당수가 수사 직전 삭제된 사실도 진선미 민주당 의원에 의해 드러났다. 숨겨진 댓글은 훨씬 더 많다고 보는 게 타당한 추론이다.
방중 동안 한·중 우정콘서트 연 KBS그뿐만이 아니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예외는 아니었다. 는 6월26일 국정원과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트위터 계정 658개가 지난 대선 전까지 약 24만 건의 글을 작성하거나 전파(리트윗)시켰다고 전했다. 그중 대선 및 정치 관련 글이 6만 건에 달했다. 사실이 사실로 드러나도, 언론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언론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합리적 의심’이 소멸한 자리에 정권에 대한 ‘비합리적 옹호’만이 남았다. 김창균 부국장은 이같은 사실이 확인된 7월17일에도 역시 기명 칼럼에서 “하루 평균 6만 명이 방문하는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국정원 직원들이 문재인 후보를 겨냥해 작성한 댓글 서너 개”라고 썼고, 야권의 반발을 ‘대선 불복’ 프레임으로 몰아갔다. 국정권 사태를 북방한계선(NLL) 논란으로 뒤덮으려는 시도는 정확히 현재의 청와대 및 새누리당의 정치적 이해와 맞닿아 있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무단으로 공개한 직후인 6월25일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바꿔야” 발언을 1면 머리 제목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이뤄진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6월27~30일) 전후에 나타난 언론의 행태도 점입가경이다. 는 ‘통일 한반도의 비전 중국을 설득하다’ ‘박 대통령 수준 높은 중국어·고사 인용에 청중들 감동’ 등의 제목을 뽑았다. 는 박 대통령이 중국에서 선보인 의상을 만든 바느질 장인을 인터뷰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왕을 상징하는 노란색으로 박 대통령을 빛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신문과 방송의 뉴스는 박 대통령의 의상, 중국어 실력, 현지에서의 미담, 외교 및 경제적 기대 효과에 대한 전망 등으로 도배됐다. KBS는 박 대통령의 방중에 맞춰 중국 현지에서 ‘한·중 우정콘서트’를 개최했다. 길환영 KBS 사장이 직접 진두지휘한 행사다. 한류 스타인 아이돌 가수들이 총출동했다. 콘서트 현장에서 길 사장은 박 대통령과 직접 만나기도 했다.
상식적으론 납득하기 어려운 보도 행태는 계속 이어졌다. 는 7월1일치 칼럼에서 박 대통령의 방중 일정 이틀째인 6월28일 저녁 베이징에 비가 내린 일을 두고 “흔치 않은 자연현상이 나타날 때 ‘서기’(瑞氣·상서로운 기운)로 여기는 일이 많다. 특히 날씨가 그렇다. 연평균 강수량이 500mm 정도에 불과한 ‘마른하늘’의 베이징에서 모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라는 게 현지인들의 반응”이라고 전했다. 가히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가랑잎을 타고 대동강을 건너는’ 수준의 의미 부여다.
조선, 검찰 수사 흔들며 국정원 비호박근혜 정부의 정통성 시비로까지 번질 수 있는 국정원 사태에서 여론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제물이라면 그 무엇이라도 환영이다. 이 언론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을 대대적으로 다루며 이를 박 대통령의 ‘업적’으로 포장했다. 는 ‘전두환, 법과 원칙의 레드카드 받다’라는 제목의 7월17일치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압수수색은 좌파들에 의해 ‘유신의 딸’로 매도됐던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 그 어떤 진보 성향 정부도 하지 않았던 일을 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민주주의 정통성을 지닌 보수정부’를 자임하는 박근혜 정부가 권위주의적 우파 정권이었던 5공화국의 잔재에 대해 철퇴를 내리며 보수주의의 차별성을 분명히 한 것이다.” 역시 ‘역대 정권 정치 보복 논란 우려… 전두환 추징금 집행에 소극적’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비슷한 논조를 드러냈다.
방송사 뉴스의 몰락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급격하게 확산된 계기 중 하나는 MBC <pd>의 보도였다. 방송 장악 5년의 결과는 참혹했다. 7월9일 서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언론, 국정원 사태 공범자로 전락했다’ 토론회에서 이희완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사무처장은 “언론에
서는 국정원을 비판하는 보도는 눈을 씻고 봐고 찾을 수 없을 정도다. 오히려 검찰 수사를 흔들며 국정원 비호에 나서고 있다. 특히 공영방송인 KBS와 MBC의 보도는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의 댓글 공작 문제가 처음 불거진 직후인 지난해 12월12일 이 방송사들은 사안을 단순한 ‘공방’으로만 다뤘다. MBC는 기사 제목에 ‘국정원’이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12월16일 밤 경찰의 “댓글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거짓 수사 발표를 이 방송사들은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경찰의 최종 수사 결과가 발표된 4월18일 MBC는 ‘정치 개입, 대선 불개입’이라는 제목으로 애써 사태의 의미를 축소했다. 다른 방송사들이 그나마 ‘정치 개입 사실이 확인됐다’는 취지로 보도한 것과도 온도 차가 두드러졌다. 이희완 사무처장은 “이후에도 방송사들은 국정원 사태와 관련한 보도를 단신으로 처리하거나, 메인 뉴스의 후반부에 배치했다. 언론들은 어떻게든 정권의 입맛에 맞는 보도를 하기 위해 국정원 사태를 악의적으로 누락·축소·은폐·물타기 보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MBC에서는 국정원 사태를 다룬 이 불방됐고, YTN에선 ‘국정원 SNS, 박원순 비하글 등 2만 건 포착’이라는 제목의 단독 보도가 국정원의 압력으로 사라졌다. KBS의 옴부즈맨 프로그램이 국정원 사태에 대한 자사의 보도를 비판하자 담당 국장과 부장이 보직 해임되는 일도 있었다. 매주 참석자가 늘어나고 있는 촛불집회와 각계에서 이어지는 시국선언에 대한 기사를 이 언론사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건 우연이 아니다. 민언련의 조사 결과, 6월22일부터 7월1일까지 는 2건의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와 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KBS와 MBC는 단신으로, 그것도 한 차례만 보도했다. 같은 기간 가 10건, 이 11건을 보도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신문이 지키고, 방송이 끌어준다
신문이 지키고, 방송이 끌어준다. 끈질기게 왜곡하고, 집요하게 외면한다. 언론의 본령이 정치권력·자본권력에 대한 워치도그(감시견) 기능이라고 했던가. 감시견은 사라지고, 충견만 우글거린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70%대를 넘나드는 게 이상한 일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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