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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책임질 차례입니다

사실로 드러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책임지라”며 날 세우던 박 대통령, 국정원 개혁으로 자신의 말 책임져야
등록 2013-06-20 17:02 수정 2020-05-03 04:27

대통령의 주장은 완벽하게 부정됐다.
지난해 대선 닷새 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국정원 정치 개입) 사건이 저를 흠집 내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터무니없는 모략으로 밝혀진다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책임져야 한다”고 공격했다. “(문 후보가) 선거 승리를 위해 국가의 안위를 책임지는 정보기관마저 정쟁의 도구로 만들려고 했다면 이는 좌시할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도 했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도 불구속 기소
반년이 지났다. 검찰은 14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국정원법(제9조 정치 관여 금지) 및 공직선거법(제85조 1항 공무원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은 국정원 옛 심리정보국 직원들이 지난 해 대선과 직접 관련된 게시글을 모두 73건 작성했다고 발표했다. 민주당을 반대하는 글이 37건, 통합진보당과 안철수 후보를 반대하는 글이 각각 32건과 4건으로 조사됐다. 시기별로는 지난해 9월 3건→10월 9건→11월 24건으로 늘어나다가 대선이 임박한 12월 35건으로 뛰었다. 심리전단의 찬반클릭 행위(전체 5174건)에서도 신변잡기(2961건)를 제외한 2213건 중 대선 관련 내용이 57.9%에 달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활동을 지시하고 보고받은 것으로 봤다.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가 지난 6월14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 브리핑룸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 직전 안경테를 만지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가 지난 6월14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 브리핑룸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 직전 안경테를 만지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국정원 여직원 댓글 혐의 확인 불가’란 성급한 수사 결과 발표(지난해 12월16일 대통령 후보 토론회 당일 밤)를 지시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도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 공직선거법·경찰공무원법 위반 혐의와 형법상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다. 김 전 청장은 디지털증거분석실 직원들이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 노트북에서 찾은 선거 개입 증거를 수서경찰서 수사팀에 넘기지 못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미리 정해둔 보도자료 배포일(16일)에 맞추기 위해 증거 분석이 끝나지도 않은 15일 밤부터 허위 보도자료를 작성케 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일부 분석관들은 증거 은폐 시도에 반발하기도 했다. 결국 “모략”이라던 정황은 ‘진실’이 됐고, “국기문란”은 국정원·경찰의 몫이 됐다. 대통령이 된 후보는 뒤바뀐 결과 앞에서 침묵하고 있다.

해체 혹은 전면적인 재구성 필요

원 전 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는 뜻은 박 대통령 당선에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힘을 보탰다는 의미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선거법 위반 혐의는 적용하지 말라’며 검찰 수사팀을 압박한 속사정으로 풀이된다. 황 장관은 수사팀이 지난 5월27일께 보고한 구속영장 청구 의견을 2주 넘게 끌면서 사실상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을 기소하는 대신 구속영장 청구를 포기하며 타협했다. 법무부장관은 박 대통령의 청와대 입성에 관권선거가 작용했음을 탈색시키려 애썼고, 검찰은 전직 국정원장 구속을 포기함으로써 향후 선거사범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스스로 제약한 꼴이 됐다. 국정조사가 실시될 경우 황 장관의 수사 개입 여부를 밝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판 결과에 따라 정권 탄생의 정당성까지 훼손될 수 있다. 문 후보에게 “책임지라”며 날을 세우던 박 대통령이 거꾸로 자신의 말에 책임져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한 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는 “정부 비판세력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며 국가안보가 아닌 정권안보 기관으로 전락한 국정원은 해체 혹은 전면적인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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